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지중이 미미하게 웃기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생각은 벌써 아버지에게 돌아가 있었던 것이다.
그가 걸어가면서 물었다.
"사형, 거연(居延)에 갔던 제자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제 가친께서 어떻게 되었는지 정말 알 수가 없군요."
본무선사가 말했다.
"아! 사제 또 집안 일을 생각하고 있었구나. 내 영광(靈光)을 거연에 보냈으니 가까운 시일 내에 분명히 돌아올 거네. 사제, 본문의 '운룡팔식(云龍八式) 경공(輕功)을 어느 정도까지 익혔느냐?"
그가 화제를 옮겨 물었다.
석지중이 웃으며 말했다.
"사형, 한번 보시겠습니까?"
그가 두 팔을 한번 펼치자 백학(白鶴)이 날개를 젓듯 몸이 바람처럼 날아 공중에서 몸을 기울여 마치 야조(夜鳥)처럼 비상하였다.
그리고는 공중에서 세 바퀴를 돌고 낙엽이 지듯이 절 뒤에 사뿐히 날아 내렸다.
본무선사가 흔쾌히 웃는 소리가 밤하늘을 타고 아주 멀리서 전달되어 고요한 송림에는 재잘거리는 것처럼 전해졌다.
곤륜산의 밤은 꿈처럼 깊어가고...
바깥에는 찬바람이 몰아치고 있지만 실내에는 화롯불이 피워져 있어 따뜻하고, 등잔불이 희미한 가운데 향연(香烟) 모락모락 피어올라 흩어지고 있다.
칠절신군이 책상다리를 하고 한켠에 있는 백옥고금(白玉古琴) 앞에 앉아 열 손가락으로 가볍게 현을 누르더니 천천히 퉁긴다.
갑자기 은병이 깨져 물방울이 뿜어지듯 한 오리 깊은 생각이 금음(琴音)을 따라 생겨나기 시작했다.
석지중의 심신은 완전히 금음에 사로잡혀 소리에 따라 어떤 때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다가 어떤 때는 살며시 웃고 난해한 현음에 깊은 생각에 더욱 빠져들었다가 철마(鐵馬) 몰려오는 듯한 소리에 감정이 격앙되기도 했다.
현의 다른 곳으로 손가락을 옮기자 부드러운 소리가 마치 자애로운 어머니가 낮은 목소리로 부르는 것 같고 그윽한 밤에 정인이 속삭이는 것처럼 들리자 석지중의 두 눈이 젖어들더니 작은 소리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아!"
칠절신군이 한숨을 토하며 열 손가락을 한번 퉁기자 비단이 찢어지는 것 같은 소리를 내고는 금성(琴聲)이 뚝 멈췄다.
그가 놀라 깨어나는 석지중을 쳐다보고 웃으며 말했다.
"아이야, 넌 정감(情感)이 너무 많아 금음의 느낌에 빠지기 쉽구나.
보통 곡에도 이래서야 어찌 내 '천마곡(天魔曲)'을 끝까지 들을 수 있겠느냐?"
석지중이 흘러내린 눈물을 닦으며 얼굴을 붉히고 말했다.
"노선배님의 거문고 소리는 확실히 출신입화(出神入化)의 경지에 이미 다다른 것 같습니다.
저도 전력을 다할 뿐입니다.
노선배님께서 '천마곡'을 연주하시면 저는 반드시 마음에 경계를 하고 조금 전처럼 감상하는 마음을 갖지 않겠습니다."
칠절신군이 쾌활하게 한번 웃고 말했다.
"정말 내 젊었을 때와 똑같이 고집이 세고 감정도 풍부하구나. 아이야 너 나한테 거문고를 배울테냐?"
석지중이 말했다.
"후배가 노선배님과 은원(恩怨)의 결말을 맺은 후에 다시 가르침을 청하겠습니다.
지금은 사양하겠습니다."
칠절신군이 석지중의 우뚝 솟은 콧날을 응시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느리게 말했다.
"그것도 좋지, 우리 은원을 해결하고 다시 찬찬히 이야기를 나누자꾸나.
내일 오전에 너의 반야대능력(般若大能力)을 보도록 하자"
석지중이 정사(精舍)를 물러 나와 전원(前院)으로 걸어가 대나무 숲을 바라보며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몸을 한번 구부리고 펴 대나무 끝에 올라섰다.
대나무 가지가 흔들리는 가운데 그가 네 척 정도 길이로 대나무 줄기를 꺾어 잎을 떼고는 절 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가 막 착지했을 때 절 옆에서 그림자가 튀어나오며 소리쳤다.
"누구냐?"
석지중이 몸을 돌리며 대나무 줄기를 품에 넣고 흘낏 보니 야간경계를 하는 화상 둘이라 말했다.
"나, 석지중이다."
"아!"
왼편 중년 화상이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사숙님이셨군요."
석지중이 그 말에 대답했다.
"내 뒷산에 좀 가볼 일이 있으니 너희들 만약 장문인이 나를 찾으면 그렇게 말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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