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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8.03 벽안금조(碧眼金雕) 5-2
  2. 2017.08.03 벽안금조(碧眼金雕) 5-1
  3. 2016.10.13 운중악 생애 및 작품
  4. 2016.10.07 구파무협소설 개설(槪說) 4

벽안금조(碧眼金雕) 5-2

碧眼金雕 2017. 8. 3. 17:54 Posted by 비천호리

호기심이 일자 그냥 이곳을 떠나버리면 안될 것 같은 생각에 홍마를 끌고 시냇물을 따라 나아갔다. 한참을 가자 눈앞에 소나무가 주욱 늘어서 있는데 청록색 나무들이 높이 솟아 있고, 군데군데 키 작은 꽃나무 숲이 있어 제각기 모양으로 시냇가에 펼쳐져 있었다.
작은 호수에 물이 모여들 듯이 물소리가 점차 커져 갔고 양쪽으로 절벽이 높이 솟아 이미 산골짜기에 들어섰던 것이다.
그가 홍마를 끌고 꽃밭 속으로 걸어 들어가자 수면에 푸른 하늘과, 흰 구름, 기이한 꽃들이 거꾸로 비쳐 한 폭의 현란하게 아름다운 그림이 펼쳐져 있었고, 그윽한 향기가 전해와 사람을 취하게 하였다.
그는 자기가 지금 선경(仙境)에 들어와 있는 것 같고 눈앞의 뭇꽃들은 미소를 머금고 있어 모두 살아 있는 예쁜 소녀처럼 느껴졌다. 꽃밭 뒤쪽으로 푸른 송림 뒤쪽을 바라보니 눈처럼 하얀 대리석으로 쌓아 올린 높고 큰 궁전이 보였다. 그 건축물과 그 장식물은 눈부시게 화려하였고 붉은 색 처마에 푸른 기와를 인 고루거각(高樓巨閣)들이 겹쳐져 곧바로 소나무 숲 깊은 곳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는 일시에 눈을 크게 뜨고 뚫어지게 쳐다보며 입을 벌린 채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놀라 얼이 빠져 자기도 모르게 그 대리석 궁전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몇 걸음 걷다가 걸음을 멈추고 혼잣말을 했다.
“오늘은 내가 어째서 이렇게 머리가 맑지 못할까, 이건 분명히 화림(花林)을 이용해 만들어낸 진법인데”
그는 집안에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학문을 익혔기 때문에 진법(陣法)에 관해서는 이미 등봉조극(登峰造極)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이번에는 정신을 차리고 대략 살펴보자 진의 중추를 알아낼 수 있었다. 그가 왼쪽으로 꺾고 오른쪽으로 돌아 모퉁이를 두 번 돌자 바로 흰 돌이 깔린 길 위에 도달하였고 길을 따라 몇 걸음 걸어가기도 전에 한 가운데 커다란 호수를 볼 수 있었다. 호면(湖面)에는 꽃잎이 가볍게 떠있어 맑은 향기를 사방으로 뿌리고 있었고 호수 가에는 수양버들이 바람에 한들거리며 물속에 거꾸로 비쳐 그 풍경이 매우 아름다웠다.
그는 연일(連日) 황량한 지역만 달려왔는데 여기서 이처럼 그림 같은 풍경을 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해 넋을 잃고 천천히 무성한 푸른 풀밭에 앉았다.
“이런 세외도원(世外桃源) 같은 곳에 평생 머물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미풍이 산골짜기에서 불어오니 버드나무 잔가지가 호면(湖面)에 가볍게 스치면서 동그란 물결을 일으켰다. 그때 갑자기 물소리가 일더니 물속에서 한 사람이 머리를 불쑥 내밀었다.
석지중이 깜짝 놀라면서 바라보니 그 사람은 검은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늘어뜨렸고 흠뻑 젖어 옥처럼 새하얀 어깨를 드러냈다.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풀밭에 나타날 줄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듯 놀라 소리를 지르며 물밑으로 잠수했다.
석지중이 일어나 호숫가로 걸어가서는 소리쳐 물었다.
“누구냐?”
호수에서 물소리가 한 번 나더니 버드나무가지 사이에서 매우 아름다운 얼굴이 탐색하듯 고개를 내미는데 검고 긴 머리카락에는 투명하게 반짝이는 물방울이 묻어 있었다. 주위의 분홍색 꽃잎들이 그녀의 옥 같은 피부가 돋보이게 하니 참으로 보는 사람의 눈이 어지럽고 심신이 흔들릴 정도 놀라웠다.
석지중은 놀라 바라보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를 알지 못했다.
그 소녀가 미소를 지었다. 새하얗고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면서 맑고 깨끗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는 누구인가요?”
석지중은 자기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면서 한동안 그녀의 그 성결무사(聖潔無邪)한 웃는 얼굴에 사로잡혀 어떤 대답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 소녀가 석지중의 이런 모양을 보고는 한번 피식 웃는다. 그리고는 물속에서 걸어 나오자 투명하고 깨끗한 옥체(玉體)가 햇빛 아래에서 성결(聖潔)한 빛을 발산했다.
석지중이 대경실색(大驚失色)하였으니 그 소녀가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 마치 천진한 어린애와 마찬가지라는 걸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놀라서 급히 고개를 돌렸다.
물소리가 한 번 나더니 그 소녀가 풀밭으로 올라와 버드나무 가지에 걸쳐 놓았던 비단옷을 들어 몸에 걸치고는 천천히 석지중 쪽으로 걸어왔다.
석지중의 심장이 갑자기 쿵쾅거렸다.
그는 그 소녀가 이미 가까이 온 줄 알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감히 얼굴을 돌리지 못했다.
그윽한 향기를 풍기며 눈팡의 그 아름다운 얼굴이 영리하고 약은 눈빛을 반짝이며 호기심에 차서 그를 바라바고 있었다.
석지중은 그 소녀를 바라보니 일신에 남색 비단옷을 걸쳤는데, 검은 머리카락을 구름처럼 드리우고, 빛나는 눈동자와 새하얀 이(明眸皓齒)에, 참으로 폐월수화(閉月羞花), 침어낙안(沉漁落雁)의 용모였다.
그는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에 놀라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서서 그녀의 꽃처럼 아름다운 웃는 얼굴에 시선을 고정했다.
소녀가 물었다.
“이봐요. 당신은 누구예요?”
석지중이 입술을 한 번 움찔거렸지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소녀가 말했다.
“아! 알고보니 그대는 벙어리였군요! 정말 가련해요!”
석지중이 검미를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벙어리라고 누가 그래요? 나는 석지중이라고 하오.”
소녀가 기뻐하며 박수를 쳤다.
“원래 그대는 벙어리가 아니었네요! 이러면 너무 좋아요. 이봐요, 석지중, 그대는 내가 누군지 알아요?”
석지중은 상대방이 이렇게도 천진난만한 것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그대가 알려주지 않았는데 내가 어찌 알겠소?”
그 소녀는 수려한 눈썹을 찡그리며 속눈썹을 두 차례 깜박이고는 웃으며 말했다.
“나는 동방평(東方萍)이라고 해요. 이봐요! 석지중, 그대는 어떻게 이곳에 들어왔지요?
아빠가 전에 천하의 어떤 사람도 아빠 허락 없이는 감히 이 화원에 들어올 수 없다고 했는데, 그대는 아빠 허락을 받았나요?“
석지중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는 저 시냇물을 건너온 거요. 아! 그대의 집 앞쪽으로 길이 나 있소? 혹시 그 궁전 앞쪽의 골짜기가 길인가?”
동방평이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두 번 깜박이더니 미소를 띠며 말했다.
“우리 아빠는 동방강(東方剛)이라 하고 오빠는 동방옥(東方玉)이라고 해요.
오빠는 오른쪽 산위에 살고 있어요, 이봐요! 그대는 우리 오빠를 알아요?“
석지중이 고개를 젓고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나는 강호에 나가지 않아서 그 분들을 모르오. 아! 여긴 정말 좋소, 그 궁전의 건물은 내가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소이다.”
동방평이 손뼉을 치며 미소를 지었다.
“정말 좋아요! 그대도 이 건물이 좋다고 말하다니. 이봐요! 그대는 이 건물을 누가 구상했는지 아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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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안금조(碧眼金雕) 5-1

碧眼金雕 2017. 8. 3. 17:53 Posted by 비천호리

제5장. 천룡대제(天龍大帝)
양주(凉州)는 지금의 감숙성(甘肅省) 무위현(武威縣)으로 만리장성이 구불구불 뻗어 있는데 고풍스럽고 수수한 성벽은 사막의 모래와 자갈에 부딪혀 어두운 회색으로 거칠게 변하였다.
가을바람에 하얀 억새가 흔들리고 푸른 구름은 시든 풀 위에 잇닿아 있는데 무리에서 떨어진 외로운 기러기가 슬피 운다. 지금은 쓸쓸한 가을이다.
찬바람이 휙휙 소리를 내며 스쳐간다.
황량한 옛길에 바로 이때 붉은색 준마 한 필이 달려온다.
말 위 기사(騎士)의 청의(青衣)가 펄럭이는데 옥수가 바람을 맞듯(玉樹臨風) 멋들어지고 수려(秀麗)한 모습이다.
그가 말을 장성(長城) 아래로 몰아 와 고개를 들어 성벽 위 성가퀴(雉堞)을 슬쩍 바라보고는 몇 걸음 뒤로 말을 물리더니 갑자기 치달으며 말고삐를 채자 한혈마가 길게 울며 성벽 위로 올라섰다.
석지중이 보마를 가볍게 두드려 주고는 천천히 성 위를 몇 걸음 둘러본다.
성벽 위에는 돌로 만든 난간이 있고 가운데는 통로가 있다. 매 30여 장 마다 망루 하나씩이 세워져 있는데 이는 옛날에 봉화를 올리는데 쓰이던 망루였다.
그가 눈길 닿는 데까지 멀리 바라보니 누런 사막은 햇빛 아래 금빛을 띠고 있고 높고 푸른 하늘과 잇닿아 있는 곳이 너무나 광활하여 끝없이 아득하고 멀다.
구름을 뚫고 허공에 떠있는 것처럼 높이 솟은 기련산(祁連山)의 아득히 높은 하늘, 한없이 넓은 시든 풀밭을 생각하니 문득 천지는 고요하고 대지는 무한하여 인간은 이미 한 알의 모래알처럼 미미한 존재에 불과하였다.
그가 낮게 읊조린다.
“황하의 물줄기 멀리 흰 구름 사이에 흐르고, 변방의 외로운 성은 만 길 산 위에 있구 나(黃河遠上白雲間,一片孤城萬仞山)
西戎의 피리는 하필 절양류(折楊柳)를 부는가, 봄바람이 옥문관을 넘지도 못하는데.
(羌笛何須怨楊柳,春風不度玉門關)
가을이 깊어 쓸쓸하고 석지중은 가슴 속의 울적함이 풀리지 않아 한차례 길게 휘파람을 불고는 말을 몰아 장성에서 뛰어내렸다.
장성을 넘으면 바로 영하성(寧夏省) 관내다. 급히 말을 달리자 눈 깜짝할 새에 사막 가운데 이르렀다. 옅은 누런색 모래언덕 무더기가 곳곳에 서있는데 어떤 것은 1장이 넘는 것도 있고, 어떤 것은 몇 척(尺) 정도인 것도 있다. 홍마는 마치 자기 고향에 돌아와 재주를 발휘할 곳을 찾은 듯이 갈기를 세우고 전속력으로 급히 달려갔다.
이런 한혈보마는 대완(大宛) 궁궐에서 길러지던 말로서 발굽에 섬세한 융털 돌기가 나 있어 그것을 수평으로 곧게 뻗어 네 발굽을 모으면 부사(浮沙)를 밟아도 발이 빠지지 않아 마치 평탄한 사면(沙面)처럼 아주 빠르게 갈 수 있어 참으로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는 신구(神駒) 였다.
해 그림자가 점차 이동하자 말은 더 급히 달리니 하늘 높이 공중으로 날아 가듯이 사막 위를 전속력을 달려갔다. 날이 점차 더워지고 해가 하늘 한 가운데 걸리자 뜨거운 기운이 사막 위에 뿜어져 나와 석지중의 온몸이 벌써 흠뻑 젖어버렸고, 한혈마의 몸에서도 한 방울 한 방울 붉은 땀방울이 솟아났다.
그가 사랑스럽게 말목을 가벼이 치면서 말했다.
“어이! 이렇게 빨리 달릴 필요 없어, 좀 천천히 가자!”
홍마는 신준(神駿)하여 과연 속도를 늦추자 석지중이 흰 비단손수건을 품에서 꺼내 말 등을 몇 차례 문지르니 손수건이 온통 붉게 물들어 버렸다.
그는 매우 목이 말라 장소를 찾아 좀 쉬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였지만 사방을 둘러봐도 망망(茫茫) 하고 눈앞에는 온통 모래언덕뿐이라 하는 수 없이 커다란 모래언덕 뒤쪽 그늘진 곳으로 달려가 물주머니를 열고 몇 모금을 마셨다.
말을 내려 홍마에게도 몇 모금을 마시게 한 후 물주머니를 보니 반 정도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서쪽으로 가려면 아마도 2백리는 더 가야 백정해(白亭海)에 도착할텐데 이렇게 태양이 내리쬐는 중에 물주머니의 물이 충분할까?”
그는 등에 메고 있던 장검을 뽑아 땅위의 모래를 파헤쳤다. 대략 1장 정도를 팠지만 젖어있는 모래알마저도 나오지 않자 장검을 거둬들인 후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어 심신을 편안히 하고 피로를 풀었다.
한 시진을 쉰 후 그는 말에 올라 다시 서쪽으로 출발했다.
이번에는 두 시진 정도를 계속해서 나아갔지만 도시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석지중은 저도 모르게 탄식을 하며 자기는 한 모금만 마시고 나머지 물주머니의 물을 전부 홍마가 마시도록 하였다.
그는 쓴 웃음을 지었다.
“이번에는 공교롭게도 물이 한 방울도 남지 않았구나”
몽롱해진 머리를 만져보고는 말 등을 툭툭 쳐서 다시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이번에는 대략 수 십리를 나아갔는데, 갑자기 홍마가 공중으로 고개를 쳐들고 몇 번 냄새를 맡더니 길게 한번 울고는 갈기를 떨치며 북쪽으로 나아갔다.
석지중은 정신을 가다듬은 후 홍마가 수원(水源)이 있는 곳을 발견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홍마가 북쪽으로 달려가도록 맡겨 두었다.
한참을 달려가고 나서 비로소 약간의 새카만 어린 풀이 모래언덕에 자라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다시 한동안 달려가자 모래알이 점점 적어지고 지세(地勢)는 더욱 평탄해지더니 푸른 풀도 많아지기 시작했다.
석지중은 크게 기뻐하였다. 과연 앞쪽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홍마가 네 발굽으로 나는 듯이 달렸다. 눈 깜짝할 새에 한 무더기 작은 나무들을 뛰어넘어 작은 시냇가에 이르렀다.
석지중이 밝게 웃으며 말에서 뛰어내려 물가로 다가가 두 손으로 물을 퍼서 마시니 답답했던 마음이 뻥 뚫린 것처럼 시원해졌다. 머리를 물속에 담가 씻고 나서야 비로소 물주머니를 가득 채우고는 일어섰다.
홍마는 석지중이 일어나는 것을 보자 비로소 가볍게 울며 물속으로 뛰어내려 목을 늘이고 실컷 마시기 시작했다.
석지중이 머리와 얼굴을 닦고 심호흡을 한 후 고개를 돌려 사방을 살펴봤다. 시냇물 양쪽으로 작은 산언덕이 구불구불 뻗어 있는데 갈수록 높아져서 멀리 하늘 끝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는 어떻게 이곳 대막에 이런 세외도원이 있는지 놀랍고 의아하였다.
빽빽한 꽃나무와 붉은색, 흰색 꽃 사이로 푸른 풀밭이 펼쳐져 있고 나무와 꽃들 사이로는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꽃잎 몇 조각이 수면(水面)에 떨어져 내리고 맑고 찬 시냇물은 짙은 향기를 뿌리며 느리게 흐르고 있었다.
석지중이 생각했다.
“지금은 이미 늦가을이 되었는데 이곳은 어찌 봄날처럼 따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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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중악 생애 및 작품

운중악 2016. 10. 13. 20:52 Posted by 비천호리

[이력]
운중악(1930년-2010년), 본명 장림(蔣林), 광서(廣西) 남녕시(南寧市) 출생, 대만 초기격협정파(超技擊俠情派) 무협작가. 1947년 입대(從軍) 하였고, 1949년 대만으로 들어간 후 정보업무에 종사하다 1979년에 퇴역하였다. 1963년부터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80여 작품이 있다. 구우루(舊雨樓) 운중악 란의 소식으로는 운중악 선생은 2010년 10월 20일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생애]
필명 운중악(雲中岳)은 구름에 싸인 높은 산이 멀고 어렴풋하다는 의미에서 취하였는데 그 소탈하고 세상사에 연연하지 않는 인생관을 표현한다. 1930년에 태어났는데 부친이 장사를 하였고 상당한 가문의 명성이 있었다. 형제자매 5인이 있었는데 형, 누나, 남동생, 여동생이 각 1명이었다. 17세에 입대하였고, 1949년 군대를 따라 대만에 들어가 1964년부터 소령계급으로 육군의 모 비밀부서에서 근무하다 퇴역하였다. 1963년 군에 있을 때 운중악은 그 인생의 첫 번째 무협작품 검해정도(劍海情濤)를 써서 여명출판사(黎明出版社)를 통해 출판하였는데 당시 큰 호평을 받았고, 퇴역 후에는 계속 전문적으로 무협소설 창작에 몰두하였다. 무협소설 창작의 동기에 관해서 운중악은 쾌활하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군인 신분으로 장기간 군대를 따라 대강남북(大江南北)을 바쁘게 돌아다니다 일이 없으면 무협소설을 보게 되는데, 그래서 약간의 현역 군인이 무협소설을 쓰는 행렬에 뛰어들게 되었고 곧 많은 군인신분의 많은 무협소설 작가가 생겨나, 네가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마음에서 무협창작에 뛰어들 생각이 생겼다. 특히 첫 번째 무협소설 검해정도가 상당히 잘 팔렸고 게다가 당시 무협소설을 써서 얻는 수입이 다른 직업보다 많았기 때문에 이후 줄곧 무협소설을 창작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성취 및 영예]
1)
무협 연원

당시 대만 무협소설의 다수는 스토리의 시간과 공간배경을 중시하지 않은 관계로 늘 학자들에게 비웃음을 받았다. 운중악은 본인이 역사에 대한 흥미가 많았기 때문에 운중악의 매 부 무협소설은 특히 그 역사배경을 설명하는데 주의하였고, 스토리와 관련된 역사를 고증하는데 매우 많은 노력을 쏟았다. 특히 명대(明代)의 역사적 사실에 대하여는 운중악의 학문적 소양은 일반 명사 전공자에 뒤지지 않았는데 이것이 운중악 무협소설의 첫 번째 특색이기도 하다. 수많은 대만무협 작품의 시간과 공간이 모호한 현상에 관하여 운중악은 이러한 자신의 무협 특색이 당시의 정치금기를 범하는 것이 아닌지 어느 정도 염려하였다. “대만의 무협소설은 대부분 역사적 배경을 중시하지 않았는데 내 생각에는 정치적 금기를 범하게 될까 염려해서일 수 있다(역사의 좋고 나쁨을 평하는 것은 쉽게 연상을 일으키고 심지어는 직접 정치금기와 관계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결코 이 점을 고려치 않았는데 왜냐하면 역사는 바꿀 수 없는 것이고, 정치의 간섭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창작 과정에서 운좋게도 정치 간섭의 곤란을 겪지 않았다. 정치적 금기에 대한 우려는 확실히 수많은 무협작가들이 역사 문제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 한 가지 큰 이유이긴 했지만 그밖에 많은 무협작가들도 시간과 정력을 쏟아 번거로운 역사고증을 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아마도 이것이 더욱 중요한 원인이었지 않을까 생각한다.
 
비록 무협이 허구와 환상에 의지하여 성인동화로 불리기는 하지만 운중악은 가공의 스토리와 인물 가운데서 최대한도로 실제를 추구하였다. 역사 고증을 중시한 외에도 소설 중의 무예 묘사에 대해서도 일초 일식 모두 그 개인의 실제 능력이 있어 상상의 기초로 삼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무술을 익혔고 군에서 배우고 가르친 것도 모두 살인의 기술이었기 때문에 나의 무협소설 중의 초식 명칭은 단지 하나의 형용사이고 꾸며낸 것에 불과하지만  초식이 내포하는 묘사는 완전히 중국 무술에 근거한 것이다."

민국 이래로 무협 작가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진정으로 무예의 도를 아는 무협작가는 많지 않았다. 평강불초생 이후 필세가 웅건하고 생동감이 있으면서 또 문장으로써 무술 실력을 보일 수 있는 무협작가는 실로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이다. 운중악은 어려서부터 무술을 익혔고, 또 군대에서 비밀공작 요원의 훈련을 맡은 것을 보더라도 무예가 결코 평범하지 않았고 실제 고수의 경지에 다다랐기 때문에 그의 무협소설 중의 무술 묘사도 더욱 진실하여 믿을만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운중악이 역사와 무예에 대한 진실을 추구하고, 실제를 좇았던 관계로 운중악은 특히 유잔양과 김용 이 두 분의 동업(同業) 명가의 무협작품을 좋아하였다.
 
2) 인품과 철학
비록 일신에 사람을 놀랠만한 무예를 가졌지만 운중악은 도리어 더욱 겸손하게 사람을 대하였다. 그가 스스로 말한 인생관은
“사람은 절대로 스스로를 매우 뛰어나다고 여겨
서는 안되며 반드시 사회 가운데 녹아드는 방법을 알아야만 한다. 다른 사람과 함께 살면서 지나치게 튀어서도 안되지만 너무 나약해서도 안된다. 요컨대 사회에 녹아들어야 하고, 남을 위압(威壓
) 해서는 안되지만 너무 패기 없이 연약해서도 안된다.”

 이러한 재주를 뽐내지 않으면서도 정의를 좇아 용감하게 나아갈 수 있는 사상도 바로 운중악 무협소설 중의 출중한 기개를 가진 협객의 원형이다. 일찍이 사회적으로 무협소설을 경시하는 목소리에 대하여 운중악은 매우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그만의 독특한 관점을 가지고 있다.
“비록 무협소설의 주요 목적이 사람들에게 소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외에도 현대인으로 하여금 무협소설을 통하여 고대의 역사 및 생활 상황을 알 수 있도록 한다. 나는 무협소설이 중국문학 가운에 일정한 지위를 차지한다고 믿는다. 미국의 서부소설처럼 여전히 그 창작자 및 독자가 있다. 나는 그 종류에 상관없이 어떠한 문학작품도 균등하게 사회교화의 기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중 작가 개인의 사물에 대한 관점의 차이성에 상관없이 사회에 유익하고 받아들여질 수 있기만 하다면, 총괄적으로 말해서 나는 다원화된 문학 작품과 발전에 찬성한다. 무협소설은 내 생각에 한편으로는 이와 같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타 문학작품과 마찬가지의 특별한 의의 및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

 
많은 작가의 생애와 그들이 쓴 작품은 일정한 정도의 관련이 있고 무협소설가에게도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 예를 들면 방파출신인 유잔양은 녹림조직 간의 은원과 다툼에 뛰어났고, 무술을 익히고 가르쳤던 운중악은 당연히 소설 중에 자신의 그림자를 써낼 수 있었다. 그는 자기 일생의 무협소설 창작 중에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경화매영(京華魅影)으로 여겼는데 원인은 바로 그 중의 스토리 묘사와 그 자신의 삶의 대부분을 보낸 군 생활이 서로 비슷했기 때문이며, 많은 소설 중의 등장인물에서도 모두 그 자신의 영향을 찾을 수 있었다.

 진품 목록

No대만판 제목주인공비 고
1검해정도(劍海情濤)

매문준(梅文俊) 
2혈검난심(血劍蘭心)  
3패해풍운(霸海風雲)화일운(華逸雲)  
4봉적정조(鋒鏑情潮)임군가(林君珂)  
5오소산하(傲嘯山河)파일운(華逸雲)패해풍운(霸海風雲)續集,이전 제목 패해비룡(霸海飛龍)
6검소황원(劍嘯荒原)축중원(祝中原)  
7천애로(天涯路)(天涯江湖路사마영(司馬英)이전 제목 무림삼절(武林三
), 망혼객(亡魂客)
8망명객(亡命客)  
9망명지가(亡命之歌)채문창(蔡文昌)이전 제목 망명강호(亡命江湖)와 망명객(亡命客)
10고검섬정기
(古劍懺情記)
갈춘범(葛春帆)이전 제목 와룡등운(臥龍騰雲)
11절대효웅(代梟雄)추람(秋嵐), 추뢰(秋雷)  
12대지등룡(大地龍騰)용중해(龍中海)  
13검해등룡(劍海騰龍)    
14검영한(劍影寒)하안평(夏安平)  
15횡검광가(橫劍狂歌)오추화(吳秋華)이전 제목 구환등교(九環騰蛟), 유신검협(遊神劍俠)과 풍진호협(風塵豪俠)
16팔황용사(八荒龍蛇)시철(柴哲)  
17사해유기(四海遊騎)    
18갑검응상(匣劍凝霜)애문자(艾文慈)이전 제목 갑검응상(匣劍凝霜), 탈명금침(奪命金針), 비검비홍(秘劍飛虹)
19비간비홍(秘簡飛虹)    
20철담난심(鐵膽蘭心)백청산()이전 제목 정천연옥(情天煉獄)
21비익정원(比翼情鴛)    
22검루정관(劍壘情關)임화(林華)  
23고검정심(故劍情深)    
24용양기사(龍驤奇士)고상(高翔)이전 제목 박호수(縛虎手)
25검저양진(劍底揚塵)방사정(方士廷)  
26협영홍안(俠影紅)최장청(崔長)  
27청봉경뢰(鋒驚雷)인패(印佩)최초 毅力版 자모금사(子母金梭) 4책, 후에 연화인패(憐花印佩) 3책과 취생문사(醉杖門生
) 3책으로 나눠짐.
28마화정염(魔火情焰)   
29분야용상(莽野龍翔)주영욱(周永旭)이전 제목 분야신룡(莽野神龍)
30초야기인(草野奇人) 이전 제목 단혼혈비파(斷魂血琵琶)
31만장호정(萬丈豪情)양옥기(楊玉琦)이전 제목 옥사(玉獅), 광협사검(狂俠邪劍)과 풍운오검(風雲五劍)
32초망방화(草莽芳華)두홍(杜弘)이전 제목 은한고성(銀漢孤星)
33대자객(大刺客)두언() 
34일황인봉(逸凰引鳳)순문상(荀文祥)  
35반룡거호(蟠龍踞虎) 원제 용쟁호투(龍爭虎)
36환검정화(幻劍情花)장이평(莊怡平)  
37정쇄무산(情鎖巫山)   
38간과옥백(干戈玉帛)양가화(楊家驊)채지(蔡智)나극근(羅克勤)단편모음집,이전 제목 무정도객유정천(無情刀客有情天) 제2부 제3책
39협영평종(俠影萍蹤)잠성오(岑醒吾)
이보응(李報應
)
서영강(徐永康
)
단편모음집,이전 제목 무정도객유정천 (無情刀客有情天) 제2부 제2책
40와호장룡(臥虎藏龍)비문유(費文裕)
구여백(丘如柏
)
첨운(詹雲
)
단편모음집,이전 제목 무정도객유정천 (無情刀客有情天) 제2부 제1책
41고도조안색(古道照)위가창(韋家昌)
담정정(譚正廷
)
오현(吳玄
)
단편모음집, 이전 제목 도기감춘정(刀氣撼春情
) 제3부 제1책과 초택잠룡(草澤潛龍)
42포효변성(咆哮邊城)석성(石誠)
하남휘(夏南輝
)
음신(陰神
)
단편모음집, 이전 제목 도기감춘정(刀氣撼春情) 제3부 제2책과 초택잠룡(草澤潛龍)
43초담잠룡(草澤潛龍)양류청(楊柳)
고영의(高永毅
)
유지백(柳志柏
)
단편모음집,이전 제목 도기감춘정(刀氣撼春情) 제3부 제3책과 초택잠룡(草澤潛龍)
44혈한요호(血漢妖狐)탁천위(卓天威)이전 제목 철한요호(鐵漢妖狐)
45화봉황(火鳳凰)송서운(宋舒雲)이전 제목 여랑자(女浪子)
46사신전(邪神傳)신문소(辛文昭)이전 제목 냉혈사신(冷血邪神)
47강한도룡(江漢屠龍)왕국화(王國華)  
48강룡과강(龍過江)사해보응신(四海報應神)이전 제목 고검강룡(古劍), 광검무영(狂劍無影)
49풍운록(風雲錄)요문중(姚文仲)이전 제목 소신마(小神魔), 소마신(小魔神
), 풍운영렬전(風雲英烈傳)
50냉검비연(冷劍飛鶯)요릉풍()이전 제목 능풍연비(風飛燕), 냉검비응(冷劍飛鷹)
51호한군영(湖漢群英)교관화(喬冠華)이전 제목 호해군영(湖海群英)
52망원마표(莽原魔豹)장가전(張家全)이전 제목 산야마표(山野魔豹)
53벽혈강남(碧血江南)장추산(張秋山)  
54무정도객유정천(無情刀客有情天)이구여(李九如)이전 제목 차웅일월도(雌雄日月刀)와 호화인(護花人)
55사해응양(四海鷹揚)장윤중(張允中)이전 제목 미봉축룡(美鳳逐龍)
56홍진벽옥(紅塵碧玉)이굉달(李宏達)  
57살수춘추(殺手春秋)옹불용(雍不容)이전 제목 한해정천(恨海情天)
58벽력도검정
(霹靂刀劍情)
허언방()이전 제목 풍진괴협(風塵怪俠)
59교삭박룡(蛟索縛龍)강보허(薑步虛)이전 제목 절검구혼(劍勾魂), 틈도강호(闖道江湖)
60경화매영(京華魅影)이평(李平)  
61검저정천(劍底情天)구성하(丘星河)이전 제목 아독행(我獨行), 금검용표(金劍龍鏢)
62검재천애(劍在天涯)우추전(禹秋田)이전 제목 환검비홍(幻劍飛虹)
63용호풍운방
(龍虎風雲榜)
주능운()이전 제목 도기철골(刀氣澈骨), 백료도(百了刀)
64초망쟁웅(草莽爭雄)장계무(張季武)이전 제목 구화성풍(九華腥風), 장의팔장(仗義八將)
65풍진세월(風塵歲月)희현화(姬玄華)이전 제목 오악광객(五嶽狂客)
66팔극유룡(八極遊龍)양일범(楊一凡)이전 제목 난세유룡(亂世遊龍)
67호소금릉(虎嘯金陵)유사(柳思)이전 제목 냉면도객(冷面刀客)
68탁세정원(濁世情鴛)계성한(桂星寒)  
69호해용사(湖海龍蛇)왕약우(王若愚)이전 제목 금문성녀(金門聖女)
70호담웅풍(虎膽雄風
)
조세기(曹世奇)  
71초망영웅(草莽英雄)곽연(霍然)이전 제목 사도소마(邪道笑魔) 살벌(殺伐)
72마검경룡(魔劍驚龍)황자연(黃自然)  
73맹룡위봉(猛龍威鳳)팽강(彭剛)이전 제목 환영정도(幻影情刀)
74교연웅응(矯燕雄鷹)나원(羅遠)  
75벽력천망(霹靂天網)우문빈(宇文斌)  
76도기감춘정
(刀氣撼春情)
고대원(高大元)이전 제목 마녀정조(魔女情潮)
77매영마종(魅影魔蹤)양명(楊明)  
78봉인기정(鋒刃綺情)조신(趙辛)이전 제목 무정도객유정천(無情刀客有情天) 제1부 고검강룡(古劍)
79정검경화(情劍京華)이계옥(李季玉)  
80검영미종(劍影迷蹤)양굉(梁宏)이전 제목 검영미정(劍影迷情)
81열화정도(烈火情挑)  미출판
82강호엽인(江湖獵人)부가위(符可爲)6부의 단편을 모은 작품. 운중악은 진품이 아니라고 부인
83무림정구(武林情仇)팽정종(彭政宗)4부 단편을 모은 작품, 운중악은 진품이 아니라고 부인

 
출처 : 百度百科 http://baike.baidu.com/view/248745.htm

구파무협소설 개설(槪說) 4

무협 일반 2016. 10. 7. 18:22 Posted by 비천호리

의외로 북방에서는 주정목이 나타나 남파 고명도의 풍격을 참신한 수준으로 발전시켰는데 명망이 있으면서 살아남은 매우 드문 일로서 남파의 풍격을 다시 뛰어나게 빛나도록 하였다. 당시 독자의 마음속에서 주정목의 지위는 북파 4대가만 못했는데 그 주요원인에는 두 측면이 있다. 첫째, 그에게는 <촉산검협전>, <십이금전표>, <응조왕>, <학철 5부작> 같이 충분히 특색을 발휘할 수 있고 자신의 풍격을 모아 대성(大成)한 장편대작이 없었기 때문에 독자의 특별한 주의를 끌 수 없었고 만약 4대가에게 단지 <만황협은>, <투권>, <무림협종>, <낙양호객(洛陽豪客)> 류의 일반 장편작품만 있었다면 그들이 독자에게 특별히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인지 여부도 대성(大成) 문제이다. 둘째, 주 씨의 작품은 전편에 흐르는 기세에서 4대가에 비해 조금 뒤떨어지는데 작고 정교함(小巧) 혹은 청아하고 수려함(淸麗)에 가깝고 웅혼함과 깊음이 조금 적어 어떤 때는 어느 정도 소심함을 드러내고 약간은 으스대는 느낌을 지니고 있다. 이는 그의 소양, 재능과 기백이 얼마간 부족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작품은 약 17부이고 그중 <칠살비(七殺碑)>가 가장 유명한데 이 작품은 1949년 봄에 출판되었고 아마도 그의 작품 중 압권(壓卷)일 것이다. 60~70년대 이래 주정목은 대만, 홍콩 연구자에게 중요시 되었는데 그 원인은 바로 섭홍생이 “주 씨가 일찍이 처음으로 백화(白話) 장회(章回)소설(몇 개의 회로 나누어 이야기를 서술한 장편소설)을 시작하였고 그 소설의 필법, 내용이 50년대 홍콩, 대만의 무협작가들에게 많이 모방되었으며 그 때문에 ‘신파무협소설의 시조’라는 평판이 있었다”고 말한 바와 같다. 구파무협소설의 흐름이 가라앉은 후 10여년 만에 주 씨가 대만과 홍콩 지기(知己)의 애정 어린 시선을 받게 되었는 바, 천리 떨어진 곳에 지음(知音)이 존재하였으니 불행 중 크게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춘우는 주정목에 비하면 더욱 불행하였는데 40년 이래 줄곧 푸대접을 받았고 점차 세상에서 잊히게 되었다. 그렇지만 30~40년에는 그도 무단(武壇)에서 지위를 다투던 명작가였다. 서 씨도 자기의 분명한 개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의 작품은 “설서(說書)” 느낌이 매우 짙었고, 늘 소설을 시작하면서 설서인의 말투로 첫 등장인물이 일단(一段)의 첫 대사를 말하고 또한 표(表), 백(白), 평(評)을 운영하여 하나로 융합한 창작기교로 희극적인 장면을 그려내는데 매우 뛰어났다. 그의 소설은 이야기의 스토리가 일반적으로 복잡한 편은 아니었지만 변화가 많고 표현을 완곡하게 쓸 수 있어서 독자의 흥미를 끌만 하였고 더욱이 그의 작품에는 특히 민간에서 예부터 전해오는 이야기의 정취가 있어 사람의 마음을 끌리게 하였다. 서 씨의 작품은 대략 12종이 있는데 그중 <벽혈원앙(碧血鴛鴦)>이 비교적 유명하다.
 
구파무협소설은 30여년간 성행하여 쇠하지 않았고 대개 신문·잡지에 연재되어 그 작자 및 작품의 수량을 정확하게 통계 내기는 어렵지만 책으로 인쇄된 것은 8백여 종, 작가는 2백여 명이었다. 40년대 후기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망소루주(望所樓主) 등 상당한 재능을 갖춘 약간의 신예가 나타나기는 했지만 역사적인 원인으로 인해 그들은 새로운 한 세대의 대가(大家)로 미처 성장하지 못하였고 구파무협소설 예술의 고봉(高峰)은 북파 4대가의 손으로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나는 북파 4대가의 성취를 말하지만, 결코 그들의 작품이 완전하여 결함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그들의 작품은 매 편이 모두 좋다고 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장 좋은 작품 중에도 매장(每章), 매절(每節)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이는 창작기교의 문제는 전혀 아니며 이러한 상황을 초래한 원인은 매우 복잡하다.
 
먼저 사상(思想) 측면에서 보면 결코 진정으로 무협소설의 예술적 가치를 중시하지 않았다. 청말(淸末)부터 민국 초기 이래 서방의 문예이론이 물밀듯이 중국으로 들어와 아주 많은 사람들을 서방문예에 대해 맹목적으로 숭배하도록 만든 동시에 중국의 전통문화에 대해서도 일률적으로 부정하는 태도를 취하게 만들었다. 전통회화(繪畵), 한방의학을 부정하는 언론이 수십년 동안 유행하여 약해지지 않았고 소설 방면에서도 이와 같은 상황이었다. 이는 당시에 이미 매우 유행한 관념이 되어 강대한 사회 여론적 압력을 형성하였고, 무협소설은 더욱 더 뭇 사람들의 비난 대상이 되었다. 북파 4대가는 사상적으로도 이러한 사조(思潮)의 영향을 깊이 받았기 때문에 그들의 무협소설 창작은 대부분 생활의 압박에 의한 것이었지 내심으로는 결코 이러한 종류의 일에 종사하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백우는 평생 무협소설을 썼던 것을 자신의 치욕으로 생각했고, 환주루주는 심지어 이전에 신문에 게재한 저작을 공개적으로 검토하고 자신의 과거를 참회하였다. 정증인은 스스로 “내가 쓴 이것은 문예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하였고 왕도려도 “고상한 지위에 오르기 어렵다”고 자인하였다. 이러한 사상 상태는 그들 작품의 예술적 품질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그들의 작품은 대부분 먼저 신문·잡지에 연재되었는데 종종 신문·잡지의 판매 상황에 따라 요구를 받으면 대충 결말을 짓거나 혹은 길게 늘이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계획할 수 없었고 이는 쉽게 구성이 산만하거나 혹은 용두사미가 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또한 북파 4대가의 당시 생활형편이 모두 좋지 못해 종종 동시에 몇 부의 연재소설을 쓰지 않으면 안되었으므로 바빠서 숨돌릴 사이도 없을 정도였다. 하루 만에 매 작품별로 각각 1천자 가까이 써야 했고 이리하여 여기저기서 긁어모아 그럭저럭 버티는 현상을 피하기 어려웠다. 예를 들면 환주루주의 <만황협은>은 시작 부분 2집(集)까지는 아주 잘 썼으나 3집 이하는 명백하게 <야수폭언(野叟曝言)>을 그대로 베껴 그럭저럭 문장을 만들었고, 백우의 약간의 작품은 심지어 근본적으로 그의 자필(自筆)이 아니기도 하였다. 백우가 후에는 무협소설 쓰기를 매우 싫어하자 출판상이 다른 사람의 원고를 가지고 와서 그가 서명(署名)해 발표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그는 늘 집안사람의 간청에 따라 생계를 잇기 위하여 황급히 한 번 들춰본 후 본심에는 맞지 않지만 자기의 명의로 출판하는데 동의하였던 것이다. <용설검(龍舌劍)>, <경홍기(驚鴻記)> 등이 바로 그러한 경우였다.
 
정증인은 한창 쓰고 있는 소설을 간단한 표로 늘어 놓고 벽에 부착한 후 출판담당자가 찾아와 원고를 재촉하면 그는 담당자를 앉아서 기다리도록 하고는 표에서 어디까지 썼는지 좀 보고는 황급히 붓을 들어 한 단락을 이어 쓴 후 이를 알렸다. 그들이 바로 이러한 정신과 생활의 이중 압박 하에서 창작을 하면서도 적지 않은 명작을 써냈는데 이는 실로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