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지중이 몸을 굽혀 인사하며 말했다.
"노선배님께서 칠절신군이십니까?"
칠절신군이 하하하 웃으며 말했다.
"나는 어린 화상이 한달 동안이나 산을 내려가 무슨 대단한 자를 찾아오는 줄 알았더니
겨우 너 같은 어린애를 데려오다니, 어이 어린애야! 너 할 줄 아는게 뭐냐?"
석지중이 말했다.
"오래 전부터 신군의 존함을 들어왔습니다. 마침 신군께 가르침을 청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신군께서는 장공대사(藏空大師)와의 약속을 지켜 곤륜산에 오셨는데 이번에는 무엇을 겨루려고 하시는지요?"
칠절신군이 턱밑의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십오년 전 장공 그 늙은 대머리와 세 가지를 겨뤘는데, 내가 다시 곤륜산에 오르면 산에서 삼년을 묶이고 게다가 곤륜의 큰 어려움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그가 예언했었지. 하하! 내 평생 대머리들을 가장 증오했는데 그들을 위해 겁난(劫難)을 해결해 준다고?
그래서 이번에는 십오년 전에 약속한 대로 다섯 가지 재주를 겨루려고 왔다."
칠절신군이 잠시 멈추었다 두 눈에서 신광(神光)을 폭사하며 말했다.
"만약 이번에 내가 지면 내 머리를 직접 잘라 장공 늙은이의 제단에 걸 것이고, 내가 이기면 이곳 중들을 모두 죽여 피가 강처럼 흐르게 하고 절간은 모두 부숴 평지를 만들어 버릴 것이다"
그의 목소리가 마치 벼락이 치듯 울리자 양쪽의 나뭇가지에 쌓였던 눈이 스슥 소리를 내며 떨어졌고, 목소리가 산골짜기에 메아리쳐 그 여운이 오래 오래 흩어지지 않았다.
석지중이 정중하게 말했다.
"선배님께서는 개인의 은원(恩怨)을 전체 불문 제자에게 풀려고 하시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응당 부모님이 주신 몸을 내기에 걸어서는 안됩니다.
선배님과 장공선사께서 내기한 다섯 가지는 제가 받아 보겠습니다.
칠절신군이 놀랐으나 곧 앙천광소(仰天大笑) 하더니 웃음소리를 그치고 말했다.
"정말 담력이 센 인재로구나! 육십여년 동안 내 면전에서 아니라고 말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는데, 이곳에서 듣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느냐, 허허 노부가 정말 안목을 넓히는 구나!"
그가 표정을 바르게 하고 말했다.
"십오년 전에 곤륜 문하와 다섯 가지 절예를 겨루겠다고 내가 말한 것을 너는 아느냐?
너 지금 곤륜 문하생이냐?"
석지중이 생각도 못했던 말에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자 본무선사가 앞으로 걸어나와 합장을 하며 말했다.
"아미타불, 제가 선사(先師)의 유명(遺命)을 받들어 스승님을 대신하여 제자로 거두겠습니다. 석공자는 오늘 저녁부터 선사의 관문제자(關門弟子)입니다.
본무선사의 말이 떨어지자 승인들이 모두 크게 놀랐다.
곤륜파는 근백년(近百年) 동안 아직 속가제자(俗家弟子) 한 명도 거두지 않았는데 이번에 장문인이 직접 스승을 대신하여 제자를 삼는다는 말을 들었으니 삼대(三代)의 곤륜제자들 모두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석지중도 놀라고 의아해서 큰 목소리로 말했다.
"노선사님..."
본무노선사가 긴 눈썹을 비스듬히 날리며 말했다.
"석공자 여러말 할 것 없소이다. 선사께서 남기신 게시(偈示)를 보시오. 이것은 선사께서 칠성조원(七星朝元)의 사람에게 전해지도록 분부한 것이오"
"칠성조원?"
석지중이 깨달았다.
"선사께서는 제 몸에 있는 일곱 개의 붉은 사마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본무 노선사가 머리를 끄덕이고는 큰 소매를 가볍게 흔들자 축(軸)에 묶인 비단 한 권이 석지중이 뻗은 손에 부드럽게 떨어졌다.
석지중이 비단을 열더니 그의 얼굴에 놀라는 표정이 스쳤다.
그가 비단을 품에 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부님을 배알한 후에 저는 곤륜의 제자입니다"
그가 칠절신군에게 말했다.
저는 곤륜제자의 신분으로 선배님과 다섯 번 겨루겠습니다"
칠절신군이 의아해하며 석지중을 한번 보고는 말했다.
"늙은 대머리가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거야? 그가 점을 치지 않고서도 앞일을 아는 능력이 있었단 말인가?"
뭇 승려들이 줄지어 들어가자 대웅보전에 낮은 범패소리가 울리기 시작했고, 한 화상이 절 앞에 있는 종루에 올라 종을 치자 종소리가 메아리치기 시작했다.
황혼(黃昏), 거위 깃털 같은 눈송이가 흩날리고 산바람이 불어오는 때, "둥! 둥!" 몇 번의 북소리가 울리며 유리등 불빛이 밝아졌다.
대전(大殿) 안은 어두컴컴한데 회색의 승포와 비단 수를 놓은 가사(袈裟)가 온 대전을 가득 채우고 있다.
본무선사는 책상다리를 하고 대전 가운데 앉아 고개를 숙이고 중얼중얼 경문을 읽고 있다.
석지중은 책상다리를 하고 벽을 향하고 있는데 벽에는 눈썹을 늘어뜨리고 단정하게 앉아 있는 노화상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초상화 속의 노화상은 눈을 뜨고 미미하게 웃고 있는데 자상한 모양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본무대사가 경을 다 읽은 후 목어를 한번 두드리고는 일어나 석지중의 면전으로 걸어갔다.
"너는 본문에 들어와 곤륜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느냐? 조사 계지노조(戒持老祖)께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절을 해라"
석지중이 벽에 걸린 초상화를 향해 엎드려 세 번 절하고 말했다.
"저는 곤륜의 제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본무대사가 합장하고 꿇어앉으며 초상화를 향해 말했다.
"제자 제십사대 장문 본무가 스승을 대신하여 제자를 거둡니다. 석지중은 오늘부터 본문 제십사대 관문제자입니다."
자욱한 연기 속에서 본무선사가 장엄하게 말했다.
"너는 본문의 제자이므로 마땅히 본문의 계율을 알고 있어야 한다.
첫째, 스승을 속이고 조종(祖宗)을 부끄럽게 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둘째, 무고한 사람을 함부로죽여서는 안된다.
셋째, ..."
"오늘부터 본문의 계율을 엄격히 지켜야 하고 이를 어겨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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