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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안금조(碧眼金雕) 2-11

碧眼金雕 2004. 10. 26. 10:20 Posted by 비천호리

본무 노선사는 석지중의 온 정신이 이야기에 빠져 있는 것을 보자 미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당시 선사께서는 땅속에서 '은액영천(銀液靈泉)'을 끌어올려 그 물을 나무에 주어 오늘 소사제가 산에 올 시기에 맞추어 두셨네.
왜냐하면 칠절신군은 내가경기만 중원에서 무적일 뿐 아니라 옛날 금선(琴仙)의 '천음보금(天音寶琴)'까지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십 오년 전에도 그는 이미 거문고 소리로 사람의 의지를 무너뜨릴 수 있었는데 지금은 사람의 혼백을 끊어놓는 경지에까지 도달해 있어 절정의 내공이 없이는 그에 맞설 수 없기 때문이라네"
수월이 물었다.
"십 오년 전에는 인사형이 조심하지 않아서 금음(琴音)에 심맥이 찢겨 죽었지만, 지금 우리들이 심지(心志) 굳건히 한다면 혹시..."
본무선사가 손을 뻗어 수월이 말하는 것을 제지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칠절신군이 '천마곡(天魔曲)'을 연주하기만 하면 본문의 이대 제자(二代弟子)들 전부가 몰살을 당할 것이다. 게다가 그에게는 아직 다른 수단이 더 있어 단지 한 곡 탄주하는 것으로도 십장 안쪽의 가산을 가루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데 그건 우리들이 맞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물며 그에게는 기(棋), 검(劍), 장(掌), 진법(陣法), 내가강기 등 절예가 더 있어 소사제를 제외하고는 본문의 어느 누구도 그의 적수가 될 수 없다네."
그가 말을 잠깐 멈추었다 다시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칠성조원의 사람은 지혜가 보통사람보다 훨씬 뛰어나 산천(山川)의 영민(靈敏)한 기운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셨고, 그렇기 때문에 오직 소사제만이 한 달 안에 본문의 모든 절예를 익힐 수 있다고 하셨네.
또한 장래 본문에 세 차례 겁난이 있을 터인데 금붕묵검(金鵬墨劍)이 아니면 해결할 수 없다고 하셨네."

 

석지중이 격동되어 물었다.
"금붕묵검이 무엇입니까?"
본무선사가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원적(圓寂) 하실 때에 말씀하신 것이라 나도 지금까지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네. 그러나 대막에 있다는 붕성(鵬城)과 관련이 있을 수 있고 소사제와 어떤 관계가 있을지는 모르겠네."
그가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말했다.
"'옥로응로비파'는 오늘 저녁에 완전히 익을 것이네.
내 생각에는 우리 함께 풍뢰동에 때 맞춰 도착하여 네 사람이 힘을 합쳐 소사제의 천지지교(天地之橋)를 소통시키고 영약의 약효가 완전히 발휘되기 전에 그의 임맥(任脈)과 독맥(督脈)을 뚫리도록 하면 한 달 후에는 칠절신군과 한번 붙어 볼만 할 것이고 동시에 본문에는 기인이 한 사람 늘어나 무림에 크게 빛을 낼 수 있을텐데 사제들의 생각은 어떠신가?"

담월이 두 노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장문인의 분부에 따르겠습니다. 수월, 경월 두 사제도 반대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수월이 합장하며 말했다.
"아미타불, 사형께서 길을 안내해 주십시오."
석지중이 말했다.
"장문 사형, 선사께서는 어떻게 십 몇년 전에 이런 일들을 미리 아셨을까요?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불문의 '반야진기' 비적(秘籍)을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뭐라고? 사제가 '반야진기' 비급을 가지고 있다고?
그건 불문의 고승이 악을 물리치는데 쓰는 신공으로 본문에서 실전된지 벌써 팔십여년이 지났는데 오늘 사제가 가지고 나타날 줄은 생각 못했네."
그가 기뻐하며 말했다.
"이제 '강기' 현공(玄功)도 제압할 방법이 생겼으니 승산이 몇 푼은 더 늘어났구나. 자, 우리 지금 바로 뒷산 풍뢰동으로 갑시다."
그가 앞서 방장실을 나서며 문앞에 있는 사미승에게 말했다.
"네 영수(靈水) 사숙을 불러오너라."
그가 다시 돌아보며 말했다.
"담월, 사제가 소사제를 데리고 같이 가게. 영수(靈水)가 건량과 물을 가지고 오면 바로 뒤따라 가겠네."
영수화상이 손에 보따리를 하나 들고 옆 건물에서 빠르게 들어왔다.
"장문 사부님께 아룁니다. 모든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본무 노선사가 말했다.
"보따리를 네 수월사숙에게 건네주고 앞으로 사흘동안 너와 영산, 영목 셋이서 절안의 모든 일을 맡아 처리하거라. 만약 그 마두가 묻거든 우리들은 지하실에서 진법을 연구한다고 말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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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안금조(碧眼金雕) 2-10

碧眼金雕 2004. 10. 21. 14:52 Posted by 비천호리

"하하! 무슨 개방구 같은 계율이냐, 그건 모두 냄새나는 화상들이 배부르고 종일 할 일이 없으니까 그럴 듯 하게 만들어낸 게지. 얘야, 너 나를 따라 가자. 우리 다섯 번 겨룰 필요도 없이 내 이 중들을 그냥 놓아주마."
칠절신군이큰 소리로 말하며 안쪽에서 걸어 나왔다.
본무선사가 차갑게 칠절신군을 쳐다보며 석지중에게 말했다.
"너는 스승님의 여섯 번째 제자다. 지금 너의 세 사형에게 인사를 하거라."
그가 가장 앞쪽에 단정히 앉아 있는 세 노화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사람들이 너의 셋째 사형 담월(曇月), 넷째 사형 수월(水月), 다섯째 사형 경월(鏡月)이다."
세 노 화상이 합장하며 말했다.
"소사제(小師弟), 본파에 들어온 것을 축하하네, 아미타불."
석지중이 말했다.
"세분 사형들께서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그가 몸을 돌려 칠절신군에게 말했다.
"저는 다시 곤륜제자의 신분으로 가사 장공대사를 대신하여 선배님과 다섯 가지를 겨루려고 합니다. 저는 첫 번째를 진법(陣法)으로 겨루고 싶은데 선배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칠절신군이 놀라 두 눈을 크게 뜨고 석지중을 노려보다가 한참 후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좋다! 정말 좋은 인재로구나! 본무가 어떻게 너를 찾아냈는지 모르겠구나. 허허 아주 좋아."
석지중의 준수한 얼굴이 약간 붉어지며 말했다.
"선배님의 칭찬을 받게 되어 영광입니다. 단지 이 진법의..."
칠절신군이 말했다.
"네가 나하고 진법을 겨뤄보겠다고? 좋아! 그렇다면 각자 세 가지 진법을 펼치고 각 진법은 삼일을 기한으로 하여 만약 그 안에 깨뜨리지 못하면 지는 것으로 하자. 어떠냐?"
석지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게 하신다면 아주 좋습니다. 그럼 선배님께서 먼저 한 가지를 펼치십시오."
칠절신군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
"너희 화상들은 전부 꺼져라!"
본무선사가 합장하며 말했다.
"아미타불, 사제와 신군의 시합은 사흘 후에 시작하면 안되겠습니까? 제가 아직 소사제에게 해줄 이야기가 있습니다."
칠절신군이 장포를 한번 떨치고 본무선사를 바라본 후 말했다.
"좋아! 우리 사흘 후에 다시 겨루자!"
말이 끝나자 붉은 그림자가 번쩍하더니 벌써 바람처럼 사라졌다.본무선사가 말했다.
"저 마두는 줄곧 마음이 독랄하고 수법이 잔인하여 그의 손에 죽지 않은 사람이 없었는데 왜 너에게는 이렇게 잘 해주는지 정말 모르겠구나. 내 생각에 저 마두가 머물 가능성이 팔할은 될 것으로 보이는구나.
그가 손을 한번 저으며 말했다.
"너희들은 계속해서 저녁 과업을 하고 있거라. 담월, 수월, 경월 너희들은 나를 함께 가자."
그가 말했다.
"소사제는 나를 따라 방장실(方丈室)로 가자."

 

본무대사가 소매자락을 휘저으며 방장실로 가자 담월, 수월, 경월 세 대사도 말없이 그 뒤를 따라 갔고 석지중도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뒤를 따랐다.
가산(假山)을 하나 돌아 정원을 지나자 바로 방장실이었고 소사미 둘이 허리를 굽히며 베로 된 가리개를 들어올렸다.
석지중은 노선사를 따라 방안으로 들어섰다.
바깥은 눈꽃이 날리고 있지만 방안에는 각로(脚爐)가 활활 타오르고 있고 두터운 담요가 바닥에 깔려 있어서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고 있었다.

본무선사가 책상다리를 하고 평상에 앉자 경월이 석지중에게 말했다.
"사제, 책상다리가 습관이 되지 않았으면 그냥 편하게 앉아도 좋아"
석지중이 말했다.
"전 책상다리 해도 괜찮습니다. 사형, 마음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본무선사가 숨을 한번 들이쉬고는 말했다.
"본문은 계지노조(戒持老祖)께서 대설산(大雪山)을 넘어 이 산에 오셔서 우리 곤륜파를
세운 이래 유장(悠長)하고 순후(純厚)한 내경(內勁)과 독특한 경공신법(輕功身法)으로 무림에서 영예를 누려왔다.
비록 소림(少林), 무당(武當), 화산(華山), 아미(峨嵋)의 네 파가 이전부터 있어왔으나 우리 곤륜은 여태 구대문파(九大門派) 가운데 하나였다.
다만, 중원에서 멀리 떨어진 관계로 무림에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았을 뿐이다.
그가 안색을 엄숙하게 하고 말했다.
"그러나 무학의 도(道)는 끝없이 넓어서 본문이 불문정종(佛門正宗)이기는 하지만, 외진 묘강(苗疆) 지역과 해외 여러 섬 그리고 서장 땅 각지에 이인(異人)들이 적지 않고,
넓디넓은 강호 전체에는 더더구나 기인이사(奇人異士)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파(派)마다 자기만의 절예(絶藝)가 있고 문(門)마다 비전(秘傳)되는 법문(法門)이 있는데 칠절신군이 절정의 지혜로 일곱가지의 절세지학(絶世之學)을 깨우친 것은 전체 중원을 놓고 말한다 해도 그 외에는 다른 어떤 사람도 이루지 못한 일이다.
게다가 그의 내가현문 '강기' 조예는 더욱 놀라웠기 때문에 선사께서는 임종 전에 이 산 뒤쪽 협곡(峽谷)에서 천년 묵은 '오향응로비파(五香凝露枇杷)' 한 그루를 찾아내어 이를 뒷산 '수화동원풍뢰동(水火同源風雷洞)'에 옮겨 심음으로써 물과 불에 단련되고 산천의 정화를 흡수하도록 하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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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안금조(碧眼金雕) 2-9

碧眼金雕 2004. 10. 21. 10:12 Posted by 비천호리

석지중이 몸을 굽혀 인사하며 말했다.
"노선배님께서 칠절신군이십니까?"
칠절신군이 하하하 웃으며 말했다.
"나는 어린 화상이 한달 동안이나 산을 내려가 무슨 대단한 자를 찾아오는 줄 알았더니
겨우 너 같은 어린애를 데려오다니, 어이 어린애야! 너 할 줄 아는게 뭐냐?"
석지중이 말했다.
"오래 전부터 신군의 존함을 들어왔습니다. 마침 신군께 가르침을 청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신군께서는 장공대사(藏空大師)와의 약속을 지켜 곤륜산에 오셨는데 이번에는 무엇을 겨루려고 하시는지요?"
칠절신군이 턱밑의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십오년 전 장공 그 늙은 대머리와 세 가지를 겨뤘는데, 내가 다시 곤륜산에 오르면 산에서 삼년을 묶이고 게다가 곤륜의 큰 어려움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그가 예언했었지. 하하! 내 평생 대머리들을 가장 증오했는데 그들을 위해 겁난(劫難)을 해결해 준다고?
그래서 이번에는 십오년 전에 약속한 대로 다섯 가지 재주를 겨루려고 왔다."
칠절신군이 잠시 멈추었다 두 눈에서 신광(神光)을 폭사하며 말했다.
"만약 이번에 내가 지면 내 머리를 직접 잘라 장공 늙은이의 제단에 걸 것이고, 내가 이기면 이곳 중들을 모두 죽여 피가 강처럼 흐르게 하고 절간은 모두 부숴 평지를 만들어 버릴 것이다"
그의 목소리가 마치 벼락이 치듯 울리자 양쪽의 나뭇가지에 쌓였던 눈이 스슥 소리를 내며 떨어졌고, 목소리가 산골짜기에 메아리쳐 그 여운이 오래 오래 흩어지지 않았다.
석지중이 정중하게 말했다.
"선배님께서는 개인의 은원(恩怨)을 전체 불문 제자에게 풀려고 하시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응당 부모님이 주신 몸을 내기에 걸어서는 안됩니다.
선배님과 장공선사께서 내기한 다섯 가지는 제가 받아 보겠습니다.

 

칠절신군이 놀랐으나 곧 앙천광소(仰天大笑) 하더니 웃음소리를 그치고 말했다.
"정말 담력이 센 인재로구나! 육십여년 동안 내 면전에서 아니라고 말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는데, 이곳에서 듣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느냐, 허허 노부가 정말 안목을 넓히는 구나!"
그가 표정을 바르게 하고 말했다.
"십오년 전에 곤륜 문하와 다섯 가지 절예를 겨루겠다고 내가 말한 것을 너는 아느냐?
너 지금 곤륜 문하생이냐?"
석지중이 생각도 못했던 말에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자 본무선사가 앞으로 걸어나와 합장을 하며 말했다.
"아미타불, 제가 선사(先師)의 유명(遺命)을 받들어 스승님을 대신하여 제자로 거두겠습니다. 석공자는 오늘 저녁부터 선사의 관문제자(關門弟子)입니다.
본무선사의 말이 떨어지자 승인들이 모두 크게 놀랐다.
곤륜파는 근백년(近百年) 동안 아직 속가제자(俗家弟子) 한 명도 거두지 않았는데 이번에 장문인이 직접 스승을 대신하여 제자를 삼는다는 말을 들었으니 삼대(三代)의 곤륜제자들 모두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석지중도 놀라고 의아해서 큰 목소리로 말했다.
"노선사님..."
본무노선사가 긴 눈썹을 비스듬히 날리며 말했다.
"석공자 여러말 할 것 없소이다. 선사께서 남기신 게시(偈示)를 보시오. 이것은 선사께서 칠성조원(七星朝元)의 사람에게 전해지도록 분부한 것이오"

"칠성조원?"
석지중이 깨달았다.
"선사께서는 제 몸에 있는 일곱 개의 붉은 사마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본무 노선사가 머리를 끄덕이고는 큰 소매를 가볍게 흔들자 축(軸)에 묶인 비단 한 권이 석지중이 뻗은 손에 부드럽게 떨어졌다.
석지중이 비단을 열더니 그의 얼굴에 놀라는 표정이 스쳤다.
그가 비단을 품에 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부님을 배알한 후에 저는 곤륜의 제자입니다"
그가 칠절신군에게 말했다.
저는 곤륜제자의 신분으로 선배님과 다섯 번 겨루겠습니다"
칠절신군이 의아해하며 석지중을 한번 보고는 말했다.
"늙은 대머리가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거야? 그가 점을 치지 않고서도 앞일을 아는 능력이 있었단 말인가?"
뭇 승려들이 줄지어 들어가자 대웅보전에 낮은 범패소리가 울리기 시작했고, 한 화상이 절 앞에 있는 종루에 올라 종을 치자 종소리가 메아리치기 시작했다.
황혼(黃昏), 거위 깃털 같은 눈송이가 흩날리고 산바람이 불어오는 때, "둥! 둥!" 몇 번의 북소리가 울리며 유리등 불빛이 밝아졌다.

 

대전(大殿) 안은 어두컴컴한데 회색의 승포와 비단 수를 놓은 가사(袈裟)가 온 대전을 가득 채우고 있다.
본무선사는 책상다리를 하고 대전 가운데 앉아 고개를 숙이고 중얼중얼 경문을 읽고 있다.
석지중은 책상다리를 하고 벽을 향하고 있는데 벽에는 눈썹을 늘어뜨리고 단정하게 앉아 있는 노화상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초상화 속의 노화상은 눈을 뜨고 미미하게 웃고 있는데 자상한 모양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본무대사가 경을 다 읽은 후 목어를 한번 두드리고는 일어나 석지중의 면전으로 걸어갔다.
"너는 본문에 들어와 곤륜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느냐? 조사 계지노조(戒持老祖)께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절을 해라"

석지중이 벽에 걸린 초상화를 향해 엎드려 세 번 절하고 말했다.
"저는 곤륜의 제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본무대사가 합장하고 꿇어앉으며 초상화를 향해 말했다.
"제자 제십사대 장문 본무가 스승을 대신하여 제자를 거둡니다. 석지중은 오늘부터 본문 제십사대 관문제자입니다."
자욱한 연기 속에서 본무선사가 장엄하게 말했다.
"너는 본문의 제자이므로 마땅히 본문의 계율을 알고 있어야 한다.
첫째, 스승을 속이고 조종(祖宗)을 부끄럽게 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둘째, 무고한 사람을 함부로죽여서는 안된다.
셋째, ..."

"오늘부터 본문의 계율을 엄격히 지켜야 하고 이를 어겨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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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안금조(碧眼金雕) 2-8

碧眼金雕 2004. 10. 20. 10:56 Posted by 비천호리

중년화상이 고개를 저으며 혼잣말을 했다.
"이 이천 근이나 되는 큰 정(鼎)을 단지 한번 뿌리쳐서 일장 밖으로 날려보내 이렇게 깊이 땅에 박히게 하다니, 그 놀라운 광경을 직접 보지 않으면 누가 믿을까.
아! 불문에 불행히도 이런 위난이 닥치다니"
절로 통하는 길 양쪽에는 푸른 소나무가 높이 솟아 있는데 뿌리가 서로 어지러이 얽혀 있고, 검푸른 색 나무 꼭대기에는 흰눈이 쌓여 있어 나뭇가지 사이로만 푸른 잎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는 천천히 길에 깔린 석판을 걸어 비스듬히 석판에 박힌 큰 정(鼎)을 돌아 돌계단에 도착하자 산바람이 그의 넓은 승포자락을 흔들어 휙휙 소리를 낸다.
돌계단은 산 아래로 곧장 연결돼 있는데 계단 하나 하나가 정오의 햇빛을 받아 새하얗고 햇살 사이로 눈꽃이 날리며 맑고 깨끗한 빛을 반사하고 있다.
중년화상은 구름 위로 높이 솟은 맞은편 산봉우리 흰눈을 응시하며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한참 후에 그가 깊은 숨을 토해내며 응시하던 시선을 거두고 막 절로 돌아가려고 하던 바로 그때,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며 한 소리 크게 외치고 몸을 날려 야학(野鶴)이 하늘로 날아 오르는 것처럼 뛰어오르더니 공중에서 비스듬히 날아 절 안으로 달려갔다.
절 문에 도착하자 그가 크게 외쳤다.
"장문인께서 돌아오셨다. 어서 나와서 맞이해라!"

 

그때는 눈이 이미 그쳐 돌계단이 축축했다.
넓은 돌계단에는 염주를 걸고 합장(合掌)을 한 승인들이 두 줄로 줄지어 산 위로 날 듯이 뛰어 오르고 있는데 그들의 얼굴에는 승인의 회색 승포와는 어울리지 않게 억누를 수 없는 기쁨의 기색이 떠올라 있었다.
두 줄로 줄지어 오고 있는 승인들의 앞쪽에는 키가 큰 네 명의 화상이 가마를 메고 있고 그 위에는 긴 눈썹이 볼까지 늘어진 비쩍 마른 노화상과 검미호목(劍眉虎目)에 풍채가 빼어난 소년이 앉아 있다.
본무 노화상이 말했다.
"이곳이 옥허궁(玉虛宮)이요, 석공자 이 깊어 가는 가을 풍경을 보시오,
산에 눈이 그쳤으니 조금 있으면 일찍 핀 매화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소"
석지중이 미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곳이 이처럼 평안하고 고요하니 참으로 속세를 벗어난 선산(仙山) 인 듯 합니다.
그 칠절신군이 왜 천하의 스님들을 모두 죽여버리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본무대사가 말했다.

"십 오년 전 칠절신군이 거문고와 검을 들고 곤륜산 옥주봉을 찾아와서 선사(先師) 장공(藏空) 대사와 재주를 세 번 겨루었소.
그 때 나는 둘째 제자였는데, 대사형은 선사의 명을 지키지 않고 몰래 절 뒤에 있는 정사(精舍)에 들어가 칠절신군의 거문고 한 곡을 듣고는 끝내 오장이 부서지고 심맥(心脈)이 끝어져 죽고 말았소..."
그의 얼굴에 한 가닥 비통한 기색이 떠오르며 잠시 멈추었다 다시 말했다.
"선사께서 열흘 후에 우리 사형제들에게 말씀해 주신데 따르면, 그 세 번의 비무에서 선사께서는 바둑에서 한 판을 이기고 내가공력(內家功力)에서는 상대방에게 졌는데, 세번째 칠절신군이 거문고를 연주할 때는다행히 사형이 그의 마음이 분산되게 하였으므로 가사(家師)께서칠절신군의 '천마곡(天魔曲)' 한 곡을 다 들을 수 있었다고 하셨소"

 

승인들은 열을 지어 순식간에 돌계단을 지나 절로 향하는 길에 들어섰다.
길 가운데 비스듬히 쓰러진 석정(石鼎)이 얼핏 보이자 그들의 얼굴에 일종의 두려운 기색이 스쳤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엎어진 대정(大鼎)이 말을 타고 날아오른 칠절신군이 한 손을 휘두르자 공중을 날아 석판(石板) 길에 떨어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석지중은 땅에 깊이 박힌 석정을 보자마자 놀란 얼굴로 물었다.
"노선사님, 이건..."
본무선사가 탄식하며 말했다.
"이것은 칠절신군의 현문 '강기'요, 그날 그가 단지 한번 휘둘렀을 뿐이데..."
한바탕 범패소리가 절에서 흘러나오고 연이어 승인들이 두 열을 지어 줄줄이 나왔다.
앞장선 중년화상이 손에 향로를 받쳐들고 와서 허리를 굽혔다.
"제자 영산(靈山)이 장문인을 맞습니다"
본무대사가 가마에서 내려 손을 저으며 말했다.
"영산, 이 며칠동안 그 마두는 어땠느냐?"
영산이 대답했다.
"제자는 장문인의 분부를 받들어 칠절신군이 요구하는 대로 무엇이든 다 해줬습니다.
또한 신군이 시키지 않으면 절대 후원 정사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본무대사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너는 석공자를 모시고 서쪽 곁채로 가거라. 연일 바빴으니 좀 쉬게 해드려라"
그가 고개를 약간 돌려 석지중을 보며 말했다.
"석공자, 영산을 따라 서쪽 곁채에 가셔서 좀 쉬시고..."
석지중이 공수(拱手)하며 말했다.
"대사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만, 저는 칠절신군을 한번 만나고 싶습니다"
"하하하!"
의기양양한 웃음소리가 절안에서 전해오며 붉은 그림자가 갑자기 나타났다.
붉은 장포(紅袍)를 걸친 칠절신군이 웃으며 말했다.
"누가 나를 만나려고 하는가 했더니, 허허! 어린 중 네가 돌아왔구나. 만약 며칠만 늦었으면 이 새집에 불을 지르고 너희들 대머리 도적놈들을 다 죽여버리려고 했다"
석지중은 칠절신군의두눈에서 비범한 빛이 번쩍이는 것을 보았다.
칠절신군의 잿빛 눈썹은 비스듬히 귀밑까지 닿아 있고 흰머리는 어깨에 흐트러져 있지만
신태가 위풍당당하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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