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안금조(碧眼金雕) 3-1

碧眼金雕 2004. 11. 8. 09:23 Posted by 비천호리

제3장 설산삼마(雪山三魔)
 
눈꽃이 날리고 삭풍(朔風)이 매서운 가운데 곤륜산에는 사흘동안 내린 눈이 두텁게 쌓여 있다.
옥허궁 앞의 고정(古鼎)은 여전히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고 푸른 소나무는 눈의 무게에 눌려 휘어져있다.
소나무 아래에 있는 돌 의자 두 개는 깨끗이 청소가 되어 있고 한 무리의 화상들이 청석(靑石)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다.
네 개의 포단(蒲團)이 땅에 깔려 있고 두 돌 의자에는 수 십개의 죽첨(竹簽)이 놓여 있는데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것으로 보아 막 베어온 대나무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종소리가 울리자 본무선사의 비단을 기워 만든 가사가 절문 앞에 나타나고 담월, 수월, 경월 세 분 노화상이 그 뒤를 따르고 있는데 뜻밖에 석지중은 홍포백발(紅袍白髮)의 칠절신군과 함께 나왔다.
칠절신군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아이야 우리 각자 한 판씩 겨루자. 누구든지 세 시진(時辰) 안에 상대방이 설치한 진을 풀어내지 못하면 진 것으로 하자. 네 생각은 어떠냐?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지 말자."
석지중이 머리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전배(前輩)께서 먼저 시작하십시요."
칠절신군이 좌정(坐定)한 후 죽첨을 손에 쥐고는 말했다.
"우리 동시에 펼치고 서로 자리를 바꾸는 것이 어떠냐?"
석지중이 한 주먹 가득 쥔 죽첨 중 하나를 땅에 꽂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전배께서 먼저 하시지요?"
칠절신군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
"좋다! 내가 먼저 시작하지."

 
그가 죽첨 한 개를 잡더니 신중한 얼굴로 땅에다 점선을 긋기 시작한다.
종횡으로 엇갈리는 무수한 선이 그의 손에 따라 그려지는데 어떤 것은 꼬불꼬불하게 돌고 어떤 것은 똑바르다.
그가 오른손을 빠르게 놀리며 걸음을 옮기자 죽첨 하나 하나가 점선을 따라 땅에 꽂히더니 순식간에 석지중 주위 일장 방원(方圓)을 가득 메워 석지중을 가운데 가두었다.
그는 마지막 한 개의 죽첨마저 다 꽂자 숨을 돌리고는 청석에 돌아가 가부좌를 하고 앉아 조용히 석지중을 바라보았다.
석지중은 눈 앞에서 칠절신군이 바람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빤히 보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자기가 진(陣)에 둘러싸이고 사방이 끝없이 아득해 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입술을 깨물고 눈썹을 찌푸리며 천천히 오행팔괘(五行八卦)를 계산했다.
그의 머리 속에는 한심수사가 그에게 가르쳐준 괴이한 진식과 일반적인 진법 등 모든 것이 스쳐갔다.
한 잔의 차를 마실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본무선사가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석지중을 바라보았으나 석지중도 눈을 감고 가부좌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바로 다시 눈을 감았다.
청석 위에 가부좌를 하고 있던 이대제자(二代弟子)들은 긴장하여 석지중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인 물 같은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는 그들도 절 전체 승려들의 목숨이 걸린 이 내기에는 저절로 마음에 동요가 일었던 것이다.
두 시진이 지났으나 석지중이 여전히 눈을 감고 앉아 있자 칠절신군이 약간의 의기양양한 기색을 보이며 손뼉을 치고 말했다.
"소화상, 술과 안주를 가져와라..."
그말이 끝나기 전에 그는 석지중이 두 눈을 번쩍 뜨고 웃으며 돌 의자로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의 몸이 진 안에서 한 바퀴 돌더니 발로 어지럽게 땅을 밟는데 물러나기도 하고 나아가기도 하다가 갑자기 몸을 이쪽으로 뒤집더니 날 듯이 빠르게 죽진 안에서 걸어 갔다.
칠절신군이 저도 모르게 소리를 쳤다.
"아이고! 이 총명한 놈 같으니라구!"
 
석지중이 웃는 얼굴로 죽진(竹陣)을 걸어 나오며 말했다.
노선배님, "황하구곡진(黃河九曲陣)"과 "구구귀원진(九九歸元陣)"을 서로 합쳐서 이 진을 만드셨군요. 여든 한 번째 죽첨에서 파진을 시작해야 맞더군요."
그가 다시 진 안으로 들어가 죽첨 하나를 뽑아들고 나오며 말했다.
"지금은 전체 진식(陣式)이 깨뜨려졌습니다."
칠절신군이 의혹에 차서 석지중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 어디에서 그 방법을 배웠느냐?"
석지중이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가부(家父)이신 한심수사께서는 평생 각종 진법을 연구해오셨습니다. 이제 제가 진법을 펼쳐 보겠습니다. 이 진법은 '십절대진(十絶大陣)'이라고 합니다."
그가 죽첨(竹簽)을 들어 칠절신군의 주위 땅에 가득 꽂아나가자 순식간에 눈밭에는 높낮이가 다른 죽첨들이 종횡으로 교차하면서 가득 펼쳐졌다.
석지중이 이마의 땀을 닦고 웃으며 본무선사에게 말했다.
"칠절신군은 정말 귀재(鬼才)입니다. 그가 두 진법을 거꾸로 배치하는 바람에 저는 옛날 진법으로 알고는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습니다."
그가 돌 의자에 무릎을 꿇고 앉아 정신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체내의 진기를 밀어내 단전에서 시작해 임독양맥(任督兩脈)을 지나 몸안에 두 바퀴 운행하였다.
동굴에 들어간 그날 저녁부터 시작하여 그는 사흘 밤낮으로 차갑고 뜨거운 두 기류에 교대로 단련되고 곤륜 사대고승이 수 십년 동안 수련한 목숨같이 중한 내력으로 혈도를 소통시켜 주어 임독양맥이 통하게 되었으며 "옥향응로비파"의 신비한 효능을 모두 흡수하여 단지 사흘만에 비할데 없이 심후(深厚)한 내가고수(內家高手)가 되어 동굴에서 나왔던 것이다.
이 때 그의 장엄한 모습은 안으로 갈무리되고 온몸에서 옅은 안개 같은 흰색 기체가 한 겹 발산되어 몸을 감싸고 돌고 얼굴과 피부에서는 한 겹의 투명하고 맑은 빛이 나타나는 것이 마치 옥을 쪼아 만든 사람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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