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칠언시(七言詩)의 조상(老祖宗)
秋風蕭瑟天氣凉   草木搖落露爲霜.  
群燕辭歸鵠南翔    念君客遊多思腸.  
慊慊思歸戀故鄕    君何淹留寄他方 
賤妾耿耿守空房   憂來思君不敢忘
不覺淚下沾衣裳    援琴鳴絃發淸商  
短歌微吟不能長    明月皎皎照我床  
星漢西流夜未央    牽牛織女遙相望  
爾獨何辜限河梁


가을바람 소슬(蕭瑟)하고 날씨 서늘하니
초목은 흔들려 잎이 지고 이슬은 서리가 되네.
제비 떼 작별하여 귀로에 오르고 기러기는 남쪽으로 날개를 젓는다.
객지에 떠도는 그대를 생각하니 애가 끓는구나
고향에 돌아가기를 못내 바라면서도
그대는 타향 어느 땅에서 그리 오래 머무르시나
나 홀로 외로이 빈 방을 지키자니 (근심이 일며) 그대 생각 차마 잊을 수 없어
나도 몰래 옷자락이 눈물에 젖네
거문고의 현을 퉁겨 청상곡(淸商曲)을 연주해봐도
짧은 노래 가냘픈 소리 오래가지 못하네
밝은 달빛 내 침상을 환하게 비추고
은하수 서편에 기우는데 밤은 아직 다하지 않는구나
견우 직녀가 멀리서 서로 바라보기만 하듯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그대 홀로 하량(河粱)에 서 있나요?

조비(曹丕)의 <연가행 燕歌行> 두 수(首)중 하나

 
2. 함께 백량체(柏梁體) 시를 읊다독자는 혹시 '위문제(魏文帝) 조비(曹丕)의 시(詩)가 김용소설에 나왔던가?' 하는 의문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답은 당연히 '나오지 않았다'이다.

오히려 황용(黃蓉)이 죽었다는 영지상인(靈智上人)의 말에 속은 황노사(黃老邪)가 울다가 웃다가 하면서 조비의 친동생인 조식(曹植)의 애도사(哀悼辭) 두 수(首)를 노래하는 장면이 나오는데(射雕英雄傳 제24회 '기사오유(騎鯊敖遊: 상어를 타고 놀다)*'를 보라), 완안홍렬(完顔洪烈)의 일행 중에서는 양강(楊康) 만이 미쳐버린것 같은황노사가 무엇을 노래하는지 알아본다.

그렇다면 현존하는 가장 초기의 칠언시(七言詩)인 조비의 이 한 수의 시가 김용의 무협소설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기억력이 좋은 독자는 이 시를 한 두 번 낭송해 보면 <의천도룡기 倚天屠龍記>의 회목시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실 알고 보면 둘 다 백량대체(柏梁臺體)이고 사용하였고 운각(韻脚) 또한 칠양운(七陽韻)이다.
조비의 이 <연가행>은 모두 합쳐 15구(句)로 여성의 어조로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진솔하게 표현했다.

<의천도룡기> 회목 40구는 백량대체시인데, <연가행>과는 10구가 운각이 똑같아 김용이 작품을 쓸 때 조비의 시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대략적으로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天涯思君不可忘 세상을 아무리 떠돌아도 그대 생각 잊을 수 없네 <의천도룡기 제1회>
憂來思君不敢忘 (근심이 일며) 그대 생각 차마 잊을 수 없네 <연가행 제8구>
조비의 시 중의 여성은 차마 잊을 수 없다(不敢忘)고 하지만, 그것은 단지 근심이 일자 비로소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소동사(小東邪) 곽양(郭襄)은 잊을 수 없어서 천하를 떠돌지만 그렇게 해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武當山頂松柏長 무당산 정상에는 송백(松柏)이 자라네 <의천도룡기 제2회>
短歌微吟不能長 짧은 노래 가냘픈 소리 오래가지 못하네 <연가행 제11구>조비 시의 長은 길고 짧다 할 때의 長이고 김용 시의 長은 자라다(生長)는 뜻의 長이다.
송백(松柏)은 장삼봉을 가리킨다.

誰送氷來仙鄕 누가 얼음배를 선향(仙鄕)으로 보냈나? <의천도룡기 제7회>
慊慊思歸戀故鄕 고향에 돌아가기를 못내 바라면서도 <연가행 제5구>조비의 시 전체는 여성이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을 묘사했는데 '겸겸(慊慊)'은 마음이 흡족하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김용의 시는 소설의 내용과 조화를 이루어 그려낸 인물들의 정경(情景)을 더욱 다양하게 만든다. 선향(仙鄕)은 북극권 안 활화산이 있는 작은 섬을 가리키는 것으로 장교주(張敎主)가 태어난 곳이다.

七俠聚會樂未央 칠협(七俠)이 모두 모이니 기쁨이 다하지 않는구나
<의천도룡기 제9회>
星漢西流夜未央 은하수 서편에 기우는데 밤은 아직 다하지 않는구나
<연가행 제13구>
미앙(未)은 시경(詩經) 소아(小雅) 정료(庭燎) 편의 전고(典故)를 인용한 것이며 전체 시는 다음과 같다.

벌써 날이 샜는가, 아직 한 밤중인데 뜰에서 화톳불이 활활 타오르네. 여러 제후들 조정에 드니 방울소리 딸랑 딸랑 (
夜如何其? 夜未央 庭燎之光 君子至止 鸞聲將將)   

벌써 날이 샜는가, 아직 날이 새려면 멀었는데 뜰에서 화톳불이 타고 있네. 여러 제후들 조정에 드니 방울소리 딸랑 딸랑 (夜如何其? 夜未艾庭燎晢晢* 君子至止,鸞聲哕哕)

벌써 날이 샜는가, 이제 막 날이 새려고 하는데 뜰에서 화톳불이 깜박이네. 여러 제후들 조정에 드니 그 깃발이 보이네 (夜如何其? 夜鄕晨 庭燎有煇 君子至止 言觀其旗)정료(庭燎)는 조정에 밝혀 놓은 큰 화톳불이다. 캄캄한 밤이 아직 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온밤을 지새워야하니 괴롭구나!
시에서 일을 잘 해내지 못한 사람은 주선왕(周宣王)이고 이 성실 근면한 서주(西周) 중흥(中興)의 왕은 아들 주유왕(周幽王)을 잘 가르치지 못하였고 그 뒤의 일은 독자들 모두가 잘 알 것이다. 손자 평왕(平王) 때가 되어서 주 왕실은 동쪽으로 천도할 수 밖에 없었고 이로써 춘추시대가 시작된다.

성한(星漢)은 하늘의 은하(銀河)이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여 너무나 지루한데 긴 밤은 끝나지 않으니 너무나 비참하구나!
서한(西漢)에 장락궁(長樂宮)과 미앙궁(未央宮)이 있었는데 합쳐서 「장락미앙(長樂未央)」이라 했다.
김용의 시에서는 장취산(張翠山)이 무당에 돌아옴으로써 모두가 잠깐동안 기쁨을 누리게 된 것을 낙미앙(樂未央)을 써서 형용한 것이다. 그러나 백일동안 고운 꽃이 없듯이 비극은 너무나 빨리 찾아온다.

百歲壽宴肝腸 백세 생일잔치가 간장이 끊어지듯 슬픈 자리로 변하네<의천도룡기 제10회>
念君客遊思斷腸 객지에 떠도는 그대를 생각하니 애가 끓는구나 <연가행 제4구>
 
비통함은 사람의 애가 끊어지게 만든다.
김용은 공동파의 <칠상권보 七傷拳譜> 총결(總訣)에서도 칠양운을 사용한다.
「오행(五行)의 기(氣)는 음양(陰陽)이 섞여 있어 심장을 손상시키고 폐를 상하게 하며 간장을 끊고, 원기를 소모시켜 정신이 흐려지게 하며 삼초(三焦)가 역류하여 혼백마저 날아오르게 한다」 (의천도룡기 제21회를 보라)

百尺高塔任回翔 백척 높은 탑에서 날아 내리다 <의천도룡기 제27회>
群燕辭歸雁南翔 제비 떼 작별하여 귀로에 오르고 기러기는 남쪽으로 날개를 젓네 <연가행 제3구>
같은 것은 난다(翔)는 것이며 조비의 시는 해마다 때를 놓치지 않고 남쪽으로 돌아가는 기러기의 본성-신의를 지키는-을 묘사했다.
김용의 시에서는 「하늘을 나는 사람(空中飛人)」을 그렸는데 이는 과장된 것이다.

육대 문파의 여러 사람들은 지구의 인력에서 자유롭지 않았고 멸절사태(滅絶師太)는 일부러 고집을 부려 목숨을 버린다.

四女同舟何所望 네 여자가 같은 배를 타고 바라는 바가 무엇인가? <의천도룡기 제27회>
牽牛織女遙相望 견우 직녀가 멀리서 서로 바라보기만 한다 <연가행 제14구>
견우와 직녀는 일년에 한번씩 만나지만, 무기(無忌) 오빠의 네 「어린 여자 친구」는 모두들 「장부인(張夫人)」이 되기를 바란다.

東西永隔如參商 삼(參)과 상(商)처럼 동서의 끝으로 영원히 헤어지다 <의천도룡기 제30회>
援琴鳴絃發淸商 거문고의 현을 퉁겨 청상곡(淸商曲)을 연주하다 <연가행 제10구>
 
조비 시의 상(商)은 5음 가운데 하나인 상(商)이다.
한 맺힌 규방의 여자가 스스로 거문고를 연주하여 자기에게 들려주지만 연주하면 할수록 우울한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다.


김용 시의 상(商)은 하늘의 별인데, 상(商)과 삼(參)은 하나가 뜨면 하나가 지기 때문에 영원히 서로 만나지 못한다.
김용은 소소(小昭)가 머나먼 페르시아에 가는 것으로 처리했지만 여운을 남겼다.
바람기 있고 은혜를 저버리는 무기(無忌) 오빠가 총교주(總敎主)를 맞아와 첩으로 삼을까?

잠시동안은 <사대협 (査大俠)이 새로 고친 세 번째 판(新三版)에서 바꾸었는지 어쨌는지 알 수 없으므로> 독자 스스로의 결정에 맡겨진 셈이다.

新婦素手裂紅裳 신부(新婦)의 희고 매끈한 손이 붉은 치마를 찢네 <의천도룡기 제34회>
不覺淚下沾衣裳 나도 몰래 옷자락이 눈물에 젖네 <연가행 제9구>
신부(新婦)의 부(婦 fu)는 월음(광동지방 발음)으로는 「抱 bao」이다.


주 장문인(周 掌門人)은 성사(成事)를 눈 앞에 두었다가 조씨(趙氏) 요녀(妖女)가 혼례장에서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실패하고 만다.

구판(舊版) <의천도룡기>에서 주 장문인에 대한 결말은 출가(出家)하여 비구니가 되고 무기 오빠가 아미파의 장문인 직을 이어 받는데, 이건 영호충(令狐沖)이 여승들의 두목,「뜨거운 몸(熱身)」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수정 2판(修訂二版)에서는 끝 부분에서 지약(芷若)이 다시 나타나 조민(趙敏)과 무기 오빠를 두고 다투자 무기 오빠가 「건곤대나이(乾坤大나移)」신공(神功)을 펼쳐 둘 사이를 조정함으로써 일부양처(一夫兩妻)의 상황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누가 언니가 되고 누가 동생이 될지는 다시 다투어야 할 것이다.
새로 고친 세 번째 판(新三版)에서는 어떻게 될까?

君子可欺之以方 군자는 인정에 맞는 방법으로는 속일 수 있다 <의천도룡기 제38회>
君何淹留寄他方 그대는 타향 어느 땅에서 그리 오래 머무르시나 <연가행 제6구>
의천도룡기의 方과 연가행의 方은 같지 않다.
조비 시의 方은 방향(方向), 지방(地方) 할 때의 방이고, 자기에게 묻지만 자기가 답할 수는 없어서 장래 「양심(良心)없는 사내」가 집에 돌아 왔을 때 직접 마주하고 묻는 것으로 남겨 두어야 한다.

김용 시에서는 맹자(孟子)에 나오는 전고(典故)를 썼는데 '인품이 방정(方正)하다' 할 때의 方이다.
* 어머니가 '아름다운 여자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속이더라도 군자는 믿어줘야 한다'(원문: 君子正宜被美貌女子所欺)고 임종시에 당부했지만 결국은 쓸모가 없었던 것이다.

출처: 詩詞金庸(http://jinyong.ylib.com.tw/works/v1.0/works/poem.htm)(역자 주)
마지막 부분은 제가 가지고 있는 의천도룡기 원문의 구판, 신판 어디에도 그런 내용이 나오지 않는데 이 글의 원작자가 다른 판본을 본 것이지 알 수 없습니다.

 
◇ 회목(回目)
장회소설(章回小說)의 매회마다 붙어 그 회의 내용을 개괄하는 표제
◇ 하량(河梁)
절친한 사이였던 한(漢)의 이릉(李陵)과 소무(蘇武)가 함께 흉노(匈奴) 땅에 십 여년간잡혀 있다가 소무가 먼저 귀국하게 되어 하량(河梁)이란 곳에서 헤어질 때 이릉이 지어준송별 5언시의 첫 구인 "手上河梁" 에서 온 말로 하량(河梁)이란 강가의 다리를 말함.
◇ 백량대(柏梁臺)중국의 한무제가 장안(長安)의 서북쪽에 지은 누대◇ 백량체(柏梁體)한무제가 백량대 위에서 군신을 모아 놓고 짓게 한 칠언련구(七言聯句)의 한시(漢詩)가하나의 체(體)로서 자리잡게 되었는데, 이것을 백량체(柏梁體)라고 함.◇ 연구(聯句)
두 사람 이상이 한 구씩 주고 받으면서 계속 써 내려간 시. 매 구마다 운을 사용한다.漢武帝와 신하들이 柏梁臺에서 唱和한데서 비롯함.

◇ 운각(韻脚)
시나 부(賦)의 끝 구(句)에 붙이는 운자(韻字)

<倚天屠龍記 新版 回目>
第01回 天涯思君不可忘
第02回 武當山頂松柏長
第03回 寶刀百煉生玄光
第04回 字作喪亂意彷徨
第05回 皓臂似玉梅花装
第06回 浮
北溟海茫茫

第07回 誰送氷舸來仙鄕
第08回 窮發十載泛歸航
第09回 七俠聚會樂未央
第10回
百歲壽宴肝腸
第11回 有女長舌如利槍
第12回 針其膏兮藥其肓

第13回 不悔仲子逾我墻
第14回 當道時見中山狼
第15回 奇謀妙計夢一場
第16回 剝極而復參九陽
第17回 靑翼出沒一笑揚
第18回 倚天長劍飛寒芒
第19回 禍起蕭墻破金湯
第20回 與子共穴相扶將
第21回 排難解紛當六强
第22回 群雄歸心約三章
第23回 靈芙醉客綠柳庄
第24回 太極初傳柔克剛
第25回 擧火燎天何煌煌
第26回 俊貌玉面甘損傷
第27回 百尺高塔任回翔
第28回 恩斷義絶紫衫王
第29回
四女同舟何所望
第30回 東西永隔如參商
第31回 刀劍齊失人云亡
第32回 寃蒙不白愁欲狂
第33回 簫長琴短衣流黃
第34回
新婦素手裂紅裳
第35回 屠獅有會孰爲殃
第36回 夭矯三松郁靑蒼
第37回 天下英雄莫能當
第38回
君子可欺之以方
第39回 秘兵書此中藏
第40回 不識張郎是張郎

(참고) 孟子 萬章章句上 二章故君子可欺以其方, 難罔以非其道. 彼以愛兄之道來, 故誠信而喜之, 奚僞焉?

군자는 인정 맞는 방법으로 속일 수는 있어도 도리에 어긋나는 거짓말로는 속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가 형을 사랑하는 도리로써 대해왔기 때문에 참으로 믿고서 기뻐한 것이다. 어찌 거짓이 있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