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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안금조(碧眼金雕) 4-1

碧眼金雕 2004. 12. 23. 17:16 Posted by 비천호리

제4장 잔곡삼궐(殘曲三闕, '잔곡' 세 곡)

 

석지중이 천둥처럼 대갈일성하자 한 줄기 금광이 벼락처럼 쏘아졌다.
과영(戈影)이 어지러이 뿌려지니 금빛이 찬란했다.
석지중이 크게 소리를 내지르면서 좌장을 날리는 동시에 오른손의 금과로는 "용유대택(龍游大澤)" 일초를 펼쳐 찬란한 금빛을 뿌리며 천독랑군의 가슴 앞 요혈을 찔러 갔다.
"멋진 솜씨다!"
천독랑군이 소리치며 몸을 돌려 번개처럼 빠르게 다섯 손가락으로 비스듬히 잘라왔다.
"팍!"
그의 일장이 석지중의 손목을 때렸고 그 순간 금과를 다시 빼앗아 갔다.
그러나 석지중이 좌장(左掌)으로 힘껏 쳐낸 반야진기가 짓쳐들고 있었다.
천독랑군이 단단히 버티고 서서 우장에 경력을 모아 쳐냈다.
석지중은 천독랑군의 우장이 갑자기 시커멓고 굵게 변하며 비린내를 띤 차가운 기경이 쳐오는 것을 느끼고 숨을 멈춘 채 경력을 가중해 십성의 반야진기를 모두 쏟아냈다.
순간 그의 두 눈썹이 치켜 올라가며 옷자락이 부풀어 올랐다.
"펑..."
벼락치는 소리가 울리며 지붕이 강한 힘을 받자 부서진 기와와 부러진 대들보가 자욱한 먼지를 뿌리며 떨어져 내렸다.
삽시간에 실내가 부연 먼지로 가득 차버렸다.


석지중이 묵직한 신음을 토하며 세 걸음 밀려나 벽에 기댔다.
눈앞이 어질어질해지며 바로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먼지 속에서 천독랑군은 석지중의 강력한 반야진기에 얻어맞고는 거꾸로 몇 척을 날아 땅에 쓰러졌다.
그런 후 '왁' 선혈을 한 입 가득 토해내고 미처 핏자국을 닦을 틈도 없이 문 쪽으로 굴러 떨어지는 대들보를 피했다.
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시노귀(柴老鬼), 금기(琴技)를 정말 완전히 익혔구나, 금방 탄주한 것이 뭐냐?"
원래 그의 손끝이 석지중에게 막 닿았을 때 상대의 거센 힘에 매우 놀라기는 했지만 받아 낼 수 있을 거라는 가늠이 들었으므로 십성의 공력을 끌어올려 정면으로 부딪히려고 했었다.
그러나 그가 경력을 끌어 올렸을 때 몇 군데 주맥(主脈)에서 경력이 올라오지 않을 줄이야...
그제서야 비로소 조금 전 칠절신군이 퉁겨낸 금음이 자기의 심맥을 튀게 했다는데 생각이 미쳤고 때문에 칠절신군에게 소리를 질렀던 것이다.
온 방안이 먼지로 가득 차 있었으므로 그는 말을 마친 후 참지 못하고 기침을 한번 했다.
칠절신군이 말했다.
"노독(老毒), 나의 '잔곡' 두 번째 곡을 더 맛보겠느냐?"
천독랑군이 노해서 소리쳤다.
"네가 먼저 내 독물 맛을 봐야 할거다!"

 

그가 오른 손을 흔들자 푸른 별 모양의 물체가 점점이 쏟아져 섬전 같이 빠르게 칠절신군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쏘아졌다.
순간 날카로운 외침이 울리고 상관완아가 말했다.
"당신..."
하지만 즉시 다른 사람에게 입을 틀어 막혔는지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다른 쪽 벽에 있던 상관부인이 초조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물었다.
"완아, 괜찮느냐?"
칠절신군이 벼락같이 소리쳤다.
"이 따위 물건은 치워라!"
콰르릉 기경이 거세게 쏟아지며 자욱한 먼지 사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피처럼 붉은 홍포 차림의 칠절신군이 흰 수염을 바람에 올올이 날리며 맹렬하게 쌍장을 휘두른 것이었다.
그의 현문진기(玄門眞氣) 솜씨가 시전되자 천독랑군이 던졌던 작은 뱀들은 바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는데 알고 보니 푸른색으로 번뜩이던 물체들은 뱀의 눈이었던 것이다.
천독랑군이 괴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다시 내 무영지독(無影之毒)을 구경할 테냐!"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칠절신군의 얼굴색이 변하며 대갈했다.

"내 검강을 받아랏!"

 

칠절신군이 허리를 약간 굽혀 옥금 속에서 길이가 한 척 가량 돼 보이는 단검을 꺼내 휘두르자 한 가닥 푸르스름한 광권(光圈)이 녹색 먼지를 뚫고 전광석화처럼 천독랑군에게 부딪혀 갔다.
천독랑군이 차갑게 코웃음을 치는 순간 "창!" 두 자루 곡척(曲尺)이 부딪히며 불꽃이 번쩍였다. 그가 벌써 8초 16식을 쳐냈던 것이다.
신형을 바람처럼 움직이며 두 사람이 서로 20여초를 공격했지만 승패를 가리지 못하고 있는 중에 먼지가 점차 가라앉으며 실내가 밝아지기 시작했다.
이 때 상관부인은 앵두 같은 입술을 살짝 가리고 묘한 기색을 띤 채 믿음이 가득 찬 눈빛으로 번개처럼 공격하고 있는 칠절신군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문 가까운 벽쪽에는 석지중이 상관완아를 단단히 붙잡은 채 좌장을 가슴 앞에 들어 공격에 대비하면서 방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두 기인의 치열한 싸움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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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안금조(碧眼金雕) 3-12

碧眼金雕 2004. 12. 20. 15:14 Posted by 비천호리

상관부인의 눈에 한 가닥 연민의 빛이 스쳤다.
그녀가 탄식하는 기색을 띠고 말했다.
"20년 만에 당신도 많이 늙었구려.
그런데 늙어서 노망이 들기 시작했소? 결국 화상들을 찾아와 이렇게 괴롭히고 있다니.
완아(宛兒)의 아버지는 벌써 12년 전에 세상을 떠났는데 당신은 아직도 무엇을 마음에 담아 두고 있소? "
칠절신군이 깊은 한숨을 토해 낸 후 손으로 거문고 줄을 누르며 느리게 시를 읊었다.

 
錦瑟無端五十弦,一弦一柱思華年.
庄生曉夢迷蝴蝶,望帝春心托杜鵑.
滄海月明珠有淚,藍田日暖玉生烟.
此情可待成追憶,只是當時已惘
然.
 
금슬(錦瑟)은 까닭 없이 오십현이거늘,
현 한 줄, 받침대 하나마다 빛났던 시절 그려보네.
장자(庄子)는 새벽 꿈에 나비와 자신을 혼동했고
망제(望帝)는 춘심(春心)을 두견새에 의탁했네
푸른 바다에 달이 밝으면 진주는 눈물 속에 자랐고
남전(藍田)에 해 따사로우면 옥은 푸른 연기 펴냈었네
이 정은 기다리면 추억이 되련마는
당시에는 다만 망연자실할 뿐이었네!

 
거문고 가락과 시를 읊는 소리가 구성지게 어우러지며 듣는 사람을 감동시켰다.
연주는 그쳤으나 실내에는 여전히 여운이 계속되고 있었다.
칠절신군이 소맷자락을 휘저어 흘러내린 눈물을 닦고는 말했다.
"아직 기억할 수 있소?"
상관부인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대로 기억하고 있어요..."
그러다 문득 자기의 실태를 깨달았는지 잠시 멈추었다 말투를 바꾸었다.
"오늘 제가 여기 온 건 곤륜 화상들에게 이 두 금과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봐달라고 하기 위해서예요."
"그건 대막붕성의 열쇠인 금과 아니요? 그대가 어떻게 두 개를 갖고 있소?"
석지중은 상관부인이 꺼낸 것과 자기가 갖고 있는 금과가 같은 모양인 것을 보자 심장이 뛰며 그 두 금과를 뚫어지게 주시했다.
상관부인이 말했다.
"이것은 내가 거연성 밖 녹주(綠洲, 오아시스)에 있는 나무에 걸린 것을 발견한 거예요.
그런데 연못 안에는 말 두 마리가 중독되어 죽어 있더군요."

바로 이때,
"흥!"
차가운 비웃음과 함께 황영(黃影) 번뜩이며 거센 바람이 상관부인의 손을 휘말아 가는데 그 기세가 마치 번갯불이 치는 것처럼 빨랐다.
칠절신군이 호통을 치며 열 손가락을 한번 구부렸다 금현(琴弦)을 퉁겨 '잔곡(殘曲)'을 쏟아냈다.
"끙!"
무거운 신음이 울리며 몇 사람의 그림자가 합쳐졌다 떨어졌다.
칠절신군이 소리쳤다.
"천독랑군(千毒郎君), 너였구나!"
상관부인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흥! 천하삼군(天下三君) 중 둘이 모였군.
내 금과를 빼앗은 사람이 천독랑군 당신이구나!"
인영이 갈라졌다 갑자기 다시 합쳐지자 '쾅' 소리가 울리며 지붕에서 모래와 돌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먼지가 자욱한 가운데 창백한 얼굴에 황삼(黃衫)을 걸친 왜소한 사내가 음침하게 말했다.
"대단한 녀석이구나. 곤륜파에서 언제 이런 고수를 배출했지?"

알고 보니 천독랑군이 상관부인의 손에서 금과 하나를 탈취하는 것을 보고 그가 상관부인의 공격을 막을 때 석지중이 그 수중에서 금과를 다시 빼앗아 왔던 것이다.
그가 당당하게 말했다.
"곤륜파에는 고수가 구름처럼 많소이다. 소생은 별 것 아니오."
천독랑군이 음험하게 한번 웃었다.
"그렇다면 내 일초를 한번 받아봐라!"
그가 사지(四肢)를 펼치고 번개처럼 움직이니 황영(黃影)이 난무하며 네 발 달린 거미처럼 석지중의 전신 요혈을 덮쳐왔다.
강한 기운이 소용돌이 치며 쉬-익 괴성(怪聲)이 울려 퍼졌다.

- 제3장 설산삼마(雪山三魔)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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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안금조(碧眼金雕) 3-11

碧眼金雕 2004. 12. 3. 20:40 Posted by 비천호리

그가 열 손가락을 구부려 현을 한 바탕 뜯자 거대한 소리가 공기를 찢을 듯이 날카롭게 울리며 빠르게 쏘아나갔다.
낙박이 손을 막 반쯤 들었을 때 그 형체를 가진 것 같은 거문고 소리에 격중되었다.
그의 두 눈이 부풀어오르며 거대한 체구가 세척을 날아 땅에 무겁게 떨어졌다.
그의 칠공(七孔)에서 핏물이 솟아나며 사지를 부들부들 떨다 죽어갔다.
바로 이때 석지중이 눈을 번쩍 뜨며 신광을 폭사했다.
그가 우장(右掌)을 뒤쪽을 향해 한번 흔들자 불문의 "반야진기"가 떨쳐 나오며 산과 같이 강한 힘이 두 라마승을 쳤다.
처참한 비명이 울렸다.
두 라마승이 거대한 추에 맞은 것처럼 선혈을 한 입씩 토해내며 거꾸로 날아 땅에 떨어져 죽어갔다.
석지중이 깊은 숨을 토해내며 말했다.
"한 곡이 다 끝났습니까?"

 

칠절신군이 석지중을 한동안 응시하다 말했다.
"마지막 한 단락이 아직 남았다. 마저 다 들을테냐?"
석지중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연히 들어야지요."
칠절신군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나만 교만한 줄 알았더니 나보다 더한 놈이 있구나!"
그의 눈썹이 한번 부르르 떨리며 다섯 손가락을 가지런히 하여 움직이자 거문고 소리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석지중이 속으로 혼자 놀랐다.
원래 그는 좀 전에 하마터면 정신이 흐트러질 뻔했던 것이다.
전신의 피가 끓어오르며 그 아름답고 부드러운 몸을 덮쳐 끌어안으려고 했었는데 다행히 두 라마승에게 이장을 얻어맞고 놀라 정신이 맑아졌었다.
그래서 이때속으로 마음먹었다.
"진기를 끌어올려 칠절신군이 어떤 여인을 만들어내더라도 장력으로 쳐버리면 그 환상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가 두 눈을 크게 뜨고 쌍장으로는 가슴께를 누르며 마주하고 있는 칠절신군을 주시했다.생각한대로 거문고 곡조를 따라 모락모락 피고 있던 옅은 연기가 한참 피어나는 처녀의 모습으로 변하며 그녀가 부드럽고 가녀린 버들허리를 흔들면서 하늘하늘 걸어왔다.
석지중이 가벼운 기합을 넣으며 장을 평평히 하여 쳐내자 장풍이 세차게 뻗어나와 옅은 연기를 흩어버렸다.
그러나 거문고 곡조가 은근하게 변하자 무수히 많은 아름다운 소녀들이 나타나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경사(輕紗)가 바람에 흔들리고, 아리땁게 춤추는 모습이 마치 나비가 꽃 사이에 노닐 듯하여 사람의 눈을 흐리고 어지럽게 만들었다.
이때 석지중은 자신이 금빛 휘황찬란한 궁궐 안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 사람을 미혹하는 미인들의 애교 어린 웃음소리에 안색이 급격하게 붉어지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방울소리가 잘게 부숴지며 옥과 금으로 치장하고 머리에는 벽옥(碧玉)으로 만든 비녀를 꽂은 중년부인이 절문을 들어서 후원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애교스런 웃음을 가득 띤 소녀가 그녀를 따르고 있는데 유미호치(柳眉皓齒)의 미인이다.
두 사람이 느릿하게 걷는 듯 보여도 실은 행운유수(行云流水)처럼 빨라 순식간에 후원 정사에 이르렀다.
그녀들도 거문고 소리를 듣자 놀랍고 한편으로는 의아한 빛을 드러냈지만 여전히 웃음을 머금은 채 방안으로 들어섰다.
이때 석지중은 가슴이 터질듯이 부풀어올라 더 견디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자 아랫 입술을 깨물며 쌍장을 들어 그 가공의 소녀를 쳤다.
아름답게 춤추던 꽃다운 소녀의 모습이 바로 사라져 버렸다.
그가 '후-' 숨을 내쉬며 '다행히 이런 방법이 통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을 때 갑자기 미소를 띤 여인 둘이 눈 앞에 나타난 것을 보았다.
나이 어린 소녀는 남색(藍色) 비단옷을 입었는데 웃음을 가득 머금고 자기에게 걸어오고 있었다.
석지중이 그 웃음에 마음이 흔들려 정신이 흐트러져 있는데 비단옷이 바닥에 끌리며 한 줄기 그윽한 향기가 엄습해 그의 마음을 취하도록 만들었다.
그가 한숨을 쉬고 한 소리 내지르며 손을 들어 벼락치듯 쪼개냈다.
기경이 아직 그 남삼소녀를 치기 전에 옷자락이 펄럭거리며 소녀의 모습이 마치 바람을 타고 오는 선녀처럼 보였다.
남삼소녀는 석지중이 갑자기 일장을 쳐낼 줄 생각을 못했던지 어여쁜 눈썹을 찡그리며 옥장(玉掌) 비스듬히 흔들자 옥지(玉指)가 난초처럼 펴지며 몇 가닥 지풍이 석지중의 가슴 앞 운문(雲門), 부대(府台), 천지(天池) 세 혈을 찔러왔다.
석지중은 격출한 장풍이 상대방의 옥장에 깨뜨려지자 비로소 환상이 아니라 진짜 사람인걸 알아차렸다.
그가 정신을 약간 차려보니 난초 꽃 같은 다섯 손가락이 벌써 눈앞에 엄습해 오고 있었다.
그가 급히 상반신을 뒤로 반척 젖히며 우장으로 "운몽택우(雲夢澤雨) 일초를 펼쳐 손바닥을 뒤집어 그 옥같이 윤기가 흐르는 다섯 손가락을 붙잡았다.
남삼소녀의 얼굴이 바로 새빨개졌다.
그리고 가볍게 호통을 치며 필사적으로 벗어나려 하자 오히려 석지중이 어쩔 줄 몰라했다.
이때 중년 미부는 굳은 표정으로 무겁게 칠절신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두 줄기 날카로운 눈빛이 마치 두 자루 장검처럼 칠절신군의 마음을 파고들자 마침내 칠절신군의 두 손이미미하게 떨리며 한동안 입술만 움찔거리다 비로소 말을 꺼냈다.
"상관부인(上官夫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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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안금조(碧眼金雕) 3-10

碧眼金雕 2004. 12. 2. 22:55 Posted by 비천호리

그리고 손을 놓으며 말했다.
"내 저들을 데리고가 산등성이에 숨어 있다가 두 시진 후에 다시 오겠다."
석지중이 말했다.
"전력을 다해 맞서겠습니다. 사형께서는 마음을 놓으십시오."
석지중이 표연히(飄然) 떠나는 본무대사가 멀리 사라질 때까지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후원으로 걸어갔다.
실내에 들어서자 칠절신군이 가부좌를 한 채 지긋이 눈을 감고 두 손으로 거문고를 쓰다듬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한 줄기 가느다란 연기가 화로에서 피어올라 맑은 향기를 방안에 가득 뿌리고 있었다.
석지중이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포원수일(抱元守一) 하고 뜻을 단전에 두고 기를 가라앉혀 정신을 집중하자 잠시 후 선정(禪定)에 들어섰다.
칠절신군이 한 손가락을 튕기자 빠르고 예리한 금음(琴音)이 허공에 격사되었다.
석지중이 몸이 한번 떨리고 뒤쪽 벽이 몇 번 "스슥" 소리를 내고는 부스러기가 떨어져 그의 머리 위에 허연 가루를 날렸다.
칠절신군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열 손가락을 느릿하게 퉁기기 시작하자 일시 방안에는천음(天音)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처럼 음악소리가 퍼졌다.
그리고는 그 소리가 가닥 가닥 석지중의 귓속을 파고 들었다.

 

바로 이때 곤륜산 아래에는 붉은 승포를 입고 구레나룻 투성이인 중년의 승려 세 명이 나타났다.
그들은 날 듯이 빠르게 움직였다.
눈을 밟고 지나간 자리에 희미한 흔적만을 남기며 신속하게 돌계단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들이 통로 길 석판에 움푹 패인 다섯 개의 발자국을 보자 약간의 놀라는 빛을 띠며 서로 무언가를 수군거리다 옥허궁을 향해 걸어갔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온 절안이 한 사람도 없이 텅텅 빈 것을 깨닫고 더욱 놀라 좌우를 한번 돌아보고는 안쪽 건물 쪽으로 들어갔다.
월동문(月洞門)을 들어서자 들릴 듯 말 듯하게 거문고 소리가 들리는 것을 알고 일제히 정사를 향해 걸어갔다.
그들중 체격이 큰 화상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곤륜 장문인 안에 있소이까?"
그의 말투는 딱딱하고 서툴러 중원의 말투 같지가 않았다.
말을 마쳐도 방안에서 아무런 대답이 없자 다시 크게 말했다.
"빈승(貧僧) 낙박(洛博) 장문인의 명을 받들어 서장에서 왔소이다."
실내에 있는 칠절신군은 벌써 그 서투른 말투를 알아 듣고 있었다.
그가 미간을 찌푸리고 코웃음을 치며 정신을 분산시키지 않고 계속 "천마곡"을 연주했다.
거문고 소리가 실오리처럼 느리게 퍼졌다.
그 소리는 보드랍고 매끄러워 단아하고 아름다운 소녀가 은근하게 버들가지 같이 가느다란 허리를 돌리는 것처럼 들렸다.
실외의 서장에서 온 라마승 셋은 그 소리에 빠져들어 가고 있었다.

 

갑자기 라마승 가운데 한 명이 대갈일성하며 일장으로 문짝을 부수며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들이 실내에 들어서자 곧 눈앞에 풍만한 요염한 소부(少婦)가 옥체(玉體)를 한들거리며 나타났다. 들릴 듯 말 듯 노래를 흥얼거리고 미묘한 춤을 춘다.
"허허허!"
낙박이란 불리는 라마승이 두 손을 뻗어 껴안으려고 몇 걸음 내딛다가 구부리고 있는 석지중의 무릎에 걸려 쿠당탕 넘어지고 말았다.
낙박의 신지가 일시 맑아졌다.
그러자 실내에 옥금을 어루만지고 있는 은발홍포(銀髮紅袍)의 노인과 단삼(短衫) 차림의 젊은이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가 괴성을 지르며 다른 두 대라마를 끌어당겨 힘껏 흔들며 서장 말로 몇 마디 했다.
그 두 화상은 정신을 차리자 동시에 괴이한 소리를 내지르며 장을 휘둘러 앉아 있는 석지중을 쳐갔다.
"퍽!" "퍽" 두 번의 소리가 울리며 석지중의 몸이 비스듬히 기울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앉은 채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낙박은 거문고 소리가 다시 울리는 것을 듣자 또 신지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가 크게 놀라며 홍포노인이 수작을 부린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자 그가 대강일성하며 큰 손을 뻗었다.
갑자기 그의 손이 자색(紫色)으로 물들며 성난 파도가 둑을 무너뜨리는 것 같은 기세로 거센 회오리바람이 뻗어나가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는 노인을 쳤다.
칠절신군이 두 눈을 번쩍뜨더니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밀종대수인(密宗大手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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