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천룡대제(天龍大帝)
양주(凉州)는 지금의 감숙성(甘肅省) 무위현(武威縣)으로 만리장성이 구불구불 뻗어 있는데 고풍스럽고 수수한 성벽은 사막의 모래와 자갈에 부딪혀 어두운 회색으로 거칠게 변하였다.
가을바람에 하얀 억새가 흔들리고 푸른 구름은 시든 풀 위에 잇닿아 있는데 무리에서 떨어진 외로운 기러기가 슬피 운다. 지금은 쓸쓸한 가을이다.
찬바람이 휙휙 소리를 내며 스쳐간다.
황량한 옛길에 바로 이때 붉은색 준마 한 필이 달려온다.
말 위 기사(騎士)의 청의(青衣)가 펄럭이는데 옥수가 바람을 맞듯(玉樹臨風) 멋들어지고 수려(秀麗)한 모습이다.
그가 말을 장성(長城) 아래로 몰아 와 고개를 들어 성벽 위 성가퀴(雉堞)을 슬쩍 바라보고는 몇 걸음 뒤로 말을 물리더니 갑자기 치달으며 말고삐를 채자 한혈마가 길게 울며 성벽 위로 올라섰다.
석지중이 보마를 가볍게 두드려 주고는 천천히 성 위를 몇 걸음 둘러본다.
성벽 위에는 돌로 만든 난간이 있고 가운데는 통로가 있다. 매 30여 장 마다 망루 하나씩이 세워져 있는데 이는 옛날에 봉화를 올리는데 쓰이던 망루였다.
그가 눈길 닿는 데까지 멀리 바라보니 누런 사막은 햇빛 아래 금빛을 띠고 있고 높고 푸른 하늘과 잇닿아 있는 곳이 너무나 광활하여 끝없이 아득하고 멀다.
구름을 뚫고 허공에 떠있는 것처럼 높이 솟은 기련산(祁連山)의 아득히 높은 하늘, 한없이 넓은 시든 풀밭을 생각하니 문득 천지는 고요하고 대지는 무한하여 인간은 이미 한 알의 모래알처럼 미미한 존재에 불과하였다.
그가 낮게 읊조린다.
“황하의 물줄기 멀리 흰 구름 사이에 흐르고, 변방의 외로운 성은 만 길 산 위에 있구 나(黃河遠上白雲間,一片孤城萬仞山)
西戎의 피리는 하필 절양류(折楊柳)를 부는가, 봄바람이 옥문관을 넘지도 못하는데.
(羌笛何須怨楊柳,春風不度玉門關)
가을이 깊어 쓸쓸하고 석지중은 가슴 속의 울적함이 풀리지 않아 한차례 길게 휘파람을 불고는 말을 몰아 장성에서 뛰어내렸다.
장성을 넘으면 바로 영하성(寧夏省) 관내다. 급히 말을 달리자 눈 깜짝할 새에 사막 가운데 이르렀다. 옅은 누런색 모래언덕 무더기가 곳곳에 서있는데 어떤 것은 1장이 넘는 것도 있고, 어떤 것은 몇 척(尺) 정도인 것도 있다. 홍마는 마치 자기 고향에 돌아와 재주를 발휘할 곳을 찾은 듯이 갈기를 세우고 전속력으로 급히 달려갔다.
이런 한혈보마는 대완(大宛) 궁궐에서 길러지던 말로서 발굽에 섬세한 융털 돌기가 나 있어 그것을 수평으로 곧게 뻗어 네 발굽을 모으면 부사(浮沙)를 밟아도 발이 빠지지 않아 마치 평탄한 사면(沙面)처럼 아주 빠르게 갈 수 있어 참으로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는 신구(神駒) 였다.
해 그림자가 점차 이동하자 말은 더 급히 달리니 하늘 높이 공중으로 날아 가듯이 사막 위를 전속력을 달려갔다. 날이 점차 더워지고 해가 하늘 한 가운데 걸리자 뜨거운 기운이 사막 위에 뿜어져 나와 석지중의 온몸이 벌써 흠뻑 젖어버렸고, 한혈마의 몸에서도 한 방울 한 방울 붉은 땀방울이 솟아났다.
그가 사랑스럽게 말목을 가벼이 치면서 말했다.
“어이! 이렇게 빨리 달릴 필요 없어, 좀 천천히 가자!”
홍마는 신준(神駿)하여 과연 속도를 늦추자 석지중이 흰 비단손수건을 품에서 꺼내 말 등을 몇 차례 문지르니 손수건이 온통 붉게 물들어 버렸다.
그는 매우 목이 말라 장소를 찾아 좀 쉬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였지만 사방을 둘러봐도 망망(茫茫) 하고 눈앞에는 온통 모래언덕뿐이라 하는 수 없이 커다란 모래언덕 뒤쪽 그늘진 곳으로 달려가 물주머니를 열고 몇 모금을 마셨다.
말을 내려 홍마에게도 몇 모금을 마시게 한 후 물주머니를 보니 반 정도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서쪽으로 가려면 아마도 2백리는 더 가야 백정해(白亭海)에 도착할텐데 이렇게 태양이 내리쬐는 중에 물주머니의 물이 충분할까?”
그는 등에 메고 있던 장검을 뽑아 땅위의 모래를 파헤쳤다. 대략 1장 정도를 팠지만 젖어있는 모래알마저도 나오지 않자 장검을 거둬들인 후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어 심신을 편안히 하고 피로를 풀었다.
한 시진을 쉰 후 그는 말에 올라 다시 서쪽으로 출발했다.
이번에는 두 시진 정도를 계속해서 나아갔지만 도시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석지중은 저도 모르게 탄식을 하며 자기는 한 모금만 마시고 나머지 물주머니의 물을 전부 홍마가 마시도록 하였다.
그는 쓴 웃음을 지었다.
“이번에는 공교롭게도 물이 한 방울도 남지 않았구나”
몽롱해진 머리를 만져보고는 말 등을 툭툭 쳐서 다시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이번에는 대략 수 십리를 나아갔는데, 갑자기 홍마가 공중으로 고개를 쳐들고 몇 번 냄새를 맡더니 길게 한번 울고는 갈기를 떨치며 북쪽으로 나아갔다.
석지중은 정신을 가다듬은 후 홍마가 수원(水源)이 있는 곳을 발견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홍마가 북쪽으로 달려가도록 맡겨 두었다.
한참을 달려가고 나서 비로소 약간의 새카만 어린 풀이 모래언덕에 자라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다시 한동안 달려가자 모래알이 점점 적어지고 지세(地勢)는 더욱 평탄해지더니 푸른 풀도 많아지기 시작했다.
석지중은 크게 기뻐하였다. 과연 앞쪽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홍마가 네 발굽으로 나는 듯이 달렸다. 눈 깜짝할 새에 한 무더기 작은 나무들을 뛰어넘어 작은 시냇가에 이르렀다.
석지중이 밝게 웃으며 말에서 뛰어내려 물가로 다가가 두 손으로 물을 퍼서 마시니 답답했던 마음이 뻥 뚫린 것처럼 시원해졌다. 머리를 물속에 담가 씻고 나서야 비로소 물주머니를 가득 채우고는 일어섰다.
홍마는 석지중이 일어나는 것을 보자 비로소 가볍게 울며 물속으로 뛰어내려 목을 늘이고 실컷 마시기 시작했다.
석지중이 머리와 얼굴을 닦고 심호흡을 한 후 고개를 돌려 사방을 살펴봤다. 시냇물 양쪽으로 작은 산언덕이 구불구불 뻗어 있는데 갈수록 높아져서 멀리 하늘 끝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는 어떻게 이곳 대막에 이런 세외도원이 있는지 놀랍고 의아하였다.
빽빽한 꽃나무와 붉은색, 흰색 꽃 사이로 푸른 풀밭이 펼쳐져 있고 나무와 꽃들 사이로는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꽃잎 몇 조각이 수면(水面)에 떨어져 내리고 맑고 찬 시냇물은 짙은 향기를 뿌리며 느리게 흐르고 있었다.
석지중이 생각했다.
“지금은 이미 늦가을이 되었는데 이곳은 어찌 봄날처럼 따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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