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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10.05 벽안금조(碧眼金雕) 2-1
  2. 2004.10.01 벽안금조(碧眼金雕) 1-13
  3. 2004.10.01 벽안금조(碧眼金雕) 1-12
  4. 2004.09.30 벽안금조(碧眼金雕) 1-11

벽안금조(碧眼金雕) 2-1

碧眼金雕 2004. 10. 5. 09:44 Posted by 비천호리

제2장칠성조원(七星朝元)

 

석지중은커다란 돌멩이가 목구멍을 막고 있는 것처럼 입술을 부들 부들 떨다 한참만에야 비로소 울부짖기 시작했다.
"사백님!"

 

완만하게 흐르는 탑리목하(塔里木河)의 양쪽 언덕으로는 광활한 초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강물이 사막에 생기를 불어 넣어 사막에서 가장 풍요로운 곳이다.
때는 가을, 잘 익은 수수가 아득한 천지에 황갈색 수수알로 가득 찬 이삭들을 드리우고 있고, 긴 수염이 자란 옥수수는 서늘한 가을 바람을 따라 저녁 노을 아래 이리 저리 흔들리고 있다.
야강성( 羌城)으로 향하는 길에 체구가 작고 마른 말이 지친 걸음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데 말발굽 소리마저도 힘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말을 탄 석지중은 오히려 원기왕성하여 머리를 쳐들고 날아오를 듯한 풍채로 말이 가는 대로 맡겨두고 있는데 마치 가을날 황혼 아래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는데 온 정신이 팔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늘은 그가 천산에서 하산한지 열흘째 되는 날이다.
그날 천산조사의 시신을 묻은 지하석실에서 나온 후 한심수사가 남긴 기호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갑자기 멸신도에서 큰 매를 보내 표존자를 불러들였고 그 덕분에 자기가 도망할 수 있었다고 적혀 있었다.
그는 한심수사의 지시에 따라 급히 거연성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중이었다.
한심수사가 천산에 머무르지 않은 이유를 말하지 않았지만 그는 여전히 명에 따라 거연성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열흘동안 그는 탑리목하를 따라 남하하였고, 옥문관(玉門關) 지나 서안(西安)으로 간 다음 주천(酒泉)을거쳐 거연성으로 가려고 했으므로 가지고 있는 돈으로 싸게 나온 늙은 말을 사서 타고는천천히 탑리목 분지(盆地)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길을 오는 동안 천산노인이 남겨준 불문의 지고한 절예인 "반야진기(般若眞氣)"를 부지런히 익혔는데 멸신도에 가기로 맹세를 하였고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무공을 익힐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차림새가 소박하여 남의 눈을 끌만한 것이 전혀 없었으므로 그가 가진 포낭(包囊) 속에 금과와 옥극이 있는 줄 아무도 알지 못했다.
밤바람에 수수잎이 물결처럼 흔들리며 그의 귓가에 '쏴쏴' 하는 소리를 냈다.
심호흡을 하자 기분이 상쾌해져 느릿하게 읊조렸다..

 

"胡馬,胡馬,遠放燕支山下.
포沙포雪獨嘶,東望西望路迷.
迷路,迷路,邊草無窮日暮.”

 

위응물(韋應物)의 "조소령(調笑令)"을 다 읊고 나자 왕건작(王建作)의 "조소령(調笑令)"이 또 떠올라 눈을 가볍게 감고 머리를 흔들며 읊기 시작했다.

 

“楊柳,楊柳,日暮白沙渡口
船頭江水茫茫,商人少婦斷腸!
腸斷,腸斷, 자鵠夜飛失伴.”

 

시를 읊조리는 동시에 가볍게 손뼉을 치며 야강성에 거의 도착했을 때 갑자기 높은 담장 위에서 인영(人影) 하나가 튀어나와 섬전처럼 빠르게 날아 내리더니 사람 키를 넘게 자란 길옆 수수밭으로 뛰어든 순간 '삭삭' 몇 번의 소리가 들리고는 조용해졌다.

그가 의아하여 아직 무슨 일인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세 인영(人影)이 몇 장 밖에서 쏟아지듯이 날아 내린다. 그들은 마치 야조(夜鳥)처럼 공중에서 한번 회전하더니 길에 내렸다.
석지중이 막 떠오른 달빛을 빌어 그 세 사람을 보니 모두 도포고관(道袍高冠)에 등에는 비스듬히 장검을 짊어진 도인들이었다.
그는 그들을 한번 훑어보기만 하고 계속 성문을 향해 갔다.
말발굽소리가 막 울렸을 때 미풍이 휙 불더니 키가 작고 살찐 도인이 한 손으로 말고삐를 잡고 말 앞에 서서는 그를 차갑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도장(道長), 왜 이렇게..."
그 도인이 소리쳤다.
"너 어떤 사람이 성벽에서 뛰어 내리는 것을 보았느냐? 그 사람 어디로 갔느냐?"
석지중이 기분이 상해 말했다.
"도장께서 무얼 알고 싶으면 좀 더 정중하게 물어 봐야지요, 어찌 이렇게 거칙고 무례하십니까?"
그 도인은 석지중이 이렇게 말할 줄을 미처 생각 못했던 것처럼 약간 멈칫하더니 다시 차갑게 웃으며 한 팔을 낮추자 말이 한 소리 비명을 지르며 꿇어앉았다.
뜻밖의 일에 석지중은 하마터면 말에서 굴러 떨어질 뻔하다가 가까스로 땅에 내렸지만 놀라 그 도인을 바라보면서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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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안금조(碧眼金雕) 1-13

碧眼金雕 2004. 10. 1. 17:44 Posted by 비천호리

그가 온몸을 떨더니 "왁"하는 소리와 함께 선혈을 한 입 토하자 석지중의 전신에 뿌려졌다.
천산노인은 눈을 감고 있었지만 눈가에서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가 쓸쓸하게 혼잣말을 했다.
"너희들에게 정말 미안하다..."
그가 말없이 눈을 감은채로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다가 한참이나 지나서야 고개를 들고 말했다.
"먼저 왜 내가 비밀 방에서 이렇게 꿇어앉아 있는지 너한테 말해준 다음에 너에게 맡길 일이 있다. 내 부탁을 들어주겠느냐?"
석지중은 여태 천산노인이 왜 조사의 위패 앞에 꿇어 앉아 있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천산노인이 이렇게 말하자 바삐 말했다.
"사백님께서 무슨 일을 부탁하시더라고 반드시 제가 대신 처리하겠습니다."
천산노인이 엄숙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지중아!, 너 대장부가 한번 말한 것은 번복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명심해라. 네가 내게 응낙을 했으니 나중에 후회해서는 안된다."

 

그가 입가의 피를 닦아내고는 말했다.
"반년 전에 나는 북천산(北天山) 천성구(天星溝)에 한 차례 갔었는데 거기에서 불문(佛門)의 '반야진기(般若眞氣)'가 실린 책자를 주웠었다.
반야진기로 말하자면 도가(玄門)의 '강기'와 함께 줄곧 최고기공(氣功)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산을 밀고 돌을 깨뜨리는 위력이 있어 서장에서 비밀스럽게 전하는 '밀종대수인(密宗大手印)' 보다도 더 무서운 위력이 있단다."
이런 연고로 나는 스스로 조사(祖師)님의 혼령이 쉬고 있는 이곳에 들어와 전심전력으로 '반야진기'를 익히고 있었다."
그가 갑자기 한번 웃더니 말했다.
"어찌 알았겠느냐? 수십년 동안 익힌 내 내공과 이 불문내공의 수련방법이 달라 지난달 에 잠깐 부주의한 사이 주화입마(走火入魔) 되고 말줄을...,
그래서 네 아버지를 모시고 와 문파 내의 일을 그에게 맡기려고 제자 다섯을 보냈었다.
아! 내가 막 일부분의 진력(眞力)을 회복했을 때 동해 멸신도의 표존자와 맞닥뜨리게 될 줄을 어찌 알았겠느냐?"석지중은 천산노인이 여기까지 말하고는 온몸을 한바탕 떨더니 크게 한번 소리치고는 땅에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그가 놀라 천산노인을 부축하자 얼굴 전체가 창백하고 온몸이 차가운데도 많은 땀을 흘리며 마치 참기 어렵게 추운 것처럼 계속해서 입술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가 놀라 말했다.
"사백님!..."
천산노인이 입술을 씰룩이며 어렵게 말했다.
"나는 곧 죽을 것이다. 내가 죽거든 나를 왼쪽 관 안에 놓아두어라. 지금부터는 네가 천산파의 제십팔대 장문인이다. 동해 멸신도와 서장 포달랍궁을 찾아 나를 대신해서 복수를 하겠다고 대답해다오..."
그가 숨을 몇 번 헐떡거리더니 말했다.
"옥극과 반야진기 책자는 화로 안에 있다. 서장 문자에 능통하도록 연구하거라..."
천산노인이 말을 다 꺼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석지중이 고함을 쳤다.
"사백님, 장문인 지위는 제 아버님이 있습니다. 마땅히 그분이..."
천산노인이 고개를 약간 끄덕이더니 눈을 감고 죽었다.
일대(一代)의 장문인이 이로써 눈을 감은 것이다.

 

< 제1장 십절고진(十絶古陣) 끝 >

 

 

-- 작가

소슬(蕭瑟) --

 

본명 무명(武鳴)
1965년 사마령(司馬翎)의 '검기천환록(劍氣千幻錄)'을 모방하여 벽안금조(碧眼金雕), 대막금붕(大漠金鵬傳) 2부작을 써서 일거에 유명해졌다.
무공(武功), 정감(情感), 기환(奇幻) 방면에서 신선함과발전이 있다.
작품에는 벽안금조, 대막금붕 외에 잠룡전(潛龍傳), 거검회룡(巨劍回龍), 낙성추혼(落星追魂), 신검사일(神劍射日), 검쇄곤륜정(劍碎昆侖頂), 추운박전록(追云搏電錄), 백제청후(白帝靑后)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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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안금조(碧眼金雕) 1-12

碧眼金雕 2004. 10. 1. 10:52 Posted by 비천호리

석지중이 물었다.
"그 금과와 옥극은..."
천산노인이 계속해서 말했다.
"오래된 전설에 대막 가운데 금붕성이 있는데 계단은 백옥으로 되어있고 기둥은 황금을 부어서 만들었으며 창문은 보석을 박아 만들었고 야광주를 등불로 쓴다고 한다.
안에는 영지선초가 있고 밖에는 금붕검이 있으며 성안에는 몽고의 예언자 '박락탑리(博洛塔里)'가 남긴 비적(秘籍)이 한 권 있는데 신선이 될 수 있는 비법이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그가 여기까지 말했을 때 두 눈에서는 밝은 눈빛을 뿜었지만 목소리는 미미하게 떨렸다.
석지중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사막에 그런 곳이 있을까요? 저는 그건 몽고인에게 전해 내려오는 신화라고 생각합니다. 신화는 사람들의 환상이고요...."
천산노인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대막에는 분명히 그 금붕성이 있다. 왜냐하면 금붕성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고 대문을 여는 금과와 옥극을 바로 네 사조 천산신응(天山神鷹)께서 얻었기 때문이지..."
그가 잠깐 멈추었다가 다시 말했다.
당시 구대종파의 장문인들이 비밀리에 황산에서 모였는데 네 사조께서 그 금과와 옥극을 차지하게 되었단다. 그 후 금과와 옥극에 새겨진 문자가 현재의 몽고 각 부족이 사용하는 문자가 아니고 일종의 기괴한 부호라는 것을 알게되자 그분께서는 산을 내려가 몽고각처를 다니며 오래된 전적을(典籍) 찾아내 금붕성의 비밀을 풀 수 있기를 바랐단다."
석지중이 말했다.
"결국 그 문자를 아는 사람을 찾아냈습니까?"

 

천산노인이 눈을 감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분이 떠난지 6년 만에 급히 산으로 돌아오시더니 본문의 권경검보(拳經劍譜)를 가지고 가셨는데 그러고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셨단다."
그가 눈을 떠 석지중을 보며 말했다.
"이십년 전 그 일이 있고 나서 내가 여덟 번 산을 내려가 몽고 각지로 그분을 찾아 다녔지만 매번 빈손으로 돌아왔었다. 아홉 번째 하산했을 때 비로소 한 가지 사실을 밝혀냈는데.."
"사조님을 찾으셨나요?"
천산노인이 약간 웃으며 말했다.
"사부님의 행방을 찾은 게 아니라 늘 물과 풀을 찾아 유목하는 작은 부족에게서 몽고 예언자 '박락탑리'의 출신과 관련 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나는 미친 듯이 기뻐하며 산으로 돌아왔단다. 그리고는 금과와 옥극의 일을 마무리하러 서장(西藏)으로 바로 떠나려고 했었지."
그가 심호흡을 하더니 목소리를 약간 높여 말했다.
"내가 막 하산하려던 때에 화산파를 우두머리로 하는 중원 육대문파에서 금과와 옥극을 되찾아 가려고 나에게 황산대회에 참가하라는 초청이 왔단다.
당시 나는 급히 서장에 가야했기 때문에 금과만 가지고 가고 네 아버지 한심수사에게 옥극을 가지고 대회에 가도록 했는데 당연히 옥극에 새겨진 문자는 베껴 가지고 서장으로 갔지."
나는 서장 라사에 있는 포달랍궁(布達拉宮)에 도착하여 진견(晋見) 주지에게 서장 고문자를 가르쳐 줄 것을 청했단다.
하지만 포달랍궁 주지 고군대사(庫軍大師)는 가르쳐 주려고 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나는 단신으로 포달랍궁 장격각(藏經閣)에 숨어 들어가고 말았단다."
그가 씁쓸하게 웃으며 얼굴의 흉터를 만지며 말했다.
"이것이 그때 포달랍궁에 숨어 들어간 결과란다. 그들은 나를 붙잡아 한 사람씩 내 얼굴에 칼질을 했지."

 

석지중이 격분하여 이를 갈며 욕을 했다.
"죽일 놈의 라마승들 같으니, 내 언젠가 너희들 얼굴에 칼자국을 낼 날이 있을 것이다."
천산노인이 머리를 흔들었다.
"그건 그들의 형벌 중에서 제일 가벼운 거란다. 그날 내가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건 실은 내가 중원 땅의 무림인물임을 고군대사가 참작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내가 너하고이렇게 얘기하고 있지 못할 것이다."
"내가 서장 땅에서 천산으로 돌아왔을 때 사제 한심수사가 황산에서 막 돌아왔었다. 당시 그는 이미 화산파의 능허자항(凌虛慈航)에게 패해서 옥극을 넘겨준 뒤였다."
석지중이 '아!" 하는 소리를 내더니 물었다.
"어쩐지 아버님이 늘 장검을 어루만지면서 멍해지곤 하시더니, 알고 보니 아버님은..."
천산노인이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본문의 '천금검법(天禽劍法)은 경쾌하고 민첩하기는 하지만 웅혼(雄渾)한 기세가 부족하다. 화산파 장문인 능허자항의 경공은 이미 노화순청(爐火純靑)의 경지에 도달한 상태라 네 부친은 상대의 '상청검법(上淸劍法)'에 패했던 것이다.

"아! 아버님의 경공이 화산 장문인만 못하고 검법도 상청검법의 웅후함에 미치지 못해서 패했단 말인가?"
"그래, 네 말이 맞다."
천산노인이 말했다.
"네 아버지는 총명하고 영민해서 비록 패하기는 했지만 화산 장문인을 자극하여 십년 기한으로 옥극과 금과를 교환하기로 했다.
그래서 현재 옥극이 여기 되돌아와 있고 금과는 내가 제자를 보내 화산에 넘겨주었던 것이다..."
"아닙니다. 금과는 저한테 있습니다."
석지중이 품속에서 약 반척 길이의 금과를 꺼내며 말했다.
"진운표 사형이 제게 준 것입니다. 사형은 제게 복수해달라고..."
이리하여 그는 진운표가 죽기전의 상황을 천산노인에게 알렸다.
순식간에 실내가 참담한 기운으로 가득차면서 천산노인의 백발이 올올이 곤두서고 두 눈은 아주 커다래져 석지중에게 소리쳤다.
"뭐라고, 그 쇄금신장이 내 대제자라고? 운표와 다른 아이들이 모두 죽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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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안금조(碧眼金雕) 1-11

碧眼金雕 2004. 9. 30. 10:16 Posted by 비천호리

한편, 석지중은 돌 벽에 있는 기관(機關)을 알아차렸으므로 안심하고 지하통로로 뛰어들었다. 이때 그는 벽에 있는 기관의 손잡이를 한심수사가 설치한 것을 알아보자 어쩌면 부친에게미리 어떤 생각이 있었고, 다른 비밀통로로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마음이 들자 조금 전보다 더 기분이 좋아졌다.지하통로에 들어서자 몇 척(尺) 앞쪽에 벽에 걸린 큰 등불이 사방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데 연기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일장(一丈) 정도의 거리에 안쪽으로 난 세 갈래 길이 분명하게 있긴 한데 끝이 보이지 않고 안쪽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두 손으로 벽을 두드려 보고는 등불 밑으로 가서 그 등불을 힘주어 뽑아 냈다.
"끽끽" 한바탕 가벼운 소리가 나며 앞쪽 세 갈래 길이 갈리는 곳에서 강판(鋼板)이 솟아올라 아래쪽 통로로 통하는 돌계단을 드러냈다.석지중이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돌계단을 따라 끝까지 내려가자 부들방석과 화로 한 개씩만 놓인 어두침침한 석실(石屋) 한 칸이 보였다.화로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고요하여 그의 발걸음 소리가 뚜렷하게 실내에 울리고 땅속 방이 마치 죽어 있는 것처럼 너무나 고요하여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자 소름이 끼쳤다.석실 안으로 들어섰지만 사람이 보이지 않자안쪽으로 걸어들어 가자 얼핏 방안에 늘어선 열 몇구의 관(棺)과 향안(香案)이 바쳐진 많은 위패가 보였고 위패 앞에 긴 두루마기 차림에 은발(銀發)을 묶은 노인이 땅에 꿇어앉아 있는 것이 보였으므로 저도 모르게 놀라서 "어!" 하는 소리를 냈다.

 

그 노인은 마치 벼락을 맞은 것처럼 온몸을 떨고 있었지만 여전히 고개를 돌리지 않고 계속 꿇어앉아 있었다.
석지중이 미간을 찌푸리며 움직이지 않고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꿇어앉아 있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한참 후에 그 노인이 말했다.
"너는 누구냐?"
"노선배(老先輩)님이 천산노인(天山老人)이시죠? 저는 석지중입니다."
그 노인이 약간 놀라며 말했다.
"너 어떻게 들어올 수 있었느냐?..."
그리고 잠깐 말을 멈추더니 갑자기 온몸을 한차례 떨며 감정이 격해져서 말했다.
"네가 한심수사의 아들이지?"
석지중이 몸을 굽혀 인사하며 말했다.
"소질(小侄)이 바로 한심수사의 아들입니다. 사백(師伯)님께서는 어쩌다가..."
천산노인이 말했다.

"네 아버지는?"
석지중이 어리둥절해서 말했다.
"아버님이 안 오셨다구요! 아버님은 동해 멸신도의 대력귀왕과 쇄금신장에게 포위되자 저에게 집으로 들어가라고....
그리하여 방금 일어났던 일을 천산노인에게 모두 알렸다.

 

천산노인이 탄식을 하더니 말했다.
"이로써 천산파는 무림에서 이름이 사라지겠구나. 다 내 탓이다..."
그리고는 손으로 머리를 치며 더할 나위 없이 낙담하여 말했다.
"내 탐욕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천산파가 내 대에서 무너지는구나..."
그가 비통하게 고함을 지르더니 탁자 위의 향안을 향해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소리쳤다.
"역대조사(歷代祖師)님들이시여! 용서해 주십시오. 제자가 심력(心力)을 다하지 못하였습니다. 우리 천산파의 부흥을 도모했지만 밖으로 강적을 만나고 안에서는 요사한 반도가 나와 본파가 다시 망하는 화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석지중은 이때서야 향안에 모셔진 것이 역대조사의 위패라는 것을 알고는 따라서 무릎을 꿇고 위패를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그가 막 머리를 들자 천산노인이 곡(哭)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의 마음을 떨리게 하는 곡성이 온 석실에 가득 차 석지중의 마음에 매우 깊게 부딪혔다.

천산노인은 석지중도 울기 시작한 것을 듣자 탄식을 토하며 말했다.
"아이야 너는 왜 우느냐? 응!"
석지중이 말했다.
"아버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천산노인이 한참동안 침묵하다가 불렀다.
"아이야! 이리 오너라."
석지중이 대답하며 가까이 가자 천산노인의 모습이 또렷이 보였는데 얼굴에 칼자국 있고 검붉은 피부에 우둘투둘한 흉터가 있는데다가 온 얼굴이 뒤틀려있어 사람이 아니고 마치귀신처럼 보였다.

 

천산노인이 석지중의 눈에서 놀라는 빛을 보고 바삐 말했다.
"아이야 놀라지 마라"
그가 바닥에 있는 부들방석을 두드리며 말했다.
"앉거라, 너한테 할말이 있다."
석지중은 천산노인에게서 한심수사가 늘 자기를 바라볼 때처럼 한 줄기 자상하고 부드러운 눈빛이 나타나는 것을 보자 즉시 마음속의 불안감을 떨쳐버리고 앉았다.

천산노인이 찬탄하며 말했다.
"근골이 좋구나, 정말 인재(人才)구나!. 아이야 네 아버지가 천산의 검법과 내공을 너에게 전수해 주었느냐?
석지중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가부(家父)께서는 저에게 정좌연공(靜坐練功)만 가르쳐 주셨고 검법은 제 나이가 아직 어리다고 전수해주지 않으셨습니다..."
천산노인의 눈빛이 석지중의 얼굴을 응시하더니 탄식을 토하며 말했다.
"네 아버지의 말이 맞지는 않다만 나는 그의 뜻을 분명히 알겠다. 아! 네 사조(師祖) 대(代)에 본문의 절예를 잃어버린 후 무림에서 본문의 지위가 천장(千丈)이나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니... 네 사조께서는 왕년에 황산(黃山)에서 검 한자루로 군웅(群雄)을 대적해 금과(金戈)와 옥극(玉戟)을 차지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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