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망(蒼茫)한 야색(夜色)이 내린 가운데 차가운 바람이 그들의 옷자락을 훑고 지나간다. 첩첩산중 산봉우리에는 흰눈이 가득 쌓여 있는데 눈 내린 땅에 생긴 엷은 몇 개의 발자국이 뒤쪽 골짜기로 이어져 있지만 잠깐 사이에 눈꽃이 내려 그 자리를 메꿔버린다.
석지중이 담월에게 부축되어 눈밭에서 날듯이 빠르게 달리는데 큰 소맷자락을 몇 번 휘젓는가 싶더니 그림자마저 순식간에 어둠속에 사라져 버린다.
잠시 후 그들은 한 계곡에 도착했다.
"계곡 안이 바로 그 수화동원풍뢰동이니 모두 조심하시게. 동(洞) 안에는 아홉 개의 길이 있지만 단지 하나만이 '은액영천(銀液靈泉)'이 모인 작은 연못과 통하고 그 연못 가에 '옥향응로비파'가 심어져 있네."
본무 선사가 말한 다음 갑자기 오른쪽으로 방향을 돌려 작은 동굴 안으로 들어가니 그림자가 흔들리며 다른 세 사람도 모두 따라 들어갔다.
"뒷쪽에 누군가가 미행하고 있어서 그렇게 말한 것이고 실은 이곳이 풍뢰동이네"
석지중이 물었다.
"칠절신군이 따라 왔을까요? 제가 동굴 입구에 진식(陣式)을 펼칠 수 있으니 사형께서는 돌멩이 아홉 개를 저에게 집어 주십시오."
담월이 말했다.
"미행자는 칠절신군이 아닐 것이네. 만약 그가 우리를 미행했다면 우리에게 발각되지 않았을 테니까, 미행자는 분명히 다른 사람일거네. 지금 때가 거의 다 되지만 않았다면 도대체 누가 곤륜에 몰래 잠입했는지 내가 나가서 보고 올텐데 말이야."
석지중이 수월대사가 주워온 돌멩이 아홉 개를 받아 동굴 입구에 진을 치기 시작하더니 잠시만에 배치를 다 끝냈다.
수월대사가 작은 소리로 물었다.
"사제, 지금 펼친게 무슨 진(陣)인가?"
석지중이 말했다.
"이것은 삼원화일구곡진(三元化一九曲陣)으로 아홉에서 다시 아홉의 변화가 생겨 여든 한가지의 문호(門戶)가 생깁니다.
사형께서 생각해 보십시오.
이 조금만 동굴 입구에 여든 한 가지 길이 있으면 이 동굴을 찾을 가능성은 당연히 더욱 적어질 것입니다. 사흘 안에는 분명히 다른 사람에게 발각되지 않을 것입니다.
운월대사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사제처럼 어린 나이에 진법에 대해 이렇게 조예가 있을 줄은 정말 생각 못했네."
그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동굴 밖에서 노인의 음성이 들렸다.
"어! 그 대머리들이 어디로 갔지? 풍아(風兒)야, 이 계곡 안에 화산 동굴이 하나 있는데 그 동굴 안에는 또 냉천(冷泉)이 있어서 수화동원(水火同源)을 이루므로 영초(靈草)와 선약(仙藥)이 자랄 수 있다고 알고 있단다.
그 영초를 구해서 너에게 복용시켜 너를 사문(邪門) 제일고수(第一高手)로 만드려고 여기 온 것인데..."
말소리가 잠시 멈추더니 사나운 고함소리 가운데 칠질신군의 그 미친 듯한 웃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전해왔다.
"나 칠절신군이 여기 있는데 설산노마(雪山老魔) 너 정도가 덕을 보려고 하느냐?
곤륜산에서 꺼져라!"
본무선사가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설산삼마(雪山三魔) 가운데 누가 왔는지 몰라도 다행히 칠절신군과 마주쳤구나. 이번에 그는 좋게 끝나지 않겠구나."
과연 그 늙은 목소리가 소리쳤다.
"늙은 귀신아, 남의 일에 참견하지 마라. 나중에 우리 설산삼마를 만나게 되면..."
칠절신군의 노한 목소리가 들렸다.
"너 이 멍청한 녀석아 아직도 곤륜에서 꺼지지 않는단 말이지, 내 일장(一掌)을 쓰게 되면 너의 늙은 목숨도 끝장나고 말 것이다. 내 '강기' 재주를 맛보고 싶으냐?'
설산노마의 노성(怒聲)이 사라져가며 칠절신군의 광소(狂笑) 소리가 계곡에 메아리쳤다.
본무선사가 말했다.
"설산노마는 분명히 상처를 입고 도망했을 것이다. 뜻밖에도 그가 사문 제일고수를 하나 만들려고 하다니, 지금 천하에는 마(魔)는 기세가 높고 도(道)는 침체해 있어서 사도(邪道)의 사람이 너무 많구나."
그는 한숨을 쉬며 동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울퉁불퉁 어지러운 바위들을 지나자 종유석이 늘어진, 밝은 불빛이 빛나는 동굴에 도착했다.
석지중이 머리를 들어 살펴보자 동굴 천정에 "수화동원(水火同源)" 네 글자가 크게 새겨져 있고 투명한 종유석 기둥들이 담담한 인광( 光)을 반사하여 동굴 전체가 희미한 남색(藍色)으로 빛나고 있었다.
벽 가까운 곳에 사람 머리높이 만한 작은 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줄기와 가지가 모두 담홍색(淡紅色)을 띠고 있고 담홍색 잎 아래 등황색 열매가 달려 있었다.
나무뿌리 쪽은 은색(銀色) 샘물이 눈을 시원하게 하는 빛을 뿌리며 출렁이고 있는데 바위 밖으로 넘치지는 않고 있었다.
석지중이 언제 이런 기이한 광경을 본적이 있었겠는가?
그는 놀라서 샘물과 암석 위에 뿌리를 내린 그 작은 나무를 주시하고 있었다.
본무선사가 말했다.
"이것이 바로 '옥향응로비파' 다. 완전히 익게되면 투명하게 변하고 맑은 향기가 사방에 퍼지는데 그때 복용할 수 있다."
말하면서 그 샘물 쪽으로 걸어갔다.
석지중도 따라서 한 걸음 내딛었는데 그가 몇 걸음 걷자 실내가 마치 불처럼 뜨겁게 느껴져서 참기 어려워지고 머리에서 땀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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