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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안금조(碧眼金雕) 6-4

碧眼金雕 2024. 10. 9. 20:26 Posted by 비천호리

은빛 무지개가 번쩍이고, 석지중이 온몸의 진기를 장검에 모아 손목을 떨치자 검에서 한 무더기 백색 기체가 쏟아져 나왔다.
하앗! 가벼운 소리와 함께 그의 두 발이 공중에서 움츠러들며 온몸이 허공으로 반 척 상승했다, 그가 오른발로 세차고 강하게 쏘아져 온 소전(小箭)을 한번 찍고는 허공에서 몸을 세웠다.
이때 다섯 자루의 은전이 쏘아져왔고, 그가 몸을 돌리자 검기가 퍼져 온몸을 감쌌다.
팍! 팍! "팍!" 연이어 다섯 번의 무거운 소리가 나더니, 다섯 자루의 은전이 검기에 부딪혀 두 동강이 나 떨어졌다.

석지중이 낭랑한 목소리로 마치 학이 울듯 한번 소리치며 허공을 한바퀴 돌아 큰 호를 그려 은전선생에게 덮쳐갔다.
그의 이런 일련의 동작은 모두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은전선생의 은전이 파해된 후, 석지중은 이미 검을 끼고 공중에서 날아왔다. 검광이 갑자기 번쩍이며 은전 선생을 쳤다.
자색 대궁을 들어 올리고 은전선생이 고함을 지르자 활그림자가 빛나며 조각조각 쏟아져 나와 온 천지에 휘몰아쳤다.
"윙!" 활시위가 급박하게 울리고 검날이 베이자 광채가 나타났다. 석지중의 몸 전체가 검에 밀착되어 상대방의 대궁에 가로 막혔고 공중에서 흔들리며 이미 은전선생과 내공을 겨루기 시작했다.
억제할 수 없는 내력이 끊임없이 용솟음쳐 나오자 검날이 약간 떨리고 활시위가 움푹 들어갔다. 말 위의 은전선생은 얼굴이 벌개져 버티고 있었다.

이 때 그의 손에 실린 무게 그대로 검날을 2촌 미끄러뜨려 온몸의 경력(勁力)을 모아 내리누르자 말이 슬피 우는 소리가 들렸다. 은전선생의 몸이 기울어지더니 황사 위로 거꾸러졌다.
펑! 소리가 나면서 활시위가 검날에 의해 잘리고 석지중의 몸이 검과 함께 떨어지며 은전 선생을 찔러갔다.
은전 선생이 타고 있던 말은 이미 무거운 압력에 의해 숨이 끊어졌다. 모래에 곤두박질쳐 아직 움직이기 전에 그는 공중에서 번개가 번쩍이는 것 같이 장검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가 크게 놀라 손에 든 활 등으로 검처럼 한번 치는 순간 자주빛이 일며 그의 몸을 감쌌다.

석지중의 몸이 검을 따라 떨어지다 갑자기 상대방이 위급해서 쳐낸 한 식을 보았는데 뜻밖에도 매우 익숙했다.
그는 "어?" 소리를 내며 뛰어 비키고는 놀라 물었다.
"당신이 어떻게 천산(天山)의 천금검법(天禽劍法)에 가운데 이 낙안번시(落雁翻翅) 초식을 쓸 줄 알지?"
은전선생이 일어섰는데 얼굴이 시뻘개져 왼손을 한 번 휘두르며 말했다.
"모두 공격해라!"
석지중이 크게 소리쳤다.
"동방평! 빨리 달아나요!"
그가 말을 마치고 검을 들어 노기에 차 휘두르자 천둥과 우레소리가 함께 터져 나왔다. 장군십이절 중의 제4식(第四式)인 검림삼립(劍林森立)을 쳐냈다.

검식이 무지개처럼 무수한 장검의 환영을 만들어 상대방을 덮었다.
"악!"
은전선생이 비명을 질렀다. 그의 왼팔뚝에서 어깨까지, 그리고 가슴 앞 전체가 검끝에 찔려 찢어진 옷조각과 함께 핏물이 쏟아졌다.
석지중이 분노해 두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알고 보니 당신은 동해멸신도에서 왔군. 이놈! 내가 누군지 아느냐?"
은전 선생은 가슴을 움켜쥐고 흐트러진 눈빛으로 석지중을 향해 말했다.
"너는 누구냐?"
그러나 말을 마치기도 공포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석지중이 돌아보니 여기저기 쓰러진 사람들만 보였다. 곰 가죽을 걸친 대한들 모두가 거꾸러져 있는데 각자의 태양혈(太陽穴)에는 삼각형의 뽀족한 송곳(尖錐)이 하나씩 박혀 있고 피가 콸콸 흘러나오고 있었다.
공래삼로가 멍하니 서있고 얼굴근육은 경악으로 인해 말을 더듬었다.
"유령... 령...추..."
황금빛 연갑(軟甲)을 입고 금관(金冠)으로 머리를 묶은 한 영준한 젊은이가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세 노인장의 말이 맞습니다, 이것이 바로 유령추요. "그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철우(鐵牛), 세 분의 어르신들을 보내드리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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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안금조(碧眼金雕) 6-3

碧眼金雕 2024. 10. 9. 20:25 Posted by 비천호리

석지중이 검날을 뒤집어 장군십이절(將軍十二截)가운데  제이식(第二式)인 뇌동만물(雷動萬物)을 막 펼치려고 했는데 그것은 만균(萬鈞) 무게의 천둥같은 막강한 일검이었다.
별안간 이 전광석화 같은 찰나에 시위 소리가 울리고 "쉭" 귀를 찌르는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은색 장전(長箭) 하나가 허공을 스쳐 은색의 호선을 그리며, 번개같은 속도로 석지중에게 쏘아졌다.
석지중이 상체를 앞으로 숙이면서 크게 몸을 돌리고 어깨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장검은 연이은 검식을 따라  뇌동만물 일식(一式)을 격출했다.
"챙!"
불꽃이 튀며 은색 화살은 검날에 의해 두 동강이 나 떨어져 내렸고 힘이 다하지 않은 채 모래 속에 꽂혔다.

석지중이 가슴에 검을 안은 채 엄정한 기색으로 자색 활과 은색 화살을 든 선생을 주시했다.
그의 등 뒤 일장 남짓한 곳에 있는 세 노인은 가슴 앞 옷이 모두 장검에 베어져 핏물이 스며나와 모래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은전 선생은 굳은 얼굴로 석지중을 주시하고 있는데 형형(炯炯)한 눈빛으로 잠시도 깜박이지 않고 있었다. 이때 그의 자색 활에는 길이가 각기 다른 세 개의 은전이 얹혀 있었고 잔뜩 시위를 당기고 있어서 언제든지 쏠 수 있었다.
일시 적막이 감돌자 수십 기의 대한들은 일제히 숨을 죽이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은 채 긴장하여 서로를 응시하고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은전 선생은 속으로 놀라서 생각했다.
"곤륜에 언제 이런 괴걸(怪傑)이 나타났지? 공력이 삼십 년 이상 수련을 쌓은 것 같구나…"
그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흐르다가 돌연 석지중의 검을 안고 우뚝 선 자세에서 조금 전 그가 격출한 일검이 떠오르자 놀라 말했다.
"네가 사용한 것이 상패장군(常敗將軍) 공손무기(公孫無忌)의 장군십이절(將軍十二截) 중 한 식이냐? 그럼 너는 어떤 사람... …」。
석지중도 깜짝 놀라 말했다.
"당신 말이 맞소이다. 이것은 바로 장군십이절 가운데 한 초(一招)요. "
그가 갑자기 소리쳤다.
"너희 세 늙은 귀신들은 멈춰라, 흥! 누구를 암산하려고 하느냐?"

그 세 노인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공래삼노(邛崍三老)가 어떤 사람들인데  어찌 당신의 사람을 암산하겠느냐?"
석지중은 코웃음을 치고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은전 선생의 양미간에 살의가 짙게 감돌았다.
"장군기사(將軍紀事)를 남겨라, 흥! 나는 어제 단일구의 수중에 있는즐 알았는데 네가 가지고 있다니"
석지중은 한바탕 크게 웃었다.
"당신한테 능력이 있으면 얼마든지 가져가봐라! 하필이면…."
은전 선생이 노갈(怒喝)을 터뜨리고 시위 소리가 한 번 울리자 은전 세 개가 쏘아졌다. 세 가닥 은빛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흩어졌는데, 뜻밖에도 석지중이 아니라 공중으로 향했다.

석지중은 놀라 허공으로 날아가는 은전을 주시하고 있는데, 갑자기 날카로운 바람소리가 들리더니 자색 대궁에서 그의 인후(咽喉)를 향해 화살이 쏘아졌다. 그 기세가 비길 데 없이 빠르고 강했다.
석지중은 깜짝놀라 상체를 젖히고 6척이나 미끄러져 나갔다. 그리고 검영(劍影)을 번뜩이며, 장검을 비스듬히 휘둘러 그 화살을 날려버렸다.
그의 몸이 막 피하기 시작했는데, 돌연 머리 위에서 세 개의 은전이 잠깐 멈추더니 수직으로 떨어졌다. 공기를 가르는 촉박한 소리와 함께 화살촉이 이미 그에게서 채 5촌도 안되는 곳까지 육박했다.

석지중은 놀랍게도 호신진기마저 이 세 자루 장전에 의해 뚫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날카로운 화살바람은 자신의 사혈로 곧장 쏘아져왔다.
더 이상 다른 생각을 할 겨를 없이 그는 몸을 움츠리고 낭랑하게 한번 부르짖고는 역으로 뚫고 나와 몸을 돌려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은전 선생이 크게 소리쳤다.
"다시 이 한 수를 받아봐라!"
쉬익! 한 자루 짧은 은전이 활시위를 벗어나 유성이 허공을 스치듯이 석지중의 아랫배 혈창혈(血倉穴)로 쏘아져 왔다.
그가 왼손을 구부려 전낭에서 약 3척 길이의 은전 다섯 개를 꺼내 오른손으로 시위를 잔뜩 당기자 시위가 진동하는 소리가 나고 다섯 개의 화살이 마치 은 그물처럼 사방 2장의 허공을 덮어 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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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안금조(碧眼金雕) 6-2

碧眼金雕 2024. 10. 9. 20:23 Posted by 비천호리

그가 그 웅준(雄駿)한 한혈보마를 의아한 눈빛으로 응시하다가 뒤에 있는 세 명의 긴 수염 노인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 말은 대완왕궁에서 기르던 한혈보마 같은데, 어떻게 여기에 왔을까?"
왼쪽의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의 말씀이 옳소이다. 이 말은 바로 대완국의 왕이 아끼는 한혈보마로 석년 삼국시대에 여포가 타던 적토마의 한 갈래이지요!"
중간의 그 노인이 말을 이었다.
"사형의 말이 옳습니다, 말 길들이는 솜씨는 현세에 칠절신군 시륜이 천하제일이죠. 보아하니 이 두 아이는 큰 내력이 있는듯 하니 선생은 좀 조심하시지요!"
석지중은 이 몇 사람이 한혈보마에 대해 오랫동안 떠들어대는 것을 보자 저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라 '흥' 콧방귀를 뀌고는 말했다.
"당신들 왜 이러는건가? 마적이요, 강도요?"

그 중년 유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뒤의 노인이 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꼬마야, 어떻게 감히 은전 선생에게 불손한 말을 하느냐?"
석지중은 두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무슨 은전 선생? 흥! 마적(馬賊) 중 하나지!"
은전 선생의 안색이 갑자기 변했다.
"네가 칠절신군의 도제(徒弟)라 할지라도 나를 이렇게 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무지한 어린 놈(小輩)아, 이 열 명은 네가 죽였느냐?"
석지중이 낭랑한 목소리로 크게 웃었다.
"당신 수하의 이 염치없는 무리들이 너무 못난 탓이지. 죽어도 싸다. "

그가 얼굴에 살기를 띠며, 매서운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들이 대막에서 횡행하며 상려(商旅, 상인과 여객)들을 약탈해오다가 마침내 혼자인 여자조차 감히 괴롭히는데 무슨 선생이라고 할 수 있느냐?" 퉤!
은전 선생의 눈에서 안광이 폭사(暴射)되며 화가 나 얼굴이 온통 빨갛게 변했다. 그가 손을 한 번 휘둘러 그 준동하려는 마적들을 제지한 후 말을 재촉하여 천천히 앞으로 나아오며 차갑게 말했다.
"무지한 어린 놈, 감히 내 앞에서 이런 말을 하다니, 흥! 네 앞에는 죽는 길만 있다!"
석지중은 사방을 에워싼 대한들이 하나같이 흉악한 눈빛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보고 갑자기 마음속에 살기가 크게 일고, 몸속에서 뜨거운 피가 끓어오르자
"개같은 네 놈들은 모두 죽어 마땅하다!"라고 소리쳤다.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주위에 광풍이 몰아치는데 그 기경(氣勁)이 하늘을 뒤덮고 산같이 무거워서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가려는 듯했다.
동방평이 놀라 소리를 질렀다. 석지중은 발을 홱 돌리며 몸을 조금 띄우고, 좌장(左掌)을 살짝 흔들어 원호(圓弧)를 긋고는 가슴 앞에서 평평하게 밀어냈다. 한 줄기 넓은 기경이 마치 조수(海潮)처럼 쉬익 소리를 내며 뻗어나와 반격해 갔다.
그 노인은 갑자기 암습을 가한 이 일장으로 분명 석지중의 목숨을 빼앗을 것이라고 여겼는데 석지중이 격출한 것이 바로 반야진기라 그 위력이 대단할 줄 어찌 알았겠는가.

쌍방의 장력이 부딪히자 그 노인은 심맥이 흔들리고 온몸의 기혈이 역류했다. 곧바로 피를 토하며 마치 실 끊어진 종이연처럼 거꾸로 날아 떨어졌다.
다른 두 노인이 고함을 지르며 말에서 몸을 솟구쳐 소매를 한번 떨치자 격렬한 돌풍이 소용돌이쳐 나란히 석지중을 쳐갔다.
펑!
큰 소리와 함께 네 줄기 경풍이 공중에서 부딪쳐 모래와 돌이 튀고 말이 놀라 울었다. 그 두 노인은 일장 밖으로 떨어져 하마터면 땅에 고꾸라질뻔 했다.
석지중이 숨을 길게 들이마신 후 모래바람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가벼운 연기처럼 일 장 가량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크게 소리쳤다
"너희들도 내 십검을 받아라! "

그가 칼날을 한 번 흔들자, 광채가 번쩍이며, 세 방향에서 각기 이 검(兩劍)씩 격출했다.    
"치칙!" 소리와 함께 검기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검영(劍影)이 뿌려져 순식간에 그 세 노인을 매우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의 이 일검은 시간과 정도를 아주 교묘하게 조절해 마침 그 세 노인이 착지하여 아직 확고히 서지 못했을 때 검봉(劍鋒)이 벼락같이 육박해오자 땅바닥에 피할 수 밖에 없었다.
검날이 스치고 흰 수염이 세 갈래로 날아 올랐고 연이어 두 번째 검을 휘두르자 그 빠르기가 전광석화 같았다.
"악!"
고통스러운 외침이 검광 아래에서 핏빛과 함께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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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안금조(碧眼金雕) 6-1

碧眼金雕 2024. 10. 9. 20:21 Posted by 비천호리

제6장 유령기사(幽靈騎士)

쪽빛 하늘 아래, 무겁게 우르렁거리는 천둥소리처럼 급속한  말발굽 소리가 대막에 울려 퍼졌다.  
석지중이 시력이 닿는 곳까지 사방을 둘러보니 수십 기가 동북쪽에서 오고 있고, 말을 탄 자들은 모두 웃옷 대신 곰 가죽을 걸친 건장한 체격의 사내들이다.
그가 약간 긴장하여 말했다.
"당신은 홍마를 타고 있다가 내가 저들을 이길 수 없으면 먼저 말을 몰아 거연으로 가시오. 내 뒤따라 가리다."
동방평은 얼굴이 파랗게 질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당신은 저자들의 포위를 벗어날 수 있어요?"

석지중은 자신에게 독특한 경공인 운룡팔식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여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이고, 백마 위의 보따리를 내려 한혈마에 올렸다. 그런 후 동방평에게 말했다.
"지금 말에서 내려서 내 적토한혈보마로 가시오."
동방평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나는 지금 가고 싶지 않아요… …」
석지중이 말했다.
"설마 아직도 내가 안기를 바라오?"
동방평이 가볍게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장한 후에는 아무도 나를 안은 적이 없지만, 지금은 당신이 좀 안아 주었으면 해요."
  
석지중은 얼굴이 새빨개져서, 나는 듯이 달려오는 수십 기의 빠른 말을 돌아보고, 또 동방평의 얼굴에 떠오른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보고,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아이구! 아가씨, 지금이 어느 땐데, 장난을 하시오?"
동방평이 총명한 눈빛을 연신 굴리며 말했다.
"난 죽는 것도 두렵지 않지만, 그대는 죽는 것이 두려우면 먼저 가면 되잖아요?"
석지중이 한숨을 쉬며 어쩔 수 없다는 투로 말했다.
"좋아요, 제가 당신을 안고 가지요!"
누가 알았겠는가, 그가 동방평 앞으로 가서 두 팔을 뻗어 그녀를 말에서 안아 내리려 하자 도리어 동방평이 두 볼이 빨개져 손을 흔들 줄.
"아니요! 안지 말아요, 저 혼자 내려갈게요."

그러자 석지중이 깜짝 놀라 발을 굴렀다. "어휴! 이 상황에서도 농담을 하는거요?"
동방평이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안기고 싶지 않은데, 안돼요?"
석지중이 곁눈으로 보니 기마대가 십 장도 채 되지 않은 곳까지 와 있었다. 온 하늘에 모래를 흩날리며 철기들이 땅을 울리며 달려오고 있는 것이다.
그는 불문곡직하고 동방평의 두 겨드랑이를 받쳐들어 홍마의 안장에 태운 다음, 장검을 뽑아 들고 늠름하게 다가오는 말들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동방평은 부끄러워하며 외쳤다.
"여보세요! 조심해요!"
석지중이 돌아보니 부드러운 정을 듬뿍 담은 눈길이 쏟아진다. 그는 마음속으로 크게 감동하여 요원(遙遠)한 세상에서 더 이상 고독하게 떠돌지 않는 것 같았다.

그 관심의 눈빛은 그의 피를 뜨겁게 끓게 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 손목을 한번 흔들자 검풍이 윙윙거렸다.
수십 기의 꽤마(快馬)들이 급히 달려왔는데, 앞장선 자는 40 전후의 중년인이다. 유생 차림에 큰 활을 메고 있으며 자주색 활 등과 하얀 얼굴이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다.
석지중은 언뜻 이 중년 유사(儒士)의 말 위에 세 개의 전낭(箭囊)이 걸려 있고, 그 속에 많은 은색 장전(長箭)들이 꽂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문득 약수(弱水) 가에서 단일조(斷日釣) 오부(吳斧)가 장전을 맞고 몸부림치다가 죽었던 정황을 떠올렸다.

그 오부는 유령대제 수하의 12순사사(巡查使) 중 한 명으로 무공이 약하지 않은 것 같았는데도 이 은색 화살에 맞아 목숨을 잃을 줄이야, 보아하니 이 마적 두목은 확실히 솜씨가 있는 것 같다.  
때문에 그는 암암리에 경계심을 가지고 서서히 진기를 운행해 각 근육에 돌린 후 천천히 몸 밖으로 보내 온몸을 보호했다.
그 건장한 대한들은 석지중을 가운데 두고 크게 포위망을 그리고는 모두 노기띤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
자주색 활을 등에 멘 중년 유사는 땅 위의 시체 열 구를 바라보고는 무심히 눈길을 돌려 동방평이 타고 있는 홍마에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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