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안금조(碧眼金雕) 3-10

碧眼金雕 2004. 12. 2. 22:55 Posted by 비천호리

그리고 손을 놓으며 말했다.
"내 저들을 데리고가 산등성이에 숨어 있다가 두 시진 후에 다시 오겠다."
석지중이 말했다.
"전력을 다해 맞서겠습니다. 사형께서는 마음을 놓으십시오."
석지중이 표연히(飄然) 떠나는 본무대사가 멀리 사라질 때까지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후원으로 걸어갔다.
실내에 들어서자 칠절신군이 가부좌를 한 채 지긋이 눈을 감고 두 손으로 거문고를 쓰다듬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한 줄기 가느다란 연기가 화로에서 피어올라 맑은 향기를 방안에 가득 뿌리고 있었다.
석지중이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포원수일(抱元守一) 하고 뜻을 단전에 두고 기를 가라앉혀 정신을 집중하자 잠시 후 선정(禪定)에 들어섰다.
칠절신군이 한 손가락을 튕기자 빠르고 예리한 금음(琴音)이 허공에 격사되었다.
석지중이 몸이 한번 떨리고 뒤쪽 벽이 몇 번 "스슥" 소리를 내고는 부스러기가 떨어져 그의 머리 위에 허연 가루를 날렸다.
칠절신군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열 손가락을 느릿하게 퉁기기 시작하자 일시 방안에는천음(天音)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처럼 음악소리가 퍼졌다.
그리고는 그 소리가 가닥 가닥 석지중의 귓속을 파고 들었다.

 

바로 이때 곤륜산 아래에는 붉은 승포를 입고 구레나룻 투성이인 중년의 승려 세 명이 나타났다.
그들은 날 듯이 빠르게 움직였다.
눈을 밟고 지나간 자리에 희미한 흔적만을 남기며 신속하게 돌계단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들이 통로 길 석판에 움푹 패인 다섯 개의 발자국을 보자 약간의 놀라는 빛을 띠며 서로 무언가를 수군거리다 옥허궁을 향해 걸어갔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온 절안이 한 사람도 없이 텅텅 빈 것을 깨닫고 더욱 놀라 좌우를 한번 돌아보고는 안쪽 건물 쪽으로 들어갔다.
월동문(月洞門)을 들어서자 들릴 듯 말 듯하게 거문고 소리가 들리는 것을 알고 일제히 정사를 향해 걸어갔다.
그들중 체격이 큰 화상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곤륜 장문인 안에 있소이까?"
그의 말투는 딱딱하고 서툴러 중원의 말투 같지가 않았다.
말을 마쳐도 방안에서 아무런 대답이 없자 다시 크게 말했다.
"빈승(貧僧) 낙박(洛博) 장문인의 명을 받들어 서장에서 왔소이다."
실내에 있는 칠절신군은 벌써 그 서투른 말투를 알아 듣고 있었다.
그가 미간을 찌푸리고 코웃음을 치며 정신을 분산시키지 않고 계속 "천마곡"을 연주했다.
거문고 소리가 실오리처럼 느리게 퍼졌다.
그 소리는 보드랍고 매끄러워 단아하고 아름다운 소녀가 은근하게 버들가지 같이 가느다란 허리를 돌리는 것처럼 들렸다.
실외의 서장에서 온 라마승 셋은 그 소리에 빠져들어 가고 있었다.

 

갑자기 라마승 가운데 한 명이 대갈일성하며 일장으로 문짝을 부수며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들이 실내에 들어서자 곧 눈앞에 풍만한 요염한 소부(少婦)가 옥체(玉體)를 한들거리며 나타났다. 들릴 듯 말 듯 노래를 흥얼거리고 미묘한 춤을 춘다.
"허허허!"
낙박이란 불리는 라마승이 두 손을 뻗어 껴안으려고 몇 걸음 내딛다가 구부리고 있는 석지중의 무릎에 걸려 쿠당탕 넘어지고 말았다.
낙박의 신지가 일시 맑아졌다.
그러자 실내에 옥금을 어루만지고 있는 은발홍포(銀髮紅袍)의 노인과 단삼(短衫) 차림의 젊은이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가 괴성을 지르며 다른 두 대라마를 끌어당겨 힘껏 흔들며 서장 말로 몇 마디 했다.
그 두 화상은 정신을 차리자 동시에 괴이한 소리를 내지르며 장을 휘둘러 앉아 있는 석지중을 쳐갔다.
"퍽!" "퍽" 두 번의 소리가 울리며 석지중의 몸이 비스듬히 기울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앉은 채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낙박은 거문고 소리가 다시 울리는 것을 듣자 또 신지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가 크게 놀라며 홍포노인이 수작을 부린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자 그가 대강일성하며 큰 손을 뻗었다.
갑자기 그의 손이 자색(紫色)으로 물들며 성난 파도가 둑을 무너뜨리는 것 같은 기세로 거센 회오리바람이 뻗어나가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는 노인을 쳤다.
칠절신군이 두 눈을 번쩍뜨더니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밀종대수인(密宗大手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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