楊昌年(기록자 주 : 즉 獨抱樓主)
1. 우선, 고금(古今)의 협패(俠稗)를 말한다.
협패(俠稗)를 애독하는 건 일찍이 태사공(太史公)의 유협열전(遊俠列傳) 가운데 주가(朱家), 곽해(郭解)가 홀로 우뚝 서 자신의 생각을 실행하는, 호방한 기운이 드높은 이미지에서 이미 볼 수 있다. 당대(唐代)에 이르러 이백(李白)의 협객행(俠客行)에서
“조나라 무사는 거친 갓끈을 늘어뜨렸고 오구검은 서릿발처럼 빛나네((趙客縵胡纓,吳鉤霜雪明).
은빛 안장에 빛나는 백마, 유성처럼 날래고(良鞍照白馬,颯遝如流星),
열 걸음에 한 사람을 죽여도 천리에 자취를 남기지 않는구나(十步殺一人,千里不留行).
일을 마치면 옷을 털고 떠나 그 몸과 이름을 깊이 감추네...“(事了拂衣去,深藏身與名…)
라고 그려낸 것처럼 천리 길을 외로이 가는 한 마리 말과 한 자루 검은 사람들로 하여금 얼마나 동경하게 하는가!
정의를 받들어 간사한 자를 제거하는 기풍이 후세에 전하여 울리니 당연히 “비록 죽는다 해도 의로운 기개 향기로우니 세상의 영웅들에게 부끄럽지 않다네(縱死俠骨香,不慚世上英)”라는 것이고 이백이 동무음(東武吟)에서 “재주는 아직도 의지할만하여 세상의 영웅호걸에 부끄럽지 않도다(才力猶可倚,不慚世上雄) 라고 한 것은 재기 넘치는 사람의 의기(意氣)가 솟아 나온 것이다.
전기(傳奇)에 이르러, 홍선전(紅線傳, 袁郊, 약 827-873년)- 중에서 “위성(魏城)의 서문을 나서서, 2백리 길을 오는데 높이 솟은 동작대(銅雀臺)가 보이고 장수(漳水)는 동쪽으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새벽닭 울음이 들리고 기울어진 달은 수풀에 걸려 있었지요. 분한 마음으로 갔다가 기쁜 마음으로 돌아오니 문득 행역(行役)의 고통도 잊었습니다. 알아봐 주시는데 대하여 감사하여 기대하는 바에 부응하였습니다.”라는 시화(詩化)된 우아함을 거쳐
“채릉가(採菱歌) 노랫소리 재촉하는 목란주(木蘭舟)를 원망하고(采菱歌怨木蘭舟)
백척고루(百尺高樓)의 송별연 열어도 보내는 마음엔 낙담뿐이네(送客魂消百尺樓).
(홍선은) 낙수(洛水)의 여신처럼 안개 속으로 떠나고(還似洛妃乘霧去)
푸른 하늘 끝이 없고 강물만 홀로 헛되이 흐르는구나(碧天無際水空流).“
라는 결말까지 뻗어 나간다. 정취가 완곡하고 함축적이어서 협자(俠者)의 본질이 바로 지성지정(至性至情)의 걸출한 인물임을 설명하였다.
현대에 이르러 일찍이 환주루주(李壽民, 1902-1961)의 촉산검협전(蜀山剑侠传)을 읽었을 때의 감각은 “다 읽을 수 없다”(너무 훌륭하고, 너무 정교하고 아름다워 대충 훑어보고 말 수 없었다)였다. 작가 상상력의 풍부함이 족히 사람을 놀랠만하여 당신으로 하여금 인류 두뇌의 복잡함이 과연 이와 같을 수 있을까? 라고 의심을 금치 못하게 할 것이다. 그러한 새로움과 기발함은 마치 노잔유기(老殘遊記) 가운데 왕소옥(王小玉)이 부르는 희세의 절창(絶唱)과 같아 어떤 사람이 후대의 무협소설 중의 상상 설정은 모두 촉산검협전으로 귀착한다고 한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그 후에 일본인 미시마유키오(三島由紀夫, 1926-1970)의 금각사(金閣寺)를 읽었을 때와 비교하면 그의 깊고 치밀함이 이와 같아서 내 능력이 그에 미치지 못함을 느낀 점에서 비슷하였다.
문예창작 공모에 있어서 이것을 돌보다 저것을 놓치거나(顧此失彼) 구슬 상자는 사고 주옥은 되돌려 주는(買櫝還珠) 식의 폐단은 곧 소설 정신의 정화(精華)인 이념의식이 어쩌면 눈부시게 화려한 피와 살의 풍모 아래에 가려진 데에 귀결한다. 그러나 환주루주의 의식의 구슬은 여전히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아와 그의 빛나는 현명함으로 분명하게 성찰을 이끌고 있기 때문에 작가의 솜씨에 탄복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구나!
최근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서양의 “판타지리얼리즘”기법-일종의 리얼리즘의 성격 변화-은 순리얼리즘에 비해 더욱 세인(世人)의 마음속 표현 부족을 보완해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속국(屬國)에서 대국(大國)이 되는 새로운 형태는 만약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물의 한쪽에 있는 것은 환주루주와 방법은 다르지만 같은 효과를 내는 것(異曲同工)이 아니겠는가?
그 다음에 15부 36책의 거작으로 무림을 웅패(雄霸)한 김용(查良鏞, 1924-)은 “협의(俠義)”와 역사(歷史)를 조합하여 웅대한 집을 이룬 중요한 작가이다. 영호충, 교봉, 황용 같은 중요 인물들은 독자들의 머릿속에 오래도록 남아 놀라 흠모하고 감탄하여 오래도록 빛이 바래지 않는다. 아쉬운 것은 큰 명성을 얻은 후에 계속 이어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진실로 그의 개작에 찬성하지 않는다). 고봉(高峰) 위의 정체와 하강은 과연 숙명이란 말인가! 그러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 1928-)를 보면 분명히 그렇지 않다. 필자는 단지 작가의 재능이 여전히 있기만 하면 그 높은 봉우리 위의 병목을 여전히 돌파하여 길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고 깊이 믿고 있다.
왕도려(王葆祥,1909-1977) 보다 더 나로 하여금 흠모토록 하는 작가는 없다. 30여년 전 타이중(臺中)에서 “사람의 근심(人之患)”학회의 한 친구가 왕씨의 협패 시리즈는 응당 경전적인 작품(經典之作)의 지위에 들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확실히 그렇다! 필자는 그가 상상으로 만들어낸 기괴한 무공이 전혀 없이, 다만 용기와 기법에만 의지하고, 구사하는 한 자루 검만을 모은 것이 매우 마음에 드는데, 이러한 것들이 보다 삶에 가까울 수 있고 신뢰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왕씨의 작품이 감동적이고 매혹적인 까닭은 또 그의 소설의 분위기가 일종의 강호유랑(浪迹江湖), 고달픔과 시정(市井)에서의 고독하고 쓸쓸한 느낌, 감성적인 이어쓰기로 언제나 사람을 깊이 감동시키는데 있다.
학경곤륜(鶴驚昆侖)부터 철기은병(鐵騎銀瓶)까지 거침없이 써내려간 5부작 비정협패(悲情俠稗)는 세상 사람들에게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한철방(韓鐵芳)과 춘설병(春雪瓶)의 결혼에서 응당 끝이 났어야 하는데 유수련(俞秀蓮)을 보충 설명하는 부분은 분명히 군더더기이고, 문장이 가지런하지 않아 개 꼬리를 담비 꼬리에 잇듯(狗尾續貂), 다른 사람이 이어서 썼을 가능성이 있다. 최근 평론된 “20세기소설 100강(强)”가운데 뜻밖에도 왕공이 누락되었는데 이에 대해 필자는 매우 불만스럽다. 하지만 그의 소설에서 소재를 얻은 영화 “와호장룡(臥虎藏龍)은 도리어 수상을 할 수 있었는데, 실은 왕씨 작품의 비정(悲情)의 창해(滄海)에 던져진 한 알의 좁쌀에 불과할 뿐이다. 뛰어난 작품에 비해 평가는 낮아 지금은 이름이 묻혀버렸으니 참으로 애석할 따름이다.
그리고 사(查), 왕(王) 이공(二公)은 소설 중 서술의 “시차(時差)에 있어서 비교할만하다. 사공(查公)의 작품에서는 인물의 전후 이미지가 같지 않아, 원래 성공적으로 생생하게 그려낸 인물이 그 후에 등장하는 새로운 인물로 인해 빛이 바래는 일들이 자주 나타난다. 사조영웅전(射雕英雄傳)에서 활발하고 영리한 소녀 황용(黄蓉)은 신조협려(神雕俠侶)에 이르러서는 다른 사람의 아내, 엄마가 되어 비록 범용(凡庸)한 정도까지는 이르지 않았다고는 해도 독자들이 원래 갖고 있던 인상과는 많은 차이가 나버렸다. 또한, 동사(東邪) 황약사(黃藥師)는 사조영웅전에서 처음 등장할 때 얼마나 거리낌 없이 시원스러웠던가? 그 후 신조협려(神雕俠侶)의 신예 양과(楊過)의 주도 하에 결국 마치 예속국처럼 몰락하고 말았다. 의천도룡기(倚天屠龙记) 가운데 청익복왕(青翼蝠王) 위일소(韋一笑)가 등장할 때는 그 기세가 사람을 놀랠만 했으나 그 후 장무기(張無忌) 교주의 이미지가 점차 견고해진 후에는 그의 부하도 다만 복익(蝠翼)을 거두어들인다.
그러나 왕공의 작품을 보면, 독자가 받는 차이는 피할 수 있는 것 같다. 저 강남학(江南鶴)은 비록 주인공 자리를 넘겨 준 뒤에 출현하지만 여전히 신룡(神龍)이 그 머리만 보이고 꼬리는 드러내지 않는 것처럼 (행적이나 행동이 매우 신비스러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예전 그대로의 뛰어난 기개를 보여주고 있다.
이모백(李慕白)과 유수련(俞秀蓮)은 공을 쌓은 후 조용히 떠나 강호에서 자취를 감추는데 아쉽다고 말하기보다는 차라리 여운을 남겼다고 말하는 것이 나을 것이고 더욱이 독자로 하여금 슬픔을 생각하게 만든다. 옥교룡(玉嬌龍)에 관해서는 그녀가 우여곡절이 많은 풍운을 겪은 후 황사(黃沙)가 끊임없이 흐르는 사막에서 친 아들이 곁에서 지키는 가운데 병으로 세상을 떠나는데 그것은 그녀가 병으로 고통받는 상황에서 합리적인 변경이라서 독자들은 슬프고 마음이 아프지만 실의(失意)의 느낌은 갖지 않는다.
일찍이 화북(華北)에서 이름을 날린 작가인 주정목(朱貞木)의 나찰부인(羅刹夫人), 대만에서 우뚝 솟은 사마령(司馬翎)의 관락풍운록(關洛風雲錄)과 검기천환록(劍氣千幻錄)은 모두 나에게 놀랍고 흠모하는 느낌을 주었었다. 그들이 취한 협(俠)과 정(情)의 합은 김용과 구별되는데 비록 “역사”의 견실함은 생각할 수 없지만 “정”의 부드러움은 느낄 수 있다.
대략 1980년대 초에 나의 외국 국적 학생이 대만협패 연구에 뜻을 두었던 관계로 그를 데리고 고룡(古龍)을 만나러 갔었기 때문에 들이 붓는 것처럼 마시는 그 분 주괴(酒魁)와 친교를 맺게 되었다.
총괄적으로 말하자면 그의 소설은 호탕한 기백의 영향에 중점이 있다고 느꼈었다.
비록 완곡함은 쉽게 약해지고 슬퍼질 수 있으며, 호기로움은 거칠고 속되기 쉽지만 그럼에도 고룡은 호기로움과 완곡함(豪婉), 강함과 부드러움(刚柔)을 조절할 수 있었다. 그가 지은 인물 이름 풍만천(風漫天)은 능히 사람들에게 강으로 바다로 정처 없이 유랑하는 창망(苍茫)한 느낌을 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