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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안금조(碧眼金雕) 3-5

碧眼金雕 2004. 11. 24. 19:37 Posted by 비천호리

석지중이 미미하게 웃기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생각은 벌써 아버지에게 돌아가 있었던 것이다.
그가 걸어가면서 물었다.
"사형, 거연(居延)에 갔던 제자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제 가친께서 어떻게 되었는지 정말 알 수가 없군요."
본무선사가 말했다.
"아! 사제 또 집안 일을 생각하고 있었구나. 내 영광(靈光)을 거연에 보냈으니 가까운 시일 내에 분명히 돌아올 거네. 사제, 본문의 '운룡팔식(云龍八式) 경공(輕功)을 어느 정도까지 익혔느냐?"
그가 화제를 옮겨 물었다.
석지중이 웃으며 말했다.
"사형, 한번 보시겠습니까?"
그가 두 팔을 한번 펼치자 백학(白鶴)이 날개를 젓듯 몸이 바람처럼 날아 공중에서 몸을 기울여 마치 야조(夜鳥)처럼 비상하였다.
그리고는 공중에서 세 바퀴를 돌고 낙엽이 지듯이 절 뒤에 사뿐히 날아 내렸다.
본무선사가 흔쾌히 웃는 소리가 밤하늘을 타고 아주 멀리서 전달되어 고요한 송림에는 재잘거리는 것처럼 전해졌다.

곤륜산의 밤은 꿈처럼 깊어가고...


바깥에는 찬바람이 몰아치고 있지만 실내에는 화롯불이 피워져 있어 따뜻하고, 등잔불이 희미한 가운데 향연(香烟) 모락모락 피어올라 흩어지고 있다.
칠절신군이 책상다리를 하고 한켠에 있는 백옥고금(白玉古琴) 앞에 앉아 열 손가락으로 가볍게 현을 누르더니 천천히 퉁긴다.
갑자기 은병이 깨져 물방울이 뿜어지듯 한 오리 깊은 생각이 금음(琴音)을 따라 생겨나기 시작했다.
석지중의 심신은 완전히 금음에 사로잡혀 소리에 따라 어떤 때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다가 어떤 때는 살며시 웃고 난해한 현음에 깊은 생각에 더욱 빠져들었다가 철마(鐵馬) 몰려오는 듯한 소리에 감정이 격앙되기도 했다.
현의 다른 곳으로 손가락을 옮기자 부드러운 소리가 마치 자애로운 어머니가 낮은 목소리로 부르는 것 같고 그윽한 밤에 정인이 속삭이는 것처럼 들리자 석지중의 두 눈이 젖어들더니 작은 소리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아!"
칠절신군이 한숨을 토하며 열 손가락을 한번 퉁기자 비단이 찢어지는 것 같은 소리를 내고는 금성(琴聲)이 뚝 멈췄다.

 

그가 놀라 깨어나는 석지중을 쳐다보고 웃으며 말했다.
"아이야, 넌 정감(情感)이 너무 많아 금음의 느낌에 빠지기 쉽구나.
보통 곡에도 이래서야 어찌 내 '천마곡(天魔曲)'을 끝까지 들을 수 있겠느냐?"
석지중이 흘러내린 눈물을 닦으며 얼굴을 붉히고 말했다.
"노선배님의 거문고 소리는 확실히 출신입화(出神入化)의 경지에 이미 다다른 것 같습니다.
저도 전력을 다할 뿐입니다.
노선배님께서 '천마곡'을 연주하시면 저는 반드시 마음에 경계를 하고 조금 전처럼 감상하는 마음을 갖지 않겠습니다."
칠절신군이 쾌활하게 한번 웃고 말했다.
"정말 내 젊었을 때와 똑같이 고집이 세고 감정도 풍부하구나. 아이야 너 나한테 거문고를 배울테냐?"
석지중이 말했다.
"후배가 노선배님과 은원(恩怨)의 결말을 맺은 후에 다시 가르침을 청하겠습니다.
지금은 사양하겠습니다."
칠절신군이 석지중의 우뚝 솟은 콧날을 응시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느리게 말했다.
"그것도 좋지, 우리 은원을 해결하고 다시 찬찬히 이야기를 나누자꾸나.
내일 오전에 너의 반야대능력(般若大能力)을 보도록 하자"

 

석지중이 정사(精舍)를 물러 나와 전원(前院)으로 걸어가 대나무 숲을 바라보며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몸을 한번 구부리고 펴 대나무 끝에 올라섰다.
대나무 가지가 흔들리는 가운데 그가 네 척 정도 길이로 대나무 줄기를 꺾어 잎을 떼고는 절 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가 막 착지했을 때 절 옆에서 그림자가 튀어나오며 소리쳤다.
"누구냐?"
석지중이 몸을 돌리며 대나무 줄기를 품에 넣고 흘낏 보니 야간경계를 하는 화상 둘이라 말했다.
"나, 석지중이다."
"아!"
왼편 중년 화상이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사숙님이셨군요."
석지중이 그 말에 대답했다.
"내 뒷산에 좀 가볼 일이 있으니 너희들 만약 장문인이 나를 찾으면 그렇게 말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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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안금조(碧眼金雕) 3-4

碧眼金雕 2004. 11. 16. 20:43 Posted by 비천호리

설산삼마가 모두 크게 노했다.
설산노마가 차갑게 비웃으며 말했다.
"너 신군의 제자이냐? 꼬마야! 너 목숨이 아깝지 않은가 보구나?"
석지중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나 석지중은 곤륜파 제자인데 죽음을 두려워할 리가 있겠느냐? 쳇 내 일장(一掌)이나 받아라!"
그가 숨을 한모금 들이쉬고 한 손을 돌려 지극히 자연스럽게 일장을 떨쳐냈다.
설산노마는 단지 산들바람이 부는 것 밖에 느끼지 못했는데 돌연 질식할 것 같은 웅혼(雄渾)한 기운이 상반신을 짓누르자 마음속으로 크게 놀랐다.
그는 손바닥을 내려뜨려 숨을 들이키고 단전의 내공을 모두 끌어올려 장심(掌心)을 바깥으로 하여 토해내자 한 줄기 기경이 뭉쳐져 쏘아갔다.
"펑!"
커다란 소리가 한번 울리자 설산노마가 비명을 지르며 그의 몸이 다섯 척이나 밀려 넘어졌는데 오른팔 팔꿈치 아래가 몽땅 잘려나가 온 땅에 선혈을 뿌리고 있었다.
나머지 설산이마가 크게 놀라 노성(怒聲)을 지르며 석지중을 향해 두 가닥 장풍을 날려왔다.

 

석지중은 자신도 이렇게 커다란 위력이 있을 줄 몰랐는지 어리벙벙해 있다가 상대방이 산 같은 기세로 쪼개온 장풍을 느끼자 급히 몸을 구부리며 일장을 밀어냈다.
석지중의 몸이 한번 흔들렸으나 결국은 똑바로 섰다.
그는 자기의 발이 청석에 일촌(一寸) 가량 들어갔고 돌가루와 눈이 사방에 날리고 있을뿐 아니라 설산쌍마가 비틀거리며 일어나 "왁" 소리와 함께 선혈을 한 입 토해내는 것을 보았다.
칠절신군이 쾌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좋아! 불문 '반야진기(般若眞氣)'를 결국 연성했구나. 이래야 진정한 이 어르신의 적수가 될 수 있지."
설산삼마가 원한서린 시선으로 석지중을 한번 노려보더니 노마두가 말했다.
"너희 곤륜파는 앞으로 편안할 날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반드시 너희들 시체가 온 산에 깔리도록 하고야 말겠다."
칠절신군이 두눈을 치켜뜨고 눈에서 신광(神光)을 쏘아내며 말했다.
"만약 너희들이 곤륜파의 터럭하나라도 건드린다면 너희 하나 하나에게 내 '절맥절혈(截脈切穴)'의 고문을 맛보게 해주겠다. 너희들은 한달 동안을 울부짖다가 전신 경맥이 모두 토막나 죽게 될 것이다."
설산삼마가 진저리를 치며 창송(蒼松) 아래 서 있는 네 노화상을 바라보더니 몸을 돌려 계단을 내려가 산 아래로 달려갔다.

 

산 위에는 밤이 비교적 빨리 온다.
황혼인데도 먼 산은 벌써 아득해져서 잘 보이지 않았다.
석지중은 망망한 야경을 주시하다가 홀연 일종의 고독감이 느껴지자 한숨을 쉬고 천천히 머리를 돌렸다.
칠절신군이 말했다.
"꼬마야, 왜 한숨을 쉬느냐? 셋째 판 바둑을 못이겨서 기분이 좋지 않으냐? 아니면 그 노마두의 팔뚝을 자르지 말걸 하고 생각하느냐?"
석지중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들 때문이 아닙니다. 저는 단지 인생사가 덧없어서 그럴 뿐입니다."
그가 물었다.
"노선배님께서는 동해 멸신도주가 어떤 사람인지 아십니까?"
칠절신군이 의아한 기색으로 물었다.
"네가 무슨 일로 멸신도에 대해 묻느냐? 강호에 전하는 말로는 멸신도는 동해 세 섬 중 하나로 섬 사람들은 사악한 무공에 뛰어나 상식과는 많이 다르니 분명히 사도(邪道)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한다.
다른 한 섬 칠선도(七仙島)는 진황도(秦皇島)와 멀리 마주하고 있는데 섬 사람들도 신비하고 괴이하여 아직까지 중원에 나타나지 않았다."
석지중이 "아!"하며 물었다.
"그렇다면 설산삼마가 말한 유령대제는 또 무슨 일입니까?"

칠절신군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 무림의 지난 이야기들은 나중에 다시 말해주마! 하지만..."
그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늙은 대머리, 당신은 유령대제가 사문(邪門)에서는 신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겠지?
만약 그가 출도하면 당신들은 모두 끝장이야. 그는 나처럼 이렇게 인자하지 않거든."
본무선사가 합장하며 말했다.
"아미타불, 마(魔)의 기세가 높은데 우리들에게 무슨 계책이 있겠습니까?"
칠절신군이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오늘 바둑내기는 비긴걸로 하는 것이 어떠냐?"
석지중이 상체를 숙이며 말했다.
" 노선배님께서 이렇게 양보해 주신다면 저야 명에 따르겠습니다."

 

칠절신군이 말했다.
"오늘 저녁 내 거처로 가자. 네게 내 거문고 소리를 들려 줄테니..."
그가 온화하게 말했다.
"너는 지혜가 아주 높아서 슬픔을 느끼는 것일게다. 아이야 그러지 마라.
네 두 눈으로 이 아름다운 대자연을 더 많이 감상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 거다."
보거라! 숭산준령을 그리고 흰 눈이 소나무 위에서 파도치고, 길게 자란 대나무들이 바람에 한들거리는 것을, 게다가 매화 향기 짙은 이곳에서 우리가 살고 있으니 사실 외로운 것이 아니다. 쓸데없이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아라!"
석지중은 천천히 사라지는 칠절신군을 묵묵히 바라보며 마음에 무엇인가 얻은 것이 있는 것 같았고 한편으로는 무엇을 잃어버린 것 같기도 했다.
본무선사의 낮은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울렸다.
"사제, 보아하니 칠절신군은 확실히 사제와 인연이 있는 것 같구나. 선사께서 오직 사제만이 그를 곤륜산에 삼년 동안이나 붙잡아 둘 수 있다고 하시더니 과연 틀림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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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안금조(碧眼金雕) 3-3

碧眼金雕 2004. 11. 15. 20:23 Posted by 비천호리

바로 이때 산 아래에서 묵직한 신음소리와 참혹한 비명이 울리며 회백색 그림자 셋이 산 위로 날아 왔다.
석양 아래 세 노인이 흰 수염을 저녁바람에 날리며 나타나더니 온통 바둑판에 정신이 팔려 있는 고송 아래 여러 사람들을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석지중의 이마에서는 끊임없이 땀이 떨어지고 있었고 심신이 너무나 지쳐 손가락까지도 미미하게 떨고 있었다. 그러고도 꽤 오랫동안 망설인 후에야 두 손가락에 끼고 있던 검은 돌을 내려놓았다.
칠절신군이 흥얼거리며 흰 돌을 집어 들어 막 놓으려고 하는데 바둑판에 있는 돌들이 거센 회오리바람에 쓸려 가버리고 말았다.
그가 벌컥 화를 내며 고개를 들자 그 세 노인이 석판 길에 나란히 서서 이쪽 편을 차가운 시선으로 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가 몸을 일으키며 미친 듯이 웃어 제쳤다.
"어떤 놈들이 간덩이가 부어 감히 내 앞에서 방자하게 구는가 했더니 설산삼마(雪山三魔) 너희들이었구나"
그가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이 어르신은 평생 내 앞에서 거들먹거리는 놈들을 가장 싫어했다. 너희들 오늘 살아서 돌아가지 못할 줄 알아라!"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장포(長袍)가 부풀어오르며 차가운 코웃음 소리와 함께 양쪽 소매를 뿌려내자 두 줄기 예리하고 눈부신 기경(氣勁)이 소매 속에서 날아 갔다.
설산삼마는 칠절신군의 얼굴에 푸른 빛이 도는 것을 보자마자 수염과 머리카락이 모두 곤두설 정도로 크게 놀라 육장(六掌)을 일제히 뻗어내자 기경이 겹쳐지며 산과 같은 기세로 뿜어져 나왔다.
"쾅!"
커다란 소리가 나자 설산삼마가 무거운 신음을 토하고 몸이 기울어지며 두 걸음 뒤로 물러나는데 청석(靑石) 위에는 일시에 세 촌 깊이의 발자국 열 두 개가 새겨졌다.

 

칠절신군의 얼굴이 서릿발처럼 차가워지며 어깨를 움직이지도 않고 공중으로 일장을 날아올라 청석판 한가운데 떨어졌다.
그가 차갑게 말했다.
"너희 셋의 힘을 합쳐도 나의 일초 '강기'를 받아내기는 받아내기는 어렵지. 다시 내 '천산장법(千山掌法)' 맛을 보거라!"
석양 아래 그의 신형이 공중을 날자 무수히 많은 흰 장영(掌影)이 줄기줄기 차가운 호선을 뿌려내며 삽시간에 설산삼마를 그 안에 가두었다.
본무선사의 안색이 바로 변하며 말했다.
"칠절신군의 '천산장법'은 확실히 천하제일이다. 만약 우리들이 함께 맞선다면 오십초는 받아낼 것이지만 각자 나서면 열초를 버티지 못할 것이다."
석지중이 천천히 일어서며 말했다.
"칠절신군의 이런 절예가 어찌 천하제일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장문인까지도 이렇게 인정하시는데..."
본무선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중원은 넓고 기인이사(奇人異士)가 별처럼 많은데 우리들의 이런 재주는 얼마나 하찮은 것이냐..."
설산삼마가 괴이한 소리를 내며 끊임없이 이어지는 장영(掌影) 안에서 미친 듯이 날뛰자 기경이 계속 소용돌이 쳤다.
장초(掌招)가 마치 누에가 실 뽑듯이 계속 이어지자 놀랍게도 매우 빠른 속도로 열세가 반전되기 시작했다.
세 사람의 행동이 절묘하게 어울리자 커다란 위력이 발휘되어 괴이한 장풍이 쏟아져 나와 칠절신군의 공세를 막아냈다.

 

칠절신군도 매우 놀라 길게 휘파람을 뽑으며 사지(四肢)를 한 마리 거미처럼 펼쳐 무수한 환영을 그려내 휩쓸어 갔다.
설산삼마의 인영이 갑자기 흩어지더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서 여섯 개의 손을 겹쳐 위로 뒤집으며 공중에서 떨어지는 칠절신군을 쪼개갔다.
"퍽", "퍽" 몇차레 장풍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나고 곧 설산삼마 모두가 땅에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는데 상투가 풀어지고 온통 백발이 땅에 흩어져 있었다.
칠절신군이 엄한 기색으로 땅에 쓰러져 있는 설산삼마를 응시하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 합수연격(合手連擊) 수법을 어디에서 배웠느냐? 너희들 배후에 누가 있느냐?"
설산삼마가 천천히 일어나서 손으로 가슴을 만지는데 창백한 얼굴로 견디지 못하고 입을 벌려 선혈을 한 무더기 토해냈다.
눈 쌓인 땅이 금새 분홍색 자국이 나타나 눈밭에 점점이 붉은 꽃이 핀 것 같았다.
설산노마(雪山老魔)가 칠절신군을 한번 노려보고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네가 며칠 전에 때려서 상처를 입힌 정풍(鄭風)이라는 젊은이는 원래 내 제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사람의 수양아들이 되었는데 바로 그 사람이 우리를 보냈지"
칠절신군이 머리를 들어 오랫동안 하늘을 본 후 물었다.
"그 사람이 누구냐?"

 

설산노마가 말없이 칠절신군을 주시하다가 한참 만에야 네 글자를 뱉어냈다.
"유령대제(幽靈大帝)--"
석지중은 칠절신군이 움찔하는 것이 분명히 보이자 고개를 돌려 본무노선사를 보았다.
충격을 받아 전신이 흔들리며 눈에서는 공포의 기색을 드러내는 본무선사를 보자 석지중도 저도 모르게 놀라 생각했다.
"어떤 사람이 감히 대제(大帝)라고 칭할 수 있을까? 게다가 유령대제(幽靈大帝)라니?"
칠절신군이 한동안 멍해 있다가 갑자기 앙천광소(仰天狂笑)하며 오른손 두 손가락을 가지런히 하여 말했다.
"네가 유령대제를 들먹거리면 내가 겁먹을 줄 아느냐? 내 지금 너희들을 없애 버리겠다."
설산삼마는 칠절신군이 팔을 검 삼아 공격하려는 것을 보자 크게 놀라 황급히 뛰어올라 흩어졌다.
설산노마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네가 우리를 죽이면 곤륜파는 평지(平地)로 변할 것이다.
대제의 방법은 네가 알 것이다. 그가 이일과 관련되는 사람 중 하나라도 놓아줄 것 같으냐?"
석지중이 천천히 걸어서 다가가며 말했다.
"진작 죽었어야 할 너희 같은 극악(極惡)한 인간들이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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碧眼金雕 2004. 11. 11. 09:53 Posted by 비천호리

본무선사가 놀랍고 기뻐 말했다.
"소사제! 정말 '반야진기(般若眞氣)'를 연성했구나! 사제, 소사제가 이미 반본환허(反本還虛)의 경지에 도달했구려"
"아미타불!"
담월이 합장하며 말했다.
"우리 곤륜이 이제부터는 크게 빛날 것 같습니다."
해 그림자가 점점 정오에 가까워지자 엷은 햇살이 퍼졌다.
이때 석지중이 숨을 토해내며 눈을 뜨더니 자신이 펼친 '십절대진'에 시선을 돌렸다.
"어!"
그가 놀라 말했다.
"그가 어떻게 네 개 관문이나 통과했지? 벌써 방법을 찾아냈을까?"
칠절신군은 평생을 진법에 깊이 빠져 살았고 칠절(七絶)중 일절(一絶)로 자처했으니 자연히 독특한 데가 있었다.
그래서 비록 그 '십절고진'을 한번도 본적은 없었지만 이치에 따라 계산하면서 네 곳의 관문을 깨뜨렸던 것이다."
칠절신군이 앙천광소(仰天狂笑) 하면서 큰 걸음으로 걸어나왔다.
"내 이 진을 깰 수 없으니 이번 겨루기는 네가 이겼다."
알고 보니 그는 심혈을 지나치게 소모하여 안색이 창백해져 있었다.
"아미타불!"
한 무리의 승려들이 모두 일어나 석지중에게 말했다.
"소사숙님! 축하드립니다."
본무선사도 일어서며 말했다.
"사제 밥 먹으러 가세. 식사 후에 다시 둘째 판을 겨루게."
칠절신군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이 진법을 위해 술잔을 들어야겠구나. 아이야, 너 나랑 같이 가자!"
석지중이 머리를 저었다.
"저는 술을 한 모금도 못합니다. 더더구나 다음 겨룰 바둑 때문에도 술을 마실 수가 없습니다. 선배님께서 양해해 주십시오."
칠절신군이 수염이 날리도록 머리를 젖히고 웃었다.
"내 가면 갈수록 네놈이 좋아지는구나, 어이! 얘야 너도 다시 심력을 소모할 필요없이 나를 따라 가자! 이제 나도 이 대머리들을 찾아와 귀찮게 안할란다."
저는 지금 곤륜 제자이고 본문의 첫 번째 계율이 '기사멸조(欺師滅祖)하지 말라'입니다. 칠절신군이 어리둥절해 하다가 곧 웃으며 후원(后院) 쪽으로 몸을 날려갔다.
오후, 해 그림자가 서쪽으로 기울고 찬 바람이 점차 불기 시작했다.
오래된 소나무 아래 석지중과 칠절신군이 마주 앉아 있고 그들 앞에는 바둑판이 잘 새겨진 흰 돌판이 놓여 있는데 이때는 양쪽이 서로 대치하여 검은 돌과 흰 돌이 바둑판에 가득하다.
칠절신군이 흰 돌을 집어들기는 했으나 눈빛이 바둑판에 고정되어 오랫동안 망설이며 손가락에 잡은 돌을 놓지 못한다.
본무선사와 세 사제들은 긴장하여 돌이 빽빽한 바둑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앞 선 두 판의 대국에서 석지중과 칠절신군이 한번 이기고 한번 지는 바람에 이번 판에 전체 승패가 달려 있기 때문이었다.
석지중은 나무를 깍아 만든 보살처럼 차가운 바람이 옷자락을 날려도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지금 그의 정신은 하나 하나의 바둑알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본무선사 앞에 놓인 모래시계에서 가는 모래가 한 알씩 떨어져 금새 가득 차고 본무선사가 손을 뻗어 모래시계를 뒤집어 놓자 다시 한알 한알 모래가 떨어져 내렸다.
칠절신군이 모래시계를 흘낏보고는 빠르게 눈빛을 거두어 손에 들고 있던 바둑알을 바둑판 한쪽에 놓았다.
석지중의 눈에서 신광이 쏟아졌다.
칠절신군의 이 한 수는 확실히 평범한 수였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열세에 처해 있는 국면을 완전히 반전시키는 신묘한 수로 변했다.
이번에는 석지중의 이맛살이 찌푸려지며 검은 돌 하나를 집어들었지만 한참을 망설이고도 여전히 놓지를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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