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칠성조원(七星朝元)
석지중은커다란 돌멩이가 목구멍을 막고 있는 것처럼 입술을 부들 부들 떨다 한참만에야 비로소 울부짖기 시작했다.
"사백님!"
완만하게 흐르는 탑리목하(塔里木河)의 양쪽 언덕으로는 광활한 초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강물이 사막에 생기를 불어 넣어 사막에서 가장 풍요로운 곳이다.
때는 가을, 잘 익은 수수가 아득한 천지에 황갈색 수수알로 가득 찬 이삭들을 드리우고 있고, 긴 수염이 자란 옥수수는 서늘한 가을 바람을 따라 저녁 노을 아래 이리 저리 흔들리고 있다.
야강성( 羌城)으로 향하는 길에 체구가 작고 마른 말이 지친 걸음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데 말발굽 소리마저도 힘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말을 탄 석지중은 오히려 원기왕성하여 머리를 쳐들고 날아오를 듯한 풍채로 말이 가는 대로 맡겨두고 있는데 마치 가을날 황혼 아래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는데 온 정신이 팔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늘은 그가 천산에서 하산한지 열흘째 되는 날이다.
그날 천산조사의 시신을 묻은 지하석실에서 나온 후 한심수사가 남긴 기호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갑자기 멸신도에서 큰 매를 보내 표존자를 불러들였고 그 덕분에 자기가 도망할 수 있었다고 적혀 있었다.
그는 한심수사의 지시에 따라 급히 거연성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중이었다.
한심수사가 천산에 머무르지 않은 이유를 말하지 않았지만 그는 여전히 명에 따라 거연성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열흘동안 그는 탑리목하를 따라 남하하였고, 옥문관(玉門關) 지나 서안(西安)으로 간 다음 주천(酒泉)을거쳐 거연성으로 가려고 했으므로 가지고 있는 돈으로 싸게 나온 늙은 말을 사서 타고는천천히 탑리목 분지(盆地)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길을 오는 동안 천산노인이 남겨준 불문의 지고한 절예인 "반야진기(般若眞氣)"를 부지런히 익혔는데 멸신도에 가기로 맹세를 하였고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무공을 익힐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차림새가 소박하여 남의 눈을 끌만한 것이 전혀 없었으므로 그가 가진 포낭(包囊) 속에 금과와 옥극이 있는 줄 아무도 알지 못했다.
밤바람에 수수잎이 물결처럼 흔들리며 그의 귓가에 '쏴쏴' 하는 소리를 냈다.
심호흡을 하자 기분이 상쾌해져 느릿하게 읊조렸다..
"胡馬,胡馬,遠放燕支山下.
포沙포雪獨嘶,東望西望路迷.
迷路,迷路,邊草無窮日暮.”
위응물(韋應物)의 "조소령(調笑令)"을 다 읊고 나자 왕건작(王建作)의 "조소령(調笑令)"이 또 떠올라 눈을 가볍게 감고 머리를 흔들며 읊기 시작했다.
“楊柳,楊柳,日暮白沙渡口
船頭江水茫茫,商人少婦斷腸!
腸斷,腸斷, 자鵠夜飛失伴.”
시를 읊조리는 동시에 가볍게 손뼉을 치며 야강성에 거의 도착했을 때 갑자기 높은 담장 위에서 인영(人影) 하나가 튀어나와 섬전처럼 빠르게 날아 내리더니 사람 키를 넘게 자란 길옆 수수밭으로 뛰어든 순간 '삭삭' 몇 번의 소리가 들리고는 조용해졌다.
그가 의아하여 아직 무슨 일인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세 인영(人影)이 몇 장 밖에서 쏟아지듯이 날아 내린다. 그들은 마치 야조(夜鳥)처럼 공중에서 한번 회전하더니 길에 내렸다.
석지중이 막 떠오른 달빛을 빌어 그 세 사람을 보니 모두 도포고관(道袍高冠)에 등에는 비스듬히 장검을 짊어진 도인들이었다.
그는 그들을 한번 훑어보기만 하고 계속 성문을 향해 갔다.
말발굽소리가 막 울렸을 때 미풍이 휙 불더니 키가 작고 살찐 도인이 한 손으로 말고삐를 잡고 말 앞에 서서는 그를 차갑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도장(道長), 왜 이렇게..."
그 도인이 소리쳤다.
"너 어떤 사람이 성벽에서 뛰어 내리는 것을 보았느냐? 그 사람 어디로 갔느냐?"
석지중이 기분이 상해 말했다.
"도장께서 무얼 알고 싶으면 좀 더 정중하게 물어 봐야지요, 어찌 이렇게 거칙고 무례하십니까?"
그 도인은 석지중이 이렇게 말할 줄을 미처 생각 못했던 것처럼 약간 멈칫하더니 다시 차갑게 웃으며 한 팔을 낮추자 말이 한 소리 비명을 지르며 꿇어앉았다.
뜻밖의 일에 석지중은 하마터면 말에서 굴러 떨어질 뻔하다가 가까스로 땅에 내렸지만 놀라 그 도인을 바라보면서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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