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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잔칠정 상권 6

천잔칠정(天殘七鼎) 2023. 2. 17. 19:21 Posted by 비천호리

쥐 죽은 듯 고요한 가운데 하나의 신영(身影, 형체, 그림자)가 봉우리 위로 날아올랐다.
청삼(靑衫) 차림의 중년 문사 한 명이 고찰(古刹) 앞에 출현했다.
중년 문사의 안색은 옥처럼 고왔고 등에는 비스듬히 장검 한 자루를 꽂고 있었다.
그는 무심히 지상의 천산칠검의 일곱 구 시신을 바라보는데 칠인의 죽음을 하나도 기괴(奇怪)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똑바로 고찰의 대전(大殿)으로 걸어들어 갔다.
대전으로 들어가니 한눈에 천잔수가 책상다리를 한 채 넘어져 있는 것이 보였고, 그의 얼굴에 놀랍고 의아해하는 표정이 드러났다.
그의 마음속에 슬며시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천산칠검의 실력으로 천잔수를 그 자리에서 죽도록 만들 수 있나?”
생각하면서 저도 모르게 대전의 사방을 둘러보았다.
대전에는 언사군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가 언사군을 무심히 흘깃 쳐다본 후 천잔수에게 다가가 살펴보니 등에 피 구멍이 세 개 나 있었다. 그 중년 문사는 피 구멍 세 개를 보고는 자기도 모르게 “흥” 코웃음을 쳤다.
“천잔수가 죽은 후 분명히 누군가가 다녀갔다, 천잔수의 등에 꽂혔던 암기(暗器)는 틀림없이 신물(神物)이었는데 천잔수가 소홀히 대하다 죽음을 당한 거고, 그 후에 온 사람이 천잔수의 등에서 암기를 거두어 갔구나!”
돌연 그의 생각이 다른데 미쳤다.
“천잔수와 천산칠검은 전부 강호에서 유명한 인물들인데 여기서 죽었지만 그래도 할 말이 있겠지,
그런데 저 어린아이는 누구지? 의외로 이곳에서 죽다니!”
이런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돌려 언사군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언사군의 몸이 한차례 부르르 떨렸다.
중년문사가 생각했다.
“저 아이가 아직도 죽지 않았다니 이건 정말 기괴하구나, 내가 여기서 벌어진 일을 알아보려면 아무래도 이 아이에게 들어보는 수밖에 없겠다.”
그가 언사군에게 가까이 가 그를 한번 뒤집어 보았다.
언사군의 등 뒤 옷은 이미 산산조각이 나 있어서 드러난 등에는 칠종(七種)의 어지럽게 흩어진 장인(掌印, 손바닥 자국)이 나타나 있었다.
그 중년 문사는 더 크게 놀랐다. 이 장인(掌印)들은 모두 그가 아는 것이었다.
공동파의 독문(獨門) 장력 절한장(絶寒掌), 무당파의 태허장(太虛掌), 소림파의 금강장(金剛掌), 아미파의 대수미장(大須彌掌), 곤륜파의 잔양장(殘陽掌), 점창파의 칠성장(七星掌)에다 화산파의 쇄월장(碎月掌)까지 있었으니!
중원 칠대문파의 독문장력이 이 어린아이 몸에 한꺼번에 나타나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 기괴한 것은 그런데도 이 아이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한 번 더 언사군의 몸을 뒤집어 맥을 잡아보고는 암암리(暗暗裏)에 미간을 찌푸렸다.
언사군의 이렇게 깊은 내상(內傷)은 칠대문파의 장력에 의한 것이라 지금 그의 공력으로 구하고자 하면 안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치료를 하고 나면 그는 적어도 5년은 지나야 공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가 몸을 일으켜 대전 안을 거닐었다.
이렇게 어린아이를 5년의 공력을 써서 구하기에는 너무 가치가 없다.
다만, 그가 칠대문파의 장력에 의해 내상을 입은 건 풀리지 않는 커다란 의혹이었다.
그의 마음으로는 확실히 그것을 알고 싶었다.
칠대문파에게 물어본들 말할 사람이 절대로 없을 것이다!.
소림파의 금강장도 저 아이의 등에 찍혀 있는 걸로 보면 이 일의 영향이 얼마나 큰지 분명히 드러난다. 소림파는 그동안 무림의 은원(恩怨)에 거의 관여된 적이 없었는데 이 일에는 개입했으니!
그가 오랫동안 깊은 생각을 한 후 언사군을 흘깃 보니 언사군의 청수(淸秀, 맑고 빼어남)한 얼굴 위로 다른 한 사람의 유년 시절의 환영(幻影)이 겹쳐졌다.
아! 가벼운 탄식을 하며 그가 언사군을 부축해서 왼손 바닥(左掌)을 언사군 등에 댄채 책상다리로 앉아 공력을 운행(運功) 하여 치료를 시작했다.
한동안 시간이 지나고 그 중년 문사의 옥 같은 얼굴이 하얗게 변했으나 반대로 언사군은 가볍게 신음하기 시작했다.
그 중년 문사는 한 동안 조식(調息)을 한 다음 품에서 환약(丸藥) 한 알을 꺼내 언사군의 입을 벌렸다가 깜짝 놀랐다. 언사군의 입속에 다 녹지 않은 소림 자금단 한 알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더 아리송해지기는 했지만, 환약을 언사군의 입에 넣어 주었다. 환약은 바로 녹아 언사군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언사군이 가벼운 신음소리와 함께 서서히 두 눈을 떴다.
그는 자기가 어떻게 아직도 살아 있는지 이상하게 생각했다.
지난 일들이 한 장면 한 장면 그의 뇌리를 스치자 조그맣게 말했다.
“내가 아직 살아 있는 걸까?”
중년 문사가 미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는 죽지 않아!”
언사군은 어떻게 된 일인지 바로 이해했다. 다른 사람이 그를 구해준 것이다. 콩알 같은 눈물방울이 그의 눈에서 떨어졌다. 그 중년 문사도 언사군을 바라보며 마음속에 왠지 알 수 없는 처연(凄然)함을 느꼈다. 그가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착하지, 아이야 울지 마라, 네가 억울한 일을 너무 많이 당했구나!”
언사군의 마음이 격동(激動)되었다. 지금까지 모친 외에는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그의 부친마저도.
부친에게 생각이 미치자 위엄있는 얼굴이 그의 눈앞에 떠올랐다 돌연 또 온 얼굴이 피에 젖은 채 그에게 “군아(軍兒) 어서 도망쳐라!” 소리치는 모습으로 변했다.
팔황신마의 신형이 또 그의 머릿속에 나타났다.
그의 마음속에서 더 슬픔이 솟아오르며 눈물이 그치지 않고 흘러내렸다.
언사군이 이렇게 상심(傷心)하여 우는 것을 보자 그 중년 문사도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러나 고개를 돌려 대전을 한차례 훑어보며 눈물을 참았다.
언사군은 그 중년 문사가 고개를 돌리자 자기가 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줄 알고 기어 일어나 중년 문사를 향해 꿇어 앉았다.
“저 언사군, 목숨을 구해주신 전배(前輩)께 감사드립니다.”
중년 문사가 고개를 돌려 언사군을 응시하며 말했다.
“네 이름이 언사군이구나, 무슨 일로 다른 사람에게 맞아서 이렇게 중상을 입게 되었느냐?”
언사군이 자신의 신세와 산에 오른 후에 벌어진 일들을 설명했다.
중년 문사가 다 들은 후 탄식하며 말했다.
“너도 참으로 가련하구나, 내가 너를 제자로 거두려고 하는데 그걸 원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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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잔칠정 상권 5

천잔칠정(天殘七鼎) 2023. 2. 17. 19:20 Posted by 비천호리

말을 마치고는 그가 신형을 일으켜 우장(右掌)으로 가볍게 언사군을 한번 누른 후 천룡사 세 개를 주워들고는 여섯 사람에게 말했다.
“빈도(貧道)는 한 걸음 먼저 가겠소이다, 이 천룡사 세 개는 내가 가져가 천산파에 돌려주겠소”
말하면서 그가 오른손을 들자 오륙백 근이나 되는 고정이 가볍게 들렸고, 신형이 번뜩 움직이는 사이에 벌써 대전을 나가 사라져 버렸다.
언사군은 무극자의 일장에 눌리자마자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는데 전신이 마치 얼음 굴에 떨어진 것처럼 참을 수 없는 극심한 추위를 느꼈다. 바로 공동파의 절한장(絶寒掌)에 격중된 것이다.
만약 천잔수가 눈을 감기 전에 백년 수위(修爲)의 내력을 언사군의 몸에 넣어주지 않았다면 이때 언사군의 목숨은 벌써 끝이 났을 것이었다.
아미파 공운사태는 무극자와 줄곧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무극자가 한 순간에 일곱 개 고정 가운데 장인(掌印)이 가장 또렷한 한 개를 빼앗아 가자 저도 모르게 “흥”하고 비웃음을 표했다.
그리고 언사군을 슬쩍 보니 무극자의 그 장력은 일장으로 언사군의 목숨을 빼앗기에 충분한, 참으로 음험하고 악독한 수법이었다. 그녀는 무극자가 언사군을 죽인 죄를 칠파에게 분담(分擔) 시키려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
“그렇지만 이것도 좋다.”
그리고는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신형을 일으켜 그녀도 언사군에게 일장을 치고는 고정 하나를 잡아 몸을 날려 대전 밖으로 사라졌다.
나머지 다섯 사람은 두 사람이 이미 사라진 것을 보았다. 무당파 송골도장이 더 참지 못했다.
“무당파는 무림정종(武林正宗)인데 어찌 다른 파의 뒤에 처질 수 있겠는가?”
그도 몸을 일으켜 언사군을 한번 툭 치고는 세 번째 고정을 들고 사라졌다.
언사군의 신형이 흔들거렸다. 그는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지만, 여전히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만에 하나라도 살아 돌아올 수만 있다면 그때는 반드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원수를 갚아 주겠다.
비록 그것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을 그 역시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라도 해야만 겨우 정신을 잃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점창파의 장문인 칠보추혼검 희곤지도 몸을 일으켰다. 점창파는 검술에서 일절(一絶)이라고 자부해왔지만 만약 지금 천잔수가 남긴 무공을 얻을 수만 있다면 무림을 영도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것은 그가 밤낮으로 기구(祈求) 하던 것이었다.
그가 몸을 일으켜 일장(一掌)을 친 후 네 번째 고정을 들고 갔다.
언사군의 두 눈이 흐릿해지며 목구멍에 단 느낌이 나더니 선혈을 한 입 토해냈다.
곤륜파의 금검수사 강천우와 화산파 장문인 쇄일장 하치설 이인(二人)이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금검수사가 한 걸음 빨랐고, 두 사람은 다섯 번째, 여섯 번째 고정을 가지고 갔다.
언사군은 연달아 이장(二掌)을 맞자 가슴 속이 한바탕 떨리고는 곧바로 의식을 잃고 땅에 쓰러졌다.
해천대사가 묵묵히 그곳에 앉아 하나 남은 고정과 땅에 드러누운 어린아이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소림파의 명예는 결코 어느 한 사람에 의해 훼손되도록 용납할 수 없다. 이보다 더 무서운 일을 한다고 해도 그것이 소림파의 명예를 지키는 일이라면 그는 여전히 기꺼이 할 것이다."
그가 느릿하게 몸을 일으켜 언사군의 곁으로 다가가 일장을 쳐내렸다.
돌연, 한 가지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마치 언사군이 또 “이건 모살이다!”라고 부르짖는 것 같았다.
그의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가 번뜩 스쳐 가는 순간 막 쏟아내던 장력(掌力)을 억지로 거둬들이려고 했지만 이미 늦고 말았다. 일부분의 장력이 언사군을 격중하자 언사군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비록 그가 천잔수가 주입해준 백년 내력을 받았다고 하더라고 칠대문파 장문인에게 차례로 장력을 맞고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해월대사의 얼굴에서 땀이 떨어졌다. 그가 돌연 생각했다.
“나는 출가인 아닌가! 소림파의 명예를 잃을지언정 어떻게 이런 일을 한다는 말인가, 천하에 대해, 내 양심에 대해 어찌 떳떳할 수 있겠는가?”
선심(善心)이 사라지면 제악(諸惡)이 닥친다. 절대로 한번 잘못한 것을 다시 잘못하지 마라(萬萬不可一錯再錯), 악(惡)을 하나 덜 행하면 그것은 바로 선을 하나 더 쌓는 것이니(少做一惡即是多積一善).
이런 생각을 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몸을 낮춰 하얗게 변한 언사군의 안색을 보고, 언사군의 맥박을 잡아보자 자신의 힘으로는 구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늠 가벼운 탄식을 하며 품속을 더듬어 자금단(紫金丹) 한 알을 꺼내 언사군의 입에다 넣어주고는 생각했다.
“이렇게 하면 세 시진 안에는 죽지 않을 것이다. 고인(高人)에게 발견되면 혹시라도 목숨을 구할 수도 있겠지" 비록 이런 종류의 희망은 가능성이 매우 낮기는 하지만 그렇더라도 자기의 한 점 마음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그런 후 얼굴을 돌려 고정을 보았다.
“이 고정에는 천잔수의 절세무공이 간직되어 있다. 만약 사도(邪道)의 사람이 얻게 되면 그 뒷일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
그는 신형을 일으켜 그 고정(古鼎)을 들고 표연(飄然)히 대전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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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잔칠정 상권 4

천잔칠정(天殘七鼎) 2023. 2. 17. 19:19 Posted by 비천호리

언사군이 깜짝 놀라 칠인을 살펴보니 도사 두 명, 속인(俗人) 세 명, 승려 한 명, 비구니 한 명이었다.
바로 당금 중원 칠대문파의 장문인들이었던 것이다.
칠인은 책상다리를 하고 앉는데 마치 언사군을 보지 못한 듯이 한다.
가장 오른쪽 흰 머리에 흰 눈썹의 노승이 가볍게 탄식한 후 말했다.
”우리 칠인이 한 걸음 늦는 바람에 천산칠검이 천잔수의 손에 죽고 말았구려.“
말은 꺼낸 사람은 다름 아닌 소림파(少林派) 장문인 해월대사(海月大師)였다.
그가 말을 막 마치자 제일 왼쪽의 공동파(崆峒派) 장문인 무극자(無極子)가 차갑게 말했다.
”그렇소, 우리가 그들과 약속한 시간보다 한 시진(時辰) 늦게 도착했소이다.“
해월대사가 놀라 말했다.
”뭐라고요, 이보다 한 시진 더 일찍 오기로 그들과 약속했다고요?“
무극자가 말했다.
”바로 그렇소이다.“
그가 천잔수의 시신을 한번 쳐다보았다. 그는 천잔수가 천산칠검과 한꺼번에 죽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단지 천산칠검이 천잔수에게 중상을 입히도록 하고 그 다음에 자기들 칠인이 다시 손을 쓰면 그거야말로 큰 공(大功)이 아니겠는가 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무림에서 오래전 사라진 천룡사(天龍梭)가 천산칠검의 수중에서 나타날 줄이야!
해월대사는 곧바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가 다른 다섯 문파의 장문인을 훑어보니 오인(五人)의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이 없다. 그제서야 원래 이렇게 된 일이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미파(蛾嵋派) 장문인 공운사태(空雲師太)가 느릿하게 말했다.
”지금 천잔수는 죽었어도 무공은 이 일곱 개의 고정에 남겨 두었소“
이렇게 말하면서 그녀가 장중(場中)의 사람들을 쓱 한번 보니 고개를 숙이고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해월 대사를 빼고는 나머지 다섯 명은 모두 호시탐탐(虎視眈眈) 일곱 개의 고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사군이 한쪽에서 크게 소리쳤다.
”이 고정들은 그 어르신이 내게 남겨 줬어요“
그가 이렇게 한번 외치자 그 자리에 있는 칠인은 일제히 깜짝 놀랐다.
공동파의 무극자가 앉아 있는 곳이 언사군과 가장 가까웠다. 그가 신형을 살짝 움직여 언사군을 몸 옆으로 끌고 왔다.
언사군이 고개를 쳐들고 굴하지 않는 태도로 그를 쏘아보았다.
무극자가 뜨끔하여 입가에 냉소를 머금으며 여섯 사람에게 말했다.
”이 일은 우리 칠대문파의 장문인들만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라며 여섯 사람을 하나씩 쳐다봤다. 일곱 사람은 모두 중원 큰 문파의 장문인인데 설마 이 일이 세상에 전해졌을 때의 나쁜 결과를 모른단 말인가?
일곱 사람은 언사군을 응시하며 얼굴에는 모두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공동(崆峒), 무당(武當), 소림(少林), 아미(峨嵋), 곤륜(崑崙), 점창(點蒼), 화산(華山) 중 그 어느 일파가 자기의 무림에서의 명성을 지키지 않으려고 하겠는가?
설령 해월대사라고 할지라도 소림파의 명예를 위해서는 목전(目前)에는 단지 언사군을 희생시키는 길만이 남은 것이었다.
언사군이 두 눈으로 공동파 무극자, 무당의 송골도장(松骨道場), 아미파의 공운사태(空雲師太), 곤륜파의 금검수사(金劍秀士) 강천우(姜天羽), 점창파 칠보추혼검 희곤지(姬昆池), 화산파 장문인 쇄월장(碎月掌) 하치설(夏致雪), 마지막으로 소림 해월대사(海月大師) 등 칠파 장문인들을 둘러보았다.
이들은 전부 무림의 명망 있는 큰 파들인데도 지금 이런 종류의 일마저 하려고 하다니!
칠인은 언사군이 두 눈으로 둘러보자 모두 일종의 말로 꺼내기 어려운 불편함을 느꼈다.
무극자가 차갑게 두 번 웃더니 언사군을 곁눈질로 흘깃 보고는 말했다.
”천룡사, 단연히 천산파에 돌려줘야겠지!“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천산칠검이 이 천룡사를 믿고 한 시진을 일찍 오는 바람에 이렇게 되고 말았는데 당연히 우리들이 동정할만하지!“
말을 마치고 또 차갑게 두 번 웃었다.
나머지 여섯 명은 마음속으로 확실히 알게 되었다. 무극자의 이러한 생각은 분명히 여섯 사람이 장래 강호 상에서 이렇게 말해야 한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는 것을! 그렇지 않으면 칠대파의 영예를 보전할 수 없다고!
언사군이 일곱 사람을 보면서 그중 단 한 사람도 그가 살아서 산을 내려 가도록 놔둘 자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일은 급해져 봐야 소용없는 것이다. 일곱 사람 가운데 누구라도 최고의 고수가 아닌 자가 없는데 그는 겨우 여덟 아홉 살짜리 어린아이 아닌가, 그중 아무라도 손만 꿈쩍하면 그를 없앨 수가 있었다.
무극자는 여섯 사람이 아무말이 없는 것을 보고는 또 차갑게 한번 웃으며 말했다.
”이 일곱 개의 고정에 천잔수가 남겨 둔 무공이 있으니 당연히 다른 사람이 갖고 가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소이다. 우리 일곱 파가 하나씩 보관하는 것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언사군은 자신이 반드시 죽을 것을 알고서 화가 나 말했다.
”이 도둑놈들아!“
일곱 사람이 이 말을 듣고 일제히 마음이 울렸다.
무극자가 냉소하며 왼손에 조금 힘을 가하자 아픔으로 인해 언사군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무극자가 음산하게 웃었다.
”이 어린애가 천잔수가 이 고정 일곱 개를 자기에게 줬다고 말했소이다. 그렇다면 이 애는 자연히 천잔수의 제자인데, 여섯 분은 어찌할 생각이시오?“
일곱 사람의 마음이 또 흔들렸다.
모살?(謀殺, 모략을 꾸며 죽이다)
칠파 장문인들은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일이 만약 강호 상에 전해지면 칠파 중 누가 강호에 발을 붙일 수 있을 것인가!
무극자가 언사군을 가운데로 밀어 넣는 김에 그의 아혈(啞穴) 짚고 여섯 사람에게 말했다.
”여섯 분이 생각해 내지 못하겠다면 내게 한 가지 방법이 있소이다.
언사군이 대전의 중앙에 서서 두 눈으로 일곱 사람을 훑어 보고는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한 줄기 눈물자국이 그의 뺨에 또 나타났다.
죽는 건 별거 아니다. 다만 팔황신마가 부모님을 죽였는데도 영원히 복수를 할 수 없게 되다니!
무당파 송골도장이 말했다.
“도형(道兄)에게 고견(高見)이 있으시면 말씀해보시오!”
무극자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우리 칠파가 각자 고정 하나씩 가집시다. 단지 누가 먼저고 누가 뒤일지 정하기 어려우니 칠인이 출수(出手)해서 먼저 이 아이를 격중하는 사람이 먼저 가져가는 것이 낫겠소이다. 여러분 이 생각이 어떻소?”
여섯 사람은 아무 말이 없었다.
무극자가 크게 한바탕 웃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기로 결정되었소!”
그의 마음속에는 일찌감치 계산이 서 있었는데, 고정 가운데 하나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이렇게 되어 자기가 이 일장(一掌)을 깨우치면 공동파는 곧바로 무림의 영수(領袖)가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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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잔칠정 상권 3

천잔칠정(天殘七鼎) 2023. 2. 17. 19:17 Posted by 비천호리

그는 사정이 이렇게 돌연히 발생할 줄, 그리고 강기의 반진지공(反震之功)이 효과가 없을 줄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그의 신형이 한 차례 가볍게 떨렸는데, 이미 등 뒤의 영대, 지당, 명문 3대 혈문이 그 암기에 격중되어 버린 뒤였다.
그의 얼굴색이 파리하게 변했다. 등 뒤로 손을 돌려 암기 하나를 뽑아 보니 그 암기는 금빛이 반짝이고 길이는 약 5촌(五寸) 이었다.
과연 틀림없구나, 바로 오래전에 사라진 무림의 천룡사(天龍梭)가 천산칠검의 수중에서 나타날 줄이야, 게다가 자기의 교만이 지나쳐서 이런 운명에 처할 줄이야!
하늘의 뜻이냐! 아니면 운명인 거냐!
천산칠검도 깜짝 놀랐다.
그들은 천잔수가 천룡사에 등 뒤 3대혈을 격중당한 뒤에도 여전히 꼿꼿이 서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칠인은 감히 더 생각하지 못하고 일제히 검을 곧추세워 공격해 들어갔다.
천잔수는 갑자기 변고를 당해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칠인이 재차 공격해오는 것을 보자 노갈(怒喝 분노의 외침)을 터뜨리며 공중으로 신형을 띄워 평생 동안 거의 쓴 적이 없는 천잔장법(天殘掌法)을 시전했다. 비명 소리와 함께 천산칠검의 몸뚱아리가 일제히 날아올랐다. 천잔수의 필적할 자 없는 절세장력에 격중되어 땅에 거꾸로 떨어져 숨이 끊어졌다.
일장(一掌)으로 칠인을 죽여버린 후 천잔수의 입가에는 한 가닥 경멸의 웃음기가 배어났다.
그리고 암암리에 생각했다.
”당금 천하무림의 실력이 겨우 이 정도였구나, 내 일장으로 칠인을 즉석에서 쳐 죽일 수 있으니“
이런 생각을 하는데 배심(背心)에서 한 바탕 통증이 느껴지고 한 오라기 형용하기 어려운 기색이 그의 얼굴에 나타났다. 그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나 천잔수가 이렇게 죽는단 말인가?, 이렇게 소리 소문 없이? 내 일신의 절세무공은 나를 따라 사라지고?“
그가 두 눈으로 대전 안을 쓸어보니 언사군이 대전의 한 귀퉁이에 서 있었다. 바로 전의 그 일막(一幕)에 놀라 얼이 빠진 채 말없이 선 채로.
하지만 천잔수는 그를 본 것이 아니었다. 그의 시선은 대전의 왼편에 있는 일곱 개의 고정(古鼎)에 떨어졌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죽음을 맞기 일보 직전에 일신의 절세무공을 남겨 두어 후인(後人)으로 하여금 이 세상에 천잔수의 십분의 일에 미치는 사람조차 단 한 사람 없었다는 것을 알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그가 생각에 빠져 있는데 등 뒤로부터 다시 통증이 전해지자 다시 미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언사군은 얼이 빠져 한쪽에 있다가 한참 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천잔수를 바라보니 그의 등에는 여전히 금색의 암기 두 개가 박혀있고, 그 외에도 피에 젖은 구멍이 하나 있는데 선혈이 뚝뚝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천잔수는 그것은 전혀 마음에 두지 않은 듯 때마침 온 정신을 쏟아 대전 한편에 있는 일곱 개의 고정(古鼎)을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천잔수의 신형이 가벼운 바람에 날리듯이 일곱 개의 고정 곁을 번쩍 스쳐 가더니 다시 돌아와 원래 자리에서 가부좌를 틀었다. 일곱 개의 고정이 우~웅 소리를 내며 일곱 가지 서로 다른 울림을 토했는데 그 소리가 하늘 끝까지 울려 퍼졌다. 고정에는 일곱 개의 분명하면서도 깊이가 다른 장인(掌印, 손바닥 도장) 불쑥 나타났다. 고정 하나에 하나씩 장인이 찍혀 있었다.
천잔수가 원래의 자리에 몸을 떨어뜨리고는 두 눈으로 그의 걸작(傑作)인 그 일곱 개의 장인을 응시했다. 그의 입가에 득의양양(得意揚揚)한 미소가 떠올랐지만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다.
그렇지만 그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 세상에 누가 나와 같은 이런 고강한 무공을 가지고 있고, 누가 이런 총명함과 재지(才智)를 갖추고 있어서 내가 남긴 일곱 개의 장인 가운데의 무공을 터득할 수 있을까?
일곱 개 고정의 비밀을 얻을 수 있으면 바로 당세 제일의 고수가 될 것이다.“
생각하면서 입가에 다시 살짝 미소를 지으며 또 생각했다.
”아마도 나에게 미칠 자가 아무도 없겠지“
돌연 그의 사념(思念)이 언사군에게 미쳤다.
그 어린아이, 앞서 그의 모든 거동(擧動) 전에 그의 마음을 알아챘던 아이
그가 눈길을 돌려 언사군의 몸에 시선을 떨어뜨렸다.
언사군은 천잔수가 이렇게 자기를 쳐다보는 것을 알자 천천히 걸음을 옮겨 천잔수에게 걸어갔다.
천잔수가 놀라 생각했다.
”이 언사군이라는 어린아이가 또 내 마음을 알아챘다는 말인가?“
그의 마음속에 분명치 않은 시기심이 올라왔다.
언사군은 천잔수의 앞에 이르자 또 천천히 꿇어앉았다.
천잔수의 눈빛이 가볍게 번뜩이고 마음속으로는 흥-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이 아이의 총명과 재지도 내 아래가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곧 세상을 떠날거고 이 아이는 아직 어린 나이다. 정말로 세상에 어떤 사람의 총명과 재지가 나를 넘어설 수 있다는 말인가?”
한 가닥 승복할 수 없는 마음이 올라왔다.
그는 언사군을 응시하면서 입가에는 서서히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그가 언사군에게 말했다.
“너, 무공을 배우길 원하느냐?”
언사군이 머리를 들어 천잔수를 바라보고는 또 천천히 머리를 숙였다.
천자수가 언사군을 보며 언사군의 마음에 생각하는 일을 추측했다.
“이 아이는 여전히 매우 인자한 마음을 가지고 있구나, 무공을 언급하니 바로 천산칠검에 생각이 미치다니”
그가 느릿하게 말했다.
“아이야, 너는 나를 보고도 죽음을 면했는데 이건 근 10년 래에 유일한 예외다. 지금 노부(老夫)는 너를 죽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왼쪽 편에 있는 저 고정 일곱 개를 너에게 주겠다. 그렇지만 노부는 너를 제자로 거둘 수는 없구나, 저 고정 위의 각자 깊이가 다른 일곱 개의 장인(掌印)을 이후에 너 스스로 천천히 체험(體驗)해 보거라”
언사군이 엎드려 절을 하며 말했다.
“어르신 감사합니다.”
천잔수가 잠시 침묵한 후 또 말했다.
“저 고정에는 절세의 무공이 있다. 만약 네가 터득할 수 있다면 원수를 갚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히 천하제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말을 마치고 손을 뻗어 언사군의 천령개(天靈蓋)를 어루만졌다.
언사군은 전신이 크게 떨리는 것을 느꼈는데 곧바로 한 가닥 뜨거운 기운이 그의 온몸을 뚫고 들어오더니 단전에 이르렀다.
언사군은 단지 한 가닥 뜨거운 기운이 전해지자 온몸이 이전에는 그랬던 적이 없는 정도로 시원해지는 것을 느꼈다. 놀랍고 기뻐 천잔수를 바라보는데 그의 얼굴에 감격이 가득하여 말했다.
“어르신, 제가 무공을 성취하면 반드시 어르신을 위해 복수를 해드리겠습니다.”
말을 마쳤는데 천잔수의 이마에 땀이 흐르고 전신을 한번 떨더니 곧바로 숨이 멎어 버렸다“
무림 백년 이래 천하제일의 기인이 이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 버린 것이다. 고정(古鼎) 일곱 개만 남기고!
언사군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고정 쪽으로 걸어가려고 하는 순간 또 다시 칠인의 인영(人影, 사람의 모습)이 대전 안에 날아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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