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나지막한 소리를 내며 쌍장을 밀자 돌길에 비스듬히 반쯤 묻혀있던 거정이 천천히 세워지기 시작했다.
석지중이 숨을 깊이 들여 마시고 대갈일성했다.
옷자락이 바람을 잔뜩 불어넣은 것처럼 부풀어오르며 거정이 공중으로 이척을 떠올랐다.
그리고는 마치 사람이 밑에서 받치고 가는 것처럼 절 앞으로 날아갔다.
칠절신군이 속으로 놀랐다.
이때 석지중의 얼굴에서는 옥처럼 밝은 빛이 발하고 있었고 미소를 머금고 있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그의 칠흑같이 검은 머리카락은 올올이 바짝 서있는데 몸을 비스듬히 기울이며 쌍장을 멋스럽게 뿌려내었다.
그러자 이천근(二千斤)이 넘는 거정이 천천히 절문 앞 돌계단에 떨어졌다.
석지중의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며 크게 한 걸음 내딛자 "칙칙" 소리가 나며 발이 네 촌 넘어 땅으로 파고들었다.
거정이 놓이자 석지중이 숨을 토해냈고 부풀어올랐던 옷자락과 머리카락도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다.
그가 쓴웃음을 지었다.
"거정을 원래 있던 곳에 옮겨 놓긴 했습니다만, 제가 졌습니다..."
말을 다 마치지도 못하고 발에 힘이 빠지며 땅에 주저앉더니 혼절해버렸다.
한 가닥 핏줄기가 그의 입에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한 줄기 뜨거운 기운이 임독양맥(任督兩脈)에 부딪히는 것을 느끼며 석지중이 깨어났다.
눈을 뜨자 백발에 긴 수염을 한, 얼굴에는 불그스럼하게 윤기가 흐르는 칠절신군이 먼저 보였고 본무노선사의 귀밑까지 늘어진 긴 눈썹이 보였다.
"아미타불!"
본무노선사가 말했다.
"소사제, 괜찮은가?"
칠절신군이 나무라는 투로 말했다.
"냄새나는 화상, 내 괜찮다고 했는데도 무얼 그리 호들갑을 떠느냐? 봐라, 멀쩡하지 않느냐?"
석지중은 자기가 칠절신군의 품에 안겨있는 것을 발견하자 일어서서 말했다.
"노선배님, 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침울하게 말했다.
"장문사형, 제가 기대를 저버렸습니다..."
본무선사가 말했다.
"그렇게 말하지 마라. 사제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 써 본문 누구도 도달하지 못했던 경지에 이른 것을 내가 안다. 다만 승패는 일의 양면일 뿐이라 이기지 않으면 곧 지는 것이고, 둘 외에 다른 건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졌어도 기백을 잃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소위 ' 누전누패, 누패누전'(屢戰屢敗,屢敗屢戰 싸울 때마다 지고, 질 때마다 싸운다)이라는 것으로 왕년의 '상패장군(常敗將軍) 공손무기(公孫無忌)'가 한 말이다.
그렇지만 그는 말년에 이르러서는 천하제일 고수가 되었다. 이것이 어찌 우연이겠느냐?"
석지중이 읍하며 말했다.
"소제(小弟) 장문사형의 가름침을 잘 알겠습니다."
칠절신군이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고 말했다.
"좋아! 그래야 착한 아이지."
그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천룡대제(天龍大帝)가 홀로 중원 사대신통(四大神通)과 맞섰을 때도 그의 나이 단지 스물에 불과했다. 결국 지긴 했지만 다음 해 신공을 익혀 사대신통을 하나씩 격파했었다.
그러니 너는 의기소침할 필요 없다. 네 나이에 이만한 공력을 가진 사람은 아직 없었다는 것을 알거라."
이 말을 듣자 석지중의 마음 속에 장지(壯志)가 솟구쳤다.
진기를 모아 온 몸에 빠르게 운행시켜보니 아무 이상도 없는지라 말했다.
"지금 노선배님께 검술을 가르침 받아야겠습니다."
본무 노선사가 손뼉을 한번 치자 소사미 한 명이 손에 두 자루 장검을 들고 안쪽에서 달려 나왔는데 흑녹색(黑綠色) 검술이 늘어져 그가 달려나오는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칠절신군이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건 내가 십 년 만에 처음으로 다른 사람과 검술을 겨루는 것이다. 먼저 손을 쓰거라!"
석지중이 장검을 건네 받아 검집에서 검을 뽑고는 검집은 발 밑에 던졌다.
그리고 말없이 검 끝을 비스듬히 하여 왼손 두 손가락으로 검결(劍訣)을 잡아 검신(劍身)에 대고는 기를 가라앉히고 정신을 모아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본무 노선사가 뒤로 물러서며 무거운 안색으로 석지중의 자세를 주시한 채 생각했다.
"사제가 정말 일대종사(一代宗師)의 기백을 풍기는 구나. 겨우 열흘간 배운 검으로 신군과 겨뤘다는 소문이 퍼지면 강호 사람들이 우리 곤륜파를 다시 보게 되겠지.
아! 단지 그가..."
칠절신군은 검 끝을 비스듬히 내려뜨리고 눈을 아래로 내리깐 채 왼손을 가슴 앞에 가볍게 대고 있었다.
발은 정(丁)자도 아니고 팔(八)아닌 자세로 서있는데 전신의 방비가 엄밀하여 빈틈이 전혀 없다.
석지중이 한동안 바라봐도 상대방의 빈틈을 찾아낼 수 없었다.
그는 처음으로 검을 쓰는 것이라 흥분을 누르지 못했지만 약간 불안하기도 했다.
한동안의 침묵을 깨고 석지중이 천천히 미끄러지듯 걸음을 옮겨 원을 그리며 빙빙 돌기 시작했다.
발걸음이 갈수록 빨라져 나중에는 칠절신군을 가운데 두고 돌고 있는 인영(人影)만 보이고 큰 홍포(紅袍)를 걸친 칠절신군의 모습이 그 안에 묶였다.
석지중이 몇 바퀴를 돌았지만 여전히 칠절신군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가 검 끝을 한 번 돌리고맑은 휘파람 소리와 함께 신형을 여덟 척 뽑아 올린 후 유룡희수(游龍戱水) 일초를 번개처럼 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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