김용 작품집 대만 원류판(遠流版) 서문

金庸 2004. 12. 30. 19:20 Posted by 비천호리

소설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기 위해 쓰여진다.
소설에는 사람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다.
소설은 한 사람, 몇 사람, 한 무리의 사람들 혹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성격과 감정을 묘사한다.
그들의 성격과 감정은 횡으로는 그들이 처한 환경에서, 종으로는 그들이 겪어온 일들에서 영향을 받는 것이며 사람과 사람간의 교류와 관계를 반영하는 것이다.
장편소설 가운데 '로빈슨 표류기'만이 단지 한 사람에 대해 그리고 그와 자연간의 관계에 대해 묘사한 것 같지만 뒷부분으로 가면 결국은 하인인 '프라이데이'를 등장시키고 있다.
한 사람에 대해서만 쓴 단편소설은 많은데 그 사람이 환경에 접하는 과정에서 그의 외부에 표현되는 세계와 내심의 세계를 묘사하고 있고 특히 내심의 세계를 많이 그리고 있다.
서양의 전통적인 소설이론은 환경, 인물, 줄거리의 세 요소로 구별하여 작품을 분석한다. 소설 작가들은 각기 개성과 재능이 같지 않기 때문에 중점을 두는 부분도 다르다.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해서 쓴다는 점에서 무협소설은 다른 소설과 똑 같다.
다만 시대배경이 고대이고 무공을 가진 인물이 등장하며 격렬한 싸움에 줄거리가 치우쳐 있을 뿐이다. 어떤 소설이든 특별히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애정소설은 남녀간의 기질과 관련된 감정을 묘사하고 사실소설(寫實小說)은 특정한 시대의 환경을 그려낸다.
'삼국연의(三國演義)', '수호전(水滸傳)' 같은 소설은 큰 무리의 사람들의 투쟁과정을 서술하고 현대소설은 곧잘 등장인물의 심리과정을 중점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소설은 예술의 일종이며 예술이 기본적으로 담고 있는 내용은 사람의 감정이고, 주요 형식은 넓은 의미에서의 미(美), 미학적인 의미에서의 미(美)이다.
소설에서는 그것이 문장이 아름답거나 구성이 멋지거나 간에 관건은 등장인물의 내면세계를 어떤 형식을 통해 어떻게 표현해 내느냐 하는데 있다.
어떤 방법이든 좋다. 작자가 주관적으로 분석하든 혹은 객관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든 간에 인물의 행동과 말에서 객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독자는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의 내용과 독자 자신의 심리상태를 결합시키기 시작한다.
같은 소설을 읽더라도 어떤 사람은 강한 감동을 받는 반면 어떤 사람은 지루해하고 싫증을 내기도 한다.
독자의 개성과 감정이 소설 속에 묘사된 개성과 감정에 접촉하면서 '화학반응'이 생기기 때문이다.
무협소설은 인정(人情)을 표현하는 특정한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마치 작곡가가 자신의 어떤 정서(情緖)를 표현하기 위해 피아노라든가 바이올린, 교향악 혹은 노래의 형식 등을 사용할 수 있고, 화가가 유화, 수채화, 수묵화 또는 만화 중에서 자신에게 적합한 형식을 선택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어떤 형식을 취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표현솜씨의 좋음과 나쁨 그리고 독자와 청자(聽者), 관람자의 마음과 통하여 공명(共鳴)을 일으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점이다.

소설은 예술형식중 한 가지이다.
좋은 예술이 있는가 하면 좋지 않은 예술도 있다.
좋고 나쁘고 하는 것은 예술에서는 미의 범주에 속하고 진실이나 선(善)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미를 판단하는 기준은 아름다움과 느낌이지 과학상의 진실이나 거짓이 아니며 도덕상의 선악(善惡)도 아닐 뿐 아니라 경제적인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 정치적으로 통치자에게 유리하냐 불리하냐도 아니다.
당연히 어떤 예술작품이라도 사회에 영향을 끼치며 그것으로 가치를 판단할 수 있으나 그것은 일종의 다른 평가방법일 뿐이다.
중세 유럽에서는 기독교의 힘이 모든 것에 미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들이 유럽의 박물관에 가서 관람해보면 중세기의 회화(繪畵) 모두가 성경을 소재로 하고 있고, 여체의 미를 표현할 때도 반드시 성모의 이미지에 따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르네상스 이후에야 비로소 일반인의 형상이 회화와 문학에서 표현되기 시작하는데 르네상스라고 하는 것은 문예상으로 그리스, 로마시대의 '사람'에 대한 묘사를 부활시킨 것으로 더 이상 집중적으로 신과 성인에 대해 묘사하지 않게 된 것이다.
중국인의 문예관은 오랫동안 '문이재도'(文以載道: 문장으로 성현의 도를 밝히는 것)였으므로 중세 유럽 암흑시대 당시의 문예사상과 똑같이 '선(善) 또는 불선(不善)'을 문예의 가치판단 기준으로 삼아왔었다.
그렇기 때문에 '시경'에 있는 연가(戀歌)를 임금을 풍자하거나 비빈(妃嬪)을 찬미하는 것이라고 견강부회((牽强附會)하였다.
도연명의 '한정부(閒情賦)', 사마광, 구양수, 안수 등의 그리움이 가득한 애련(愛戀)의 시들을 혹자는 옥의 티라고도 하고 혹자는 달리 가리키는 바가 있을 것이라고 호의적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그들은 문예에 의해 표현되는 것이 감정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고 문자의 유일한 기능은 단지 정치적이나 사회적인 가치를 위해 이용되는 것이라고 여겼다.
나는 무협소설에서 단지 약간의 인물들을 형상화하고 그들이 특정한 무협환경(고대사회이고 法治가 아니라 무력으로 분쟁을 해결하는 사회) 가운데서 겪게되는 일들을 묘사했을 뿐이다.
그 당시의 사회와 현대사회는 많이 다르지만 사람의 성격과 감정은 그다지 변화가 없다.
고대인의 슬픔과 기쁨, 이별과 만남, 희노애락(喜怒哀樂)은 여전히 현대 독자들의 심령(心靈)에 상응하는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물론 독자들은 표현수법이 졸렬하고 기교가 미숙하며 묘사가 깊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고 미학의 관점에서 보면 저급한 예술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든 간에 나는 무슨 도(道)에 관한 내용을 쓰고 싶지는 않다.
나는 무협소설을 쓰면서 동시에 정치평론도 쓰고 철학, 종교와 관련된 글도 써왔다.
사상에 관련된 글은 독자들의 이성에 호소하는 것으로 이런 글에 대해서는 옳고 그름이나 진실, 거짓의 판단이 있을 수 있으며 독자들은 완전히 동의할 수도 있고 일부분에 대해서만 동의할 수도 있고 혹은 완전히 반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소설에 대해서는 나는 독자들이 단지 '좋아한다 ' 또는 '좋아하지 않는다'라든지 '감동을 받았다' 또는 '지루하다'라고만 말하기를 바란다.
내가 가장 기분이 좋은 것은 독자들이 내 소설에 나오는 어떤 인물들을 좋아한다거나 증오한다는 것이며 그러한 감정이 있다는 것은 내 소설 속의 인물이 이미 독자의 심령과 서로 연계가 생겼다는 것이다.
소설을 쓰는 사람의 가장 큰 바램은 약간의 인물들을 창조하여 그들이 독자의 마음속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피와 살이 있는 사람으로 변하도록 하는 것보다 더한 것은 없다.
예술은 창조이다. 음악은 아름다운 소리를, 회화는 아름다운 시각적 이미지를 창조하는 것이고 소설은 인물을 창조하려고 하는 것이다.
만일 현실 그대로만을 표현한다고 하면 녹음기나 사진기가 있는데 구태여 음악이 필요하고 회화가 더 필요하겠는가?
신문, 역사서적, 다큐멘터리 방송, 사회조사통계, 의사의 병력(病歷)기록, 당과 경찰국의 인사문서가 있는데 거기에 더하여 굳이 소설이 있을 필요가 있을까?

1986. 2. 6 홍콩에서
김 용

벽안금조(碧眼金雕) 4-3

碧眼金雕 2004. 12. 28. 20:34 Posted by 비천호리

그가 갑자기 아연실소했다.
자신이 왜 지금 이러한 느낌을 갖게 되었는지 생각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몸을 돌리자 땅에 쓰러져 있는 상관완아의 두 팔이 동과(冬瓜)만하게 부어오른 것이 보였다. 그 시커멓게 변한 상태가 사람을 놀라게 했다.
그가 깜짝 놀라 급히 상관완아를 끌어안고 손으로 만져보니 그녀의 머리가 손을 데일 만큼 뜨겁다.
덜컥 겁이나 그녀의 새빨갛고 윤기가 흐르는 얼굴에 시선을 떨어뜨렸다.
가볍게 찡그린 예쁜 눈썹, 살짝 벌어진 앵두같은 입술 그리고 숨쉬는데 따라 완만하게 움직이는 오똑한 콧망울이 보였다.
푸른 실 한 가닥이 붉은 빛으로 곱게 빛나는 그녀의 뺨에 드리워져 있어 더욱 더 그녀를 가련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석지중은 한참동안 넋이 빠진채 그녀를 바라보다 계곡에서 불어온 차가운 바람에 놀라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급히 상관완아의 혈도를 막아 독성이 심맥으로 퍼지는 것을 막은 다음 그녀를 안고 대나무 숲으로 걸어들어 갔다.
그리고는 심호흡을 한 다음 가부좌를 하고 앉아 공력을 운행, 한 줄기 내력을 장심(掌心)을 따라 끌어올린 다음 그녀의 체내에 주입하여 경맥을 따라 몸밖으로 밀어냈다.
그의 좌장이 혈도를 치자 진기가 그 혈도에 부딪혔고 "비유혈(臂儒穴) "에서 "완맥혈(腕脈穴)"까지 금새 도달했다.
그러자 시커먼 피가 그녀의 손끝에서 줄줄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녀는 두 눈을 꼭 감고 옥 같은 입술을 살짝 벌린 채 여전히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석지중은 이때 천독랑군을 얼마나 증오했는지 모른다.
그녀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가 생각했다.
"조금 전 대나무 끝에서 곤두박질쳤을 때 나는 분명히 중독된 상태였는데 어떻게 저절로 깨어났을까? 내가 백독(百毒)을 피할 수 있단 말인가? 아니면..."
대나무 가지가 흔들리며 자잘한 소리를 냈다.
지금 가을의 이 곤륜산, 고지대에는 추위가 몰려와 나뭇가지에 쌓인 눈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석지중이 깊은 숨을 토해냈다.
이미 상관완아 체내의 독액을 완전히 밀어냈던 것이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상관완아를 안고 안으로 걸어들어 갔다.
대나무 숲 가운데를 지나 회랑을 통해 정사 안으로 들어갔다.
막 문을 들어섰는데 눈앞이 흐릿해지는 순간, 검홍(劍虹)이 번쩍 번쩍 빛을 뿌리며 자신을 향해 쏘아오고 있었다.
그가 번개처럼 발을 옮겨 그 날카로운 일검을 피하고 방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그안에서는 칠절신군이 바닥에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는 것이 보였는데 홍포에 점점이 흑색 독액 자국이 나 있고 꼼짝도 않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 지금 막 운공을 하고 있는 상태인 것 같았다.
"어!"
그가 놀람에 찬 소리를 내며 칠절신군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검풍(劍風)이 이는 소리가 들리며 한 가닥 검망이 뒤쪽에서 쏘아져 왔다.
석지중이 상체를 한번 움직여 간발의 차이로 피한 후 몸을 돌리며 비스듬히 일장을 쳐내며 말했다.
"상관부인, 왜 이러십니까?"
상관부인이 검을 치켜들고 서 있는데 조금전 석지중의 그 교묘한 신법에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녀가 말했다.
"그는 지금 내력으로 독성이 침입하는 것을 막아내고 있는 중이네.
지금 그대가 조심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소란을 피우면 이 사람은 즉시 죽고 말 것이네."
그때서야 상관완아가 석지중의 품에 안겨 있는 것을 보고 급히 물었다.
"완아가 어떻게 된 건가?"
석지중이 말했다.
"지금 잠이 들었습니다. 조금 전에 천독랑군에게 상처를 입어서..."
석지중이 상관부인이 쥐고 있는 단검을 보고 속으로 놀라 생각했다.
"내력이 어째 어제보다 더 증진된 것 같구나. 지금 조금도 불편한데가 없고 상관부인의 두 차례 공격도 이렇게 가볍게 피하다니."
상관부인이 석지중이 어리벙벙하게 서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
"완아를 안고 뭐 하고 있는가, 나한테 주게."
석지중이 상관완아를 상관부인에게 넘겨주고 미미하게 웃으며 문가에 가서 앉았다.
상관부인이 그를 한번 곁눈질한 다음 묵묵히 상관완아를 방석 위에 내려놓고 자신도 가부좌를 하고 앉아 검을 비스듬히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금방 실내에 정적이 내려앉았고 한풍(寒風)이 지붕 틈으로 새어 들어오며 내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석지중의 머릿속에서는 조금 전 칠절신군이 천독랑군과 겨루던 장면들이 맴돌았다.
초식들이 또렷하게 떠오르자 순식간에 일초 일초간 연관된 곳과 파해 방법들이 이해가 되었다.
그러자 오른손을 뻗어 허공에다 손으로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한동안 그러다 다시 왼손을 뻗어 천천히 한 초식을 공격하고 오른손으로 방어방법을 찾는다. 몇 번인가 그러는 동안 벌써 좌우 양손으로 10초를 서로 싸우게 되었다.
그는 이때 비로소 천하 무술은 일맥상통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비록 천독랑군의 초식은 사납고 독랄한 수법을 써 깔끔하게 이기는 수단 위주고, 칠절신군은 무겁지만 매우 빠르고 변환이 기이한 점을 주로 하고 있기는 해도 양자간에 서로 맥락이 있어 그것을 찾아내 파해할 방법이 있었던 것이다.
"검기로 사람을 상하게 할 수 있는 일종의 검술이 있다면 이런 초식들은 적수가 안되겠구나."
그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순식간에 생각이 멀리 미치며 얼마 전 공동삼자가 그의 몸에 펼쳤던 검술이 떠올랐다.
그가 한스러워 속으로 말했다.
"내 반드시 그들에게 이것을 보여주겠다. 그들이 바다처럼 넓은 검술의 도에 도달할 수 있는지 한번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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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안금조(碧眼金雕) 4-2

碧眼金雕 2004. 12. 28. 10:02 Posted by 비천호리

검이 눈부시게 무지개 빛을 뿌리며 천독랑군을 검권(劍圈)내에 가두자 천독랑군의 두 자루 곡척은 우리에 갇힌 두 마리 용처럼 조금도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호흡이 거칠어진 천독랑군의 얼굴에 땀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가 대갈일성하며 쌍척(雙尺)을 한데 모으자 두 줄기 진한 액체가 곡척에서 뿜어져 나왔다.
바로 이때, 칠절신군이 미친 듯이 웃으며 검으로 세 촌 길이의 광망(光芒)을 토해내자 검광이 번쩍이며 둥근 테 모양의 빛줄기가 번개처럼 한 바퀴 회전했다.
"아..."
천독랑군의 옷자락이 검날에 길게 베어져 있고 흘러나온 선혈이 땅을 적시고 있었다.
그가 손을 뒤집어 한번 휘두르자 신형이 유성처럼 빠르게 방밖으로 날아가 대숲 뒤로 사라져갔다.
천독랑군이 막 몸을 돌린 그때 칠절신군이 신음을 흘리며 땅에 쓰러졌다.
순간 석지중이 대갈일성하며 좌장으로 바닥을 쳐 몸을 튕겨 대 나무 꼭대기에 뛰어올랐다. 동시에 일장을 쳐내자 거센 기운이 밀물처럼 뻗쳐나가 천독랑군의 등을 후려쳤다.
"윽!"
천독랑군의 몸이 기울어지며 땅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입을 벌려 선혈을 한 입 토해낸 후 갑자기 고개를 돌려 새카만 기체를 날려보냈는데 마치 무형의 힘에 묶인 것처럼 한 무더기로 뭉쳐 석지중에게 쏘아왔다.
석지중이 아직 대나무 내려서지 않은 상태에서 쏘아져 오는 기체를 보고 몸을 한바퀴 돌렸으나 미처 피하지 못했다.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며 바로 정신을 잃고 대나무 끝에서 곤두박질 쳤다.
천독랑군이 괴이한 웃음을 터트리며 입가의 핏자국을 닦았다.
"대단한 녀석, 지금 공력이 이 정도니 살려둬서는 안되겠구나, 흐흐..."
그가 오른 발을 들어 석지중의 머리를 짓이기려고 했다.

 

상관완아가 놀라 소리치며 자신을 돌보지 않고 덮쳐가며 다섯 손가락을 떨치자 지풍이 줄기줄기 천독랑군의 가슴 앞 요혈로 쏘아져갔다.
그 기세가 원체 흉맹했으므로 천독랑군도 어쩔 수 없이 반걸음 물러나 그녀가 목숨을 돌보지 않고 펼쳐낸 그 한 수를 피할 수 밖에 없었다.
천독랑군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이 계집애야, 간덩이가 부었구나!"
그가 두 손을 치켜들자 열 손가락이 검붉게 변했다.
그리고는 입을 벌려 허연 이빨을 드러낸 채 그녀를 덮쳐갔다.
상관완아는 피투성이에 산발을 한, 귀신같은 모양의 천독랑군이 덤벼들자 놀라서 계속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그녀의 눈에 땅에 쓰러져 있는 석지중이 비치자 저절로 마음이 흔들리며 담력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교갈(嬌喝)을 터트리며 가볍게 몸을 날려 장영(掌影)이 어지럽게 뿌리며 강한 바람으로 천독랑군을 쳐갔다.
천독랑군은 무림에서 가장 무서운 솜씨를 지닌 이제삼군(二帝三君) 가운데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다.
공력이 탁월한데다 각종 독공을 지니고 있어 칠절신군이 펼친 잔곡에 격중되기는 했으나 심맥이 끊어져서 죽지 않고 단지 심맥에 약간의 손상을 입었을 뿐이었다.
비록 칠절신군이 거문고로 석지중과 대결하느라 진력을 심하게 소모하기는 했지만 그의 공력도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때 중상을 입은 상태라고 해도 그가 두 눈을 부릅뜨고 대갈일성하며 열 손가락에서 줄기줄기 강기를 날려 여전히 위력이 남아 있는 일격을 상관완아에게 날렸다.
"아--!"
상관완아가 그 쇠기둥 같은 기경에 격중되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동시에 기경에 맞은 두 손이 시커멓게 변하며 그녀는 땅에 쓰러져 정신을 잃어버렸다.

 

천독랑군이 머리에서 콩알 같은 땀방울을 흘리며 가쁘게 숨을 두어번 몰아쉬고는 흉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 '음풍지(陰風指)'에 맞고도 네가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겠느냐?"
그리고는 쌍장을 들어 내리치려는 순간 갑자기 몇 천근도 넘을 듯 싶은 엄청난 힘이 왼쪽에서 그를 때려왔다.
그가 속으로 크게 놀라 몸을 크게 돌려 일장 밖으로 물러나서 쳐다보니 석지중이 땅에서 기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천독랑군이 놀라 자기 눈을 의심하는 것 같았다.
입술을 움찔거리다 한참만에야 겨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너... 너, 중독되지 않았나?"
석지중이 앙천대소 하고는 유성처럼 빠르게 다가서며 팔을 검 대신 사용해 두 손가락을 꼿꼿이 세워 비스듬히 "전어사야(戰於四野) " 일초를 베어냈다.
묵중하기 이를 데 없는 강한 기운이 휙휙 소리를 내며 공기를 갈랐다.
천독랑군은 석지중이 자기가 뿌린 독기에 스치고도 예상 밖으로 다시 깨어난데다 공격의 기세가 위세는 말할 것도 없고 그 기운이 은연중에 일대종사(一代宗師)의 기풍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마치 그의 공력이 또 적지 않게 증진된 것 같았다.
그는 자기가 중상을 입고 지금 억지로 버티고 있는데 다시 석지중의 이 위맹한 일초 공격을 정면으로 맞받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있었기 때문에 산 아래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몸을 날렸다.
그가 신형이 움직이며 토해내는 울부짓는 소리에 참을 수 없는 비분이 섞여 있었다.
석지중은 천독랑군의 신형이 점차 아득한 구름 뒤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처량한 느낌이 생겨났다.
"천독랑군 같은 명성 있는 인물이 어찌 일개 젊은이에게 호되게 당하고 도망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지금 그는 중상을 당하고 도주했지 않은가?
아-아!
누구라도 발붙일 데 없는 상황에 몰리면 도망치는 길 밖에 없는 건 마찬가지겠지!
그렇지만 왕왕 도망칠 수도 없을 때, 그것이 가장 곤란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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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庸 작품집 광주판(廣州版) 새 서문(序文)

金庸 2004. 12. 23. 23:42 Posted by 비천호리

내소설은 여러 가지 판본으로 출판되었다.
홍콩의 명하판(明河版), 싱가폴과 말레이시아의 명하판 간체판본, 대만에서 선후로 발행된 원경판(遠景版)과 원류판(遠流版), 중국 내지의 천진(天津) 백화문예판(百花文藝版), 삼련서점판(三聯書店版) 등이 나에게서 정식으로 권한을 받아 출판된 것이다.

(北京의 文化藝術社는 원래 정식으로 출판권을 받았으나제3자에게 넘기는 과정에서 분쟁이 생겨 소송으로 까지 가고 말았다.)
백화판은 진작에 출판권이 종료되었고 삼련서점과 문예사의 출판권도 2001년 말에 모두 끝난 후 계약을 다시 연장하지 않았으며 2002년부터는 광주출판사(廣州出版社)가 독점출판 할 수 있도록 출판권을 주었다.
이번 광주 신판(新版)에서는 적지 않은 오자(誤字), 탈자(脫字)를 바로 잡았다.
현재 나는 세 번째 교정을 하고 있는 중인데 그 주요한 것은 독자들이 잘못을 지적해 준 것을 받아 들여 반영하는 것이며 몇 군데 긴 단락에 걸쳐 개작하는 것은 평론자들의 의견과 토론회에서 토론된 내용에 따른 것이다.
수정 후의 판본 역시 광주출판사에서 출판될 것이다.
광주출판사에 출판권을 준 것은 광주와 홍콩이 거리상 가까워 출판 실무상의 연락이 쉬울 뿐 아니라 출판사에서 내게 여러 가지 협력과 특혜를 주었기 때문인데 그것은 책의 품질보증, 해적판 단속, 판권보호 등 작가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많은 노력들이었으며 그로 인하여 우리들이 협력해 나갈 앞길에 매우 좋은 전망을 가질 수 있었다.
독자 여러분들의 계속적인 비평과 가르침을 환영하며 그것은 광주출판사를 통해 나에게 전달될 수 있을 것이다.

金庸
2001. 1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