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안금조(碧眼金雕) 4-4

碧眼金雕 2005. 1. 4. 19:32 Posted by 비천호리

상관부인은 석지중의 안색에 기쁨과 분노가 계속 교차하는 것을 보고 의아해서 말했다.
"뭐하는 건가?"
석지중이 웃으며 그 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외투를 벗어들고 말했다.
"상관부인, 따님이 추울텐데 이걸 덮어주시죠."
상관부인은 석지중이 이렇게까지 대담하게 자기 면전에서 방자하게 행동할 줄 몰랐는지 놀라 두 눈이 동그래졌다.
"너..."
석지중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 조금 전 따님 체내의 독액을 몸밖으로 몰아냈는데 지금 아마 한기(寒氣)가 들겁니다..."
석지중에게 다른 뜻이 전혀 없고 꾸며내는 행동이 아닌 것 같자 상관부인은 안심하고 석지중이 던져준 장포로 상관완아를 덮어주었다.
딸의 불그스레 윤기가 도는 작은 얼굴을 보자 자신의 얼굴을 만지며 속으로 탄식했다.
"아! 완아가 이렇게 빨리 컸구나, 나도 이제 늙었구나."
그녀가 칠절신군에게 시선을 돌려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사람이 신이 아닌데 어찌 감정을 억제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정(情)이라는 글자 하나에 천하의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쓰라림을 맛보았던가?
이 사람은 마흔 살이었을 때 백발이 되었으니, 아! 정 때문에 애가 타고, 정 때문에 번뇌하고..."
그녀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몰래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젊었을 때 제멋대로 했던 것이 지금까지 한을 남기는구나.
완아가 내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려면 내가 좀 더 신중해야한다."

 

실내가 한참동안 고요하게 유지되다 꽤 시간이 흐른 후 칠절신군이 눈을 떴다.
입고 있는 홍포가 완전히 검은 색으로 변하였고 앉은 자리 주위도 독액에 부식된 것이 보였다.
그의 시선이 상관부인에게 닿자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 아직 있었구려! 가버린 줄 알았소."
상관부인이 말했다.
"몸은 좀 어때요?"
칠절신군이 말했다.
"노독물의 독공이 정말 대단하오. 내가 먼저 '잔곡'으로 호신진기를 깨뜨리지 않았다면 그의 음양쌍척(陰陽雙尺)"을 그렇게 빨리 무너뜨리지 못했을 거요.
당년 태산(泰山) 장인봉(丈人峰)에서 만났을 때에는 천초를 겨루고도 그를 이기지 못하다가 다행히 검강을 사용해서 비로소 한 초를 이길 수 있었소.
생각도 못했소. 20년이 지나고 그가..."
상관부인이 말했다.
"평생동안 고집불통에 오만하기만 하더니 그대도 부상을 입을 때가 있었군요.
지금 당신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으니 제가 있는 공래산 와운곡(云谷)에 가서 요양하는 것이 차라리 낫겠어요..."
칠절신군이 상관부인을 응시하다 느릿하게 말했다.
"당신 말이 맞소. 중독된 상태로 보아 49일간 밤낮으로 공력을 운행해야만 독을 완전히 몰아낼 수 있을 것 같소.
하지만 20년 전 와운곡에 들지 못하게 거절당했을 때 하룻밤 사이에 검은머리가 백발로 변해버렸소. 그때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었다오..."
그가 한숨을 쉬고 말했다.
"게다가 내가 유령대제 수하의 사람을 상하게 했으니 그들이 곤륜 화상들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오. 그래서 나는 곤륜에 머물러야만 하오. 당신이 갖고 왔던 그 금과는..."
상관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벌써 두 금과에 새겨져 있는 무늬모양을 다 베껴놨어요. 여기 화상들이 돌아오면 좀 물어봐야겠어요."

 

석지중이 듣자하니 상관부인이 가지고 있던 금과는 분명히 가짜였지만 그 사실을 알릴 수는 없고 해서 계속 칠절신군만 바라보았다.
칠절신군이 흰 수염을 날리며 말했다.
"얘야, 넌 내가 50년 동안에 겨우 발견한 훌륭한 근골을 갖고 있다. 본래는 내가 배운 모든 것을 너에게 전해주려고 했다. 하지만 3년 후 나하고 비검(比劍) 약속이 있으니 전수해 주려해도 네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잘 안다.
그래서 내 너한테 한마디하면, 3년 뒤에 다시 겨룰 때는 내 잔곡 세 소절을 다 들어보거라..."
석지중이 꿋꿋하게 머리를 끄덕였다.
"3년 후 오늘, 제가 반드시 노선배님의 '잔곡'을 경청하겠습니다."
칠절신군이 말했다.
"나와 사대신통이 내년 봄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었다.
그렇지만 지금 사도(邪道)가 발흥(勃興)하는 형세를 보니 한시바삐 수련을 더 하지 않으면 무림에 발을 디딜 수가 없게 생겼다.
얘야, 내 너한테 한가지 부탁할 일이 있는데..."
석지중이 말했다.
"그게 무언지요?"
"나 대신 내년 봄 화산(華山) 청운협(靑云峽)에 가서 사대신통을 제거해다오!"
칠철신군이 말했다.
이런 말이 있다.
"이제삼군사신삼도(二帝三君四神三島) 일월은휘천하불소(日月隱耀天下不笑)"
석지중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노래 같기도 하고 게송(偈頌) 같기도 한데 무슨 뜻입니까?"
칠절신군이 말했다.
"이제삼군사신삼도는 늙어 죽지도 않고 있는 우리들 몇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만약 이들이 강호에 나타나면 어떤 사람도웃으려고 생각도 할 수 없고 심지어 해와 달마저도감히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뜻이다."
석지중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말했다.
"동해 멸신도가 삼도 중 하나이지요?"
칠절신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른바 삼도라고 하는 건 해남도(海南島), 멸신도(滅神島), 기석도(崎石島) 이렇게 세 섬을 가리킨다. 이 삼도는 모두 스스로 일파(一派)를 이루고 있어 각자 특이한 무공으로 강호에 이름을 떨치고 있단다. 어! 너 멸신도하고 무슨 일로 연루되어 있느냐?"
석지중이 고개를 흔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몸을 일으켜 본무선사를 맞으러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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