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 무렵 황사(黃沙)의 끝에는 아름다운 노을이 가득한 하늘이 있고, 바로 이 시각 사막에는 거센 바람이 몰아치며 누런 모래가 하늘을 꽉 채우고 있다.
모래언덕 하나 하나가 회오리바람에 공중으로 날아올라 수 십리 바깥에 또 모래언덕으로 만들어진다.
사막의 변화무쌍함은 사막의 구름 조각처럼 영원히 사람으로 하여금 짐작할 수 없게 한다.
사막의 가장자리인 이곳은 작은 진(鎭)으로 거연해(居延海)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연성(居延城)이다.
수십채의 낮은 흙벽돌 집이 똑같은 모양으로 연이어 있는데 성안 동쪽 끝에 비교적 큰 층(層)집이 있다.
층집 뒤에는 정원이 있고 그 안에는 가산(假山), 연못, 분재, 화초들이 다 갖추어져 있다.
대나무 대롱으로 끌어들인 샘물이 '졸졸' 소리를 내며 연못으로 들어오고, 연못에는 비단잉어가 노닐고 있는데 못 가에는 푸른 풀잎과 붉은 꽃들이 무성하다.
정원의 서쪽 끄트머리에 육각형 모양의 정자(六角亭)가 있는데 그 안에는 돌로 만든 탁자와 의자가 그윽하고 품위 있게 놓여 있다.
이때 가산 옆에 갈색 옷에 노란 두건을 쓰고 머리카락은 두 갈래로 쪽을 진 대략 열일곱 정도의 소년이 있는 것이 보이는데 사반(沙盤, 나무 그릇에 모래로 만든 지형 모형) 위에다 두 손으로 가볍게 금을 한 줄 긋더니 왼손으로 대나무 조각을 잡아 하나 하나 사반에 꽂고 있다.
저녁 해가 양쪽에서 소년의 얼굴에 비치니 마치 연지를 바른 것처럼 불그레한 얼굴이 사랑스럽다.
그의 두 눈은 비스듬히 사반을 바라보고 있는데 입술을 꽉 다물고 눈에서는 지혜의 광망(光芒)을 반짝거리며 뚫어지게 사반 안의 대나무 조각과 금을 쳐다보는 것이 마치 그의 모든 심력(心力)을 그 사반에 쏟아 붓는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손안에 쥐고 있는 대나무 조각을 다 꽂고는 손을 '탁탁' 털고 일어서서 기지개를 켠 후 머리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하였다.
"밥 먹을 시간이 되었구나"
그가 막 말했을 때 기침소리가 들렸는데, 낭하에서 문생(文生) 두건을 쓰고 장포(長袍)를 걸친 수척하지만 점잖은 기풍의노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세 가닥 긴 수염이 가슴 앞에서 바람에 천천히 흔들리며노인이 미소를 머금고 정원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지중(砥中)아! 십절진(十絶陣) 연구가 끝났느냐? 뭘 좀 알아냈느냐?"
그 소년은 고개를 돌려 노인을 보자 바삐 말한다.
"아버님! 이 '십절진'은 정말 어려워요!, 오후 내내 노력해서 겨우 앞쪽 변화 다섯 가지밖에 못 알아냈어요..."
그의 말이 다 끝나기 전에 노인이 크게 놀라 말했다.
"뭐라고? 네가 이미 다섯 가지 변화나 알아냈다고? 정말이냐?"그 소년이 어리둥절해서 말했다.
"예? 뭐가 잘못된 건가요? 제가 오전에 너무 오래 연구하는 바람에 배가 너무 고팠던데다가 점심도 충분히 먹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계속 밥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서 사반에 정신을 집중하지 못하였고단지 다섯 가지 변화 밖에 알아내지 못하였...."
노인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지중아! 전에는 한번도 배고프다고 말한 적이 없지 않느냐?, 이 '십절진'의 진법은 변화가 무궁무진해서 비할 데 없이 신묘(神妙)하다. 당시 내가 청해(靑海) 바다 속에서 이 잔존(殘存) 진보(陣譜)를 얻었을 때에는 육년(六年)이 걸려서야겨우 통하게 되었다.내가 어제 너에게 말한 적이 있다만 이 '십절진'은 천하진법의 최고봉이지만 전체 진보는 천하에서 알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다행히 네가 이틀만에 다섯가지 변화를 깨달을 수 있었다니..."
그가 턱 밑에 길게 늘어진 세 가닥 수염을 만지며 말했다.
"밥 먹고 바둑 한 판 두자. 이번에는 나한테 석 점을 양보해서 날 부끄럽게 하지 마라"
소년이 웃으며 말했다.
"아버님은 모든 정력(精力)을 종적을 숨기는데 쓰시는 데다가 또 가게의 장사를 돌봐야 하니 이 것 저 것 모두 천하제일(天下第一)일 수 없는 것이 당연하지요..."
노인이 쓰게 한번 웃더니 말했다.
"천하제일은 무슨?, 세상에 누가 감히 천하제일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하물며 나의 이런 미미한 조예야 말해서 무엇하겠느냐?"
노인이 잠시 멈췄다 말했다.
"이십년 전에 강호에 칠절신군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평생을 전적(典籍), 거문고, 바둑, 검(劍), 권(拳), 내가선천진기(內家先天眞氣)와 진법 방면을 파고들었고, 그 외에도 말을 길들이는 조예와 좋은 말을 구별해내는 조예에서 천하에 따를 자가 없었지.
아비는 진법분야에서는 그와 한번 겨뤄볼 수 있었지만 그밖에는 그의 적수가 아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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