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일검을 쳐내자 상대방의 신영이 한번 기울어지며 번개같이 빠르게 예측할 수 없이 궤이(詭異)한 양검을 공격해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 양검은 추호의 징조도 없이 「마치 영양(羚羊)이 나무에 뿔을 걸어 매달린 것처럼 전혀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宛如羚羊掛角,沒有絲毫痕迹可尋)」.
역자 註) 羚羊掛角,無跡可尋
전설 중의 영양이 밤에 잠을 잘 때 침범 받는 것을 막기 위해 뿔로 나무에 매달려 발이 땅에 닿지 않도록 하였다고 하며 나쁜 마음을 가진 자는 그 행방을 찾기 어려웠다고 한다. 옛날에는 시의 정취가 초탈(
超脫)
한 것을 비유하는데 많이 쓰였고, 후에는 문학 창작에 전용(
轉用)되어 창작은 번뜩이는 영감에 의지하므로 이성적인 설명을 할 수 없다는 뜻으로 쓰인다.
그가 머릿속으로 생각을 굴렸지만 끝내 막을 수 있는 어떠한 일초도 없었다. 그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발을 미끄러뜨려 다섯 걸음을 물러났다. 그러나 그가 비록 날듯이 빠르긴 했어도 석지중의 검끝은 여전히 그가 걸친 팔괘도포에 기다란 검 자국을 남기고 말았다.
옥허진인이 언제 다른 사람의 단 삼검 만에 밀려난 적이 있었던가, 그가 울화통이 치밀어 거의 땅에 쓰러질 지경이 되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큰소리로 물었다.
“이건 또 무슨 검술이냐?”
석지중이 웃으며 말했다. “이건 천독랑군의 쌍척검술(雙尺劍術)
이외다!”
옥허진인이 놀라 말했다.
“쌍척검술? 세상에 그런 검술이 있었던가?”
그가 혼잣말을 하다가 갑자기 이제삼군(二帝三君)에게 생각이 미치자 자기도 모르게 크게 놀랐다.
“뭣이? 네가 또 천독랑군의 제자라는 거냐?”
석지중이 낭랑하게 웃으며 한혈보마에 뛰어올라 고삐를 한번 당기자 보마의 네 다리가 허공으로 날아올라 옥허진인의 머리를 뛰어넘어 산 위로 달려갔다. 옥허진인이 사납게 부르짖으며 쌍장을 하나로 합쳐 전신의 힘을 모아 한 가닥 경기(
勁氣)를 쳐냈다. 기경(氣勁)
이 공중에서 선회하며 거세게 출렁였다. 우르릉하는 소리와 함께 석지중에게 짓쳐 들어갔다.
석지중이 말 위에서 그 미친 듯이 강한 기경을 느낄 수 있었다. 장풍이 아직 이르지 않았는데도 그의 옷이 벌써 날리기 시작했다.
준마가 길게 울부짖자 그의 전신 의복이 확 부풀어 올랐다. 몸을 기울이며 단장(
單掌)을 밀어내 불문의 반야진기(般若眞氣)를 쏟아냈다.
눈덩어리가 강한 바람에 말려 올라 사방으로 비산하고, 경천동지할 정도로 큰 소리가 한번 났다. 옥허진인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잇달아 네 걸음을 물러나는데 걸음 걸음이 땅 속으로 3촌(
三寸)
이나 빠져들어갔다. 그가 몸을 똑바로 세웠을 때에는 진흙이 벌써 그의 복사뼈를 덮고 있었다.
그는 턱수염이 토막토막 잘려져 바람에 날아가고 짧은 수염 한줌만 남게 되자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그가 공중으로 뛰어넘던 홍마는 단지 약간 멈칫했을 뿐 여전히 날듯이 훌쩍 위쪽으로 달리는 것을 눈으로 보고는 중얼거렸다.
“불문의 반야진기!”
말을 채 마치지도 못하고 한 입 가득 피 화살을 뿜으며 땅에 쓰러져 정신을 잃어갔다.
한편, 석지중이 적토한혈보마를 타고 산위로 달려간 것은 눈석자를 찾기 위해서였다. 당일 야강성 밖에서 그는 하마터면 공동삼자에게 죽임을 당할 뻔했었고 그때부터 눈석자가 제멋대로 날뛰는 모양이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이 순간 반드시 눈석자를 찾아내 그날의 원수를 갚으려는 것이었다.
준마는 날 듯이 산을 넘어 빠르게 산꼭대기의 상청관(上淸觀) 앞에 다다랐다.상청관 앞에는 검을 굳게 쥔 도인들이 한 줄로 서 있다가 석지중이 뜻밖에도 말을 탄 채로 산 위로 올라온 것을 보자 자신들도 모르게 놀라고 의아한 빛을 얼굴에 드러냈다. 석지중이 물었다.
“당신들 뭐하려고 이러고 있소?”
앞에 선 한 도인이 석지중의 기백이 범상치 않은 것을 보고는 감히 태만하지 못하고 대답했다.
“장문인께서 우리들에게 여기서 검진을 펼치고 있다가 산 위로 침범해 오는 사람이 오면 막으라고 분부했소이다.”
석지중이 말했다.
“오, 그러면 당신들은 눈석자를 보았소?”
그 도인이 대답했다.
“눈석자 사형은 이제 막 산 옆 지름길로 산을 내려갔소이다. 저기 보시오. 저 사람 아니요?”
석지중이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자 막 한사람이 산허리를 날 듯이 빠르게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그가 시원스럽게 웃으며 “도장은 도호가 어떻게 되시오?”
그 도인이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뭔가 불안해하며 대답했다.“빈도는 현법(玄法)...”석지중이 짐짓 숙연하게 말했다.
“오, 알고 보니 현법도장이셨구려, 실례했소이다. 실례했소이다.”
현법이 몸을 굽히며 말했다.
“천만에, 별말씀을. 소협이 너무 예를 차리시는구려.”
석지중이 말했다.
“그렇지만, 소생 생각에 도장은 우둔도인으로 이름을 바꾸는 것이 맞을 것 같소이다”
현법도인의 안색이 확 바뀌며 소리쳤다.
“그 말이 무슨 뜻이오?”
석지중이 폭소하며 크게 말했다.
“당신은 내가 바로 산위에 올라와 큰 소동을 일으킨 석지중이라는 것을 아는가? 하하, 옥허 늙은이가 문규에 따라 당신을 처리하도록 해야겠구나”
그가 말을 몰아 내달리며 눈석자에게 달려갔다.네 다리가 바람처럼 자잘한 돌들과 시든 풀 사이를 지나 빠르게 그 도인을 쫒아갔다.
눈석자는 뒤쪽에서 휘-익 바람소리가 들리자마자 바로 머리 위에 다가온 것을 느끼고 급히 고개를 돌렸다. 피처럼 붉은 홍마가 찌를 듯이 눈부신데, 눈 깜빡할 사이에 머리를 뛰어넘어 그의 앞으로 떨어졌다.
석지중이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눈석자, 나를 알아보겠느냐?”
눈석자가 걸음을 멈추고 마음을 가라앉힌 후 한번 보고는 말했다.
“허허! 나는 또 누구라고, 알고 보니 너 어린놈이었구나. 흐흐! 네놈이 어디서 이런 말을 훔쳐왔는지 몰라도 정말 괜찮은 말이구나”
석지중이 담담하게 웃었다.
“네가 달아나는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생각해 내 보마를 빌려 더 빨리 도망치려고?”
눈석자가 거짓웃음을 얼굴에 띄우며 말했다.
“소노제, 곤륜산에 올라갔다가 어찌 이렇게 빨리 하산했는가? 허허! 그날 야강성 밖에서는 실로 미안했네. 그건 창송자가...”
석지중은 눈석자가 이렇게까지 부끄러움을 모를 줄은 생각 못했기에 경멸하는 투로 말했다.
“네놈이 아직 그날 일을 기억하고 있었더냐? 흥! 내가 바로 네 은혜에 보답하러 온 것이다. 왜 검을 뽑지 않느냐?”
돌연 눈석자가 장검을 뽑아 번갯불처럼 빠르게 석지중의 가슴을 찔러왔다.석지중이 미처 그 일검을 피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섬뜩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놈, 목숨을 내놔라!”
석지중이 코웃음을 치며 상체를 약간 기울이고 다섯 손가락을 나란히 뻗쳤다. 그리고는 상대방이 베어온 검세를 따라 가며 눈석자의 장검을 빼앗아 버렸다.
눈석자의 장검을 베어낸 손목이 한번 저리더니 상대방이 어떻게 손을 썼는지 똑똑히 보지도 못했는데 자기의 장검은 이미 손을 벗어났다.
석지중이 말했다.“네놈 같은 인간은 세상에 남겨도 쓸모가 없다”그가 장검을 들어 힘껏 던졌다.
“슈-욱”
번쩍거리는 검날(劍刃)이 공중을 가르고 유성이 떨어지듯 눈석자의 등에 꽂혔다.
“아-악...”
눈석자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두 손으로는 힘없이 공중을 몇 번 잡더니 그 장검과 함께 땅에 박혀 버렸다.“
검자루에 달린 술이 바람에 나부끼고 하얀 눈 위에 바로 검붉은 선혈이 스며들었다. 홍마는 핏빛처럼 허공을 갈랐다.
긴 휘파람 소리 속에 공동의 종소리가 급하게 울리기 시작했다.마치 산들바람을 탄 것처럼 종소리가 온 산에 퍼져 나갔다.
(제4장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