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청지는 담담하게 웃으며 신형을 조금 띄우고 검세를 변화시켜 위남우를 공격했다.
그러나 그녀가 검식을 쓰자 갑자기 붉은색 무지개가 몸쪽으로 원을 그리며 밀려왔다. 그녀는 약간 놀라며 감히 위남우의 공세를 무리하게 받아내지 못하고 즉시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붉은 무지개가 전후좌우로 환상(幻像)을 만들어냈고 그녀는 또 한 번 놀라 즉시 맑은 휘파람을 불며 몸을 검에 붙인 채 정면으로 위남우를 맹격(猛擊)했다.
순간 위남우는 매우 놀랐다. 뜻밖에도 운청지가 어검술(御劍術)을 터득했을 줄이야!
밀종(密宗)은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놀라움의 대상이기는 했지만 운청지는 불과 스무살 정도에 불과한데 어검술을 익혔다니 정말로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일이었다.
석년(昔年) 해천객(海天客)이 익히고 해천검급(海天劍笈)에 기재한 것을 제외하고는 검술의 최고봉인 어검술을 오늘 운청지가 비록 조금 아는 정도라 할지라도 이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일이었다.
그는 감히 경솔하게 그 예봉(銳鋒)에 맞서지 못하고 즉시 뒤로 물러섰다.
위남우가 물러나자 운청지는 신형을 튕겨 날아올라 검으로 천 자루 환상(幻像)을 만들어내 위남우를 공격했다. 위남우는 자신이 약간 물러나는 바람에 곧바로 열세에 처하게 되자 마음속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본래 자부심이 매우 셌고 검술에 있어서는 아직 적수를 만나지 못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운청지에게 몰려 이 지경에 처하다니!
운청지가 밀종 검문(劍門)의 고수라고 하더라도 지금의 상황으로는 상대방은 겨우 일이십 세 묘령의 소녀일 뿐이었다.
그가 또 두 걸음을 물러나자 적홍검을 눌러 곧바로 반격에 나서니 붉은 무지개가 폭발적으로 팽창하며 즉시 운청지를 떨어뜨렸고 쌍방이 땅에 선 채 대치하게 되었다.
언사군은 가볍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눈앞의 두 사람이 모두 선천강기를 검초에 섞어 넣어 서로 공격한다면 그 결과를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비록 두 손을 쓸 수는 없어도 결국은 그 자신 또한 검술의 명수(名手)인지라 그가 두 사람의 검초를 보니 위남우의 검초는 묵직하고 독랄하며 대적(對敵)의 경험이 풍부했고 운청지의 검초는 기묘하여 예측하기 어렵지만 경험이 부족했다. 두 사람은 각자 장점을 가지고 있어 상하를 가를 수 없었으나 시간이 길어지면 운청지가 열세에 처할 가능성이 높았다.
운청지가 서릿발이 내린 듯한 얼굴로 검을 들고 서 있고 위남우는 차분하게 서 있는데 쌍방 모두 감히 경솔하게 먼저 나서지 못하고 있어서 이때 서로 검초의 고하를 가리기는 어려웠다.
묘패방이 옆에 있다 크게 웃고는 언사군에게 말했다.
“저 두 사람 간 결전은 금방 상하를 가릴 수 없을 것 같으니 우리 둘의 일은 따로 해결하자!”
언사군이 조금 놀랐다. 묘패방이 이렇게 나오는 것은 당연히 운청지에게 들렸을 것이고 그녀가 걱정을 하게 되면 아마도 장중(場中)의 정세는 그녀에게 불리해질 것이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막 떠올랐을 때 운청지는 벌써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한번 큰 소리로 외치며 몸을 활처럼 튕기며 검으로 위남우를 찔러 갔다.
위남우가 크게 웃으며 신형을 날리자 쌍방이 검세를 서로 교환하며 공중에서 싸우기 시작했다.
묘패방은 크게 웃으며 언사군에게 검을 찔러 갔는데 그는 이때 언사군을 어떻게 할 생각은 없었고 단지 운청지에게 보여주려는 것 뿐이었다. 고수가 서로 싸우는데 정신이 분산되면 곧바로 열세에 빠지게 된다.
언사군도 당연히 묘패방의 뜻을 알고 있어서 똑바로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묘패방이 대소하자 동시에 운청지도 가벼운 호통을 치는데 위남우와 사이에 신형이 갑자기 분리되었다.
위남우가 대소하는데 운청지의 안색이 살짝 붉어졌다.
언사군은 분명히 운청지가 조금 손해를 보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운청지가 다시 그를 위해 걱정하는 것을 원치 않았으므로 몸을 날려 곧장 장춘탑 위로 돌진했다.
묘패방이 대소하며 뒤쫒자 언사군은 공중에서 신형을 한번 비틀어 묘패방이 들고 있는 장검을 맹렬하게 밟아갔다.
이때 탑 아래의 위남우와 운청지는 얼굴을 마주 보고 서 있었지만 쌍방은 도리어 언사군과 묘패방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숭부는 이때 전체 국면에 영향을 미치기에 충분했고 게다가 두 사람이 승부를 가리는 것이 그들이 스스로 고하(高下)를 가리는 것보다는 훨씬 쉬웠기 때문이다.
“흥”
묘패방이 비웃음을 날리며 장검을 슬쩍 거뒀다가 반대로 언사군을 찔러 갔다.
언사군은 그 한번 밟는 힘을 빌려 비서유사(飛絮游絲)의 절정 경공신법을 펼쳐 신형을 공중에서 꺾으며 똑바로 튕겨 가볍게 장춘탑의 두 번째 탑 가장자리에 내려섰다.
운청지와 위남우 두 사람은 그 모양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언사군의 두 손 경맥이 이미 끊어졌는데도 공중에서 여전히 이처럼 민첩하고 교묘하게 경공을 시전한다는 건 정말로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을목도주의 경공이 천하제일이라는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언사군이 오른발로 탑 모서리를 밟고 선 그때 묘패방도 뒤를 추격해 왔는데 왼발로 섬전처럼 탑 가를 찍고는 오른손으로는 장검을 높이 들어 전력으로 언사군을 쳐갔다.
언사군은 벌써 준비가 돼 있었으니 장춘탑에 오른 이상 자신의 초인적인 경공신법으로 묘패방을 대적하면 최소한 지지는 않을 거라는 계산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갑자기 뒤쪽에서 나는 검풍(劍風)을 듣고는 몸을 한 바퀴 돌리며 왼발을 힘껏 내질렀다. 그의 몸이 뒤로 젖혀지며 묘패방의 일검을 딱맞게 피했고 왼발로는 묘패방의 아랫배를 강하게 찼다. 묘패방은 본래 적어도 언사군을 탑 가장자리에서 물러서게 할 줄 알았고, 그러면 그가 탑 가장자리에 안정적으로 서게 되어 우세를 차지한 상태에서 다시 승리를 구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전력을 다한 그의 일격은 이미 언사군의 예상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그는 어쩔 도리없이 검을 거두고 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언사군이 왼발을 갑자기 거둬들여 탑을 밟으며 오른발로 묘패방의 오른쪽 발목을 찼다.
묘패방은 혈마공을 장기(長技)로 삼고 있었지만 언사군이 이때 그의 장점인 경파칠약(鯨波七躍)의 퇴법(腿法)을 변식(變式)해서 시전(施展) 한데다 그중에 칠정강기의 경력(勁力)을 섞었기 때문에 묘패방은 창졸간에 방어할 수 없어서 오른발로 탑 가장자리를 한번 찍고 탑 아래로 떨어져 갔다.
언사군은 묘패방을 거들떠보지 않고 기세를 늦추어 다시 위쪽으로 솟구쳤다.
묘패방은 언사군에 의해 탑에서 떨어지게 되자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라 오른발로 땅을 찍고 곧장 치솟았지만 그가 쫓아갈 때 언사군은 벌써 4층 탑 가장자리에 도달해 있었다.
언사군은 눈에 보이지 않았어도 미리 시간을 정확히 계산했다. 그의 오른발이 네 번째 층의 가장자리를 밟았을 때가 바로 묘패방이 쫓아온 시각이었다.
운청지와 위남우는 이때 이미 더 싸울 마음이 없어진지라 온 정신을 언사군과 묘패방 두 사람에게 쏟았다. 두 사람 다 절세고수이면서도 두 손을 사용하지 못하는 언사군이 이렇게나 교묘하고 민첩한데 대해 탄복을 금할 수 없었다.
만약 언사군의 두 손이 보통 사람같이 온전하다면 두 사람 가운데 하나도 언사군 앞에서 우세를 점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언사군이 오른발로 탑 가장자리를 찍고 차면서 동시에 몸을 뒤집었다. 이때 묘패방의 왼발은 탑 가장자리를 디뎠고 오른손 장검은 기세를 모아 공격을 기다렸고 다시 주도적으로 선공에 나서지를 않았다.
언사군은 순식간에 좀 전의 수법을 다시 쓰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아채고 탑 오른쪽으로 물러났다. 묘패방은 언사군이 공격해 오지 않는 것을 보자 비록 의외의 일이기는 해도 이렇다면 그에게 좋은 점만 있고 나쁜 점은 없는지라 코웃음을 치며 언사군을 향해 날아들며 장검으로 찌르며 언사군의 등 뒤를 공격했다.
언사군은 묘패방과 경공을 겨뤄볼 생각이 있었기에 오른발로 탑 가장자리를 한번 찍었는데 몸의 대부분은 탑 바깥에 나와 있게 되었다.
묘패방의 검식이 마치 무지개처럼 언사군의 사방을 에워싸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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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취기성홍(聚氣成虹)
운청지(雲靑芝)가 웃으며 말했다.
”원래 그대는 사부 을목도주의 행방을 물으려고 했던 거군요.“
그녀의 말이 막 끝났는데 홀연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운청지가 두 눈썹을 찡그리며 언사군에게 말했다.
”먼저 가서 내가 그를 한 차례 막을 때까지 기다려요“
언사군이 잠깐 주저하다 급히 말했다.
”가사의 행방이 어떻게 되는지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청운지가 말했다.
”이 일은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우선은 가세요!“
언사군이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
”이건 맞지 않소, 나도 남아 있겠소!“
운청지가 발을 구르며 말했다.
"우리 같이 가는 것이 좋겠어요!”
말하면서 몸을 날려 곧바로 남쪽으로 달려갔다.
언사군은 어쩔 수 없이 운청지의 뒤를 따르면서 자신도 모르게 괴로워하고 있었다.
운청지는 분명 그를 붙잡아 두려고 했지만 이루어지지 못했고, 그의 두 손 열 손가락은 굳어버려 지금은 결국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게 되었다.
두 사람이 앞뒤로 유성이 달을 쫓듯(流星趕月) 빠르게 남쪽으로 곧장 달아났다.
웃음소리가 연이어 두 사람의 귀에 들려오는 것이 조금도 뒤처진 것 같지 않았다.
운청지가 방향을 바꿔 서쪽으로 달려갔고 언사군이 눈을 들어 보니 앞쪽에 높은 탑 하나가 우뚝 솟아 있었다.
운청지가 언사군에게 말했다.
“우리 잠시 장춘탑에 먼저 들어가서 피해요!”
언사군은 속으로 가벼운 충격을 받았다.
자기가 뜻밖에도 장춘탑에 오게 되다니, 어쩌면 자신이 또 이 해천검급(海天劍笈)의 일에 말려들지도 모른다.
두 사람의 신형이 날 듯이 탑 안으로 들어가자 긴 웃음소리가 갑자기 그치며 위남우(魏南羽)의 목소리가 바깥에서 들려왔다.
“두 분이 기왕 장춘탑에 도착했으면 어찌 얼굴 한 번도 안보여 주려고 하는가?”
“흥”
운청지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번뜩 몸을 날려 밖으로 나가 위남우에게 말했다.
“그것도 좋지! 우리 오늘 승부를 내는 것도 좋고!”
언사군도 옆으로 나서자 위남우가 웃음을 머금고 우뚝 서 있고 표패방(苗佩方)은 위남우 뒤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위남우가 웃으며 언사군에게 말했다.
“알고 보니 너도 이 해천검급의 일에 끼어들 뜻이 있었구나, 나는 누나가 너를 놓아주는데 동의했었다. 그런데 네가 다시 장춘탑에 왔으니 이제는 나를 탓할 수 없을 거다.”
운청지는 위남우가 말을 더 이어가기 전에 몸을 날려 짓쳐들어가며 쌍장으로 위남우를 쳤다. 위남우가 크게 웃으며 몸을 약간 쪼그리고 앉으며 쌍장을 뒤집어 운청지의 장세를 맞이했다.
두 사람의 경기(勁氣)가 맞부딪히자 바로 푸르고 붉은 두 줄기 기주(氣柱)로 변해 서로 꼬이면서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쾅”
소리와 함께 세찬 바람이 일며 일시에 모래가 날리고 돌멩이가 굴렀다.
모래와 돌이 떨어져 내리고 위남우가 무거운 안색으로 날아내렸는데 옷소매가 날리면서 소맷자락이 조금 찢어진 흔적이 드러났다.
운청지는 두 다리를 땅에 끌며 반 장(丈) 바깥으로 움직였는데 그녀 역시 안색이 무거웠고 얼굴을 가린 검은색 면사는 이미 떨어져 나가 새하얀 피부색이 그대로 드러났다.
언사군이 숨을 한번 들이마셨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선천내가강기(先天內家罡氣)로 싸우는 상황이다. 그는 한눈에 위남우의 혈마공(血魔功)은 화(火)의 방위에 속하고 운청지의 선천강기는 을목(乙木) 방위에 속한다는 것을 알았다.
만약 두 손이 굳지만 않았다면 그의 현재 공력은 두 사람에 비해 조금 높을 거라고 자신했다. 비록 그가 더 늦게 배우기는 했어도 칠정강기(七政罡氣)는 선천강기의 공력이고, 그는 결코 두 사람 손에 패하지 않았을 것이다.
위남우와 운청지 두 사람의 신형이 멈추지 않고 왼쪽 오른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조금 전에는 두 사람 모두 서로 상대방의 공력을 시험해 봤을 뿐인데 장력을 교환하자마자 백중지간(伯仲之間)이거나 차이가 있다고 해도 극히 제한적이라 만약 전력으로 다하게 되면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중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위남우가 신형을 미끄러뜨렸다.
그는 빈손으로는 확실히 승리할 자신이 없다고 보고는 오른손을 한번 휘두르자 적홍검(赤虹劍)이 검집에서 빠져나왔다.
운청지가 오른발을 조금 물리며 손에 장검을 뽑아 들었다.
위남우가 한번 웃고는 말했다.
“내 지금까지 한 번도 그대와 검으로 겨뤄본 적이 없는데 이제야 밀종(密宗) 일문(一門)의 검술이 도대체 어떤지 좀 보게 되었소이다”
그 말을 듣고 언사군은 살짝 놀랐다. 알고 보니 뜻밖에도 운청지가 신비함으로 이름난 밀종문 일파였다니!
운청지가 냉소하며 장검을 손에 평평하게 올려 두자 위남우가 두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도 밀종문의 검술에 대해서는 들어 보기만 했을 뿐이라 감히 경솔하게 운청지가 선공(先攻)을 하도록 놔둘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이 처음 겨뤘을 때 검초마다 아주 생소해서 공격하는 쪽이 매우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가 몸을 튕겨 올리자 검광이 비단이 쏟아지듯 폭사(暴射) 되어 운청지에게 향했다.
운청지의 입꼬리가 약간 올라가며 한 오라기 경멸의 웃음을 짓고는 그녀의 신형이 갑자기 기이하게 움직이며 손안의 장검이 천 자루의 환영으로 변해 하늘로 솟아올라 위남우를 공격했다.
위남우는 사방에서 검영(劍影)이 나는 것만 볼 수 있고 운청지의 신형은 보이지 않았다.
그가 살짝 놀라 감히 소홀히 대하지 못하고 즉시 적홍검을 한번 거둬들여 검식을 퇴피삼사(退避三舍)의 세(勢)로 바꾸고는 검을 횡으로 하여 몸 앞을 봉쇄했다.
검영이 사라지자 운청지가 장검을 평평하게 들고 서 있는데 마치 공격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녀가 경멸의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만약 내 손에 든 것이 보검이었다면 당신은 이미 졌을 거예요”
위남우가 두 눈썹을 약간 치켜올리며 밝은 목소리로 웃었다.
“아마 그리 간단하지는 않을 거요”
언사군은 옆에서 지켜보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두 사람 검술의 고강함은 그가 평생 거의 드물게 보는 정도였으며 위남우 검술의 독랄함 및 운청지 검술의 기이함은 여태껏 본 적이 없었다.
운청지는 쌍방의 검이 교차할 때 검으로 위남우의 적홍검 검신을 맹렬하게 세 차례 쳤다.
만약 운청지 손에 든 것이 보검이었으면 위남우의 검은 손에서 빠져나갔을 터였다.
위남우는 너무 경솔하게 대했다가 열세에 처했다고 생각했지 당연히 검술이 운청지보다 못하다고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가 적홍검으로 원을 그리며 십면매목(十面埋伏)의 검세로 운청지를 공격했다.
적홍검이 큰 호형(弧形)을 그리며 운청지를 공격해 왔다.
그가 몸을 날려 직격(直擊)하는데 한 손바닥(單掌)으로 언사군을 쳤다!
언사군은 왼발이 흰 돌을 밟자마자 몸을 날려 회전하면서 뒤쪽으로 검을 뻗어 사도화의 미간(眉間) 찔러 갔다.
사도화는 언사군의 검초가 이처럼 매서운 것을 보며 저절로 크게 놀랐다.
그는 언사군의 장검을 옆으로 제치고 급히 흰 돌 위에 올라섰다.
언사군의 왼발이 아직 흰 돌 위에 닿지 않은 채 몸을 비트는 힘을 빌려 날 듯이 빠르게 일곱 번의 발길질을 했다.
사도화는 두렵지는 않아도 언사군의 무공이 이렇게까지 정진한데 대해서는 놀랐다.
‘선비가 헤어진 지 사흘이 지나면 마땅히 눈을 비비고 상대를 다시 보아야 한다’는 말이 결코 허언(虛言)이 아니었다!
그는 전력을 다해 연속 팔장(八掌)을 공격했다.
언사군은 크게 놀라 사도화의 적수가 아님을 알게 되었고 비서유사(飛絮遊絲)의 경공신법을 펼쳐내 날리듯 사도화의 그 팔장을 피해 돌기둥 위에 내려섰다.
사도화는 동굴에 들어서자마자 이것은 바로 그가 오랫동안 들어왔던 한천냉무라는 것을 알아차렸고 이 한천냉무가 훼손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몸을 날리며 연이어 장(掌)으로 언사군을 쳐갔다.
언사군은 한쪽 다리로 돌기둥 위에 섰다. 한 달 남짓 만에 그의 공력이 이미 크게 증가하였고 지니고 있는 천둔경의 도움도 적지 않았고 그의 자질 역시 보통 사람이 미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사도화가 펼쳐낸 건 바로 낙엽장(落葉掌)이었고, 언사군은 동굴 벽 그림에서 본 적이 있어서 바로 알아보고는 장검을 살짝 떨쳐 거꾸로 팔검을 공격했는데 바로 이화검법(離火劍法) 가운데 절묘한 초식이었다.
그의 이 몇 초 공격은 마침 낙엽장법의 상극이어서 사도화의 공력이 그보다 높아도 어쩔수 없이 흰 돌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언사군은 일초에 승리를 얻자 오른손에 든 장검을 빠르게 열화융금(烈火融金), 영운홍일(嶺雲烘日), 삼복융일(三伏融日) 초식을 잇달아 펼쳤는데 모두 오행검법 가운데 남화극서금(南火剋西金)의 절초(絶招)였다.
사도화는 창졸간(倉卒間)에 매우 놀랐다. 언사군도 이화검법을 익혔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비록 그의 공력이 높다고는 해도 당년 단죽군의 총명과 재지(才智)에 어찌 미치겠는가? 일물(一物)에는 자연히 극성이 되는 일물(一物)이 있는 법이다.
그는 단죽군이 전수해준 무공에 수 십년 동안 침음(浸淫) 했지만 일단 극성을 만나자 미리 알지 못했고 또 조금은 당황하기도 하여 하마터면 흰 돌 위에서 밀려날 뻔했다.
그는 한 걸음을 밀려나게 되자 심상치 않음을 알았다. 언사군은 대전구식에 대한 숙달 정도가 그를 뛰어넘었는데 그는 당년에 익혔던 무공을 이때 펼쳐낼 수 없었고 단지 혼원장(混元掌)만 사용할 수 있었다.
사도화의 마음이 조금씩 움직였다 그도 오직 혼원장법을 써야만 비로소 빠르게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가 쌍장을 잇달아 쳐내니 순간적으로 강해졌다 약해졌다 하는 장경(掌勁)이 언사군을 엄습했다.
언사군이 장검을 들어 맞받았지만 엄습해온 장경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해 장검이 날아가고 말았다. 언사군이 깜짝 놀랐는데 홀연 첫 번째 사도화를 만났을 때 그의 그 기이했던 장력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돌연간 사교랑의 외마디 놀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도화는 본래 언사군이 검초를 받아 내지 못하도록 막으려고 하다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제갈자운이 장을 휘둘러 급공을 하고 있다.
사교랑 모자 두 사람은 맞서 싸우고 있지만 그녀의 머리카락은 벌써 산발(散髮)이 되어 있었다.
사도화는 깜짝 놀랐다.
무토신군 제갈자운은 장문 대제자로 본래 공력이 사도화와 백중지간(伯仲之間)이었으나 후에 사도화가 우연히 기연(奇緣)을 얻어 무공이 갑자기 크게 진전되어 제갈자운을 능가하게 되었었다. 그렇지만 제갈자운의 무공 역시 보통은 아니어서 사교랑 모자 두 사람이 합검(合劍)으로 맞서고 있어도 잇달아 위험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사도화는 언사군에게 신경 쓸 수 없어서 먼저 몸을 돌려 장력으로 제갈자운을 공격해 갔다. 제갈자운은 사도화의 공력이 고절(高絶) 한줄 아는지라 감히 장(掌)으로 맞받아치지 못하고 뒤로 손을 돌려 검을 뽑아 사도화가 어쩔 수 없이 물러나도록 핍박했다.
언사군이 검을 주워 든 후 몸을 날리며 한천의 돌기둥을 발로 차 부러뜨려 버렸다.
사도화가 돌아보니 비록 한천(寒泉)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냉무(冷霧)가 사라졌다. 그가 대노하여 언사군을 향해 몸을 날려 공격했다. 언사군도 몸을 날리며 장검을 비스듬히 찔러 거꾸로 사도화의 공격을 맞이했다. 사도화의 “흥”하는 비웃는 소리가 들리며 혼원장력이 격출되었다. 언사군이 장검을 거둬들이고 몸을 굽혀 잇달아 세법 공중제비를 돌아 사도화가 격출해낸 장경(掌勁) 바깥으로 물러났다.
제갈자운이 왼손을 확 당겨 언사군의 배심을 움켜쥐었고 언사군은 발길질로 사도화의 얼굴을 걷어찼다. 제갈자운의 장검도 사도화의 뒤통수를 찔러 오자 사도화는 왼손을 휘둘러 언사군으로 제갈자운의 장검에 맞부딪혀 갔다.
세 사람 모두 일류고수라 이런 동작들은 전광석화(電光石火) 같이 찰나 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언사군은 사도화에 의해 던져지는 순간 이미 대전구식 가운데 일초 영전성신(迎顚星辰)을 펼쳐 공중에서 조금 몸을 비틀었는데 그 미미한 비트는 힘을 빌려 오른발로 섬전처럼 사도화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사도화가 옆으로 몸을 돌렸지만 그의 왼팔이 언사군의 오른발에 걸려버렸다. 언사군이 신형을 미미하게 뒤집자 사도화는 전신에 힘을 잃어 한천(寒泉)으로 내던져졌다.
언사군이 허리를 튕겨 똑바로 선 후 동굴 밖으로 달려가며 제갈자운에게 말했다.
“대사백님, 빨리 떠나야 합니다!”
사교랑은 언사군이 사도화의 손에 붙잡혔는데도 여전히 사도화를 떨쳐 던져버린 것을 보고는 놀라 일검을 찌르며 언사군을 막아섰다.
언사군은 이때 공력이 크게 진전되어 비록 사도화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해도 이미 사교량의 아래는 아니었다.
그는 검을 칼집에 꽂은 후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펴 단번에 사교량 수중의 장검을 움켜잡았고 장(掌)을 치는 사이에 사교량 손안의 장검을 빼앗아 버렸다.
사교랑이 깜짝 놀랐다. 언사군의 조금 전 그 초식은 바로 이화우사(離火羽士)의 절초 열염노승(熱焰怒升)이었고 그녀의 무공은 온전히 서금(西金)에 속해 화극금(火剋金)의 극성(剋性)을 만난 데다 언사군의 공력이 갑자기 늘어나 그녀는 미처 막을 틈도 없이 단 일초 만에 언사군에게 장검을 빼앗겨 버린 것이다.
언사군이 섬전처럼 날아 나가자 사도화가 허리를 똑바로 펴고 노갈(怒喝)을 터뜨리며 언사군을 향해 돌진했다.
제갈자운도 언사군의 공력 진전 속도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두 사람이 좁은 틈을 달려 나오고 사도화, 사교랑과 사도홍 세 사람도 뒤를 쫓았다.
언사군이 손을 뒤집어 빼앗은 장검을 뒤로 던져 세 사람을 엄습했지만, 사도화는 한 손으로 받아 사교랑에게 넘겨주고 다시 두 사람을 추격했다.
제갈자운이 협곡으로 뛰어들며 언사군에게 말했다.
“아이야! 먼저 가거라, 내가 막아 볼테니”
언사군이 빠르게 말했다.
“대사백님, 안됩니다. 함께 가야 합니다.”
그는 사도화의 공력이 너무 높아 제갈자운이 아니었다면 사도화는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자기는 벌써 그의 손에 죽고 말았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제갈자운은 장문 대제자인데 어찌 자기 사제에게 쫓겨 도망할 수 있겠는가?
그가 몸을 돌려 똑바로 서서 장검을 들고 사도화에게 차갑게 말했다.
“사도화! 20년이 지났다. 20년 전에는 사매가 간청해서 너를 놓아주었다. 그런데도 너는 여전히 뉘우쳐 고치지 않고 있구나!”
언사군도 걸음을 멈췄다.
제갈자운이 어찌 되었든지 대제자인지라 평일의 위엄이 여전히 남아 있어 사도화는 한동안 조용히 서 있다가 비로소 말했다.
“제갈자운, 이건 불가능한 것이다. 내가 당신 말을 들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말을 마치고 차갑게 웃었다.
“나는 평상시 사형제 가운데 당신 한 사람만 존경했었지만, 지금은 당신도 사사로이 사부님이 남긴 무공을 숨긴 비밀이 있지”
제갈자운이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너는 사부님이 임종 전에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아느냐?”
사도화가 고개를 저었고, 제갈자운이 말했다.
“사부님은 너를 어려서부터 다 클 때까지 길러주셨다. 그 분께서는 내게 천잔수와의 싸움이 끝난 후 너를 데리고 동굴에 들어가 동굴 안 무공을 네게 전해주기를 바라셨다.”
사도화는 넋이 나가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단죽군은 생전에 확실히 지극정성으로 그를 대해주었다. 이건 모두 아주 오래전의 일이었지만, 그는 가끔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는 했었다.
제갈자운이 또 말했다.
“그렇지만 생각해봐라, 네가 이런 행위들을 하는데 내가 너를 데리고 동굴에 들어갈 수 있겠느냐?“
사도화는 이 동굴 안 무공이 원래는 그에게 남겨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다. 기왕 이러하다면 오히려 제갈자운을 탓할 수 없는 일이다. 어떻든 간에 그가 사고운을 버린 것은 잘못된 일이었다.
제갈자운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너 스스로 생각해봐라, 나는 간다!“
사도화가 돌연 소리쳤다.
”잠깐만, 당신은 가도 되지만 언사군은 남겨둬야 한다!“
제갈자운이 한참을 크게 웃고는 말했다.
”사매의 도제를 네가 붙잡아 둔다고? 그렇게는 안되지, 너는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여전히 동굴 안 무공을 배우려고 하느냐?
사도화가 냉랭하게 말했다.
”나는 반드시 언사군을 붙잡아 둬야겠소. 그에게 물을 말이 있소이다. 솔직히 말해 당금 천하에 어떤 사람도 내 안중에 없지만, 그는 너무 두려워졌소. 당년의 나보다 더 무서워졌소이다.“
제갈자운이 차갑게 말했다.
”20년 이래 우리 사형제가 초식을 겨룬 적이 없었지, 지금 네가 흥취가 있다면 우리 다시 겨뤄 20년 동안 네 공력이 과연 얼마나 진전되었는지 보자!“
사도화가 냉소했다.
”아마도 내 상대가 안될 것이오“
제갈자운이 마음속으로 크게 노하여 막 입을 열려고 하는데 언사군이 미소하며 말했다.
”대사백님이 나설 필요 없습니다. 제가 한번 시험해 보겠습니다“
제갈자운이 그를 바라봤다. 그는 언사군이 사도화를 멀리 내던지는 것을 직접 목격했었기에 언사군의 공력이 얼마나 증진되었는지 좀 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게다가 사도화도 언사군 한 사람만을 두려워한다고 했지 않은가.
그는 언사군의 무공이 어떠한지 보고 싶어 머리를 끄덕였다.
(중권 끝).
그가 시력을 집중해 한참 동안을 쳐다보았더니 두 눈이 벌써 시큰거려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그 검식이 눈에 익은 것처럼 느껴졌다. 별빛이 옮겨지며 언사군은 연속해서 검식 다섯 개를 봤다.
연이어 열흘 동안 언사군은 줄곧 야안을 연마했다. 10일이 지나자 그는 이미 캄캄한 밤에도 대낮처럼 환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벽에 새겨진 것은 오행검법(五行劍法)인데 모두 120식으로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 오행에 합치되었고, 금목수화토마다 각 24초로 을목검법의 정화(精華) 역시 그곳에 있었다.
이렇게 한 달이 지나자 언사군 스스로도 내공이 크게 나아진 것을 느꼈다.
제갈자운도 마음이 매우 기쁘면서도 왜 언사군은 환상에 빠지지 않았는지는 기괴하게 생각했다. 정상적이라면 언사군은 환경(幻境)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는데, 그가 내면에 감춰진 일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주화입마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하더라도 언사군은 정신이 완전히 또렷했으니!
그는 천둔경은 원래 오래 전 이보(異寶)로서 그 시원한 기운에 피사(避邪)의 효능이 있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둘째 날 언사군이 연공을 하고 있을 때 돌연 가느다란 소리에 놀라 깨어나 보니 캄캄한 가운데 한 사람이 동굴 안에 뒤돌아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사람이 고개를 돌리자 언사군은 깜짝 놀랐다.
그는 다름 아닌 한안신군 사도화였던 것이다.
이때는 한밤중이라 동굴 안이 칠흑같이 어두워서 한안신군은 좌우를 분간할 수 없어서 조용히 그곳에 서있는 것처럼 보였다.
왼쪽에서 또 작은 소리가 들려 언사군이 눈을 들어 보니 제갈자운이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군아냐? 내려와서 무얼 하고 있느냐?”
한안신군이 놀라 몸을 돌리고 말했다.
“접니다. 사도화”
제갈자운도 깜짝 놀랐다.
“너라고?”
그는 사도화가 여기에 나타날 줄은 생각도 못했고, 도대체 어떤 곳에서 왔는지도 몰랐다.
사도화가 냉랭하게 말했다.
“내가 찾아올 줄은 몰랐지요?”
언사군이 그 말을 듣고 어리둥절해서 생각했다.
“이 사도화는 정말 대단하구나, 지금은 정신이상이 완전히 나았고 일부러 이곳까지 뒤를 밟아 오다니!”
제갈자운이 아무 말이 없자 사도화가 차갑게 말했다.
“20년 전 당신에게 의심을 품었는데 과연 당신은 사부님이 남긴 무공을 숨기고 있었군”
제갈자운이 말했다.
“사도화! 입에 발린 말 하지 마라, 사부님? 네가 아직도 그렇게 부를 수 있느냐? 이 동굴은 나도 단지 두 번째로 온 거다. 너 정말 똑똑하긴 하구나, 나를 미행하다니. 이 동굴 안 무공은 우리 다섯 명이 각자 일부분씩 배웠던 거다. 너 혼자 다 가지려고 하는 건 불가능하다.”
사도화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
“나도 바라지 않지만, 당신이 숨기고 있는 건 인정할 수 없소”
제갈자운이 냉소했다.
“사도화, 20년이 됐는데도 너는 여전히 그 당시처럼 안하무인(眼下無人)이구나. 나는 장문 대제자이고 본문에서 장차 성취(成就)를 이룰 사람은 언사군이다. 이 동굴 안 무공은 마땅히 그의 것이 돼야 한다.
사도화가 한참을 침묵하더니 동굴 밖으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지금은 불편하니 내일 처음 햇빛이 이 동굴에 비칠 때 다시 오겠소!“
말을 마치고 동굴 밖으로 번뜩 몸을 날렸다.
제갈자운이 동굴 입구를 바라보며 가볍게 탄식했다.
언사군은 보따리와 장검을 집어들고 몸을 날려 공중에서 크게 반원을 그려 제갈자운 앞에 떨어져 내리며 말했다.
”대사백님, 괜찮으시죠?“
제갈자운이 놀라기는 했지만 벌써 이것이 성상만리(聲翔萬里)의 신법(身法)을 알아보았고, 또 목소리를 듣고는 언사군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오랫 대적(大敵)을 상대해봤던지라 언사군의 신형이 떨어지자마자 물었다.
”아이야! 언제 야안을 연마한 적이 있었느냐?“
언사군은 조금 미안해서 지난 한 달여 동안의 일을 말해줬다.
제갈자운이 다 듣고 깊이 생각한 후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 너는 날이 밝기 전에 동굴 안의 초식을 모조리 기억하고, 만약 기억할 수 없으면 해뜨기 전에 부숴 버려라!“
언사군은 멍해져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동굴 안에 있는 것 모두 단죽군이 심혈을 쏟아 만든 건데 이렇게 부숴버리면 너무 아깝지 않은가?”
제갈자운은 언사군이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한천냉무도 부서지고 돌기둥이 사라지고 냉무(冷霧)도 없어지게 된다. 그때가 되면 사도화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되지. 사도화는 내가 어려서부터 키웠기 때문에 그의 개성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그는 타고난 성품이 총명하긴 해도 식견이 너무 좁고 이따금 후회를 잘한다.”
언사군이 두 눈으로 주시하다 을목검을 뽑아 경력(勁力)을 검에 운용하여 먼저 오행검결(五行劍訣)을 없앤 후 그 밖의 것들도 하나씩 기억해가면서 하나씩 없애 갔다.
얼마 안 있어 하늘빛이 곧 밝아지려고 할 때 언사군은 절반 정도만 기억했고 나머지는 급하게 보고 검을 휘둘러 부숴버렸다.
그가 마지막 사람 그림을 잘라버릴 때 사도화도 이미 도착했다.
사교랑과 그 백의소년 사도홍도 같이 왔는데 사도화는 땅 위에 돌가루가 분분히 날리는 것을 보고는 안색이 약간 변해 언사군을 노려보며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치 응당 어떻게 해야 할지를 심사숙고하는 것처럼!
언사군이 몸을 돌려 한천(寒泉)을 향해 달려가자 사도화가 움직여 언사군의 길을 막아섰다.
제갈자운이 나서며 장(掌)을 펼쳐 사도화를 공격했다.
“빨리 비켜라, 이곳은 사부님이 당년에 수도(修道) 하시던 곳이다. 네가 이렇게 방자하게 굴 데가 아니다.”
사도화가 대소(大笑)하며 왼손을 돌려 제갈자운의 손목을 잡아가면서 오른손으로는 바람처럼 언사군의 배심(背心)을 잡아챘다. 그의 이 좌우개궁(左右開弓)의 기세와 출수(出手)의 빠르기가 상상 이상이었기 때문에 제갈자운이 부득이 초식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이때 사교랑도 벌써 앞으로 나서 검으로 제갈자운을 공격해 들어갔다.
언사군은 돌연 등 뒤를 습격당하는 것을 느끼자 등을 돌린 채 그대로 발차기를 하는데 발끝이 사도화의 곡지혈(曲池穴)을 향하자 사도화가 크게 놀랐다. 언사군의 이 솜씨를 보니 그의 공력이 이미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진전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한 번의 발차기가 너무 빨라 그도 변초(變招) 는 방법 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그가 오른손을 낮춰 반대로 언사군의 발목을 잡으려고 했다.
언사군은 오른발을 거둬들이고 몸을 뽑아내어 곧바로 그 하얀돌 위로 떨어져 내렸다.
사도화가 언사군을 처음 봤을 때는 20년 이래 사운고(謝芸姑)에 대한 미안함을 생각해서 대전구식을 언사군에게 전수해줬었다. 다만 후에 옛 사형제들이 한 사람씩 다시 나타났다. 그가 처음 언사군을 가르친 것도 언사군이 이전의 일을 몰라서였다. 그러나 지금은 언사군이 이미 이전의 일을 알게 되었고, 더욱 무서운 건 언사군이 또 고인(高人)의 가르침을 받아 대전구식의 정묘함이 그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