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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안금조(碧眼金雕) 3-8

碧眼金雕 2004. 11. 30. 19:23 Posted by 비천호리

그가 나지막한 소리를 내며 쌍장을 밀자 돌길에 비스듬히 반쯤 묻혀있던 거정이 천천히 세워지기 시작했다.
석지중이 숨을 깊이 들여 마시고 대갈일성했다.
옷자락이 바람을 잔뜩 불어넣은 것처럼 부풀어오르며 거정이 공중으로 이척을 떠올랐다.
그리고는 마치 사람이 밑에서 받치고 가는 것처럼 절 앞으로 날아갔다.
칠절신군이 속으로 놀랐다.
이때 석지중의 얼굴에서는 옥처럼 밝은 빛이 발하고 있었고 미소를 머금고 있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그의 칠흑같이 검은 머리카락은 올올이 바짝 서있는데 몸을 비스듬히 기울이며 쌍장을 멋스럽게 뿌려내었다.
그러자 이천근(二千斤)이 넘는 거정이 천천히 절문 앞 돌계단에 떨어졌다.
석지중의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며 크게 한 걸음 내딛자 "칙칙" 소리가 나며 발이 네 촌 넘어 땅으로 파고들었다.
거정이 놓이자 석지중이 숨을 토해냈고 부풀어올랐던 옷자락과 머리카락도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다.
그가 쓴웃음을 지었다.
"거정을 원래 있던 곳에 옮겨 놓긴 했습니다만, 제가 졌습니다..."
말을 다 마치지도 못하고 발에 힘이 빠지며 땅에 주저앉더니 혼절해버렸다.
한 가닥 핏줄기가 그의 입에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한 줄기 뜨거운 기운이 임독양맥(任督兩脈)에 부딪히는 것을 느끼며 석지중이 깨어났다.

 

눈을 뜨자 백발에 긴 수염을 한, 얼굴에는 불그스럼하게 윤기가 흐르는 칠절신군이 먼저 보였고 본무노선사의 귀밑까지 늘어진 긴 눈썹이 보였다.
"아미타불!"
본무노선사가 말했다.
"소사제, 괜찮은가?"
칠절신군이 나무라는 투로 말했다.
"냄새나는 화상, 내 괜찮다고 했는데도 무얼 그리 호들갑을 떠느냐? 봐라, 멀쩡하지 않느냐?"
석지중은 자기가 칠절신군의 품에 안겨있는 것을 발견하자 일어서서 말했다.
"노선배님, 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침울하게 말했다.
"장문사형, 제가 기대를 저버렸습니다..."
본무선사가 말했다.
"그렇게 말하지 마라. 사제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 써 본문 누구도 도달하지 못했던 경지에 이른 것을 내가 안다. 다만 승패는 일의 양면일 뿐이라 이기지 않으면 곧 지는 것이고, 둘 외에 다른 건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졌어도 기백을 잃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소위 ' 누전누패, 누패누전'(屢戰屢敗,屢敗屢戰 싸울 때마다 지고, 질 때마다 싸운다)이라는 것으로 왕년의 '상패장군(常敗將軍) 공손무기(公孫無忌)'가 한 말이다.
그렇지만 그는 말년에 이르러서는 천하제일 고수가 되었다. 이것이 어찌 우연이겠느냐?"
석지중이 읍하며 말했다.
"소제(小弟) 장문사형의 가름침을 잘 알겠습니다."
칠절신군이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고 말했다.
"좋아! 그래야 착한 아이지."
그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천룡대제(天龍大帝)가 홀로 중원 사대신통(四大神通)과 맞섰을 때도 그의 나이 단지 스물에 불과했다. 결국 지긴 했지만 다음 해 신공을 익혀 사대신통을 하나씩 격파했었다.
그러니 너는 의기소침할 필요 없다. 네 나이에 이만한 공력을 가진 사람은 아직 없었다는 것을 알거라."

 

이 말을 듣자 석지중의 마음 속에 장지(壯志)가 솟구쳤다.
진기를 모아 온 몸에 빠르게 운행시켜보니 아무 이상도 없는지라 말했다.
"지금 노선배님께 검술을 가르침 받아야겠습니다."
본무 노선사가 손뼉을 한번 치자 소사미 한 명이 손에 두 자루 장검을 들고 안쪽에서 달려 나왔는데 흑녹색(黑綠色) 검술이 늘어져 그가 달려나오는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칠절신군이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건 내가 십 년 만에 처음으로 다른 사람과 검술을 겨루는 것이다. 먼저 손을 쓰거라!"
석지중이 장검을 건네 받아 검집에서 검을 뽑고는 검집은 발 밑에 던졌다.
그리고 말없이 검 끝을 비스듬히 하여 왼손 두 손가락으로 검결(劍訣)을 잡아 검신(劍身)에 대고는 기를 가라앉히고 정신을 모아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본무 노선사가 뒤로 물러서며 무거운 안색으로 석지중의 자세를 주시한 채 생각했다.
"사제가 정말 일대종사(一代宗師)의 기백을 풍기는 구나. 겨우 열흘간 배운 검으로 신군과 겨뤘다는 소문이 퍼지면 강호 사람들이 우리 곤륜파를 다시 보게 되겠지.
아! 단지 그가..."
칠절신군은 검 끝을 비스듬히 내려뜨리고 눈을 아래로 내리깐 채 왼손을 가슴 앞에 가볍게 대고 있었다.
발은 정(丁)자도 아니고 팔(八)아닌 자세로 서있는데 전신의 방비가 엄밀하여 빈틈이 전혀 없다.
석지중이 한동안 바라봐도 상대방의 빈틈을 찾아낼 수 없었다.
그는 처음으로 검을 쓰는 것이라 흥분을 누르지 못했지만 약간 불안하기도 했다.
한동안의 침묵을 깨고 석지중이 천천히 미끄러지듯 걸음을 옮겨 원을 그리며 빙빙 돌기 시작했다.
발걸음이 갈수록 빨라져 나중에는 칠절신군을 가운데 두고 돌고 있는 인영(人影)만 보이고 큰 홍포(紅袍)를 걸친 칠절신군의 모습이 그 안에 묶였다.
석지중이 몇 바퀴를 돌았지만 여전히 칠절신군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가 검 끝을 한 번 돌리고맑은 휘파람 소리와 함께 신형을 여덟 척 뽑아 올린 후 유룡희수(游龍戱水) 일초를 번개처럼 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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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안금조(碧眼金雕) 3-7

碧眼金雕 2004. 11. 26. 18:11 Posted by 비천호리

아침 햇살이 검이 찔러 오듯이 두터운 밤의 장막을 열어 젖히자 점차 송림이 또렷해지고 쌓인 눈도 아침바람에 흔들려 떨어진다.
불그스레 윤기가 흐르는 얼굴로 석지중이 숲에서 걸어나오고 있고 그 뒤에 창백한 안색의 세 노화상이 따르고 있다.
아침 산들바람에 그들의 옷자락이 바람을 타고 날아갈 것처럼 펄럭인다.
석지중이 두손을 모아 읍하며 말했다.
"사형들께 감사 드립니다."
늘어선 산봉우리 뒤에서 금빛 햇살이 쏟아져 세 노화상의 얼굴을 비추자 자상한 신색(神色)을 하고 긴 수염을 볼까지 늘어뜨린 모습들이 사당에 있는 보살처럼 성스러운 느낌이 든다.

 

노화상들이 소매를 날리며 멀리 절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보고 있다가 석지중은 멀리 설백(雪白)의 산속에서 붉은 그림자 하나가 전광석화(電光石火) 같이 달려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가 속으로 약간 놀란 것은 날듯이 달려오고 있는 것은 온몸이 시뻘건 한 마리 말이었는데 흰눈으로 뒤덮힌 험준한 골짜기를 바람에 갈기를 날리며 마치 평지처럼 내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석지중이 신형을 움직여 한 마리 날짐승처럼 허공을 날아 그 적토마(赤 馬)를 맞아 나가는데 단지 두 번 땅을 박차고는 그 말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그러자 그 말이 길게 한번 울며 두 귀를 쫑긋 세우며 앞발을 번쩍 들어 맹렬한 기세로 번개처럼 석지중의 가슴을 찼다.
석지중이 속으로 놀라 두 팔을 떨치며 상반신을 몇 촌 기울이고 발에 힘을 줘 다섯 척을 뛰어 그 적홍마(赤紅馬)를 덮쳐갔다.그가 바람 같이 움직이긴 했지만 그 말은 불가사의하게 빨라 번뜩 옆으로 비키며 입을 벌려 섬뜩한 이빨로 석지중의 상의를 물어 자국 몇 개를 내버렸다.
석지중은 뻗어온 말머리를 두 손으로 붙잡아 옷이 찢어지는 것은 상관 않고 두 발을 튕겨 말 위에 올라탔다.
그러나 그가 막 말 위에 앉으려는 순간 적홍마가 길게 한번 울며 목을 뿌리치고는 날개가 달린 것처럼 그 커다란 몸집을 날려 허공을 가로질러 가버릴 줄이야!
석지중이 빈 곳을 덮치고는 저도 모르게 놀라 두 눈을 깜박거렸다.
그의 눈에 적홍마가 네 발을 바람처럼 놀려 날 듯이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그가 시선을 아래로 돌리자 붉은 꽃 색깔의 선명한 핏자국이 방울방울 눈 위에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어! 나 때문에 저 말이 다쳤나?"
그가 속으로 생각했다.

 

바로 이때 옥허궁(玉虛宮)에서 휘파람 소리가 길게 울리며 칠절신군의 미친 듯한 웃음소리가 뭇 산 사이에 호탕하게 퍼져나갔다.
석지중은 그 말이 벌써 산 정상으로 통하는 길에 도착하여 칠절신군에게 기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가 몸을 날려 그곳에 도착하니 칠절신군이 수건으로 홍마의 몸을 닦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가 물었다.
"이 말이 노선배님 말인가요? 말이 어찌 붉은 땀을 흘릴까요?"
칠절신군이 말했다.
"이 말은 한혈적토마(汗血赤 馬)라고 부른단다. 내 대완(大宛) 산골짜기에서 이 녀석을 찾아내 몇 달이나 걸려서야 길을 들였지..."
그의 눈빛이 석지중의 가슴 앞에 난 이빨 자국에 미치자 웃으며 말했다.
"너도 당했느냐? 허허허! 이 말은 산 속에서 이삼일 있어도 상관없고 다른 사람이 끌고 갈 걱정도 없단다. 허허! 나말고 천하에 누가 이놈을 잡을 수 있겠느냐?"
그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품속에서 황록색(黃綠色) 약병을 꺼내 한혈적토마의 주둥이에 넣어줬다.

 

석지중의 두 눈에 신광이 언뜻 비치며 가슴에 지금까지 없었던 호기가 거세게 이는 것을 느끼고 두 걸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노선배님, 지금 제가 그 기울어진 큰 정(鼎)을 세워 놓고 나서 노선배님과 검법을 겨뤄보려고 합니다."
칠절신군은 석지중의 얼굴에 솟아나는 신색을 보자 그 마음을 알 것 같아 일시에 장난기를 거두고 적토보마의 귀에 뭔가를 한바탕 소근거린 후 "넌 가서 쉬거라!" 하고 말했다.
한혈보마가 영성(靈性)이 통했는지 가볍게 한번 울고는 절 뒤로 달려갔다.
칠절신군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양 소매를 한번 펴고 말했다.
"그날 내가 '강기공력'을 모아 이 정(鼎)을 궁 앞에서 여기까지 갖고 왔었지. 만약 오늘 네가 이 정을 절 문앞에 다시 가져다 놓으면 내가 지는 것으로 하자."
석지중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회남색(灰藍) 하늘에 흰 구름이 띠처럼 떠 있고 햇살은 흰 구름 뒤에서 그의 얼굴을 비췄다.
그가 심호흡을 하고 체내의 진기를 끌어올려 전신에 두 바퀴 운행한 후 시선을 큰 정 아래로 옮기고 쌍장을 가슴과 나란히 들어올렸다.
이때 석지중의 두 눈썹은 비스듬히 위로 향하고 걸치고 있는 의삼(衣衫)은 바람에 날리는 것처럼 파동(波動)이 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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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안금조(碧眼金雕) 3-6

碧眼金雕 2004. 11. 25. 18:59 Posted by 비천호리

그는 송림을 뚫고 들어가 비교적 널찍한, 눈 쌓인 공지에 자리를 잡은 후 기를 가라앉히고 정신을 집중해 곤륜 "유룡검법(游龍劍法)"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대나무 가지가 공기를 가르자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울리고 기경이 격탕하며 휙휙 바람소리가 났다.
이 며칠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던 검결도식(劍訣圖式)이 이때 눈앞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숲속은 다섯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깜깜했으나 그는 자기가 쳐낸 검식에서 이미 대나무 가지 끝까지 진력(眞力)이 채워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웅웅" 공기를 흔드는 소리가 적막한 겨울 어둠 속에서 끊임없이 울렸다.
한참만에 석지중이 경쾌한 소리를 지르자 대나무 가지가 소나무 줄기에 꽂혔다.
그가 숨을 내쉰 후 가부좌를 하고 땅에 앉아 운공(運功)을 시작하자 곧바로 정신이 맑아지며 주변 십장(十丈) 내의 모든 것이 뚜렷이 들렸다.
그의 내공 수위가 이미 반박귀진(返朴歸眞)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그가 체내의 진기를 완만하게 움직이며 두 손도 따라서 천천히 들어 올렸다.
원래 이때 그는 세 인영이 송림으로 살금살금 접근하는 것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얼어붙은 눈이 부서지는 자잘한 소리가 전해오자 그가 코웃음을 치며 소리쳤다.
"누구냐?"
"흐흐!"
어둠 속에서 차가운 웃음소리가 울리며 강둑이 무너지며 세찬 물결이 쏟아지는 것 같은 기세로 세 가닥 거센 회오리바람이 쏘아져 오자 그의 옷자락이 바람에 펄럭거렸다.
석지중이 두 팔을 한번 떨치고 쌍장으로 천천히 원을 그려 불문 '반야진기'를 격출하자 기경이 그의 주위 일장 밖까지 빙빙 돌며 날아갔다.
"펑!"
쌓인 눈이 사방으로 뿌려지고 소나무 가지가 '우지직' 소리를 내며 부러져 버렸다.
석지중의 몸이 쏘아진 살처럼 움직이며 두 손가락을 가지런히 모아 찌르자 "칙" 소리가 나며 상대방의 장포가 뚫렸다.
"멋지다!"
어둠 속의 그 사람이 장을 거두며 소리쳤다.
"사제, 정말 멋들어진 "유룡출학(游龍出壑)" 이었다."

 

석지중이 가볍게 놀라 말했다.
"아이고, 사형들께서 오셨군요."
담월이 말했다.
"소사제, 사제가 매번 이곳에서 연공(練功) 할 때마다 장문사형이 마음을 놓지 못하여 우리들에게 바깥에서 지키도록 분부했었지.
그런데 사제의 진전이 이렇게 빠를 줄은 생각도 못했구나. 우리 세 사람이 합격(合擊)한 일장까지도 받아내다니"
석지중이 미안해하며 말했다.
"사형, 소제가 잘 모르고 무례를 범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담월이 말했다.
"소사제, 영존(令尊)은 거연으로 되돌아가지 않으셨네, 영광(靈光) 사질(師侄)이 돌아와 자네 집 집사의 말을 전하기를 사제와 아버님이 떠나고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네."
"아! 영광이 돌아왔군요!"
석지중이 말했다.
"그렇다면 제 가친은 어디로 가셨을까요? 설마 그분이 정말 바다 건너로 가셨단 말인가?"

 

담월이 말했다.
"사제, 장문사형께서는 우리 모두 힘을 모아 사제의 내력을 증강시키려고 하네.
불문의 제호관정(醍호灌頂) 대법(大法)을 써서 그대 체내의 잠력(潛力)을 완전히 격발 시키려는 것이지."
수월대사가 말했다.
"사제 올해 나이가 열일곱이지? 지금이 관정대법을 쓰기에 제일 알맞은 때일세."
석지중이 놀라 말했다.
"저 혼자 천천히 수련해도 곧 '반야진기'를 완전하게 운용할 수 있으니 사형들께서 다시 진기를 소모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경월이 말했다.
우리는 석달만 정좌(靜坐)하면 회복할 수 있지만 사제는 오늘 저녁만 지나면 내일 다시 칠절신군과 내가공력을 겨뤄야 하지 않은가?"
담월이 그말을 받아서 말했다.
"사제, 앉게"
석지중은 담월대사의 엄숙한 말투를 느끼고는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밤이 칠흑같이 어두워지며 컴컴한 숲속은 고요한 가운데 그들의 손바닥 셋이 석지중의 몸에 닿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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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안금조(碧眼金雕) 3-5

碧眼金雕 2004. 11. 24. 19:37 Posted by 비천호리

석지중이 미미하게 웃기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생각은 벌써 아버지에게 돌아가 있었던 것이다.
그가 걸어가면서 물었다.
"사형, 거연(居延)에 갔던 제자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제 가친께서 어떻게 되었는지 정말 알 수가 없군요."
본무선사가 말했다.
"아! 사제 또 집안 일을 생각하고 있었구나. 내 영광(靈光)을 거연에 보냈으니 가까운 시일 내에 분명히 돌아올 거네. 사제, 본문의 '운룡팔식(云龍八式) 경공(輕功)을 어느 정도까지 익혔느냐?"
그가 화제를 옮겨 물었다.
석지중이 웃으며 말했다.
"사형, 한번 보시겠습니까?"
그가 두 팔을 한번 펼치자 백학(白鶴)이 날개를 젓듯 몸이 바람처럼 날아 공중에서 몸을 기울여 마치 야조(夜鳥)처럼 비상하였다.
그리고는 공중에서 세 바퀴를 돌고 낙엽이 지듯이 절 뒤에 사뿐히 날아 내렸다.
본무선사가 흔쾌히 웃는 소리가 밤하늘을 타고 아주 멀리서 전달되어 고요한 송림에는 재잘거리는 것처럼 전해졌다.

곤륜산의 밤은 꿈처럼 깊어가고...


바깥에는 찬바람이 몰아치고 있지만 실내에는 화롯불이 피워져 있어 따뜻하고, 등잔불이 희미한 가운데 향연(香烟) 모락모락 피어올라 흩어지고 있다.
칠절신군이 책상다리를 하고 한켠에 있는 백옥고금(白玉古琴) 앞에 앉아 열 손가락으로 가볍게 현을 누르더니 천천히 퉁긴다.
갑자기 은병이 깨져 물방울이 뿜어지듯 한 오리 깊은 생각이 금음(琴音)을 따라 생겨나기 시작했다.
석지중의 심신은 완전히 금음에 사로잡혀 소리에 따라 어떤 때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다가 어떤 때는 살며시 웃고 난해한 현음에 깊은 생각에 더욱 빠져들었다가 철마(鐵馬) 몰려오는 듯한 소리에 감정이 격앙되기도 했다.
현의 다른 곳으로 손가락을 옮기자 부드러운 소리가 마치 자애로운 어머니가 낮은 목소리로 부르는 것 같고 그윽한 밤에 정인이 속삭이는 것처럼 들리자 석지중의 두 눈이 젖어들더니 작은 소리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아!"
칠절신군이 한숨을 토하며 열 손가락을 한번 퉁기자 비단이 찢어지는 것 같은 소리를 내고는 금성(琴聲)이 뚝 멈췄다.

 

그가 놀라 깨어나는 석지중을 쳐다보고 웃으며 말했다.
"아이야, 넌 정감(情感)이 너무 많아 금음의 느낌에 빠지기 쉽구나.
보통 곡에도 이래서야 어찌 내 '천마곡(天魔曲)'을 끝까지 들을 수 있겠느냐?"
석지중이 흘러내린 눈물을 닦으며 얼굴을 붉히고 말했다.
"노선배님의 거문고 소리는 확실히 출신입화(出神入化)의 경지에 이미 다다른 것 같습니다.
저도 전력을 다할 뿐입니다.
노선배님께서 '천마곡'을 연주하시면 저는 반드시 마음에 경계를 하고 조금 전처럼 감상하는 마음을 갖지 않겠습니다."
칠절신군이 쾌활하게 한번 웃고 말했다.
"정말 내 젊었을 때와 똑같이 고집이 세고 감정도 풍부하구나. 아이야 너 나한테 거문고를 배울테냐?"
석지중이 말했다.
"후배가 노선배님과 은원(恩怨)의 결말을 맺은 후에 다시 가르침을 청하겠습니다.
지금은 사양하겠습니다."
칠절신군이 석지중의 우뚝 솟은 콧날을 응시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느리게 말했다.
"그것도 좋지, 우리 은원을 해결하고 다시 찬찬히 이야기를 나누자꾸나.
내일 오전에 너의 반야대능력(般若大能力)을 보도록 하자"

 

석지중이 정사(精舍)를 물러 나와 전원(前院)으로 걸어가 대나무 숲을 바라보며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몸을 한번 구부리고 펴 대나무 끝에 올라섰다.
대나무 가지가 흔들리는 가운데 그가 네 척 정도 길이로 대나무 줄기를 꺾어 잎을 떼고는 절 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가 막 착지했을 때 절 옆에서 그림자가 튀어나오며 소리쳤다.
"누구냐?"
석지중이 몸을 돌리며 대나무 줄기를 품에 넣고 흘낏 보니 야간경계를 하는 화상 둘이라 말했다.
"나, 석지중이다."
"아!"
왼편 중년 화상이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사숙님이셨군요."
석지중이 그 말에 대답했다.
"내 뒷산에 좀 가볼 일이 있으니 너희들 만약 장문인이 나를 찾으면 그렇게 말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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