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판(新修版) 의천도룡기 고친 내용 4

金庸 2016. 9. 5. 20:39 Posted by 비천호리

46. 영보도인(靈寶道人)

제8회, 천응교의 정단주(程壇主)가 곤륜파는 영보도인이 세상을 떠난 후부터 세대가 내려갈수록 뒷 세대가 그 앞 세대보다 못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구판에서는 단지 영보도인은 서화자의 사조라고만 하였는데, 신수판에서는 한 가지 신분을 추가한다. 그는 곤륜삼성 하족도의 사형으로 무공은 비록 하족도에게 미치지 못하지만 인품과 덕망은 무림의 사람마다 경복하였다. 다만, 그래도 한 가지 착오는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는데 여기서는 영보도인이 서화자의 사조라고 하고, 뒷 부분에서는 서화자의 사부는 반숙한이고 반숙한과 하태충의 사부는 백록자(白鹿子)인데 양소에게 살해당하여 모순이 생겼다. 만약 곽양과 하족도가 동배(同

)라면 하족도의 사형 영보도인은 함께 제1대가 되고, 풍릉사태(風陵師太)는 제2대, 멸절(滅

)은 제3대가 된다. 멸절과 하태충, 반숙한의 나이가 비슷하므로 이론상으로는 당연히 같은 대의 사람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백록자는 제2대이고 풍릉사태와 동배이며 영보도인과 하족도의 제자와 같은 배분이어야 순리적이다.

 

47. 정허사태(靜虛師太)

제9회, 아미파의 정허사태 등장, 구판에서 그녀는 아미파 제4대 제자인데, 신수판은 그녀가 제4대 제자의 세 번째 제자로 고쳤다. 뒤에 출현하는 정현(靜玄)도 대제자이기 때문에 구판은 모순이 있다.

 

48. 은자 한 냥

제9회, 두 번에 걸쳐 은자를 상으로 주는 장면이 나온다. 한번은 장무기가 늙은 거지 하노삼(賀老三)에게 붙잡히자 은소소가 미친 척하면서 두 선원에게 발길질을 하여 물에 빠뜨리고 유연주와 장취산이 하노삼이 깜짝 놀라는 틈을 타 무기를 구한다. 은소소가 두 선원에게 사죄하고 각자 은자 한 냥을 보상으로 준다. 두 번째는 어느 날 밤 도적의 두 졸개가 언덕 위에서 미행하자 유연주가 말썽이 생기지 않도록 뱃사공에게 밤새 배를 몰아 가도록 하고 은자 세 냥을 상으로 준다. 신수판에서는 이 두 번의 상으로 주는 은자 액수가 각각 한 냥씩 늘었다. 보아하니 최근 물가상승이 원조(元朝)에도 영향을 미쳤나 보다....

 

49. 노선(路線)

제9회, 유연주가 장취산 일가 세 사람을 대동하고 배를 이용해 무당산으로 돌아가는 노선이 수정된 부분이 있다. 구판은 “며칠 동안 배를 몰아 武穴에 도착하니 이미 湖北省 경내다. 이날 밤 富池口에 도착하였다.” 신수판은 “며칠 동안 배를 몰아 江夏, 武昌을 지나 서쪽으로 襄陽路에 이르렀다. 이날 밤 罐子灘에 도착하였다.” 그런 후 두 도적 졸개를 만나게 된다.

 

50. 유연주가 말하는 송원교

제9회, 유연주가 은소소에게 사형의 특징을 설명하는데 구판에서는 송원교가 역리에 깊이 통달했다(深通易理)고 했으나 신수판은 노장의 학문에 깊이 통달했다(深通老莊之學)로 고쳤다..

 

51. 유연주의 고향

제9회, 아미파가 곤륜파고 꾸며 수로에서 유연주 일행을 가로막으려 한다. 유연주가 뛰어난 수영 솜씨를 발휘해 물에 들어가 적을 맞이한다. 구판은 그가 어려서 강남의 물가 마을에서 성장했다고 했는데, 신수판은 장강(長江) 가에서 자란 것으로 바꾸었다.

 

52. 권하다.

제9회, 장무기가 유연주에게 “그들”에게 의부를 죽이지 말 것을 권해달라고 한다. 구판에서는 유연주가 승낙을 할 수 없지만, 그 자신만은 절대로 그를 죽이지 않을 거라고 대답한다. 신수판 중에는 한 구절을 추가하여 권할 수 있으면 권하겠다고 한다.

 

53. 은가의 하인

제10회, 은무복과 은무록이 무당으로 예물을 가지고 와 장취산에게 문안을 드린다. 신수판에서 그들은 “그 밖에도 형제 은무수가 소인들에게 함께 姑爺에게 인사를 드리도록 했습니다.”라는 한 구절을 추가한다.

 

54. 당묵(唐墨)

제10회, 은가 하인이 예물목록을 바친다. 그 중에 진상품 당묵이 있는데 구판에서 12개였다가 신수판에서는 40개로 고쳤다. 물가가 폭등했구나!“

 

55. 3대 3

제10회, 은무복이 노상에서 만난 세 표두를 말하는데 자기 삼형제가 그들과 겨뤄 이겼다고 한다. 구판에서는 둘째 은무록이 도전하였고 또한 이때까지 아직 은무수를 언급하지 않은 채 곧바로 3대 3이라고 하여 약간은 감작스러운 느낌이 있었다. 신수판에서는 은무수의 이름이 앞에서 이미 나왔고, 셋째 은무수가 도전을 하는 것으로 고쳤다. 세 명의 표두에게 승리를 거둔 후 그들이 스스로 왼팔을 자르라고 하는데 구판에서는 평생 호북성을 한 걸음도 밟아서는 안된다고 하였으나, 신수판은 평생 무당산을 한 걸음도 밟아서는 안된다로 바꿨다.

 

56. 호조절호수(虎爪

戶手)

제10회, 유연주와 장송계가 몰래 상의하기를 손을 쓰게 될 때 호조절호수로 수뇌인물 몇 명을 붙잡아 각 대파가 지나치게 핍박하지 못하도록 하기로 한다. 단, 호조절호수에 당하면 자식을 낳을 수 없으므로 장송계는 단지 화상, 도사 혹은 칠팔십세가 된 사람에게만 쓰자고 제의한다. 유연주는 장송계의 머리회전이 빨라 화상과 도사가 자식을 낳을 수 없다는데 생각이 미쳤다고 칭찬한다. 신수판은 “각 문파의 수뇌인물은 대부분 이미 칠팔십이 되었다!”라는 구절을 추가하였다.

사형제들이 상의할 때 장취산은 곤륜파의 서화자를 고른다. 신수판에서는 설명을 더하여 곤륜파 장문 하태충이 늙은 나이는 아니다(그래서 장취산이 서화자를 골랐다)고 한다. 또한 송원교, 장송계, 은리정 등은 신권문, 거경방 등 방회의 수뇌인물을 선택하였다는 부분을 추가하였다.

 

57. 진무칠절진(眞武七截陣)

제10회, 무당과 소림 사이에 교섭이 중단되어 손을 쓰려고 하는데 구판에서는 마지막에 확정한 것은 소림칠승 대 무당파 칠인이다. 신수판은 6대 6으로 바꾼다. 구판에서 무당파는 원래 은소소로 하여금 유대암을 대신하여 함께 진무칠절진을 펼치려고 한다. 뒤이어 진무칠절진을 소개하는데, 반드시 7명이 함께 펼쳐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표현이 있고 진법의 위력은 = (진무칠절진 인원수-1)2이다. 신수판은 이러한 표현을 삭제하여 6인이 같이 펼쳐도 구판에서 말한, 일류고수 32명에 필적할 수 있다는 것과는 같지 않다. 진무칠절진의 위력이 크게 감소하였다. 신수판은 계획을 바꾸어 6대 6으로 하였고, 은소소는 유대암에게 진무칠절진의 진법에 대하여 가르침을 청할 필요가 없어졌다. 아직 손을 쓰기 전에 소림파는 계속하여 장취산이 용문표국 전원을 살해하였다고 질책하고, 유연주는 장취산의 심정이 매우 격동되어 있는 것을 보고는 자기는 상세가 이제 막 나아 나머지 네 형제가 마음을 분산하여 두 사람을 돌봐야 하면 패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58. 무당산에 피를 뿌리다.

구판에서 은소소가 유대암에게 진무칠절진의 진법에 관해 가르침을 청할 때 유대암이 그녀를 알아 차리지만, 신수판은 무당과 소림의 6명 대 6명이 아직 손을 쓰기 전에 은소소가 후당(後堂)에서 장취산이 마음 속으로 매우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는 뛰어나와 용문표국 살인사건은 그녀가 한 것이라고 인정한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유대암에게 가서 진상을 솔직하게 털어 놓는다. 이 부분은 상당히 많이 고쳤다.

덧붙임 : 신수판 가운데 은소소는 천응교의 총단 소재지가 강남 해염현 남북호의 응과정(江南 海鹽縣 南北湖 鷹窠頂)이라고 말한다.

 

59. 소림사의 천년

제10회, 장삼봉이 장무기를 데리고 소림사를 찾아 소림파의 구양신공을 부탁하면서 무당파의 구양신공으로 교환하기를 바란다. 구판에서는 소림방장 공문이 천백년 이래 승속(僧俗) 제자 중 누구 하나도 72종 절기를 12가지 이상 익힌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데 신판에서는 8백년 이래로 고쳤다.

 

60. 주지약 이름의 내력

제11회, 장삼봉이 손을 써 상우춘과 주지약을 구하고 주지약에게 이름을 물을 때 구판에서 주지약은 단지 이름만 말하지만 신수판에서는 아빠 말로는 그녀가 호남(湖南) 지강(芷江)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지약(芷若)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61. 저당 잡은 것이 아니다.

제11회, 상추춘이 장무기를 데리고 호청우를 찾아간다고 하자 장삼봉이 동의하면서 자기는 주지약을 데리고 가 적절하게 안배하겠다고 말한다. 실은 두 사람이 아이를 서로 바꾼 것이다. 신수판에서 장삼봉은 한 마디를 추가하여 (주지약은) 저당 잡은 게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62. 상우춘의 원적

제11회, 상우춘이 장무기를 데리고 호청우를 찾아간다. 호청우는 환북 여산호반(皖北 女山湖畔)에 살고 있다. 수정판은 한 구절을 더하여 상우춘은 회하(淮河)에 연한 지방의 사람이라 길을 잘 알고 있다고 한다.

 

63. 헛소문을 말하지 말라

제11회, 상우춘과 장무기가  한바탕 악투와 정민군이 여러 사람 앞에서 기효부의 사적인 비밀을 폭로하는 것을 숲속에서 몰래 숨어서 목격한다. 일이 끝난 후 장무기는 후에 상우춘에게 그것이 사실인지 물어본다. 구판에서 상우춘은 탄식하며 나도 모른다고 말한다. 신수판에서는 그가 어조를 바꾸어 “나는 스스로 진실일까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들으면 진실로 믿을 까봐 염려한다.”고 말한다.

 

64. 의도(醫道)를 처음 배우다.

제12회, 장무기가 단지 스스로 7일이 채 안되는 동안 각종 고의서(古文醫書)를 보고 상우춘을 치료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내력이 없어서 호청우의 금침을 쓸 수 없었고, 상우춘을 찔러 피를 나오게 한다. 신수판은 장무기가 벌꿀을 찾아내 상우춘에게 지혈을 해준다.

 

65. 무당파 대 호청우

제12회, 장무기는 호접곡 의약대학(醫藥大學)에서 2년을 연수한다. 장삼봉과 무당육협은 2년여 동안 그에게 적지 않은 의복과 용품을 보낸다. 신수판에서는 그들이 호청우에게도 적지 않은 예물을 보낸다.

 

66. 기효부의 상처

제12회, 금화파파가 기괴하게 다친 사람들을 많이 만들어 호청우를 찾도록 한다. 그 가운데 기효부는 왼쪽 어깨, 왼쪽 팔, 폐엽(肺葉)도 다쳤고 또 중독까지 되었다. 뒤에 기효부가 장무기에게 그날의 정황을 말하는데 구판에서는 왼쪽 어깨와 왼쪽 팔의 상처를 잊어버렸다. 신수판에서 추가하였다.

 

67. 꾀병

제12회, 장무기와 기효부가 좌담할 때, 구판에서 장무기는 호청우의 병은 분명히 가장한 것이라고 말하는데, 신수판은 그가 호청우는 아무래도 병이 든 것처럼 가장하는 것 같다고 고친다.

 

68. 호청우와 왕난고

제13회, 호청우가 장무기에게 자기와 왕난고 사이의 사정을 설명해준다. 신수판은 그의 말을 상당히 많이 고쳤는데 그 가운데 한 구절 “독선(毒仙)의 손에 다친 사람을 의선(醫仙)이 버젓이 낫게 한다면 나의 애처의 본의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스스로 의선이 독선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되지 않겠느냐”를 신수판은 그 뒤에 매우 난감한 한 구절을 추가한다. “가장 빌어먹을 건 내 마음 속에는 확실히 의선이 독선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한다는 거지”.

 

69. 서역 노번승

제13회, 호청우가 금화파파와 원한을 맺게 된 과정에 대하여 당년 금화파파와 은엽선생이 다른 사람에게 중독을 당했다고 말한다. 구판에서는 이 독을 쓴 사람이 “몽고인 수하의 한 서역 벙어리 두타”였는데 신판은 “서역 노번승(老番僧)으로 고쳤다.

참고 : 이 사람은 실은 바로 범요인데, 범요가 두타에서 번승으로 바꿨단 말인가? 혹은 범요가 손쓴 것이 아니라는 건가?

 

70. 호청우의 심기

제13회, 호청우는 왕난고가 스스로 독약을 먹으면서 계속하여 그와 겨루려고 한다고 말한다. 호청우가 자기는 그녀가 먹는 것이 무슨 독약인지 모른다고 운운하는데 실은 아내가 들으라고 하는 말이고 그녀에게 약한 체 한 것이다. 구판에서는 분명하게 표현하지 않았는데 신수판은 호청구가 큰 목소리로 말하여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침대 위의 왕난고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고 한 구절을 더하였다.

덧붙임 : 기실 호청우 자신이 몰래 탁자 위에 약방문을 써서 장무기만 볼 수 있도록 한다. 뒤이어 그가 자기는 이 독을 해독할 수 없어서 자기도 독약을 먹고 아내를 따라 함께 죽으려고 한다고 소리 높여 말한다. 왕난고는 당신이 어떻게 그렇게 많이 먹을 수 있겠느냐고 하는데 구판은 “세 사람도 독사시킨다.”고 말하는데 신수판에서는 “세 마리 소도 독사시킨다”로 고쳤다. 그 말에는 표면상의 의미와 숨어 있는 의미의 두 가지 관련된 뜻이 있다(一語雙關).

신수판(新修版) 의천도룡기 고친 내용 3

金庸 2016. 9. 5. 20:37 Posted by 비천호리

31. 자화자찬제6회, 사손이 천하에 자기를 이긴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말한다. 신수판에서는 의외로 명교 4왕을 든다.

32. 멋진 글씨제6회, 장취산이 의천도룡공으로 석벽에 여섯 글자를 쓰고, 사손이 패배를 인정한다. 신수판의 사손은 거기에 “이렇게 멋진 글씨”라는 한마디 감탄을 한다.

 

33. 검이 있다.제7회, 은소소가 장취산에게 그가 사손과 내력을 겨룰 때, 자기가 은침을 뿌려 돕지 않은 원인을 설명한다. 신수판에서는 한 문장을 더하여 장검도 가지고 있었지만 그걸로 사손을 찌를 생각이 없었다는 설명을 한다. 참고 : 그녀는 확실히 장검을 지니고 있었고, 후에 빙화도에서 꺼내 고기를 썰었다. 단지 구판은 여기에서 언급하지 않았을 뿐이다.

 

35. 맹세제7회, 장취산과 은소소가 빙산에서 천지신령에게 절할 때 은소소는 만약 이후 중원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개과천선하여 지난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잘못을 철저히 고쳐 장취산을 따라 선행을 할 것이라고 맹세한다. 만약 맹세에 어긋나면, 구판에서는 하늘과 사람들에게 버림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신판은 “나의 부군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로 고쳤다.

 

36. 그대와 함께 지옥에 가다.제7회, 장취산과 은소소가 멀리 화산이 폭발하여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것을 보고는 그것이 지옥의 문이라고 생각한다. 장취산이 모든 것은 단지 하늘의 안배에 맡길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신수판은 장취산이 또, 앞 문장의 어떤 곳과 마찬가지로 만약 그대가 지옥에 떨어진다면 나도 그대와 함께 지옥에 들겠다고 운운한다.

 

37. 용암제7회, 장취산과 은소소가 도착한 후에 “빙화도”라고 불리워진 화산섬을 조사할 때, 신수판은 용암이 서쪽으로 흘러 수목과 화초가 모조리 불타서 숯이 되었고 두 사람이 멀리 피한다는 한 문장을 더한다.

 

38. 무림 선현(先賢)제7회, 은소소가 곧 해산하려고 할 때 사손에게 발광의 기미가 보여 동굴 밖에서 각종 선현들을 욕하기 시작하여 후에는 무림선현까지 욕하는데, 구판에는 곽정과 양과가 있었고 신수판에서는 황용과 소용녀를 추가하였다.

 

39. 사무기구판 중 사무기의 출생시간과 연령에 각종 모순이 있어 신수판에서 개정하였다.제7회, 장무기가 태어날 때 사손은 자기의 친생자 사무기를 떠올린다. 구판에서는 사손이 전 가족이 살해당하던 때를 생각할 때 “아내가 막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라고 말하는데 신수판은 “아이의 세 돌이 채 되지 않았다.”로 고쳤다.사손이 뒤이어 아들을 언급할 때도 “내 아들이 만약 죽지 않았다면 올해 열 여덟살이 되었다”라는 부분을 삭제했다.후에 사손이 장무기, 장취산, 은소소에게 전 가족의 원수를 얘기할 때 구판에서 “막 돌이 된” 장무기를 신수판에서는 “세살 밖에 안된”으로 고쳤다.

 

40. 시간제7회, 사손이 장취산 일가에게 전 가족의 원수를 말할 때 장취산과 은소소는 그가 성곤의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구판의 문장 가운데는 나레이션이 삽입되어 “원래 2년 전에 일련의 **사건이 발생하였다” 운운하였는데, 신수판은 “수년 전”으로 고쳤다. 아마도 이때 세 사람이 빙화도에 있은지 10년이 되었으므로 2년 전에도 자연히 빙화도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수 년”으로 바꿨지만 그래도 여전히 10년 보다는 적다.

 

41. 친구제7회, 신수판은 사손이 무기에게 몇 마디를 하였다. “네 아빠는 나의 결의형제이고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친구다. 만약 어떤 자가 네 아빠를 죽이려고 한다면 나는 목숨을 내놓더라도 네 아빠를 도울 것이다.”

 

42. 칠상권제8회, 사손이 공동파 수중에서 빼앗아 온 칠상권보를 언급할 때, 공동파(崆峒派)에는 이 권법으로 천하에 명성을 날린 자가 없었다고 말한다. 신수판에서는 공동파는 최고의 대문파가 되지 못했다고 추가로 말한다. 다만 그 중 이 “공(崆)”자는 “공(空)”자로 잘못 썼다.

 

43. 공견제8회, 사손이 공견을 회상할 때 구판은 공견을 백의승인(白衣僧人) 이라고 했는데 신수판은 회의승인(灰衣僧人)으로 고쳤다.

 

44. 도룡도의 이빠진 곳제8회, 사손이 장무기 일가에게 이 10년 동안 도룡도를 연구한 성과를 알려 주는데 신수판에는 그가 마침내 도룡도의 칼자루 쪽에 가까운 칼날에 한군데 이빠진 곳이 있는 것은 알아냈지만, 어떤 특별한 용도가 있는지는 전혀 찾아내지 못하였다.

 

45. 천응교의 은어제8회, 장취산 일가가 마침내 대륙 근해로 돌아왔는데 뜻밖에도 때마침 천응교와 무당파, 곤륜파의 사람들이 바다 위의 배에서 싸우고 있는 것을 만나게 되었다. 은소소가 천응교의 은어로 응답한다. 구판에서는 “日月光照,天鷹展翅,聖焰熊熊,普惠世人”인데 신판은 “聖火熊熊,普惠世人。日月光照,騰飛天鷹”으로 고쳐 명교를 천응교의 앞에 두었다.

신수판(新修版) 의천도룡기 고친 내용 2

金庸 2016. 9. 2. 19:16 Posted by 비천호리

16. 도룡도

제3회, 도룡도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구판에서는 “4척 남짓한 길이”였는데 신수판은 바꿔서“3척 남짓한 길이”로 줄어들었다.

 

17. 천응교

제3회, 천응교 등장. 구판 중의 구호는 “일월광조 응왕전시(日月光照,鷹王展翅)”였는데 신수판은 “일월광조 등비천응(日月光照,騰飛天鷹)으로 고쳤다. 그 뒤에 따르는 문장의 어구도 약간 수정하였다.

구판 가운데 유대암은 천응교를 들어본 적이 없지만, 신수판은 천응교는 강남 일대의 신흥교파라고 들었다는 것으로 고쳤다. 그리고 구판에서 천응교는 약속을 충실히 지켜 한 사람의 천한 목숨을 용서하되 단지 몇 군데 경맥이 끊어져 백치가 돼 버리고 유대암이 그에게 천응교의 정황을 알아내지 못한다. 신수판에서는 이 사람도 죽었다.

덧붙임 : 유대암이 도룡도가 왜 이렇게 무거운지 의아해 할 때 관왕야(關王爺)의 청룡언월도도 81근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신수판은 “또한 두 손으로 사용했던 것이다”라는 문장을 추가했다.

 

18. 표물 호송

제3회, 은소소는 임안부의 용문표국에게 유대암을 무당산으로 보내달라고 의뢰한다. 구판에서 이 날이 3월 29일인데 신수판은 3월 28일로 고쳤다.

 

19. 도대금의 안목

제3회, 은소소가 떠난 후 도대금이 유대암에게 말할 때 신수판에서는 은소소가 남장여자라는 것을 간파한다.

 

20. 용문표국의 구호

막 천응교의 구호를 바꾼 후 용문표국도 고쳤다. 구판은 “용문리삼약 어아화위룡(龍門鯉三躍,魚兒化爲龍)”이고, 신수판은 “용문리어약 어아화위룡(龍門鯉魚躍魚兒化爲龍)”이다. 세 번이 한번으로 변했으니 이 잉어의 무공에 진전이 있는 셈이다.

 

21. 증빙

제3회, 도대금이 표물을 호송하여 무당산에 당도했지만 이름을 사칭한 자에게 넘겨주고 만다. 구판에서 도대금은 그야말로 허울만 그럴듯한 속빈 강정이었다. 신수판에서는 적지 않게 세심해져서 그 여섯 명에게 증빙을 남길 것을 요구한다. 그 결과 패검 한자루를 얻지만 최종적으로 스토리의 전개에는 여전히 영향이 없어서 사칭한 자들이 유대암을 접수해가도록 한다.

 

22. 장취산의 외호

장취산의 외호는 구판의 철획은구(鐵劃銀鉤)에서 은구철획(銀鉤鐵劃)으로 바꾼다.

 

23. 은리정

제3회 말미에 주를 두어 “은리정(殷梨亭)이라는 이름의 내력을 설명한다. 은리정은 역사상 은리형(殷梨亨)으로 불렸는데 다른 육협의 이름과 비슷하지 않기 때문에 김용이 큰 재주를 펼쳐 ”은리정(殷梨亭)으로 바꾼 것이다. 신수판은 약간 고쳐서 어떤 사람은 “은형리(殷亨利)”로 잘못 쓴다고 언급한다. 하하!

 

24. 연분이 있다.

제5회, 은소소와 장취산이 한 사람은 전당강 위의 배를 타고, 한 사람은 기슭을 걸으면서 입으로는 서법에 관해 담론한다. 구판에서 마지막에 은소소가 작별하면서 “제 성은 은이고..... 다른 날 여가가 있으면(他日有暇) 다시 상공에게 가르침을 청하겠습니다....” 신판은 “有暇”를 “有緣”으로 고쳤다. 아마도 이때 은소소에게는 충분한 여가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구판의 장취산은 그녀가 은씨 성이라는 것을 듣자 바로 도대금이 표물을 의뢰한 손님은 은씨 성을 가진 미모의 서생이라고 말한 것을 생각해 내지만 은소소는 여자 복장을 하였는데 장취산의 머리가 이렇게 비약하는 것은 상리(常理)에 어긋난다. 신수판은 앞 글에서 이미 고쳤는데 도대금이 벌써 은소소는 남장여자라는 것을 간파하였다고 하고 이 때 장취산은 그 표물 의뢰인이 바로 은소소가 남장한 것으로 추측하는데 이것이 더 자연스럽다.

신수판에서 장취산은 그녀에게 어디서 셋째 사형을 만나게 되었고 어떻게 그를 구하게 되었는지를 더 물어본다. 은소소는 전당강 가에서 유대암이 땅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구했다고 대답한다.

 

25. 천응교

제5회, 구판의 장취산은 구판의 유대암과 같이 천응교를 들어본 적이 없지만, 신수판의 유대암은 들을 적이 있고, 장취산도 “들어본 적이 없다(沒聽說過)”를 삭제했다. 천응교의 명성이 더욱 높은 것을 말하거나 혹은 무당칠협이 이렇게 고루과문(孤陋寡聞) 하지 않다는 것을 설명한다.

 

26. 학식이 해박한 여마두

제5회, 장취산은 은소소와의 해변약속에서 장삼봉에 관해 담론하고, 은소소는 줄곧 장자(莊子)로 그의 비위를 맞춘다. 신수판의 장취산은 마음속으로 이 여마두가 정말로 보기 드물게 학식이 해박하다고 생각한다.

 

27. 좌우

제5회, 천응교의 두 힘센 타주가 장취산에게 수 백근짜리 돌덩이를 던지라는 어려운 문제를 낸다. 장취산은 새로 배운 “의천도룡공(倚天屠龍功)을 써서 가뿐하게 해결한다. 구판의 그는 왼손으로 ”武“자의 오른쪽 갈고리를, 오른 손으로는 ”刀“자의 왼쪽 삐침을 펼쳐낸다. 신수판에서는 좌우를 바꿨다.

 

28. 금모사왕

제5회, 금모사왕 사손이 돌연 왕반도를 습격하여 섬에 정박해 있던 배를 모조리 부숴버린다. 천응교가 파견한 한 타주가 조사하거 갔다가 중상을 입고 도망쳐와서는 “금모사왕”이라고 소리친다. 구판에서 백귀수가 “단지 금모사왕?”라고 묻자 그 타주도 이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를 대답하고 비로소 죽는다. 명백하게 백귀수는 이상하게도 사손을 모르고 있고, “금모사왕”도 들어본 적이 없다.

신수판은 은소소와 백귀수 등이 모두 금모사왕의 내력을 알고 있는 것으로 바꾸었고, 그 타주도 이 문제에 대해 더 대답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구판에 비해 좀 더 일찍 죽는다.

후에 백귀수와 사손의 대화도 수정하였다. 백귀수가 그대는 명교의 호교법왕으로 우리 은교주와 근원이 같은데 왜 와서 훼방을 놓느냐고 말하여 “명교”의 이름을 앞당겨 출현시킨다.

상금붕의 사손에 대한 호칭도 “사씨 친구”에서 “사법왕”으로 변하였다.

 

29. 사손의 낭아봉

제5회, 금모사왕 등장할 때 구판에서 그가 든 무기는 1장 6~7척 길이의 두 자루 낭아봉이었는데 신수판은 1장 3~4척의 낭아봉으로 고쳤다.

 

30. 시간 이동의 기이한 사건

제5회, 금모사왕이 해사파 총타주 완광파를 심문한다. 구판에서 그중 한 사건은 “이번 달 초 구양청이 해문(海門)에서 죽임을 당했다”이다. 장취산이 임안(臨安)에 도달한 것은 4월 3일이고 매우 짧은 며칠 후가 바로 왕반산대회이므로 5월 초 몇 일에 불과하다.

(인상으로는 대략 이틀 정도이고 그러면 그때는 5월 2일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번 달 초의 한 살인사건”이라는 개념은 매우 기묘해진다. 신수판은 이 사건을 유대암이 직접 경험한 “최근 장백삼금(長白三禽)의 죽음”으로 고쳤다.

같은 형태로 거경방의 심판에 대해서도 사건은 “민강 입구의 원양해선 약탈사건”은 구판의 “금년 5월”에서 2월로 고쳤다.

신수판(新修版) 의천도룡기 고친 내용 1

金庸 2016. 9. 2. 19:14 Posted by 비천호리

1. 고묘(古墓)

제1회, 곽양의 전국여행, 구판에는 그녀가 종남산 고묘에 간 것을 언급하지 않았는데 신수판에서 그녀는 간 적이 있고, 고묘에서 두 시녀가 나와서 양과 부부가 외출하여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고 언제 돌아올지도 말하지 않았다. 곽양이 고묘에서 3일을 기다리지만 그들이 여전히 돌아오지 않아 다시 유람의 길을 시작한다. 양과와 소용녀가 화산에서 헤어진 후 어디로 갔는지는 줄곧 수수께끼인데 현재 김용이 수수께끼를 풀었지만 하나도 재미 없다. 곽양이 양과가 어쨌든 고묘로 돌아올 거라는 것을 알고도 여전히 도처로 그를 찾아다닌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

 

2. 대금국의 유해(遺骸)

제1회, 곽양과 소림승 사이에 다툼이 생겼을 때 소림승이 관료적인 말투로 대하자 구판에서는 곽양이 냉소하면서 묻는다. 당신들은 대송 황제의 벼슬아친가요? 아니면 몽고 황제의 벼슬아친가요? 신수판에서 그녀는 소림승에게 옵션을 하나 추가한다. “그것도 아니면 여전히 대금황제의 벼슬아친가요?.” 이것은 아마도 대금국의 마지막 출현일 것이다. 몇 달 전에 내가 완안아골타와 소봉이 장백산 아래서 함께 술 마시고 사냥하는 것을 목격한 것을 회상하면 불과 몇 달만에 소봉의 고국과 완안아골타의 고국이 모두 종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게 될 줄을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참으로 슬프고 처량하기도 하고 감개무량하다.

 

3. 천년소림

제1회의 소림승부터 시작하여 소설 등장인물은 늘 “천년 이래”,“천백년”,“천여년”등의 말을 한다. 생각건대 이 때는 서기 1262년 전후이고 소림사가 처음 건립된 건 495년이다. 일반인은 소설을 볼 때 현재의 환경을 대입하기 쉽고 소림사는 현재로부터 확실히 1천 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곽양의 그때는 7백여 년에 불과하여 “천년”으로 불릴 자격이 아직 안되었다. 의천도룡기가 끝나는 시점에도 8백 5십년을 막 넘어섰을 뿐이라서 억지로 “천년”이라 하여도 양보하는 것이다. 천룡팔부 가운데의 소림승이 유사한 표현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는 시간이 더 짧았다. 이 사람들은 모두 시간 이동을 하여 돌아간 것인데 김용이 수정하는 걸 잊어버렸다.

덧붙임 : 뒤쪽에서는 공문(空)만이 한 번 “8백년”이라고 한 것 같다.

 

4. 손가락을 자르다.

제1회, 한 소림승이 손을 써 곽양의 단검을 억지로 남기려고 하자 구판에서는 곽양이 그의 왼쪽 두 손가락을 잘라버리는데 신수판은 베어서 상처를 내는 것으로 고쳤다. 자르는 것은 확실히 어느 정도.... 잘 처리된 것은 아닌 것 같다.

 

5. 낙영장

신수판 사조영웅전은 구판의 “낙영장법(落英掌法)을 도화낙영장(桃落英掌)으로 바꾸었고 여기서 곽양이 사용할 때에도 그에 맞추어 수정하였다.

 

6. 니추공(泥功)

제1회, 한바탕 비무(比武)를 통해 문파를 판단하는 시험에서 곽양은 10초로 한정하여 무색(無色)을 시험한다. 곽양이 사용한 여섯 번째 초식이 영고의 니추공이다. 구판은 그녀가 양과와 흑룡담에 가서 구미영호를 잡았을 때 영고가 사용하는 것을 보았다고 하지만, 신수판에서는 그녀가 영고에게 니추공이라는 무공이 있다는 것을 듣고 가르침을 청한 것으로 설명한다. 내 인상에 의하면 신조협려의 양과는 흑룡담에서 분명히 영고와 싸운 적이 없어서 영고가 니추공을 시전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7. 능가경

제1회, 장군보가 곽양에게 각원이 벌을 받는 원인을 말하는데 바로 신조협려 제40회에서 발생한 능가경 도난사건이다. 신수판 신조협려가 능가경의 내력(來歷)을 수정하였기 때문에 여기서도 상응하는 수정을 하였다. 신수판 신조협려 참고

 

8. 전서(戰書)

제1회, 곤륜삼성이 소림파에 도전장을 보내는데 구판 중의 전서에는 시간이 없는데도 무색선사는 “신통광대”해서 “열흘 후”라는 것을 안다. 신수판에서는 이 착오를 수정하여 “열흘 후(十天之後)” 네 글자를 전서에 추가하였다.

註) 신수판 이전에 몇몇 판본은 이미 이 시간을 추가하였었다.

 

9. 광고

신수판 제1회 뒤에 주를 달아, 현재 소림사는 이미 여자가 절에 들어오는 것을 불허하는 규정을 폐지하였다고 말하고, 남녀를 막론하고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한다.

 

10. 추리

제2회, 서역소림의 3인이 산중턱에서 하족도에게 가볍게 격패 당하는데 구판에서는 자세히 쓰지 않았다. 신수판은 3인이 실의하여 소림사로 돌아가는 길에서 이 사람이 곤륜삼성 하족도라는 것을 알아차린다고 한다. 이렇게 바꾸니 스토리가 더 합리적으로 되었다.

 

11. 심선당 칠로

제2회, 소림파 방장 천명(天鳴)이 자기의 무공이 서역소림의 세 사람보다 그다지 높지 않다고 생각하여 하족도와 맞서면 분명히 패배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심선당 칠로가 나와 국세를 안정시키도록 한다. 구판은 그들의 무공이 헤아릴 수 없이 깊다고만 표현하였으나 신수판에서는 설명을 추가하여 심선당칠로의 배분이 천명보다 높다고 한다.

 

12. 정확한 나한권

제2회, 장군보는 열흘동안 철나한에서 새로 배운 나한권으로 하족도와 싸운다. 신수판에서는 한 부분을 추가하여 만약 사람이 무공을 가르쳤다면 매번 초식을 사용할 때마다 오차가 생기지 않을 수 없었지만 장군보는 철나한을 따라 배웠고 철나한은 매우 정확하여 장군보의 권법이 매우 정확하였다고 말한다.

 

13. 죄를 뒤집어씌우려 하다.

제2회, 장군보는 스스로 배운 나한권으로 하족도를 물리치자 심선당칠로 그 유명한 늙은기가 튀어나와 마치 장군보를 마치 산채로 찢어죽일 듯이 그를 처벌하려고 한다. 신수판에서는 한 부분을 추가하여 나한당 수좌 무색이 철나한의 원인과 결과를 설명하지만 일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도리어 자기조차도 처벌을 받아야만 한다.

 

14. 구양진경의 저자

제2회, 각원이 곽양과 장군보를 데리고 소림사를 도망쳐 나와 한밤중에 경문을 읽는데, 소리 내어 외우는 것은 구양진경이다(기괴한 것은 이 노화상은 읽지 않은 책이 없는데 굳이 죽기 전에 암송하는 것이 무학비적이라니, 하하). 신수판 신조협려에서 이 구양진경의 내력을 언급했지만 이곳에서 다시 거론하고 게다가 더 상세하다. 구양진경을 쓴 고승은 출가 전에 도사였고, 그 때문에 구양진경은 완전히 불교무공일 수 없어서 순전히 도교의 무공인 구음진경과 같지 않다. 이 고승은 구양진경을 깨우친 후 감히 동료들과 토론하지 못하고 손 가는대로 능가경 행간의 빈곳에 적어 놓았다. 그러나 소림승들은 모두 漢語版 번역본 능가경을 읽었으므로 산스크리트어로 된 이 오래된 경서는 각원이 출현하기 전에는 아무도 들춰보지 않았다. (이건 번역판 해리포터가 있다고 쳐도 영어판을 읽는 것이 좋다는 것일까....)

 

15. 장삼봉

제2회, 곽양은 장군보와 헤어지면서 그가 양양의 자기 부모에게 몸을 의탁하라고 당부한다. 장군보는 호북 무당산에 이르렀을 때 무심코 촌민(村民)의 교화를 받아 그로부터 무당산에 머물면서 구양진경을 부지런히 익힌다. 구판에서는 그가 수년 후에 구양진경을 깨우쳤다고 하고 달마조사가 쓴 것이라고는 하지 않았으며 그 후 또 많은 도가의 경전을 읽어서 결국 무당파를 창건하였다고 하였다. 신수판에서는 앞부분을 따라 그가 구양진경을 깨우쳤고 달마가 지은 것이 아니라는 부분을 삭제하였다. 도가경전을 많이 읽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유극강(以柔克剛), 물극필반(物極必反) 같은 노자(老子)의 올바른 도리를 자세히 썼고, 진무관(眞武觀)에서 출가(이렇게 말하니 진무관이 무당파보다 오래되었구나)하여 마침내 무당파를 창건한다. 장군보가 무당파를 창건하도록 촉진한 인물에는 그 고집불통 심선당칠로, 오만한 기세로 남을 깔보는 곽부가 있었으니 참으로 감개를 느끼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