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륜산(昆侖山) 옥주봉(玉柱峰), 깊어 가는 가을의 차가운 바람이 계곡 밑에서 불어오고, 봉우리에는 눈꽃이 어지럽게 날리고 있다.
바싹 마른 나뭇가지 매달린 방울방울 빛나는 얼음구슬이 아름다운 빛을 반사하여 깊어가는 가을의 햇빛을 더욱 부드럽게 보이게 하고 있다. 양광(陽光)과 석광(雪光)이 서로 어울리는 하루다.
새하얀 낭떠러지 뒤로는 죽 늘어선 비첨(飛첨)이 낭떠러지 아래로 비스듬히 꽂혀 있고 붉은 담장에 녹색 기와가 길게 이어져 있는데 난간에 새긴 조각으로 보아 이곳은 바로 사원인 듯 하다.
아무래도 산 위가 평지보다는 찬 기운이 빨리 오는지라 이 깊은 가을의 곤륜산 위에 몇 송이 매화가 새 꽃술을 터뜨렸고, 약간 이르게 핀 꽃잎이 맑은 향기를 뿜고 있다.
은은한 향기가 흐르는 가운데 한 가닥 거문고 소리가 한 건물에서 흘러나와 냉매(冷梅)를 휘감고 도니 맑은 거문고 소리가 마치 천상의 소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듯 하다.
건물 안에는 은빛 수염을 날리며 붉은 얼굴에 긴 눈썹에 갈색 장포를 입은 노인이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고 그의 앞쪽에는 작은 향로가 놓여 있다.
향로에서는 모락모락 향이 피어올라 천천히 한 가닥씩 공기 중으로 퍼져가고 있고 그 곁에는 자그마한 검은 빛 상이 있는데 그 위에 옛 맛을 그대로 풍기는 옥금(玉琴)이 놓여 있다.
거문고에 열 손가락을 천천히 움직이자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소리가 현(弦)에서생겨나창 밖으로 퍼져 나간다.
노인의 얼굴에 기쁜 빛이 점점 번지면서 열 손가락의 놀림이 갈수록 빨라지더니 마지막에 열손가락으로 일제히 누르자 큰 소리가 나며 건물 밖의 가산(假山)이 흔들거리다가 끝내는 무너져 내려 가루가 되고 만다.
그가 허허 웃으며 일어나 말했다.
"아이고 시원해라. 장공(藏空) 그 늙은 대머리가 죽지 않았다면 나의 '천음보금(天音寶琴)'이 이렇게 대단한 위력을 가진 것을 직접 보았을테지, 그랬다면나하고 내기한걸 당연히 후회했을 것이다! 흐흐!"
'잔곡(殘曲)'을 연성했으니 천하의 화상이란 화상은 하나씩 죽게 될 것이다.
이 대머리들이 누구를 데리고 와서 나한테 맞서는지 어디 한번 볼까?"
그가 자기의 백발을 만지더니 말했다.
"쳇! 그자가 나를 곤륜에 3년 동안 가두어 둔다고! 흥! 삼일만 있으면 한 달 기한의 약속 날짜가 다되니 너희들 냄새나는 화상놈들 그때는 어디로 도망가는지 두고보자."
그가 문을 열고 소리쳤다.
"어이! 이리 오너라!"
소사미(小沙彌)가 대답하고 오더니 허리를 굽혔다.
"신군께서 무슨 분부가 있으십니까?"
노인이 눈을 치켜 뜨고 말했다.
"네 대머리를 보니 혐오스럽다. 넌 나이가 어린데 왜 화상 짓을 하고 있느냐?
삼일 내에 너희 장문인이 돌아오지 않으면 불을 질러 절을 태우고 너희 화상들을 모두 죽여버리기로 한 것을 기억하고 있거라"
소사미가 합장하며 말했다.
"아미타불, 신군께서는 어떤 분부가 있으십니까? 조사께서 약정한 기일은 한 달이고, 그 한 달 안에는 꼭 몸에 칠성(七星)이 있는 사람을 찾아내실 것입니다.
기일이 되어도 찾아내지 못하면 그때는 신군께서 하고 싶은 대로 하실 수 있을텐데 지금 성질을 내셔서 무엇하시겠습니까?
칠절신군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삼일만 지나면 제일 먼저 너부터 죽이겠다. 흥! 지금은 좋은 술과 안주를 갖고 오고 말에게도 먹이를 잘 먹여라!
소사미가 대답하고 고개를 돌려 절 쪽으로 걸어가는데 마치 행운유수(行云流水)처럼 순식간에 대나무 숲을 지나 전원(前院)으로 왔다.
중년화상 하나가 그를 맞으며 말했다.
"청송(靑松), 그가 또 뭘 해달라고 하더냐?"
청송이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사숙님, 칠절신군이 좋은 술과 안주를 빨리 갖고 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말도 잘 먹이라고 합니다."
중년화상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렇다면 청풍(淸風)에게 재료와 술을 빨리 준비하고 그 한혈보마(汗血寶馬)도 배불리 먹이라고 해라. 안 그랬다가 그가 또 성질을 부려 산문(山門) 앞에 있는 다른 돌사자마저도 때려 부숴버릴지 모른다."
그가 탄식을 하며 말했다.
"아! 본문에서 반야진기가 실전(失傳) 된 후 다시는 도가(道家) 현문정기(玄門正氣)인 '강기'를 당해내지 못하고 있으니! 사부님께서는 그 칠성지인(七星之人)을 찾아 내셨는지 모르겠구나"
청송이 말했다.
"사조(師祖)님께서는 조사(祖師)님이 남기신 게시(偈示)에 따라 동북쪽으로 그 '칠성조원(七星朝元)'을 가진 사람을 찾으러 가신다고 했는데 그 사람이 무슨 칠성(七星) 인가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게다가 그가 곤륜에 오게 될지도..."
중년화상이 말했다.
"청송아, 쓸데없는 말 늘어놓지 말고 빨리 청풍에게 말을 먹이라고 하고 주방에 가서 신군이 달라고 한 술과 안주를 갖고 가거라"
청송이 대답하며 주방으로 달려가자 중년화상은 손에 염주를 들고 천천히 산문으로 걸어갔다.
대전을 지나자 다섯 촌 깊이의 발자국 두 개가 청석(靑石)에 남아 있고, 절 앞 길 석판(石板)에는 두 사람이 팔을 벌려야 안을만한 큰 정(鼎) 하나가 비스듬히 꽂혀 있는데 반은 땅속으로 들어가고 나머지 반만 땅위에 나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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