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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안금조(碧眼金雕) 5-9

碧眼金雕 2024. 10. 9. 20:10 Posted by 비천호리

그가 대갈하며 손에 든 빼앗은 대도(大刀)를 휘두르자 휘익 칼바람 소리가 나며 손을 벗어나 던져졌다. 그리고 몸을 솟구쳐 빠른 화살처럼 대도를 따라 나란히 쏘아 갔다.
"팍!" 대도가 날아가 왼쪽의 마적 등을 찍었고 석지중의 마치 천신(天神)처럼 내려와 두 발로 그의 가슴을 찼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일 장밖으로 날아가 "꽈당" 소리와 함께 쓰러져 죽었다.
석지중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두 팔을 한 번 떨치고 몸을 홱 돌려 허공에서 한바퀴 돌았는데 몸을 휘감은 검광이 번쩍였다.
그가 소리쳤다.
"어딜 가느냐! ”
검영(剑影)이 쫘악 펴지며 윙윙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는 공중에서 몸을 돌려 오검(五剑)을 격출했다. 검풍이 진동하고, 검끝으로 찌른 곳에서 핏발이 솟아나왔다.
그의 신형이 떨어지자 다섯 명의 마적들은 모두 양미간이 검에 찔려 붉은 한 점의 자국을 드러낸채 시체로 땅에 쓰러졌다.

동방평은 소매로 입을 가리고 두 눈을 크게 뜬채 석지중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가 사람을 죽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것 같았다.
석지중이 검을 내려뜨리고 서 있는데 검끝의 핏물이 모래 위에 떨어지자 순식간에 빨려들어 흔적없이 사라졌다.
그가 한숨을 쉬며 장검을 검집에 넣고 동방평에게 걸어갔다.
그는 동방평의 기색을 보자마자 불안한 어조로 말했다.
"괴로운가요? 나도 처음으로 이렇게 많이 죽인...”
그가 난처해하며 말했다.
"나는 그들이 당신에게 이렇게 흉악하게 구는 것을 보자 화가 치밀어 올라 참을 수 없었소. 그래서 꼭 그들을 죽이려고 했던거요…”
동방평은 입술을 가린 소매를 내리고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당신이 나에게 잘해준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
그녀가 살짝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아빠에게 맞아서 피를 토하는 것을 봤을 때 매우 슬펐어요. 그때는 정말 차라리 아빠한테 내가 한 대 맞고 싶었어요…”
그녀가 겸연쩍게 웃자 홍조가 붉은 그녀의 두 볼에 퍼졌다. 그래서 그녀는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쓰는 척하며 소매로 얼굴에 부채질을 했다.
석지중은 한번도 느꺼보적 없는 달콤함이 마음에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는 미미하게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의 애교스러운 웃음을 응시했다. 마치 그 웃음을 마음 속에 다 담아 둔 후 나중에 천천히 회상하려고 하듯이.

동방평은 아랫입술을 오므리고 가볍게 말했습니다.
석지중이 미망(迷惘)에서 깨어나 말했다. "당신은 어디로 갈거요? ”
동방평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석지중이 말했다.
"나는 먼저 거연성(居延城)으로 돌아걌다가 그 담음에는 아마 동해(东海)로 갈 것 같아요."
동방평은 선뜻 말했다.
"그럼 나를 데리고 갈 수 있어요?"
석지중이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그건 아마 좀 불편할 것 같소. 영존(令尊)께서…."
동방평은 작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아빠는 내가 죽든 살든 상관하지 않는데, 뭐가 불편해요? 자! 이것은 가지고 나온 진주 한 봉지예요. 어쨌든 내 여비로 충분하겠지요!”
석지중은 활짝 웃었다
"그럼 내가 당신의 보표(保镖)가 되는 거 아니오?"
하지만 나는 그밖에 서장(西藏)에도 다녀와야 해요. 여자 손님, 가실 수 있겠습니까?”
둥팡핑은 숙연한 모습으로 말했다.
"응! 여자 손님은 갈 수 있습니다! 보표님, 앞장 서시죠."
그녀는 말을 마치지 못하고 피식하였고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렀다.
석지중이 눗으며 말했다.
"그럼 내가 천막부터 정리하고 갑시다."
그가 말을 몰아 천천히 그 큰 모래언덕을 향해 가자 동방평이 쫓아와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걸었다.

석지중은 천막과 모전(毛氈)을 걷어 포대 안에 넣어 묶은 뒤 건량과 물주머니를 꺼내며 말했다.
"건량 먹을래요?"
동방평은 안장에 걸린 두 개의 큰 포대를 툭툭 치며 : "여기에 절인 고기, 그리고 말린 닭고기, 말린 돼지고기... …”
석지중이 낭랑하게 웃었다.  
"이제야 먹을 게 생겼구나…"
그의 웃음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공중에서 날카롭고 이상한 소리가 나더니 은색의 긴 화살(长箭)이 허공을 스쳐 모래언덕 위에 떨어졌다.
화살대가 가늘게 떨리며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고 화살에는 구멍 뚫린 호루라기 두 개가 매달려 있었다. 검은 색 비단띠가 화살 깃털 위에 나부끼는데 꾸밈으로 술이 늘어뜨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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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안금조(碧眼金雕) 5-8

碧眼金雕 2024. 10. 9. 13:53 Posted by 비천호리

석지중은 아침 햇살을 맞으며 우뚝 서 있다가 막 돌아서려고 하는데 돌연 사막 저 멀리 백마 한 필이 쏜살같이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침 햇살을 따라오는 준마는 용처럼 출중했고 사람은 옥같이 아름다웠다.
그는 마음이 격동되었고, 놀라서 생각했다.
"동방평 아닌가? 그녀가 어떻게 나올 수 있지? ”
한 가지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지평선 위에 열 기의 말이 동시에 나는 듯이 뒤쫓아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황사가 자욱하고 발굽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모래가 흩날리다가 바람을 따라 사라졌다.
동방평은 석지중을 보고 매우 놀란 모양새로 말머리를 돌려 서북쪽으로 향했고 그렇게 되자 분산된 기마대에 의해 포위되고 말았다.

그가 입술을 오므려 휘파람을 불자 홍마가 머리를 쳐들고 천막에서 뛰쳐나왔다. 길게 우는 소리가 나자 석지중이 단번에 뛰어 올라탔다. 홍마가 네 발굽을 나는 듯이 움직여 모래 위를 밟으며 쫓아 달려갔다.
그의 두 다리는 말의 배를 조이고 홍마는 불꽃처럼 공중에서 번쩍이며 눈 깜짝할 사이에 측면에서 동방평을 막아섰다.
그는 그녀의 풀어 헤쳐친 검은 머리카락이 푸른색 댕기로 묶였고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는 것을 보았다. 아리따운 얼굴은 붉으스럼하고, 앵두같은 입술을 약간 벌리고, 분홍색 바람막이가 백마의 갈기 위에서 날리며 온몸에는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아름다움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동방평은 갑자기 한 줄기 붉은 빛이 멀리서 번개처럼 쏘아져오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석지중이라는 것이 똑똑히 보였을 때 크게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얼굴에 보조개가 생기며 활짝 웃음짓자 마치 막 피어나는 꽃고 같았다. 기쁨의 눈빛을 반짝이며, 백옥같이 하얗고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그녀가 말했다.
"이봐요! 석지중."
석지중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째서 천룡곡을 나왔어요?"
그는 뒤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켜 말했다.
"이들은 당신의 아버지가 당신을 잡아오라고 보낸 사람들이요?"
동방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들은 모두 사막의 강도들이고, 내가 가진 진주를 빼앗으려고 한거예요."

그녀가 수줍게 미소지었다.
"난 그대가 내상을 입은 걸 알았기 때문에 금오환 몇 알을 가지고 천룡곡에서 뛰쳐나와 그대를 찾으려고…”
석지중이 말했다.
"내상은 이미 스스로 치료했으니 겁내지 말아요. 이 강도들은 내가 처리하겠소!"
그는 말머리를 한 번 쳐 갑자기 말을 멈춘 후 천천히 방향을 돌려 급히 달려오는 열 마리의 말을 맞이했다.
"어!" 그러자 앞장선, 온 머리가 다 헝클어지고 수염이 더부룩한 대한이 오른손을 치켜들며 말을 멈추자 동시에 다른 아홉 필의 말도 모두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멈추었다.
석지중은 이 열 명의 난폭한 대한들을 차갑게 쳐다보고는 소리쳤다.
"누가 우두머리냐?"
한바탕 미친 듯한 웃음소리와 함께 그 수염이 얼굴에 가득난 대한이 거칠고 투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허! 알고보니 햇병아리였구나, 어이! 희멀건 얼굴의 토끼 새끼야, 이 반천운(半天云) 마호자(马胡子) 어르신이 10년 넘게 사막을 종횡무진 누볐는데, 사막을 왕래하는 사람 가운데 나를 몰라보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너 어린 놈은 어디서 튀어 나왔느냐? 흐흐! 제발로 걸어 들어온 살찐 양이로구나."

석지중은 코웃음을 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미 살기가 얼굴에 차올라 있었다.
자칭 반천운이라고 했던 마적이 손을 한번 휘두르며 말했다.
"여섯째, 일곱째, 이 살찐 양을 잡아라. 흐흐! 멋진 적토마다. 어르신이 이번에  복이 많구나."
짙은 눈썹의 두 대한이 이를 드러내고 찢어질듯이 입을벌리며 소매를 걷어붙여 굵고 튼튼한 팔을 드러내고는 말을 달려와 석지중과 동방평을 잡으려고 했다.
석지중이 차갑게 코웃음쳣고 미간에 살기가 짙어졌다. 그의 어깨가 약간 움직이면서 한 줄기 차디찬 빛이 하늘로 치솟았다.
"악!"
비명소리와 함께 두 개의 굵고 튼튼한 팔이 잘려 핏물이 튀며 황사 위으로 떨어졌다.
검광이 언뜻 번쩍인 후 사라지자 그 두 대한은 몸을 비틀거리며 뒤로 뛰어올랐고 그들의 양미간에서 약간의 핏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석지중이 동방평을 돌아보았는데 그녀는  이 장면을 보고 이미 놀라서 얼굴색이 창백해져 있었다. 그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두려워하지 말아요. 내가 여기 있으니까."
동방평은 놀라 고개를 끄덕이고는 석지중 곁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 두 대한은 눈빛이 굳어지고 양미간에 피를 흘리며 잠시 서 있다가 곧 뒤로 쓰러져 숨이 끊어져 버렸다.
반천운 마호자가 두 눈을 부릅뜨고 브르짖었다.
"이놈, 감히 사람을 죽였느냐? 형제들, 다 같이 덤벼라!"
그가 손에 든 팔환대도(八环大刀)를 흔들자 '쨍그랑' 소리가 났고 도광(刀光)이 빠르게 번쩍이며 석지중을 베어갔다.
석지중이 분노에 차 고함을 지르며 두 손가락을 나란히 세워 찔러갔다. 그 빠르기가 번개같다아 이미 상대방이 쪼개 온 도신(刀身)에 닿았다.

그가 대갈일성하며 두 손가락으로 도에 붙은 강철고리를 붙잡아 몸쪽으로 힘껏 당기며 별안간 우장(右掌)을 쳐냈다.
"퍽!"하는 소리가 나며 두 손가락으로 도를 붙잡은 채 왼손 다섯손가락을 일제히 날려 마호자의 가슴팍을 쓸었다.
우지직 소리와 함께 마호자는 갈비뼈가 모조리 부러져 말 위에서 거꾸로 날아가 땅에 쳐박히면서 땅바닥 여기 저기에 선혈을 뿌렸고 바로 숨을 거뒀다.
석지중은 이런 참혹한 모습을 보고 어리둥절한 듯 했지만, 동방평이 소리치는 것을 듣고 황급히 고개를 돌리자 두 명의 마적이 그녀를 끌고 막 도망치려고 하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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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안금조(碧眼金雕) 5-7

碧眼金雕 2024. 10. 8. 11:15 Posted by 비천호리

석지중이 말에서 내려 금낭을 주워 들었다. 비단인 듯 아닌 듯, 명주인 듯 아닌 듯한데 알 수 없는 어떤 털로 짠 것 같이 부드럽고 매끄러우며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가 고개를 들자 맞은편 기슭에 있던 오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보아하니 이미 세차게 흐르는 물에 삼켜진 것 같았다.
유유히 흐르는 약수를 바라보자 그는 마치 꿈을 꾼 것 같은데 다만 손에 금낭이 하나 더 생겼을 뿐이다.
그는 잠시 멍해 있다가 쓴웃음을 지으며 한혈보마를 타고 천천히 상류로 올라갔다. 말 위에서 그는 금낭을 열자 안에 두꺼운 작은 책 한 권이 보였고, 위에 공손기사(公孙纪事)라는 제목이 힘있고 빼어난(龍飛凤舞) 필체의 작은 글자로 쓰여 있다.
그가 들춰보니 안에 빽빽한 작은 글씨가 보였는데 예서로 쓴 기록들은 모두 공손무기가 일생동안 다른 사람과 무공을 겨룬 후의 심득(心得)이 적혀 있었다.
알고 보니 이 공손무기(公孫無忌)는 원래 궁중의 무장(武将)이었고 일찍이 동관(潼关) 총병(总兵)을 지냈으나 후에는 벼슬을 버리고 화산파에 제자로 들어가 무공을 연마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평생 싸움을 좋아했지만 단 한 번도 적을 이긴 적이 없었다. 매번 그가 어려서 익힌 천축의 이공(异功)인 유가술(瑜伽术)로 내상을 스스로 치료하였고 그후 상대방 무공의 맥락을 자세히 이해하여 파해법을 만들었다.
그래서 이 기사에 기재된 것은 모두 괴이한 초식이었고 또한 많은 문파의 각종 무공 수법과 파해법이었다.

석지중은 기쁨을 금할 수 없었다. 책의 마지막 한 쪽을 넘겼을 때 기재된 것이 바로 천축의 유가술로서 상처를 치료하고 생명을 지키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 번 보면 잊지 않는지라 책에 실린 모든 글자를 마음속에 기억한 후 책을 금낭에 잘 넣어 두었다.
순간, 그의 호기가 크게 일어나 조금 전의 그 근심과 슬픔을 씻어내 버렸다. 지금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은 연공(练功)하여 내상을 치료할 수 있는 조용한 장소였다.
약수를 바라보던 그의 머릿속에는 갑자기 상관완아의 뾰로통하던 작은 입과 눈물이 떨어질 것 같던 얼굴이 떠올랐다.
그때 상관부인은 화가 나서 칠절신군을 죽이려고 했지만, 차마 그러지 못하고 딸의 혈도를 쳐서 푼 다음 데리고 산을 내려갔었다.
그가 산문 밖까지 전송할 때, 상관완아는 눈물을 머금고 그에게 웃어주었는데, 그 애잔한 이별은 정말 그로 하여금 이별의 슬픔을 느끼게 했었다…
"아!" 그는 머리를 흔들며 탄식했다. 짙푸르게 흐르고 있는 물은 그에게 또 동방평의 그날의 천진무구한 눈동자와 웃음, 그리고 그녀의 구름 같이 흐트러진 검은 머리카락과 영롱한 어깨를 떠올리게 했다.
상념이 흩날리자 물소리가 점점 묘연해졌다. 석지중이 환상에서 깨어나자 하늘에는 붉은 노을이 가득하고 찬 바람이 넓디 넓은 사막에서 쌩쌩 불어와 모래와 자갈을 공중에 말려 올려 아득한 대지가 더욱 자욱하고 흐릿해진 것이 보였다.

그는 큰 모래언덕을 찾아 말에서 내려 보자기를 열고 삽을 꺼내 모래언덕 옆에 큰 구덩이를 판 다음 천막을 세웠다.
천막을 다 세우자 온 하늘에 구름과 노을이 다 사라지고 바람도 잠잠해지며 밝은 달이 둥그렇게 하늘에 떠올랐다.
냉담하면서도 아름다운 빛이 고요한 사막에 비치고, 늑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처량하고 으슬으슬하다.
사막은 열 흡수가 빠르고 방출도 빠르기 때문에 낮에는 기온이 매우 높고 밤에는 매우 추웠다.
석지중은 손을 문지르고 물 한 모금 마신 후 대충 건량을 조금 먹고 나서 천룡곡에서 지금까지 걸린 시간을 계산해 보았다.
"흥! 아직 두 시진 남아 있다."
그는 천막 안으로 들어가 홍마를 천막 입구에 끌어다 놓은 후 자신은 바닥에 가부좌를 하고 연공을 시작했다.
뇌리에 깊이 새겨진 장군기사 가운데 유가술이 하나씩 눈앞에 떠오르자 쌍장을 천천히 들어 원호를 그리며 온몸의 긴장을 풀어 임독의 양맥에서부터 백맥(百脉)에 흩어져 있는 내력을 응집시키기 시작했다.

밤하늘, 어느새 서리가 내려 기온이 더 낮아졌다. 별들이 드문드문 깜박거리고 달은 점차 기울고 있다...
석지중은 심호흡을 하고 삼매경에서 깨어났다. 그는 곤륜의 풍뢰동(风雷洞)에서 허실생백(虚室生白)이라는 야안술(夜眼术)을 익혀서 지금 눈을 뜨자 천막 안의 사물들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의 내상은 완전히 나았고 그 때문에 기분도 아주 좋아졌다.
가벼운 걸음으로 천막을 빠져나오자 사막은 야색(夜色)이 아득하고 대지는 죽은 듯이 고요했다.
은백색의 빛이 비스듬히 비치고, 서리가 모래 위에 얇은 흰색 막을 형성하였으며 밤 공기는 냉수처럼 차가웠다. 맑은 공기가 가슴 속으로 빨려 들어가자 비할바 없는 상쾌함이 느껴졌다.
그는 밤바람 속에 서서 천천히 운기한 후 빠르게 앞으로 한번 쳐내자 반야진기가 휘익 소리를 내며 격렬하게 소용돌이 쳤다.
눈앞이 아득해지고 모래와 돌이 소용돌이치며 급속히 튀어 나갔으며 그의 장풍에 의해 땅 위에는 큰 구덩이가 파였다.
그는 몸을 날려 마치 야조(夜鸟)처럼 공중을 세 바퀴 돌고 천천히 땅에 떨어졌다.
장군기사에서 공손무기가 창안해낸  장군십이절의 괴초(怪招)를 생각하자 갑자기 그 그림들이 하나하나 뇌리에 떠올랐고 그는 별이 총총한 하늘 아래서 손짓으로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별이 위치가 바뀌고 달이 기울어 새벽이 올 무렵, 사막의 끝에서 한 줄기 금빛 광륜(光轮)이 올라 왔고 하늘의 그 어백색(鱼白色) 얕은 구름도 엷은 금빛 광채로 물들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석지중은 입안의 맑고 깨끗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은 후 막 천막으로 돌아가려는데, 붉은 태양이 사막 끝에서 떠오르고 시뻘건 빛발이 점차 위로 솟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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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안금조(碧眼金雕) 5-6

碧眼金雕 2024. 10. 7. 11:36 Posted by 비천호리

하늘에는 흰 구름이 유유히 떠 있고, 거센 바람이 사막 저편에서 불어와 희뿌연 모래 먼지를 흩날린다.
끝이 없는 사막, 셀 수 없이 많은 모래언덕, 끝없이 펼쳐진 황사 가운데 석지중은 고삐를 당겨 한혈보마가 서북쪽으로 질주하도록 한 뒤 내버려 두었다.
그의 귓가에 바람소리가 휙휙 소리를 내는데 눈을 굳게 감았고 눈가에는 마르지 않은 눈물이 있다.
지금 자신이 모든 것으로부터 버려졌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의 무공은 결국 천룡대제의 일식에 파해되었고, 지금은 내상을 입고 있어 열 시진을 넘길 수 없다… …
"열 시진?
그가 눈을 뜨고 날리듯이 뒤로 밀려나는 무수한 모래언덕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제 몇 시진이나 남았을까? 살아있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일까? 이렇게 막막하고 알 수 없는가? ”
쓸쓸한 느낌이 마음속에 떠올라 그는 저도 모르게 "천지는 유유한데, 홀로 슬픔에 차 눈물을 흘린다(天地悠悠, 沧然泣下)"는 감개를 떠올렸다.
그는 말머리를 토닥이며 속삭였다.
"이제 너만 나와 함께 있구나."
홍마를 통해 칠절신군에게 생각이 미치고, 또 그로 하여금 동해 멸신도와 본문의 풀기 어려운 분란(纷乱)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만약 내 공력이 천룡대제에게 격파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분명히 멸신도에 쫓아가서 그들과 싸우고 있을 것이다."
차례로 잇따라 떠오르는 생각들이 전광석화처럼 그의 뇌리를 스치자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 내가 해야 할 일이 이렇게 많은데, 어찌 이대로 죽을 수 있을까? 난 반드시 방도를 찾아서 내상을 치유할 것이다."
그는 몸에 걸친 두루마기를 끌어당기고 손으로 옷 보따리를 툭툭쳤다. 하지만 낙담하여 생각했다.
"금과옥극(金戈玉戟)을 가지고 있은들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 있나?
거기에 새겨진 글씨를 하나도 모르겠는데. 허!"
그는 갑자기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가슴에서 기혈이 용솟음쳐 하마터면 말에서 떨어질뻔했다.

그는 신음소리를 내며 서둘러 고삐를 흔들었고, 홍마는 속도를 늦추며 천천히 걸어 갔다.
귓가에 큰 물이 출렁이는 급류 소리가 울려퍼져 그가 눈을 떠보니 누렇고 탁한 강물이 서쪽에서 끊임없이 흘러오는데 물살이 세차게 흘러 양안의 진흙과 모래를 싣고 하류로 흘러가는 것이 보였다.
그가 물살을 따라 곧바로 올라가자 물살이 점점 느려지고 점차 맑아져 짙은 녹색의 강물이 잔잔하게 흘러내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갑자기 흰매 한 마리가 허공을 스쳐 북쪽에서 날아와 이 넓은 강을 건너려고 하는데, 막 수면 위로 날아오자마자 두 날개가 움츠러들더니 비명을 지르며 수면에 떨어졌고 순식간에 가라앉아 버렸다.
"약수(弱水)! 이건 약수다. 그가 놀라서 말했다.
"날아다니는 새도 건너지 못하고 거위털도 뜨지 않는, 이건 약수다…”
그의 눈빛은 잔잔히 흐르는 물줄기에서 건너편 기슭으로 옮겨졌다. 약 10장 밖에서 인영(人影) 하나가 비틀거리며 달려왔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의 몸에는 은색 화살(银箭)이 꽂혀 있고, 은화살 깃털이 반짝이고 있다. 화살대가 꽂힌 등에서 흘러나온 선혈에 옷이 흠뻑 젖어 있었고 이때 그 사람의 움직임을 따라 모래 위에 방울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기색이 역력했고 근육이 이따금 경련을 일으키고 있지만 여전히 불안정한 걸음으로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마치 약수에 도달하기만 하면 그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석지중은 놀라서 그 사람이 강기슭으로 달려간 후 땅에 엎드려 손을 뒤로 돌려서 등뒤에 깊숙이 박힌 화살촉을 뽑아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
그 남자가 비명을 지르자 머리에 땀이 솟아났다. 그는 긴 화살(长箭)을 뽑아 강물에 던지고는 절망적인 몸짓으로 일어섰다.
그 사람이 강에 던진 은화살은 뜻밖에도 짙푸른 물줄기에 즉시 한 무더기 검은색 거품을 일으켰다.
석지중은 오싹해져 생각했다.
"이 은화살에는 독이 있었구나, 어쩐지 그 사람이 그렇게 절망하더라니. 알고 보니 중독이 심해서 치유할 수 없었구나. 그런데 왜 약수를 보자 얼굴에 희색이 돌았을까? 이 물이 상처를 치료하거나 그가 약수를 건너면 목숨을 건질 수 있는걸까?
그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그 사람이 그를 보고는 소리쳤다.
"이보시오! 나 대신 일을 좀 해 줄 수 있겠소?
석지중은 그 사람이 중독된 후에도 이렇게 오랫동안 버틸 수 있을 줄은 몰라서 깜짝 놀랐다. 보아하니 정말 내가고수가 틀림없는 것 같다.
그가 물었다.
"무슨 일이요? ”
그 사람은 땀을 닦으며 말했다.
"나는 유령대제 수하로 십이순사사(十二巡查使) 중 한 명인 단일구(断日钩) 오부(吴斧)요. 내가 이번에...”
그는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내며 주머니에서 검고 윤기나는 비단 주머니(锦囊)를 꺼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은 석년(昔年)의 상패장군(常败将军) 공손무기(公孫無忌)가 지은 장군기사(將軍記事)요. 당신이…”
그는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새까만 피를 토해내고 한바탕 몸을 흔들며 땅에 넘어졌다.
석지중은 놀랍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했다. 서량파(西凉派)의 멸망과 공동파(崆峒派)가 분쟁의 실마리를 만든 장군기사가 유령대제 수하의 손에 들에 들어갔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보아하니 단일구는 은전에 맞아 중독된 것 같았다.
도깨비같이 생긴 오부가 발버둥을 치며 일어나 대갈일성(大喝一声)하며 손에 든 금낭을 약수 너머로 던졌다.
검은 색 금낭이 번쩍거리는 빛을 띠고 석지중의 발 앞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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