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안금조(碧眼金雕) 4-2

碧眼金雕 2004. 12. 28. 10:02 Posted by 비천호리

검이 눈부시게 무지개 빛을 뿌리며 천독랑군을 검권(劍圈)내에 가두자 천독랑군의 두 자루 곡척은 우리에 갇힌 두 마리 용처럼 조금도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호흡이 거칠어진 천독랑군의 얼굴에 땀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가 대갈일성하며 쌍척(雙尺)을 한데 모으자 두 줄기 진한 액체가 곡척에서 뿜어져 나왔다.
바로 이때, 칠절신군이 미친 듯이 웃으며 검으로 세 촌 길이의 광망(光芒)을 토해내자 검광이 번쩍이며 둥근 테 모양의 빛줄기가 번개처럼 한 바퀴 회전했다.
"아..."
천독랑군의 옷자락이 검날에 길게 베어져 있고 흘러나온 선혈이 땅을 적시고 있었다.
그가 손을 뒤집어 한번 휘두르자 신형이 유성처럼 빠르게 방밖으로 날아가 대숲 뒤로 사라져갔다.
천독랑군이 막 몸을 돌린 그때 칠절신군이 신음을 흘리며 땅에 쓰러졌다.
순간 석지중이 대갈일성하며 좌장으로 바닥을 쳐 몸을 튕겨 대 나무 꼭대기에 뛰어올랐다. 동시에 일장을 쳐내자 거센 기운이 밀물처럼 뻗쳐나가 천독랑군의 등을 후려쳤다.
"윽!"
천독랑군의 몸이 기울어지며 땅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입을 벌려 선혈을 한 입 토해낸 후 갑자기 고개를 돌려 새카만 기체를 날려보냈는데 마치 무형의 힘에 묶인 것처럼 한 무더기로 뭉쳐 석지중에게 쏘아왔다.
석지중이 아직 대나무 내려서지 않은 상태에서 쏘아져 오는 기체를 보고 몸을 한바퀴 돌렸으나 미처 피하지 못했다.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며 바로 정신을 잃고 대나무 끝에서 곤두박질 쳤다.
천독랑군이 괴이한 웃음을 터트리며 입가의 핏자국을 닦았다.
"대단한 녀석, 지금 공력이 이 정도니 살려둬서는 안되겠구나, 흐흐..."
그가 오른 발을 들어 석지중의 머리를 짓이기려고 했다.

 

상관완아가 놀라 소리치며 자신을 돌보지 않고 덮쳐가며 다섯 손가락을 떨치자 지풍이 줄기줄기 천독랑군의 가슴 앞 요혈로 쏘아져갔다.
그 기세가 원체 흉맹했으므로 천독랑군도 어쩔 수 없이 반걸음 물러나 그녀가 목숨을 돌보지 않고 펼쳐낸 그 한 수를 피할 수 밖에 없었다.
천독랑군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이 계집애야, 간덩이가 부었구나!"
그가 두 손을 치켜들자 열 손가락이 검붉게 변했다.
그리고는 입을 벌려 허연 이빨을 드러낸 채 그녀를 덮쳐갔다.
상관완아는 피투성이에 산발을 한, 귀신같은 모양의 천독랑군이 덤벼들자 놀라서 계속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그녀의 눈에 땅에 쓰러져 있는 석지중이 비치자 저절로 마음이 흔들리며 담력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교갈(嬌喝)을 터트리며 가볍게 몸을 날려 장영(掌影)이 어지럽게 뿌리며 강한 바람으로 천독랑군을 쳐갔다.
천독랑군은 무림에서 가장 무서운 솜씨를 지닌 이제삼군(二帝三君) 가운데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다.
공력이 탁월한데다 각종 독공을 지니고 있어 칠절신군이 펼친 잔곡에 격중되기는 했으나 심맥이 끊어져서 죽지 않고 단지 심맥에 약간의 손상을 입었을 뿐이었다.
비록 칠절신군이 거문고로 석지중과 대결하느라 진력을 심하게 소모하기는 했지만 그의 공력도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때 중상을 입은 상태라고 해도 그가 두 눈을 부릅뜨고 대갈일성하며 열 손가락에서 줄기줄기 강기를 날려 여전히 위력이 남아 있는 일격을 상관완아에게 날렸다.
"아--!"
상관완아가 그 쇠기둥 같은 기경에 격중되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동시에 기경에 맞은 두 손이 시커멓게 변하며 그녀는 땅에 쓰러져 정신을 잃어버렸다.

 

천독랑군이 머리에서 콩알 같은 땀방울을 흘리며 가쁘게 숨을 두어번 몰아쉬고는 흉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 '음풍지(陰風指)'에 맞고도 네가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겠느냐?"
그리고는 쌍장을 들어 내리치려는 순간 갑자기 몇 천근도 넘을 듯 싶은 엄청난 힘이 왼쪽에서 그를 때려왔다.
그가 속으로 크게 놀라 몸을 크게 돌려 일장 밖으로 물러나서 쳐다보니 석지중이 땅에서 기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천독랑군이 놀라 자기 눈을 의심하는 것 같았다.
입술을 움찔거리다 한참만에야 겨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너... 너, 중독되지 않았나?"
석지중이 앙천대소 하고는 유성처럼 빠르게 다가서며 팔을 검 대신 사용해 두 손가락을 꼿꼿이 세워 비스듬히 "전어사야(戰於四野) " 일초를 베어냈다.
묵중하기 이를 데 없는 강한 기운이 휙휙 소리를 내며 공기를 갈랐다.
천독랑군은 석지중이 자기가 뿌린 독기에 스치고도 예상 밖으로 다시 깨어난데다 공격의 기세가 위세는 말할 것도 없고 그 기운이 은연중에 일대종사(一代宗師)의 기풍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마치 그의 공력이 또 적지 않게 증진된 것 같았다.
그는 자기가 중상을 입고 지금 억지로 버티고 있는데 다시 석지중의 이 위맹한 일초 공격을 정면으로 맞받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있었기 때문에 산 아래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몸을 날렸다.
그가 신형이 움직이며 토해내는 울부짓는 소리에 참을 수 없는 비분이 섞여 있었다.
석지중은 천독랑군의 신형이 점차 아득한 구름 뒤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처량한 느낌이 생겨났다.
"천독랑군 같은 명성 있는 인물이 어찌 일개 젊은이에게 호되게 당하고 도망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지금 그는 중상을 당하고 도주했지 않은가?
아-아!
누구라도 발붙일 데 없는 상황에 몰리면 도망치는 길 밖에 없는 건 마찬가지겠지!
그렇지만 왕왕 도망칠 수도 없을 때, 그것이 가장 곤란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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