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은 수정판 녹정기의 제1회 끝 부분에 그가 선조의 시집 가운데 연구(聯句)를 골라 회목(回目)을 만든 과정을 설명했지만 여기서 장황하게 설명하지는 않겠다. 근세 海寧 查氏 가문에서 인재가 계속 나오기는 했으나 중국문학사에서 억지로라도 김용과 함께 거론될 수 있는 인물은 단지 사신행(查愼行) 한 사람일거라고 믿는다. 후세에도 여전히 있을지 없을지는 우리들 중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오래 살아 직접 보고 증명할 수가 없을 것이다.
김용의 말로는 이렇게 한 것은 “선조를 좀 선양(宣揚) 해보려고 하는 사심도 있다”고 한다. 이런 사심은 훌륭한데 논어에서 말하는 “어버이의 상에 공경을 다하고 조상을 추모하면 백성의 덕성이 두터워진다(愼終追遠,民德歸厚)”는 바로 그런 것이다.
사신행(1650~1728년)은 청 서조世祖(소겨자小玄子의 부친) 순치順治 7년에 태어나서 청 세종世宗(소현자의 아들) 옹정雍正 6년 7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경업당시집(敬業堂詩集)>은 총집(總集)으로 그 안에는 53개의 작은 시집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작은 시집들은 창작연도에 따라 배열되어 있는데 보통 그 당시 하던 일이나 거처하던 곳으로 이름을 붙였다.
앞서 말한 대로 원래 녹정기의 회목 연구를 토론할 생각은 없지만 필경 이 시구들은 다른 김용소설의 회목에 비해 전도(典故)를 훨씬 더 심도 있게 사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시사김용(詩詞金庸)」의 란을 확정한 후에 사신행의 시들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큰 결함이며, 시사김용이라는 간판에도 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 눈 딱 감고 시험삼아 한번 해보기로 하였다. 2000년 10월말에 열린 「2000년 북경 김용소설국제연구토론회」에 참가하기 전, 이틀 밤을 꼬박 새워 녹정기 회목의 51연 7언구를 빠른 속도로 찾아냈다.
왜 50연이 아닌 51연인가?
그것은 김용이 실수를 한 때문으로 제40회에서 ‘쌍둥이 사건’이 벌어졌다. 목차에서는 「眼中識字如君少,老去知音較昔難(눈에 들어오는 글자는 그대처럼 적고, 늙어가면서 知音을 만나기 더 어렵구나」을 회목으로 썼는데 윗 구는 위소보(韋小寶)는 글자를 모르기 때문에 오지영(吳之榮)이 그에게 시를 읽어 준 것은 사실상 쇠귀에 거문고를 뜯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말하지만 아랫 구는 내용과 그다지 잘 부합하지 않는다. 그런데 본문에서의 회목은 「待兎只疑株可守,求魚方悔木難緣(토끼가 부딪혀 죽기를 기다릴 정도의 그루터기인지 믿음이 안가고, 고기를 잡기에는 너무 올라가기 어려운 나무임을 후회한다)」로 되어 있어 목차보다 더 잘 맞아 떨어진다.
위소보는 수주대토守株待兎(나무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를 기다리다. 요행만을 바라다) 하려고 하지만 세상에 그런 기연이 어디 있겠는가? 나무 그루터기에 부딪혀 죽은 토끼를 주운 것은 어쩌다 운이 좋은 것인데 어찌 욕심을 부려 두 번째 토끼가 또 그러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오지영은 알고보면 연목구어緣木求魚(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다) 한 꼴이라 후회해도 소용없게 된다.
김용은 “50연의 7언구를 골라 매회 이야기에 맞게 표제를 다는 것이 생각만큼 그리 쉽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하하! 어찌 이럴 수 있는가, 또 우리 무지한 독자들을 속이고 있다. 다행히 말레이시아에 사는 독자 한 분께서 진귀한 구판 김용소설 몇 세트를 모두 나에게 선물해줬는데 그 중에 바로 이 녹정기도 있었다(아름다운 옥을 선물 받고서 겨우 모과로 답례를 한 격으로 단지 차관총서(茶館叢書)를 답례로 보냈으니 내게 너무 남는 장사인 것 같다)
대략 한 번 훑어보기만 하고도 김용이 확실히 총명하고 임기응변에 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적당한 회목을 찾을 수 없자 연구(聯句)에 맞게 내용을 바꿨던 것이다. 제4회의 「無跡可尋羚掛角, 忘機相對鶴梳翎 (고상한 분위기 조금도 없고, 이해타산 없이 학이 상대의 깃털을 골라주듯이 하다)」은 바로 수정하면서 몇 가지를 더한 후에야 알맞게 되었으니, 김용이 소계자에게 「영양괘각(羚羊掛角)」과「선학소령(仙鶴梳翎)」두 초식을 더 배우게 한 것이다.
한편, 김용은 늘 난이도가 높은 일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의 말로는 “여기에 쓰인 방법은 일반적인 집구集句(옛 사람의 시구를 모아서 새로운 시를 만드는 것)처럼 여러 시들 중에서 單句를 고르거나, 심지어는 여러 작가들의 시에서 단구를 뽑아 모은 것이 아니라 한 작품의 전체 연구를 골랐다.”고 한다. 이러한 방법이 이전에도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무엇보다 먼저 당신이 소설을 쓸 줄 알아야 하고 시를 잘 쓴 선조가 있어야 한다. 그런 후에 또 이 시를 쓴 선조가 살았던 시대를 소설의 배경으로 해야만 한다. 이것이 진정한 “고왕금래 공전절후(古往今來, 空前絕後)”라 할 것이다.
홍콩의 많은 사람들은 김용소설의 연구를 “아첨”이라고 비판한다. 아첨이 훌륭해서 받아들이는 쪽을 기분 좋게 한다면 이것도 하나의 고심한 학문이다. 앞으로 나는 이들 회목련구에 주해를 붙여 사대협의 “사심”을 잘 포장할 생각인데, 이 아첨공(功) 한 수는 마땅히 김학연구 분야에서 천하제일인 셈이다.
출처: 金庸茶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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