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화상이 고개를 저으며 혼잣말을 했다.
"이 이천 근이나 되는 큰 정(鼎)을 단지 한번 뿌리쳐서 일장 밖으로 날려보내 이렇게 깊이 땅에 박히게 하다니, 그 놀라운 광경을 직접 보지 않으면 누가 믿을까.
아! 불문에 불행히도 이런 위난이 닥치다니"
절로 통하는 길 양쪽에는 푸른 소나무가 높이 솟아 있는데 뿌리가 서로 어지러이 얽혀 있고, 검푸른 색 나무 꼭대기에는 흰눈이 쌓여 있어 나뭇가지 사이로만 푸른 잎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는 천천히 길에 깔린 석판을 걸어 비스듬히 석판에 박힌 큰 정(鼎)을 돌아 돌계단에 도착하자 산바람이 그의 넓은 승포자락을 흔들어 휙휙 소리를 낸다.
돌계단은 산 아래로 곧장 연결돼 있는데 계단 하나 하나가 정오의 햇빛을 받아 새하얗고 햇살 사이로 눈꽃이 날리며 맑고 깨끗한 빛을 반사하고 있다.
중년화상은 구름 위로 높이 솟은 맞은편 산봉우리 흰눈을 응시하며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한참 후에 그가 깊은 숨을 토해내며 응시하던 시선을 거두고 막 절로 돌아가려고 하던 바로 그때,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며 한 소리 크게 외치고 몸을 날려 야학(野鶴)이 하늘로 날아 오르는 것처럼 뛰어오르더니 공중에서 비스듬히 날아 절 안으로 달려갔다.
절 문에 도착하자 그가 크게 외쳤다.
"장문인께서 돌아오셨다. 어서 나와서 맞이해라!"
그때는 눈이 이미 그쳐 돌계단이 축축했다.
넓은 돌계단에는 염주를 걸고 합장(合掌)을 한 승인들이 두 줄로 줄지어 산 위로 날 듯이 뛰어 오르고 있는데 그들의 얼굴에는 승인의 회색 승포와는 어울리지 않게 억누를 수 없는 기쁨의 기색이 떠올라 있었다.
두 줄로 줄지어 오고 있는 승인들의 앞쪽에는 키가 큰 네 명의 화상이 가마를 메고 있고 그 위에는 긴 눈썹이 볼까지 늘어진 비쩍 마른 노화상과 검미호목(劍眉虎目)에 풍채가 빼어난 소년이 앉아 있다.
본무 노화상이 말했다.
"이곳이 옥허궁(玉虛宮)이요, 석공자 이 깊어 가는 가을 풍경을 보시오,
산에 눈이 그쳤으니 조금 있으면 일찍 핀 매화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소"
석지중이 미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곳이 이처럼 평안하고 고요하니 참으로 속세를 벗어난 선산(仙山) 인 듯 합니다.
그 칠절신군이 왜 천하의 스님들을 모두 죽여버리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본무대사가 말했다.
"십 오년 전 칠절신군이 거문고와 검을 들고 곤륜산 옥주봉을 찾아와서 선사(先師) 장공(藏空) 대사와 재주를 세 번 겨루었소.
그 때 나는 둘째 제자였는데, 대사형은 선사의 명을 지키지 않고 몰래 절 뒤에 있는 정사(精舍)에 들어가 칠절신군의 거문고 한 곡을 듣고는 끝내 오장이 부서지고 심맥(心脈)이 끝어져 죽고 말았소..."
그의 얼굴에 한 가닥 비통한 기색이 떠오르며 잠시 멈추었다 다시 말했다.
"선사께서 열흘 후에 우리 사형제들에게 말씀해 주신데 따르면, 그 세 번의 비무에서 선사께서는 바둑에서 한 판을 이기고 내가공력(內家功力)에서는 상대방에게 졌는데, 세번째 칠절신군이 거문고를 연주할 때는다행히 사형이 그의 마음이 분산되게 하였으므로 가사(家師)께서칠절신군의 '천마곡(天魔曲)' 한 곡을 다 들을 수 있었다고 하셨소"
승인들은 열을 지어 순식간에 돌계단을 지나 절로 향하는 길에 들어섰다.
길 가운데 비스듬히 쓰러진 석정(石鼎)이 얼핏 보이자 그들의 얼굴에 일종의 두려운 기색이 스쳤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엎어진 대정(大鼎)이 말을 타고 날아오른 칠절신군이 한 손을 휘두르자 공중을 날아 석판(石板) 길에 떨어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석지중은 땅에 깊이 박힌 석정을 보자마자 놀란 얼굴로 물었다.
"노선사님, 이건..."
본무선사가 탄식하며 말했다.
"이것은 칠절신군의 현문 '강기'요, 그날 그가 단지 한번 휘둘렀을 뿐이데..."
한바탕 범패소리가 절에서 흘러나오고 연이어 승인들이 두 열을 지어 줄줄이 나왔다.
앞장선 중년화상이 손에 향로를 받쳐들고 와서 허리를 굽혔다.
"제자 영산(靈山)이 장문인을 맞습니다"
본무대사가 가마에서 내려 손을 저으며 말했다.
"영산, 이 며칠동안 그 마두는 어땠느냐?"
영산이 대답했다.
"제자는 장문인의 분부를 받들어 칠절신군이 요구하는 대로 무엇이든 다 해줬습니다.
또한 신군이 시키지 않으면 절대 후원 정사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본무대사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너는 석공자를 모시고 서쪽 곁채로 가거라. 연일 바빴으니 좀 쉬게 해드려라"
그가 고개를 약간 돌려 석지중을 보며 말했다.
"석공자, 영산을 따라 서쪽 곁채에 가셔서 좀 쉬시고..."
석지중이 공수(拱手)하며 말했다.
"대사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만, 저는 칠절신군을 한번 만나고 싶습니다"
"하하하!"
의기양양한 웃음소리가 절안에서 전해오며 붉은 그림자가 갑자기 나타났다.
붉은 장포(紅袍)를 걸친 칠절신군이 웃으며 말했다.
"누가 나를 만나려고 하는가 했더니, 허허! 어린 중 네가 돌아왔구나. 만약 며칠만 늦었으면 이 새집에 불을 지르고 너희들 대머리 도적놈들을 다 죽여버리려고 했다"
석지중은 칠절신군의두눈에서 비범한 빛이 번쩍이는 것을 보았다.
칠절신군의 잿빛 눈썹은 비스듬히 귀밑까지 닿아 있고 흰머리는 어깨에 흐트러져 있지만
신태가 위풍당당하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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