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안금조(碧眼金雕) 4-3

碧眼金雕 2004. 12. 28. 20:34 Posted by 비천호리

그가 갑자기 아연실소했다.
자신이 왜 지금 이러한 느낌을 갖게 되었는지 생각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몸을 돌리자 땅에 쓰러져 있는 상관완아의 두 팔이 동과(冬瓜)만하게 부어오른 것이 보였다. 그 시커멓게 변한 상태가 사람을 놀라게 했다.
그가 깜짝 놀라 급히 상관완아를 끌어안고 손으로 만져보니 그녀의 머리가 손을 데일 만큼 뜨겁다.
덜컥 겁이나 그녀의 새빨갛고 윤기가 흐르는 얼굴에 시선을 떨어뜨렸다.
가볍게 찡그린 예쁜 눈썹, 살짝 벌어진 앵두같은 입술 그리고 숨쉬는데 따라 완만하게 움직이는 오똑한 콧망울이 보였다.
푸른 실 한 가닥이 붉은 빛으로 곱게 빛나는 그녀의 뺨에 드리워져 있어 더욱 더 그녀를 가련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석지중은 한참동안 넋이 빠진채 그녀를 바라보다 계곡에서 불어온 차가운 바람에 놀라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급히 상관완아의 혈도를 막아 독성이 심맥으로 퍼지는 것을 막은 다음 그녀를 안고 대나무 숲으로 걸어들어 갔다.
그리고는 심호흡을 한 다음 가부좌를 하고 앉아 공력을 운행, 한 줄기 내력을 장심(掌心)을 따라 끌어올린 다음 그녀의 체내에 주입하여 경맥을 따라 몸밖으로 밀어냈다.
그의 좌장이 혈도를 치자 진기가 그 혈도에 부딪혔고 "비유혈(臂儒穴) "에서 "완맥혈(腕脈穴)"까지 금새 도달했다.
그러자 시커먼 피가 그녀의 손끝에서 줄줄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녀는 두 눈을 꼭 감고 옥 같은 입술을 살짝 벌린 채 여전히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석지중은 이때 천독랑군을 얼마나 증오했는지 모른다.
그녀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가 생각했다.
"조금 전 대나무 끝에서 곤두박질쳤을 때 나는 분명히 중독된 상태였는데 어떻게 저절로 깨어났을까? 내가 백독(百毒)을 피할 수 있단 말인가? 아니면..."
대나무 가지가 흔들리며 자잘한 소리를 냈다.
지금 가을의 이 곤륜산, 고지대에는 추위가 몰려와 나뭇가지에 쌓인 눈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석지중이 깊은 숨을 토해냈다.
이미 상관완아 체내의 독액을 완전히 밀어냈던 것이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상관완아를 안고 안으로 걸어들어 갔다.
대나무 숲 가운데를 지나 회랑을 통해 정사 안으로 들어갔다.
막 문을 들어섰는데 눈앞이 흐릿해지는 순간, 검홍(劍虹)이 번쩍 번쩍 빛을 뿌리며 자신을 향해 쏘아오고 있었다.
그가 번개처럼 발을 옮겨 그 날카로운 일검을 피하고 방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그안에서는 칠절신군이 바닥에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는 것이 보였는데 홍포에 점점이 흑색 독액 자국이 나 있고 꼼짝도 않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 지금 막 운공을 하고 있는 상태인 것 같았다.
"어!"
그가 놀람에 찬 소리를 내며 칠절신군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검풍(劍風)이 이는 소리가 들리며 한 가닥 검망이 뒤쪽에서 쏘아져 왔다.
석지중이 상체를 한번 움직여 간발의 차이로 피한 후 몸을 돌리며 비스듬히 일장을 쳐내며 말했다.
"상관부인, 왜 이러십니까?"
상관부인이 검을 치켜들고 서 있는데 조금전 석지중의 그 교묘한 신법에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녀가 말했다.
"그는 지금 내력으로 독성이 침입하는 것을 막아내고 있는 중이네.
지금 그대가 조심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소란을 피우면 이 사람은 즉시 죽고 말 것이네."
그때서야 상관완아가 석지중의 품에 안겨 있는 것을 보고 급히 물었다.
"완아가 어떻게 된 건가?"
석지중이 말했다.
"지금 잠이 들었습니다. 조금 전에 천독랑군에게 상처를 입어서..."
석지중이 상관부인이 쥐고 있는 단검을 보고 속으로 놀라 생각했다.
"내력이 어째 어제보다 더 증진된 것 같구나. 지금 조금도 불편한데가 없고 상관부인의 두 차례 공격도 이렇게 가볍게 피하다니."
상관부인이 석지중이 어리벙벙하게 서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
"완아를 안고 뭐 하고 있는가, 나한테 주게."
석지중이 상관완아를 상관부인에게 넘겨주고 미미하게 웃으며 문가에 가서 앉았다.
상관부인이 그를 한번 곁눈질한 다음 묵묵히 상관완아를 방석 위에 내려놓고 자신도 가부좌를 하고 앉아 검을 비스듬히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금방 실내에 정적이 내려앉았고 한풍(寒風)이 지붕 틈으로 새어 들어오며 내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석지중의 머릿속에서는 조금 전 칠절신군이 천독랑군과 겨루던 장면들이 맴돌았다.
초식들이 또렷하게 떠오르자 순식간에 일초 일초간 연관된 곳과 파해 방법들이 이해가 되었다.
그러자 오른손을 뻗어 허공에다 손으로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한동안 그러다 다시 왼손을 뻗어 천천히 한 초식을 공격하고 오른손으로 방어방법을 찾는다. 몇 번인가 그러는 동안 벌써 좌우 양손으로 10초를 서로 싸우게 되었다.
그는 이때 비로소 천하 무술은 일맥상통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비록 천독랑군의 초식은 사납고 독랄한 수법을 써 깔끔하게 이기는 수단 위주고, 칠절신군은 무겁지만 매우 빠르고 변환이 기이한 점을 주로 하고 있기는 해도 양자간에 서로 맥락이 있어 그것을 찾아내 파해할 방법이 있었던 것이다.
"검기로 사람을 상하게 할 수 있는 일종의 검술이 있다면 이런 초식들은 적수가 안되겠구나."
그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순식간에 생각이 멀리 미치며 얼마 전 공동삼자가 그의 몸에 펼쳤던 검술이 떠올랐다.
그가 한스러워 속으로 말했다.
"내 반드시 그들에게 이것을 보여주겠다. 그들이 바다처럼 넓은 검술의 도에 도달할 수 있는지 한번 보자."

'碧眼金雕'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벽안금조(碧眼金雕) 4-5  (0) 2005.01.08
벽안금조(碧眼金雕) 4-4  (0) 2005.01.04
벽안금조(碧眼金雕) 4-2  (0) 2004.12.28
벽안금조(碧眼金雕) 4-1  (0) 2004.12.23
벽안금조(碧眼金雕) 3-12  (0) 2004.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