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엄마가 지금까지 싸워도 못 이기는데 빨리 나서서 저 언사군이라는 자를 붙잡아요!“
사도화가 그말을 듣고도 여전히 언사군에게 나아가지 않았다.
매옥이 한 손으로 장검을 뽑아 들고 웃음을 지으며 사도화에게 말했다.
”만배(晩輩) 매옥이 전배(前輩)의 고초(高招)를 가르침 받겠습니다.“
사도화가 손을 뒤집어 이장(二掌)을 쪼개내자 매옥은 장검을 한번 낮추고 한번 올려 사도화가 공격한 장력을 되돌려 보냈다.
사도화는 본래 매옥이 일격도 감당하지 못할 줄 알았다가 매옥의 검법이 이처럼 정묘하고 기이한 것을 보자 어리둥절하였다. 사도화도 젊었을 때 천하를 주유(周遊)하여 견문(見聞)이 넓었는데 매옥의 검초가 매우 눈에 익었다. 이 세상 사람 가운데 어자결(御字訣)의 요점(要點)을 장법 상으로 얻은 사람은 당년에 그에게 대전구식(大顚九式)을 전수해준 일양객(一陽客)이지만, 검법 상으로는 남해(南海) 철면관음(鐵面觀音)을 첫손가락에 꼽았다.
보아하니 이 매옥은 철면관음의 도제(徒弟) 아니면 도손(徒孫)이리라!
돌연 홍갈자 사교랑이 그때 언사군이 뿌리친 사전성월(斜顫星月) 수법에 의해 7, 8장(丈) 바깥으로 나가떨어지고 백의소년이 놀라 부르짖는 것이 보였다.
사도화가 놀랐다.
언사군의 이 일초는 바로 대전구식 중의 신법이어서 보자마자 잘 알 수 있었지만, 언사군의 신형의 교묘함은 그로서도 미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가 어리둥절하는 사이에 백의소년이 소리를 질렀다.
”아빠! 빨리 엄마 구해줘요“
사교랑은 화가 나서 온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도 이것이 대전구식 가운데 정묘한 초식이라는 걸 알아보았다.
다만, 그녀는 현재 세상에서 사도화만이 구사할 줄 알고 있었고 사도화는 자기 아들한테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거꾸로 그걸 언사군에게 전수하다니!
그녀가 차가운 어조로 백의소년에게 말했다.
”홍아(鴻兒)! 검을 가져오너라!“
그 백의소년이 앞으로 나아가 검을 사교랑에게 건넸다.
사교랑이 코웃음치며 말했다.
”이것은 네 아빠가 그에게 가르친 대전구식이다!“
사도화가 급히 언사군에게 다가갔다.
매옥이 검을 내어 가로막으면서 말했다.
”전배(前輩)! 걸음을 멈추십시오!“
사도화는 단죽군의 네 제자 가운데 가장 걸출한 사람이었다. 자질이 양호했을 뿐만 아니라 운 좋게 기회도 만나서 대전구식에 있어서 그와 필적할 자가 없었고, 그의 혼원장력(混元掌力) 역시 그에 미칠만한 자가 거의 없었다.
그의 장식(掌式)이 한번 흡수하고 한번 거두어들이는 사이에 가볍게 매옥의 장검을 밀어내고 언사군을 향해 걸어갔다.
사교랑이 화가 나 사도화에게 말했다.
”당신 참 좋은 일을 했구먼, 자기 아들한테는 대전구식을 전해주지 않으면서 반대로 다른 사람에게 전수해서 그자가 제 마누라와 아이를 때리게 하다니!“
사도화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넋이 빠진 듯 언사군만 바라보다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고 언사군에게 물었다.
”이 일초를 어디서 배웠느냐?“
언사군이 태연하게 웃었다.
”그건 물을 필요 없습니다.“
사교랑이 옆에서 듣기에도 기괴하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언사군이 배운 건 결코 사도화가 전수하지 않은듯한데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사도화는 언사군이 대답하지 않는 것을 손을 써 전광석화처럼 언사군의 손목을 잡아 언사군을 바깥으로 던져버리려고 했다. 그것은 바로 대전구식 중의 일초 전강도해(顚江倒海)였다. 언사군은 몸이 던져지려는 순간 길게 한번 숨을 들이마시고 사도화의 오른손이 풀리자 신형을 꼿꼿이 세워 거꾸로 사도화의 오른손을 붙잡았다. 바로 천지역위(天地逆位)의 일초가 또 시전 되었다.
” 흥” 사도화가 코웃음을 쳤다.
비록 언사군이 그를 던지지 못했지만 그 역시 언사군을 던지지 못했던 것이다.
언사군이 신형을 떨어뜨려 미처 지면에 닿기 전에 사전성월(斜顚星月)의 초식을 또 펼쳤다.
그의 신형이 날며 회전하는데 따라 사도화가 세 번 공중제비를 넘었다.
사도화는 언사군에 의해 나가 떨어지자 마음속으로는 이미 언사군이 고인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비해 자기는 단지 구식(九式)을 알고만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자신에 비해 언사군은 변화가 자유자재인데, 현 세상에 이런 정도로 대전구식에 정통하여 언사군을 가르친 고수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당연히 언사군이 대전구식을 동중객(洞中客) 한테 얻은 것을 알지 못했다. 일양수(一陽叟)는 단지 동중객의 2대 제자일 뿐이었다. 언사군이 착지(着地) 했을 때 그는 지금 사도화는 분명히 경악 상태라 기회를 틈타 떠나려면 지금이 가장 좋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다급히 매옥에게 말했다.
“우리 갑시다”
사도화가 신형을 뒤집으며 언사군에게 말했다.
“못 간다. 너 이 몇 초(招)를 어디서 배웠느냐?”
그는 언사군에 의해 한번 던져지자 정신이 완전히 뚜렷해졌다. 평상시 그는 완전히 후회 반(半 ), 한스러움 반의 상태여서 처음에는 미친 척하다가 어느 정도는 진짜로 미치게 되었던 것인데 이때 다시 일양수를 기억해 내고는 저도 모르게 언사군에게 캐물은 것이다.
언사군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 사람을 만나고 싶은가요?”
사도화가 당년 대전구식을 얻게 되었을 때는 이미 정신이 온전하지 못했었고, 게다가 일양수는 결코 정파의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에 혹시 일양수가 그에게 숨긴 것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언사군은 어떻게 온전한 대전구식을 얻었을까!
그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언사군에게 물었다.
“누구냐?”
언사군이 차갑게 말했다.
“그 사람은 이미 죽었습니다. 당신이 그를 만나려면 자살(自殺)한 후에야 만날 수 있습니다.”
사도화는 약간 망연(茫然)한 상태인데 사교랑은 이미 사도화가 전수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검을 고쳐 세우고 나와 사도화에게 말했다.
“구태여 이런 저런 말 길게 할거 뭐 있어요? 죽여 버리면 되지”
그녀가 돌진하자 매옥은 사도화가 공력이 너무 높아 그녀로서는 감히 상대할 수 없지만 언사군은 일련(一連)의 괴초(怪招)가 있어서 그나마 대적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장검을 비스듬히 내어 사교랑의 수검(數劍)을 받아내고 이어서 몇 검을 공격했다.
남해취봉(南海翠鳳)은 철면관음의 유일한 제자라 그 사부의 무공을 얻었고, 매옥의 공력은 이때의 언사군의 공력보다 높았기 때문에 그녀가 장검을 날리고 뒤집으면서 어자결(御字訣)로 사교랑의 검초를 전부 받아냈다.
사도화가 머리를 들어 언사군을 보며 느리게 말했다.
“너는 내가 너를 죽이려고 한다고 말하지는 않는구나!”
돌연 그가 눈빛을 들어 보더니 안색이 급변했다.
언사군은 갑자기 사도화가 그를 죽이려고 한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 미처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는데 사도화의 안색이 변하자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작은 토산(土山) 위에 황포(黃袍) 노인이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데 회백색(灰白色) 수염이 가슴 앞에 날리고 오른손으로는 검을 누르고 있었다.
미풍이 도포 자락을 날리는데 사람을 두렵게 하는 눈빛을 쏘아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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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막 떨어지자 천여 근(斤)이나 되는 큰 술 항아리가 휘-익 소리를 내며 언사군을 압도해갔다. 언사군이 왼쪽 어깨로 슬쩍 부딪혀 술 항아리를 날아가게 하고 곧장 단목자금에게 달려들었다. 단목자금이 조금 놀라 노성(怒聲)을 토해냈다. 신형이 번뜩 움직이며 오른손으로 번개같이 언사군의 등 뒤 혈도를 찔러 갔다.
언사군은 그 종소리에 체내의 진기가 역행함으로써 한 번의 정행(正行)과 한 번의 역(逆行)으로 혈도의 위치가 모두 바뀌었기 때문에 단목자금의 이 일지(一指)에 찔렸어도 아무 일 없는 듯 태연하게 손바닥을 뒤집어 일초 도전오악(倒顚五嶽) 시전했다. 그리고 단목자금이 대경실색(大驚失色)하는 중에 이미 그를 5장(丈) 밖으로 내던져 버렸다.
단목자금과 구양무기 두 사람 크게 놀랐다.
그 종 치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이렇게 고강한 공력을 가지고 있다니, 언사군은 화근(禍根)이 될만하지 못해 그를 사지(死地)에 몰아넣으려고만 하면 그다지 어렵지 않지만 그 괴인(怪人)은 반드시 살려둘 수 없었다.
두 사람의 심사(心事)가 같아서 동시에 언사군에게 말했다.
“잠시만 살려두마!”
말을 마치고 두 사람이 앞서 종소리가 전해온 곳으로 달려갔다.
언사군은 두 사람이 떠나자 왜 그런지 몰라 잠시 그 자리에 서 있는데 체내의 진기가 점차 흩어지며 이마에도 식은땀이 솟아났다.
그가 급히 두 번째 가부좌를 하고 운공(運功)에 들어갔다.
매옥은 본래 언사군의 공력이 갑자기 높아진 것을 보고 놀랍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했는데 지금 또 언사군이 한기와 땀을 개의치 않고 운공하는 것을 보고는 걱정이 되어 급히 그에게 달려갔다.
언사군은 경맥을 역행시킨 후 한바탕 내력이 넘쳐흐르는 것을 느꼈으나 지금은 도리어 강노지말(强弩之末)처럼 전신에 기운이 빠져버렸다. 그도 속으로 놀라 계속 운공조식(運功調息)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생각했다.
“그 종 치는 사람은 틀림없이 정파의 인물은 아닐 것이다. 이런 종류의 무공을 보더라도 절대로 정파는 아니다. 그렇다면, 누구일까?”
한참이 지나 그가 몸을 일으켜 매옥이 옆에 있는 것을 보았다. 돌연 그의 생각이 단목자금과 구양무기 두 사람의 행방에 미쳤다. 혹시 두 사람이 돌아올 수도 있다고 생각되어 급히 매옥에게 말했다.
“우리 빨리 갑시다!”
매옥이 걸어가면서 한편으로는 초조해서 언사군에게 말했다.
“언 오빠(大哥), 괜찮아요?”
언사군이 웃으며 말했다.
“고맙소, 아주 좋아요.”
말하면서 매옥을 바라보았다.
그의 마음속에도 어떤 감정인지 잘 모르지만 어쨌든 좋아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이 한참 길을 달려 단목자금과 구양무기가 찾지 못할 거로 생각되는 지점에 왔을 때 비로소 걸음을 멈췄다.
매옥은 언사군의 기색이 좋은 것을 보고서야 겨우 마음을 놓게 되었다.
언사군이 매옥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매(梅) 아가씨! 정말 고맙소”
매옥이 웃으며 말했다.
"이젠 별일 없을 거예요. 우리 동정호(洞庭湖)에 가서 오빠의 사부님과 사매를 기다리는 것이 어때요?“
언사군이 머리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급히 동정호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돌연 언사군이 사도화(司徒華), 사교랑(謝巧娘)과 백의(白衣) 소년 세 사람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언사군은 세 사람이 왜 또 황산(黃山)에 왔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급히 매옥을 끌어당겨 숲속으로 피했다. 매옥은 언사군이 끌어당기자 저도 모르게 부끄럽기도 하고 초조하기도 해서 한번 힘껏 버텼는데 이때 사도화 등 세 사람에게 발견되고 말았다. 사교랑이 냉소(冷笑)하며 두 사람을 쫓아왔다.
언사군은 매옥이 버티자 어리둥절했다. 손바닥에도 약간 낯선 느낌이 있었는데 사교량이 이미 그곳에 다다랐다. 매옥은 얼떨떨하면서도 후회되었다. 언사군이 달아난들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정신을 모으고 적을 기다렸다.
사교랑이 언사군을 향해 차갑게 웃으며 매옥을 흘깃 한번 보고는 언사군에게 말했다.
”오늘 어쨌든 헛걸음한거 아니구나, 또 너를 만났으니!“
언사군이 무심하게 웃으며 쫓아온 사도화와 그 백의소년을 보았다.
”당신들은 천잔칠정 때문에 온겁니까?“
사교랑이 냉소했다.
”일부분만 맞췄다. 천잔칠정은 팔월 중추(中秋)에 황학루(黃鶴樓)에서 결정된다고 천하 무림인물들 모두가 알고 있지만 그건 6개 뿐이다. 소림파 장문인 해월선사는 죽었지만, 소림파가 얻었던 고정(古鼎)의 행방은 너 혼자만이 알고 있다.“
언사군의 눈빛이 약간 번뜩였닥, 그리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알고 보니 한룡담(寒龍潭)의 그 고정 때문에 온 거구나!“
그가 태연히 말했다.
”그 일을 알고 있지만 당신에게 알려줄 수는 없소.“
사교랑이 매옥을 한번 보고 말했다.
”이 어린 아가씨는 누구신가?“
매옥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이 분이 홍갈자(紅蝎子) 사교량인가요? 저는 매옥이고, 장강(長江) 응풍방(鷹風幇) 소상검객(瀟湘劍客) 매풍(梅風)의 딸입니다.“
사교랑이 차갑게 웃었다.
”네가 나를 안다니 잘 됐구나.“
말하면서 한 손으로 언사군을 붙잡아갔다.
언사군은 사교랑의 손에 독이 묻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감히 맨손으로 상대하지 못하고 ”챙“하는 소리와 함께 검집에서 장검을 뽑아 사교랑을 핍박해갔다.
사교랑은 어려서부터 타고난 성품이 그 언니인 을목도주 사운고(謝芸姑)와는 너무 달랐다.
단죽군도 그것을 생전에 알고 있어 줄곧 그녀에게 무공을 가르치지 않았지만,
그녀의 무공 일부분은 훔쳐서 배운 것이고 대부분은 사도화가 전수해주었다.
때문에 그녀는 스스로 금(金)의 기운이 목(木)의 기운을 이기므로 언사군은 기본적으로 자기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알고 있었다.
그녀가 손을 뒤집어 일장을 쳐 마침 언사군의 검세(劍勢) 중에 생긴 틈으로 쪼개왔다.
언사군이 검세를 한쪽으로 기울여 반을목검법(反乙木劍法) 중의 일초(一招) 취목배금(聚木排金)을 시전하니 검세가 이르는 곳엔 마치 만개의 뿌리가 달린 거목(巨木)이 몰아치듯 이 일초로 사교랑의 공세를 후려쳐 되돌렸다.
사교랑이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그녀는 언사군의 검초가 정말로 자기와 대적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연속해서 10여 장(掌)을 쳐냈는데 그것은 평상시 한안군 사도화의 장기(長技)인 낙엽장법(落葉掌法)이었다.
그녀가 쌍장(雙掌)을 뒤집자 가을바람이 낙엽을 휩쓸 듯 비록 장세(掌勢)는 강경(强勁)하지 않아도 을목검법과는 또 다른 격조(格調)가 있었다.
언사군이 반을목검법(反乙木劍法)을 펼쳐 금생목(金生木)에 따라 검초(劍招)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비록 이길 수는 없어도 매 일초가 펼쳐질 때는 이미 낙엽장법 가운데 틈을 파고들었으므로 사교랑도 일시(一時)에 그를 어찌할 수가 없었다.
사도화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데 백의소년이 돌연 말했다.
제6장 알 수 없는 길흉(吉凶)
단목자금(端木子禽)은 제비뽑기로 비무(比武)를 대체하자는 방법에 대해 나머지 세 사람 모두 이의가 없었기에 잠시 자리를 벗어났다가 곧 제비 네 개를 만들어 돌아왔다. 그가 웃으며 세 사람에게 말했다.
”네 개 가운데 동그라미가 그려진 것이 한 개 있소, 그걸 뽑는 사람이 언사군을 처리할 수 있소이다“
공명상(公明商)이 되는 대로 제비 하나를 뽑아 열어보고는 말 한마디 없이 몸을 돌려 눈 깜짝할 사이에 그림자도 없이 사라졌다.
장손뢰(長孫雷)가 두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남은 제비 세 개를 한번 쳐다보고는 가볍게 한 개를 뽑아 천천히 열었다. 그리고 다시 단목자금을 한번 바라본 후 말없이 떠나갔다.
구양무기(歐陽無忌)는 그 제비 두 개를 한번 보고 단목자금에게 말했다.
”단목 형(端木兄)!, 이제 제비 두 개만 남았는데 우리 둘 중 한 사람에게 희망이 있는 것이 맞소?“
단목자금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소이다.!“
구양무기가 언사군을 위아래로 한번 훑어본 후 또 단목자금을 쳐다본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단목 형! 내가 동그라미가 없는 제비를 뽑게 되면 언사군은 그대가 처리하게 되는 것이 맞지요?“
단목자금의 눈빛이 살짝 흔들리더니 말했다.
”아직 잘 모르겠소이다.“
구양무기가 한 번 웃고 말했다.
”언사군을 그대가 처리하거나 내가 처리하거나 간에 차이는 없소. 그대 손에 떨어지거나 내 손에 떨어지거나 어쨌든 그가 죽음을 피하기는 어렵소이다. 하지만, 만약 단목 형의 제비 네 개 가운데 하나도 동그라미가 없다면 그냥 넘어갈 수 있겠소?“
그는 벌써 단목자금의 기색이 이상한 걸 간파했을 뿐만 아니라 속임수에 당하는 것도 참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물었던 것이다. 단목자금이 한바탕 크게 웃고는 왼손을 한번 꼭 쥐어 남아 있는 제비 두 개를 재로 만들어 버렸다.
”정말 탄복했소이다, 구양 형, 그런데 어떻게 알아차린 거요?“
구양무기가 담담(淡淡)하게 한번 웃고는 말했다.
"그냥 한번 말해봤을 뿐이요. 지금은 우리가 방법을 바꿔서 승패를 논해야 할 것 같긴 한데, 다만, 나는 단목 형이 이 언사군을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를 모르겠소이다.”
단목자금이 눈썹을 찡긋거리며 담담하게 말했다.
“구양 형은 언사군이 절정(絶頂)의 기궤(奇詭)한 무공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소? 그건 단죽군(丹竹君)이 전수해준 것이 아니라오”
구양무기가 언사군을 쳐다보았다.
그도 대전구식(大顚九式)의 맛을 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가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느릿하게 말했다.
“그보다 더 기궤한 무공도 쓸모가 없소이다.”
단목자금이 한번 웃었다.
“나는 그를 죽이자는 것이 아니오.”
언사군이 한 켠에서 두 사람이 그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상의하는 것을 듣고 있었다. 그의 마음속에 천만 가지 생각이 뒤엉켜 눈을 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을목도주의 무공은 이미 무림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든다. 비록 자기가 을목도주에게 무공을 전수받았지만 공력이 너무 얕아서 이런 마두(魔頭)들과 겨룰 수가 없다니!”
매옥(梅玉)이 한쪽에 있었지만 역시 별다른 수가 없었다.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녀도 두려워하지 않겠지만, 단목자금과 구양무기 두 사람은 그녀의 사부가 온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단목자금과 구양무기 두 사람이 한창 고집부리며 다투고 있는데, 돌연 멀리서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언사군은 그 종소리를 듣자 즉시 원기백배(元氣百倍) 해졌다. 이 종을 치는 기인(奇人)은 얼마 전에도 그의 요상(療傷)을 도와준 적이 있었는데 지금 그가 위기에 빠져 있을 때 또 종소리가 출현하다니!
언사군은 저번에 종소리로 공력을 전해(鐘聲傳功)준 도움을 받았던 적이 있어 이때 종소리를 듣고는 알아차리고 즉시 가부좌하고 앉았다. 구양무기와 단목자금 두 사람은 한쪽에 서서 서로 눈짓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생각은 어찌 되었든 두 사람은 언사군이 두렵지 않았고, 종을 치는 사람은 마지막에는 혹시 정체를 드러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 사람의 실력을 좀 봐야겠다는 것이었다.
전번(前番)에는 종소리에 이끌려 언사군의 전신 진기(眞氣)가 온몸의 혈도를 순행(順行)하다가 종소리가 그치고 혼자서 연습(練習)할 때는 여전히 정체(停滯)되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때 종소리가 다시 그의 진기가 전신을 운행하도록 이끌고 있었다.
진기가 전신을 한 차례 운행한 후 종소리가 약간 줄어드나 했는데 돌연 다시 커지면서 언사군의 진기를 역행(逆行)으로 이끌었다. 언사군은 어리둥절하면서도 이 종을 치는 사람이 그에게 악의를 가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진기가 역행할 때 그는 전신에 열이 나는 것을 느꼈는데 그 열이 견딜 수 없을 정도여서 마치 기혈(氣血)이 끓어오를 때와 같았다. 그런데, 다른 기이한 일이 발생했다. 진기가 역행하여 한 바퀴 돈 후 그의 공력이 배로 증가된 것을 느꼈다. 마치 전신의 역량(力量)을 다 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종소리가 멈추고 언사군의 신형이 튀어 올라 단목자금과 구양무기 두 사람을 덮쳐갔다.
“흥”
구양무기가 코웃음을 쳤다. 그는 벌써 언사군을 그의 손으로 없애버리려고 했지만 단목자금이 찬성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 언사군 스스로 덮쳐 온 것이다. 그가 되는대로 언사군을 향해 일장(一掌)을 쳐냈다.
단목자금은 구양무기가 손을 쓰는 것을 보고 천천히 한 걸음 물러났다. 언사군은 대전구식(大顚九式)에 대해 훤히 알고는 있어도 많은 정묘(精妙)한 초식은 시전해 낼 수가 없었는데, 이때는 종소리의 도움에 힘입어 그의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일초를 펼쳐 구양무기의 손목을 잡아갔다.
구양무기는 언사군의 공력에 대해 꿰뚫고 있어서 그가 되는대로 쳐낸 일장은 그의 절혼팔장(絶魂八掌) 가운데 일초(一招)인 강함안영(江涵雁影)이었다. 그러나 언사군의 이 일조(一抓)는 매우 궤이(詭異)하여 구양무기가 완전히 초식을 펼치기 전에 이미 그의 다섯 손가락이 구양무기의 오른 팔목을 붙잡아 버렸다.
구양무기가 크게 놀랐다. 언사군의 이 다섯 손가락이 붙잡은 부위는 마침 그가 경력(勁力)을 운행하여 대항할 수 없는 곳이었다. 언사군이 손 가는대로 구양무기를 던져버렸다.
구양무기는 비록 진기를 전신에 끌어올리고는 있었지만 언사군의 던진 힘이 그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컸기 때문에 그는 여전히 그대로 던져져 2장 남짓 날아가 떨어졌다.
구양무기가 나가떨어지는 보고 단목자금이 아직 어안이 벙벙한 상태인데 언사군이 곧바로 그에게 덮쳐들었다. 단목자금은 언사군이 경맥(經脈) 역행의 효과를 받은 것을 알지 못하고 단지 구양무기가 방심해서 실수한 줄 알았다.
그는 언사군이 덮쳐 오는 것을 보자 대소(大笑) 했다.
“애송아! 이 술 항아리를 받아라!”
하여 그 사람을 놓아주려고 하는데 그 사람은 언사군의 신색을 보고는 언사군이 겁을 먹은 걸로 알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내가 보기에 너는 빨리 이 어르신을 놓아주고 순순히 세 번 절하는 게 좋을거다, 그러면 어르신이 백대야 앞에서 너를 살려달라고 좋은 말 한두 마디는 해줄테니.”
언사군은 본래 그를 놓아주려고 했는데 그가 또 불손(不遜)하게 나오는 것을 보자 속으로 화가 나서 “흥” 하고는 왼 팔뚝을 가볍게 뿌리쳤다. 그 자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며 아픔으로 악! 악! 크게 소리를 질렀다.
언사군이 더 이상 그 자를 신경 쓰지 않고 손짓으로 점소이(店小二, 점원)을 불러 요리 몇 가지를 주문하려고 하는데 점소이는 얼굴에 두렵고 놀란 기색이 역력하면서도 감히 응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언사군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천천히 요리를 먹었지만 사실 머릿속으로는 누가와서 묻는다면 어떻게 대처할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날 회안봉에서 벌어졌던 일에 대해 아마도 천산파는 여전히 아무 것도 모르고 있겠지. 어떻게 해야 그 일의 진상을 백봉우에게 들려주고 믿도록 할 수 있을까?“
그가 요리를 막 다 먹었을 때 귓가에 일진(一陣)의 급촉(急促)한 말발굽 소리가 전해졌다. 필시 조금 전 그 사람이 불러온 한 패거리일테지.
일진의 급촉한 발걸음 소리가 지난 후 검을 찬 두 소년이 누각 위로 올라왔다.
아까 그 자가 두 사람 뒤에 서서 언사군을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저자입니다. 저자가 백대야가 수하(手下)를 제멋대로 나쁜 짓을 하게 내버려뒀다고 욕했습니다.“
언사군이 눈을 들어 두 사람을 가늠해 보니 한 소년은 흑색(黑色) 경장(勁裝) 차림이고 다른 한 소년은 백색(白色) 경장차림을 했는데 가느다란 눈썹에 쥐눈 모양이었지만 두 눈에는 정광(精光)이 번뜩거리고 있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두 사람의 무공이 약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 사람도 언사군을 훑어보았다.
언사군은 장삼(長衫)을 걸쳤고 매우 점잖은 기질인데 어떤 노선의 인물인지 가늠하기가 어려워 감히 무턱대고 행동할 수가 없었다.
백삼(白衫) 소년이 언사군에게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귀하는 누구의 문하요? 서하령이 천산파 대협 백봉우 전배의 거소라는 것을 모르고 감히 모욕적인 언사를 했던거요?“
언사군은 두 사람이 천산파의 문하(門下)가 아니라는 것은 의외였지만, 필시 백봉우의 후배로 생각되었다. 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소생(小生)은 언사군이요, 백 대협을 한번 뵙기를 희망하오.“
흑삼 소년이 백삼 소년에게 말했다.
”사형(師兄), 이 자와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리고는 언사군에게 소리쳤다.
”너는 우리 공동쌍검(崆峒雙劍) 조중곡(趙中谷)과 여기(呂岐)를 알고 있겠지?“
언사군은 공동쌍검의 이름을 듣자마자 안색이 확 변했다.
공동쌍검, 원래 이 둘은 공동파 사람이었구나, 중원 칠대문파 가운데 공동파에 대한 인상이 그에게 가장 좋지 않았다. 그날 무극자의 목소리와 행태가 다시 그의 뇌리에 떠올랐다.
언사군의 얼굴색이 변한 것을 보자 여기의 눈에 절로 의기양양한 기색이 떠올랐다.
근년(近年) 들어 공동파의 세력이 점차 다른 여섯 문파를 넘어섰으니 이 소년이 듣고서 안색이 바뀐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언사군이 마음속 화를 억누르고 차분하게 물었다.
"두 분은 공동파 사람이요?”
여기가 차갑게 말했다.
“바로 그렇다”
언사군이 갑자기 길게 웃으며 말했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나 언사군이 두 분께 고초(高招)를 좀 가르침 받아야겠소”
조중곡이 듣기에 언사군의 말은 마치 공동파와 깊은 원한이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무극자의 속가(俗家) 대제자(大弟子)였기에 언사군의 말을 받아서 말했다.
“귀하는 폐파(敝派)와 무슨 은원(恩怨)이 있소?”
이때 언사군은 더 말하고 싶지 않아서 노갈(怒喝)을 터뜨렸다.
“검을 뽑아라”
두 사람은 언사군의 기세에 눌려 자기들도 모르게 일제히 장검을 뽑아 들었다.
두 사람이 서로 한번 쳐다보고는 여기가 조중곡에게 말했다.
“사형(師兄), 제가 세상물정 모르는 이놈을 좀 손볼테니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그리고는 말했다.
“검을 뽑아라”
언사군이 꿋꿋하게 말했다.
“너같이 비천한 물건을 상대하는데 검을 뽑을 필요도 없다”
여기가 그말을 듣고는 속에서 타오르는 노기(怒氣)를 참을 수 없었다.
갑자기 크게 웃더니 잠시 후 말했다.
“미친 놈! 내가 네 몸에 구멍 세 개를 내지 못할 줄 아느냐?”
말하면서 장검을 끌어당겨 언사군을 공격했다.
언사군은 동해(東海)에서 기인(奇人) 을목도주 을목신군으로부터 10년 동안 직접 가르침을 받았다. 그가 기왕에 이런 말을 했다면 당연히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여기가 이처럼 적을 얕잡아 보고(輕敵) 검을 내어 곧바로 찔러 오는 것을 보자
“흥” 코음을 치며 오른손 두 손가락을 내어 섬전 같이 여기 손 안의 장검을 손가락 사이에 끼워 잡았고, 여기의 관원혈(關元穴) 걷어차며 소리쳤다.
“손을 떼라!”
그 소리와 함께 여기가 뒤로 물러났는데 그의 오른손에 들렸던 장검이 사라지고 없다.
그는 자기가 너무 심하게 적을 얕봤다는 것을 알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언사군이 단 한 번에 그의 장검을 빼앗은 건 보통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언사군의 두 손가락 사이에 낀 검신(劍身)을 자기가 뽑아내지 못했으니, 그 내력의 고강함은 세상을 놀라게 할 만했던 것이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며 그 자리에 얼이 빠져 서 있었다.
언사군이 경멸하듯 웃고는 장검을 되는대로 던지며 여기에게 말했다.
“받아라!”
여기가 놀라 급히 오른 손으로 검의 손잡이(劍柄)를 붙잡기는 했지만 언사군이 두 손가락을 써서 던진 힘이 그의 상상보다 너무 강해 그의 몸은 검신(劍身)이 끄는 힘에 두 걸음을 딸려 갔다.
조중곡이 한 쪽에서 보고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 눈앞에 있는 이 소년의 공력이 이리도 고강(高强)하다니. 자기들 사형제가 출초(出招)하자마자 그가 되는 대로 손발을 쓰는 사이에 가볍게 여기를 이런 낭패(狼狽)를 보게 만들었는데도 자기는 저 언사군이라는 소년이 사용한 초식(招式)이 어느 파의 것인지조차 알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가 놀라 여기를 한번 흘깃 보고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언사군에게 물었다.
“귀하는 어느 파의 제자요? 서로 화기(和氣)를 상하지 않도록 빨리 말하시오!”
언사군이 차갑게 말했다.
"내가 어느 문파인지는 물어볼 필요 없다. 그러나, 너희들 공동파와는 추호도 관계가 없으니 너희들도 화기를 상할까 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조중곡은 언사군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자 실로 궁지에 몰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자기 혼자서는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 분명했지만 두 사람이 함께 나서면 이기지는 못해도 혹시 지지는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가 여기에게 눈짓을 하고는 언사군을 향해 말했다.
”기왕 그렇다면 우리 형제 둘도 사양하지 않겠소!“
언사군은 그의 말 중의 뜻을 알아 듣고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대들 둘 가운데 어느 한 사람도 내 오초(五招) 상대가 안 되고, 한꺼번에 나서봐야 기껏 20초(招)를 넘기지 못할 것이다.“
조중곡이 그 말을 듣고 화가 나 차갑게 웃었다.
”마침 귀하의 절기를 좀 가르침 받으려고 하던 참이오“
말하면서 일검(一劍)으로 언사군을 공격해 왔다.
언사군이 낭랑한 목소리로 길게 웃으며 신형을 뽑아 탁자 위에 올라섰다.
이때 여기도 언사군의 몸 뒤에 이르렀으므로 두 사람이 검을 내어 언사군을 협공했다.
이제는 두 사람도 감히 언사군을 얕보지 못하고 무극자가 친히 전수한 풍조검법(風爪劍法)을 전개하니 한 사람의 장검이 나아가면 다른 사람의 장검이 물러나면서 언사군에게 공격해 들어갔다.
언사군은 탁자 위에 서 있는데 을목도는 경공(輕功)이 가장 뛰어났으므로 그도 초식이라 할만한 것은 쓰지 않고 그냥 몸의 경쾌(輕快)함에 의지해 3척(尺)도 안되는 탁자 위에서 이리저리 피하면서 가끔 한 두번의 발길질로 두 사람을 물러나게 만들었다.
조중곡과 여기 두 사람은 위쪽으로 언사군을 공격하다 보니 훨씬 힘이 많이 들었다.
언사군의 두 눈이 번개처럼 번뜩이며 두 사람의 검세를 응시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