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잔칠정 상권 6

천잔칠정(天殘七鼎) 2023. 2. 17. 19:21 Posted by 비천호리

쥐 죽은 듯 고요한 가운데 하나의 신영(身影, 형체, 그림자)가 봉우리 위로 날아올랐다.
청삼(靑衫) 차림의 중년 문사 한 명이 고찰(古刹) 앞에 출현했다.
중년 문사의 안색은 옥처럼 고왔고 등에는 비스듬히 장검 한 자루를 꽂고 있었다.
그는 무심히 지상의 천산칠검의 일곱 구 시신을 바라보는데 칠인의 죽음을 하나도 기괴(奇怪)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똑바로 고찰의 대전(大殿)으로 걸어들어 갔다.
대전으로 들어가니 한눈에 천잔수가 책상다리를 한 채 넘어져 있는 것이 보였고, 그의 얼굴에 놀랍고 의아해하는 표정이 드러났다.
그의 마음속에 슬며시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천산칠검의 실력으로 천잔수를 그 자리에서 죽도록 만들 수 있나?”
생각하면서 저도 모르게 대전의 사방을 둘러보았다.
대전에는 언사군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가 언사군을 무심히 흘깃 쳐다본 후 천잔수에게 다가가 살펴보니 등에 피 구멍이 세 개 나 있었다. 그 중년 문사는 피 구멍 세 개를 보고는 자기도 모르게 “흥” 코웃음을 쳤다.
“천잔수가 죽은 후 분명히 누군가가 다녀갔다, 천잔수의 등에 꽂혔던 암기(暗器)는 틀림없이 신물(神物)이었는데 천잔수가 소홀히 대하다 죽음을 당한 거고, 그 후에 온 사람이 천잔수의 등에서 암기를 거두어 갔구나!”
돌연 그의 생각이 다른데 미쳤다.
“천잔수와 천산칠검은 전부 강호에서 유명한 인물들인데 여기서 죽었지만 그래도 할 말이 있겠지,
그런데 저 어린아이는 누구지? 의외로 이곳에서 죽다니!”
이런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돌려 언사군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언사군의 몸이 한차례 부르르 떨렸다.
중년문사가 생각했다.
“저 아이가 아직도 죽지 않았다니 이건 정말 기괴하구나, 내가 여기서 벌어진 일을 알아보려면 아무래도 이 아이에게 들어보는 수밖에 없겠다.”
그가 언사군에게 가까이 가 그를 한번 뒤집어 보았다.
언사군의 등 뒤 옷은 이미 산산조각이 나 있어서 드러난 등에는 칠종(七種)의 어지럽게 흩어진 장인(掌印, 손바닥 자국)이 나타나 있었다.
그 중년 문사는 더 크게 놀랐다. 이 장인(掌印)들은 모두 그가 아는 것이었다.
공동파의 독문(獨門) 장력 절한장(絶寒掌), 무당파의 태허장(太虛掌), 소림파의 금강장(金剛掌), 아미파의 대수미장(大須彌掌), 곤륜파의 잔양장(殘陽掌), 점창파의 칠성장(七星掌)에다 화산파의 쇄월장(碎月掌)까지 있었으니!
중원 칠대문파의 독문장력이 이 어린아이 몸에 한꺼번에 나타나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 기괴한 것은 그런데도 이 아이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한 번 더 언사군의 몸을 뒤집어 맥을 잡아보고는 암암리(暗暗裏)에 미간을 찌푸렸다.
언사군의 이렇게 깊은 내상(內傷)은 칠대문파의 장력에 의한 것이라 지금 그의 공력으로 구하고자 하면 안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치료를 하고 나면 그는 적어도 5년은 지나야 공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가 몸을 일으켜 대전 안을 거닐었다.
이렇게 어린아이를 5년의 공력을 써서 구하기에는 너무 가치가 없다.
다만, 그가 칠대문파의 장력에 의해 내상을 입은 건 풀리지 않는 커다란 의혹이었다.
그의 마음으로는 확실히 그것을 알고 싶었다.
칠대문파에게 물어본들 말할 사람이 절대로 없을 것이다!.
소림파의 금강장도 저 아이의 등에 찍혀 있는 걸로 보면 이 일의 영향이 얼마나 큰지 분명히 드러난다. 소림파는 그동안 무림의 은원(恩怨)에 거의 관여된 적이 없었는데 이 일에는 개입했으니!
그가 오랫동안 깊은 생각을 한 후 언사군을 흘깃 보니 언사군의 청수(淸秀, 맑고 빼어남)한 얼굴 위로 다른 한 사람의 유년 시절의 환영(幻影)이 겹쳐졌다.
아! 가벼운 탄식을 하며 그가 언사군을 부축해서 왼손 바닥(左掌)을 언사군 등에 댄채 책상다리로 앉아 공력을 운행(運功) 하여 치료를 시작했다.
한동안 시간이 지나고 그 중년 문사의 옥 같은 얼굴이 하얗게 변했으나 반대로 언사군은 가볍게 신음하기 시작했다.
그 중년 문사는 한 동안 조식(調息)을 한 다음 품에서 환약(丸藥) 한 알을 꺼내 언사군의 입을 벌렸다가 깜짝 놀랐다. 언사군의 입속에 다 녹지 않은 소림 자금단 한 알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더 아리송해지기는 했지만, 환약을 언사군의 입에 넣어 주었다. 환약은 바로 녹아 언사군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언사군이 가벼운 신음소리와 함께 서서히 두 눈을 떴다.
그는 자기가 어떻게 아직도 살아 있는지 이상하게 생각했다.
지난 일들이 한 장면 한 장면 그의 뇌리를 스치자 조그맣게 말했다.
“내가 아직 살아 있는 걸까?”
중년 문사가 미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는 죽지 않아!”
언사군은 어떻게 된 일인지 바로 이해했다. 다른 사람이 그를 구해준 것이다. 콩알 같은 눈물방울이 그의 눈에서 떨어졌다. 그 중년 문사도 언사군을 바라보며 마음속에 왠지 알 수 없는 처연(凄然)함을 느꼈다. 그가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착하지, 아이야 울지 마라, 네가 억울한 일을 너무 많이 당했구나!”
언사군의 마음이 격동(激動)되었다. 지금까지 모친 외에는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그의 부친마저도.
부친에게 생각이 미치자 위엄있는 얼굴이 그의 눈앞에 떠올랐다 돌연 또 온 얼굴이 피에 젖은 채 그에게 “군아(軍兒) 어서 도망쳐라!” 소리치는 모습으로 변했다.
팔황신마의 신형이 또 그의 머릿속에 나타났다.
그의 마음속에서 더 슬픔이 솟아오르며 눈물이 그치지 않고 흘러내렸다.
언사군이 이렇게 상심(傷心)하여 우는 것을 보자 그 중년 문사도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러나 고개를 돌려 대전을 한차례 훑어보며 눈물을 참았다.
언사군은 그 중년 문사가 고개를 돌리자 자기가 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줄 알고 기어 일어나 중년 문사를 향해 꿇어 앉았다.
“저 언사군, 목숨을 구해주신 전배(前輩)께 감사드립니다.”
중년 문사가 고개를 돌려 언사군을 응시하며 말했다.
“네 이름이 언사군이구나, 무슨 일로 다른 사람에게 맞아서 이렇게 중상을 입게 되었느냐?”
언사군이 자신의 신세와 산에 오른 후에 벌어진 일들을 설명했다.
중년 문사가 다 들은 후 탄식하며 말했다.
“너도 참으로 가련하구나, 내가 너를 제자로 거두려고 하는데 그걸 원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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