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파무협소설 개설(槪說) 2

무협 일반 2016. 10. 5. 20:30 Posted by 비천호리

북파무협소설 4대가 중 제일 먼저 우뚝 솟은 사람은 환주루주이다. 그는 1932년 7월에 <촉산검협전(蜀山劍俠傳)> 발표를 시작하여 1948년까지 50집(集)을 다 내놓음으로써 일단락을 지었다. 전후로 17년이 걸렸고 이어 쓰고 이어 발표하였는데 장기간 흥성하고 쇠하지 않아 민국 통속소설사상 극히 드문 특별한 사례이다. 환주루주는 그만의 분명한 개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자연의 풍광(風光)을 매우 좋아하여 명승고적을 두루 돌아보았고 이것은 그의 소설 창작의 성공에 중요한 작용을 하였으며 자연 풍광미에 의해 격발된 시정(詩情)은 그를 성공의 길로 이끌었던 것이다. 환주루주의 성공은 단번에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 하나의 탐색과정이 있었다. 그는 무협소설을 써달라는 요청에 응하면서 내심으로는 도리어 자연풍광이 격발한 시정을 품고 있었으나 현실의 무협 스토리는 언제나 자연풍미와 천의무봉(天衣無縫)하게 결합될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주관적인 바램과 객관적인 조건을 조화되도록 할 수 있을까?
 
그가 필치를 신화(神話)의 경계로 깊이 뻗게 되어서야 비로소 가장 훌륭한 돌파구를 찾아내게 되었고, 명산대천(名山大川)의 웅장함 혹은 빼어난 아름다움은 신화(神話) 이야기의 기묘함과 일체로 융화되어 양자가 서로 도와 장점을 더욱 잘 돋보이게 하였다. 그러니까, 환주루주가 무협소설 창작을 개시하였을 때 처했던 주관적, 객관적 조건으로 말하자면 신괴(神怪) 무협소설 형식을 채용한 것은 그에게 있어서는 필연적이었으며 이것이 그가 찾아낼 수 있었던 가장 훌륭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이점을 이해한다면 “황당하다(荒誕)”는 두 글자로 경솔하게 그의 중국문학 사에 있어서의 특수한 공헌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아름다운 경치와 신화를 하나로 융합하는 시적인 경계는 절대로 쉽게 도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작자가 매우 풍부한 상상력을 갖추고 있을 것을 필요로 하는데 환주루주가 바로 이러한 재능을 구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환주루주도 단지 상상에만 의지하였던 것뿐만은 아니었고 이 상상은 해박하고 심후한 학식의 기초 위에 세워졌으며 고서를 널리 읽고, 전고(典故)를 숙지하고 있는 외에도 그는 발길이 이른 곳의 풍속에도 유의하였다. 그런 까닭에 그의 소설은 절대로 단지 “신비롭고 기이함(神奇)”, “황당함(荒誕)” 으로 승리한 것만이 아니라 그 포용량(包容量)도 매우 커서 이를테면 사천((四川), 호남(湖南), 운남(雲南), 귀주(貴州) 민간의 혼례와 장례, 식용물(食用物), 의약(醫藥), 무고(巫蠱, 저주로 다른 사람을 해하는 사술) 따위를 때때로 아무거나 집어들어 붓을 움직이더라도 매우 흥미 있는 내용이 되어 마치 산음도(山陰道, 會稽城 서남쪽 교외의 풍경이 아룸다운 길)를 걸으며 아름다운 풍경을 다 볼 수 없듯이 독자로 하여금 무궁무진한 흥미를 느끼도록 만든다. 환주루주 필하(筆下)의 검선(劍仙)은 대부분 도교도(道敎徒)이고 그의 작품의 풍격도 상당히 (붕새가 남해로 옮겨가려 하는 때에) “날개가 물 위를 쳐 3천리에 이르고 회오리바람을 일으켜 9만리를 날아오른다(水擊三千里 摶扶搖而上者九萬里)”는 유풍(遺風) 있으며, 사상(思想) 상으로도 약간은 “(저 가장 올바른 길을 가는 사람은) ”태어난 그대로의 모습을 잃지 않는다(不失其性命之情)”의 의미가 있어 자연히 진정(眞情)이 드러났고 소설 중에 나오는 약간의 불교도들조차도 이러하였다. 이러한 자연스러움은 작자 자신이 감정을 중요시하는 점을 드러낸 것이다.
 
그밖에 민국 무협소설 작가 가운데 환주루주는 어쩌면 중국 전통문화의 특색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었던 작가일지도 모른다. 그의 소설에서는 시종 유(儒), 도(道), 선(禪)의 중국적 특색을 유지하고 있고, 그의 그 평이하고 알기 쉬운 반문언(半文言) 반백화(半白話) 문장의 풍격(風格)에도 조금의 부자연스러움도 없었다. 환주루주는 일생 동안 30여 부의 무협소설을 썼는데 그의 뛰어난 재능은 <촉산검협전>과 <청성십구협(靑城十九俠)> 두 부의 후세에 전하는 대작 중에 집중적으로 표현되었는데 일반적으로 사실주의적인 무협소설은 이러한 자연적인 시경(詩境)에 도달하기 매우 어려웠으며 이것은 몇 수의 시를 끼워 넣는다고 해서 결코 시화(詩化)”로 가장될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환주루주를 “재능이 넘친다(才華橫溢)”고 칭찬한 것은 결코 과찬이 아니다. 그의 소설을 다른 사람이 모방하기 매우 어렵다는 것이 바로 분명한 증거이다.
 
환주루주의 뒤를 이어 백우, 정증인, 왕도려가 1938년 손을 맞잡고 일어나 북파 무협소설의 사회적 영향력을 매우 크게 확대하였다. 백우는 일찍이 1927년에 무협소설 창작을 시험해보았는데 장한수(張恨水)의 초대에 응하여 <청림칠협(靑林七俠)>을 썼으나 독자의 주목을 끌지 못하였고, 30년대 중기에 또 연재 무협소설 <황화겁(黃花劫)>을 써서 “행매(杏呆)"라는 필명으로 발표하였으나 사회의 중시를 받지 못하였다. 항일전쟁이 발발한 후 백우는 생활의 압박으로 인하여 다시 예전에 익혔던 솜씨를 발휘하여 1938년 2월부터 천진의 <용보(庸報)>에 <십이금전표(十二金錢鏢)를 연재하였고 비로소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 소설은 최초에 정증인이 초안을 잡은 후 백우의 첨삭과 윤색을 거쳐 발표되었으나 제20회의 반 정도를 썼을 때 정 씨에게 다른 생계수단이 생기는 바람에 동시에 돌볼 수 없게 되자 비로소 백우가 독자적으로 이어받아 쓰게 되었다. 이런 까닭으로 이 소설 첫머리의 “겁표(劫鏢)” 부분에는 여전히 정 씨의 흔적이 남아 있다. 전서(全書)는 모두 17집(集)이며 제15집, 제16집은 천진의 <천성보(天聲報)>에 연재되었는데 이름을 <표조청봉(豹爪靑鋒)>으로 바꾸었다. 제17집이 1946년 천진의 <건국일보(建國日報)>에 연재될 때 다시 이름을 <풍림표변기(豊林豹變記)>로 바꾸었다.
 
<십이금전표>가 백우의 출세작이기는 하지만 백우 무협소설의 특색을 가장 잘 대표하는 것은 응당 <투권(偸拳)>과 <연표기(聯鏢記)>여야 한다. 민국 무협소설 작가 가운데 환주루주가 중국전통 문화의 특색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었던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백우는 분명히 “5·4” 신문화운동의 영향을 더욱 많이 받아 소설에서 현실주의의 방법을 구현하고 현실 인생에 근거하여 사람과 일을 묘사하려고 노력하였던 사람이다. 백우는 19세에 부친이 세상을 떠난 후 사람들에게 냉대를 받을 대로 받았기 때문에 세상이 불공평하고, 또 그것을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을 깊이 느꼈기 때문에 일종의 눈물을 머금은 유머를 일상적으로 사용하였고, 상반되는 문구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본래의 생각을 표현하고(正話反說), 비극을 기쁘게 씀으로써 엄숙한 문자의 표면상의 뜻의 뒷면에 바로 사회에 널리 퍼져 존재하는 황당한 현상을 두었던 것이다. 귀중한 것은 백우의 야유(揶揄)와 풍자는 그 중용(中庸)의 도를 잃지 않아 <관장현형기(官場現形記)> 같은 부류의 약간은 도를 넘은 작품에 비해 더 함축적이다. 그 후에 백우를 모방한 얼마간의 사람들은 지나치게 도를 넘어서 야유가 악의에 찬 조롱으로 흘렀고, 백조를 새기다가 실패하여 집오리를 닮는다든가(刻鵠類鶩), 범을 그리려다 개가 되었다든가(畵虎成犬) 하여 함께 놓고 말할 수 없었다.
 
백우는 결코 적나라하게 독자에게 설교하지 않았고 깊이 파고 들어 사람들의 인심과 세상 물정을 전사(傳寫) 하였다. 만물의 형상에서 방법을 구하고 다른 사물을 빌어 본뜻을 기탁(寄託)하여 독자에게 음미할 수 있는 언외의 뜻(言外之意)을 남겨 주었고, 함축하고 있는 예술정취가 매우 풍부하였기 때문에 그의 무협소설을 읽으면 저절로 자신의 생활경력을 떠올리게 하였고 그리하여 작자의 정신과 소통하고 공명(共鳴)을 일으켜 무협소설 그 자체에 일종의 예술적 매력을 생기게 하였다. 마치 환주루주가 필치를 신화에 뻗은 것처럼 백우는 필치를 사회를 향하여 뻗었는데 그의 주관적인 조건과 객관적인 환경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것일 수 있으며 일종의 필연적인 것이었다. 백우가 사회의 어두운 면을 쓴 것은 환주루주가 자연풍광을 쓴 것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억누를 수 없는 열망이었고 한 번 기회가 있으면 그것을 빌어 자신의 진의를 표명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환주루주가 억누를 수 없었던 것은 애정이었고 백우의 그것은 도리어 한(恨)이었다. 환주루주의 신괴무협소설은 많은 사람들에게 “지극히 황당하다(荒誕至極)”고 배척받았지만 세심한 독자는 스스로 그 중에서 그의 현실 인생에 대한 애정이 갈수록 두터워지는 것을 깊이 음미할 수 있었다. 백우의 사회무협소설은 완전히 현실의 세상인심과 물정에 발을 붙이기는 했지만 세심한 독자는 그 중에서 그가 세상사의 황당함을 드러내 보였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단지 표현하는 방법이 같지 않았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