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안금조(碧眼金雕) 3-7

碧眼金雕 2004. 11. 26. 18:11 Posted by 비천호리

아침 햇살이 검이 찔러 오듯이 두터운 밤의 장막을 열어 젖히자 점차 송림이 또렷해지고 쌓인 눈도 아침바람에 흔들려 떨어진다.
불그스레 윤기가 흐르는 얼굴로 석지중이 숲에서 걸어나오고 있고 그 뒤에 창백한 안색의 세 노화상이 따르고 있다.
아침 산들바람에 그들의 옷자락이 바람을 타고 날아갈 것처럼 펄럭인다.
석지중이 두손을 모아 읍하며 말했다.
"사형들께 감사 드립니다."
늘어선 산봉우리 뒤에서 금빛 햇살이 쏟아져 세 노화상의 얼굴을 비추자 자상한 신색(神色)을 하고 긴 수염을 볼까지 늘어뜨린 모습들이 사당에 있는 보살처럼 성스러운 느낌이 든다.

 

노화상들이 소매를 날리며 멀리 절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보고 있다가 석지중은 멀리 설백(雪白)의 산속에서 붉은 그림자 하나가 전광석화(電光石火) 같이 달려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가 속으로 약간 놀란 것은 날듯이 달려오고 있는 것은 온몸이 시뻘건 한 마리 말이었는데 흰눈으로 뒤덮힌 험준한 골짜기를 바람에 갈기를 날리며 마치 평지처럼 내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석지중이 신형을 움직여 한 마리 날짐승처럼 허공을 날아 그 적토마(赤 馬)를 맞아 나가는데 단지 두 번 땅을 박차고는 그 말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그러자 그 말이 길게 한번 울며 두 귀를 쫑긋 세우며 앞발을 번쩍 들어 맹렬한 기세로 번개처럼 석지중의 가슴을 찼다.
석지중이 속으로 놀라 두 팔을 떨치며 상반신을 몇 촌 기울이고 발에 힘을 줘 다섯 척을 뛰어 그 적홍마(赤紅馬)를 덮쳐갔다.그가 바람 같이 움직이긴 했지만 그 말은 불가사의하게 빨라 번뜩 옆으로 비키며 입을 벌려 섬뜩한 이빨로 석지중의 상의를 물어 자국 몇 개를 내버렸다.
석지중은 뻗어온 말머리를 두 손으로 붙잡아 옷이 찢어지는 것은 상관 않고 두 발을 튕겨 말 위에 올라탔다.
그러나 그가 막 말 위에 앉으려는 순간 적홍마가 길게 한번 울며 목을 뿌리치고는 날개가 달린 것처럼 그 커다란 몸집을 날려 허공을 가로질러 가버릴 줄이야!
석지중이 빈 곳을 덮치고는 저도 모르게 놀라 두 눈을 깜박거렸다.
그의 눈에 적홍마가 네 발을 바람처럼 놀려 날 듯이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그가 시선을 아래로 돌리자 붉은 꽃 색깔의 선명한 핏자국이 방울방울 눈 위에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어! 나 때문에 저 말이 다쳤나?"
그가 속으로 생각했다.

 

바로 이때 옥허궁(玉虛宮)에서 휘파람 소리가 길게 울리며 칠절신군의 미친 듯한 웃음소리가 뭇 산 사이에 호탕하게 퍼져나갔다.
석지중은 그 말이 벌써 산 정상으로 통하는 길에 도착하여 칠절신군에게 기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가 몸을 날려 그곳에 도착하니 칠절신군이 수건으로 홍마의 몸을 닦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가 물었다.
"이 말이 노선배님 말인가요? 말이 어찌 붉은 땀을 흘릴까요?"
칠절신군이 말했다.
"이 말은 한혈적토마(汗血赤 馬)라고 부른단다. 내 대완(大宛) 산골짜기에서 이 녀석을 찾아내 몇 달이나 걸려서야 길을 들였지..."
그의 눈빛이 석지중의 가슴 앞에 난 이빨 자국에 미치자 웃으며 말했다.
"너도 당했느냐? 허허허! 이 말은 산 속에서 이삼일 있어도 상관없고 다른 사람이 끌고 갈 걱정도 없단다. 허허! 나말고 천하에 누가 이놈을 잡을 수 있겠느냐?"
그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품속에서 황록색(黃綠色) 약병을 꺼내 한혈적토마의 주둥이에 넣어줬다.

 

석지중의 두 눈에 신광이 언뜻 비치며 가슴에 지금까지 없었던 호기가 거세게 이는 것을 느끼고 두 걸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노선배님, 지금 제가 그 기울어진 큰 정(鼎)을 세워 놓고 나서 노선배님과 검법을 겨뤄보려고 합니다."
칠절신군은 석지중의 얼굴에 솟아나는 신색을 보자 그 마음을 알 것 같아 일시에 장난기를 거두고 적토보마의 귀에 뭔가를 한바탕 소근거린 후 "넌 가서 쉬거라!" 하고 말했다.
한혈보마가 영성(靈性)이 통했는지 가볍게 한번 울고는 절 뒤로 달려갔다.
칠절신군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양 소매를 한번 펴고 말했다.
"그날 내가 '강기공력'을 모아 이 정(鼎)을 궁 앞에서 여기까지 갖고 왔었지. 만약 오늘 네가 이 정을 절 문앞에 다시 가져다 놓으면 내가 지는 것으로 하자."
석지중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회남색(灰藍) 하늘에 흰 구름이 띠처럼 떠 있고 햇살은 흰 구름 뒤에서 그의 얼굴을 비췄다.
그가 심호흡을 하고 체내의 진기를 끌어올려 전신에 두 바퀴 운행한 후 시선을 큰 정 아래로 옮기고 쌍장을 가슴과 나란히 들어올렸다.
이때 석지중의 두 눈썹은 비스듬히 위로 향하고 걸치고 있는 의삼(衣衫)은 바람에 날리는 것처럼 파동(波動)이 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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