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안금조(碧眼金雕) 6-5

碧眼金雕 2024. 10. 9. 22:01 Posted by 비천호리

그의 뒤에는 서있던 얼굴이 검고 키가 큰 철탑 같은 대한이 그 목소리를 듣고 대답했다. 두 개의 부들부채만한 쌍장(雙掌)을 펼치고 날렵하게 몸을 돌리며 열 손가락을 구부려 비할바 없이 빠르게 공래삼로를 붙잡았다.
철우의 무쇠같은 두 손이 합쳐지자 세 노인은  한마디도 내뱉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져 죽었다.
그 철우라고 불리는 대한은 손을 툭툭 털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성큼성큼 걸어 윈래 자리로 돌아왔다.
그 영준한 젊은이는 읍(揖)을 한 번하고 홍마 위에 있는 동방평에게 말했다.
"세매(世妹), 우형(愚兄)이 늦어서 놀라게 했구나. 미안하다".
동방평은 코웃치고 말했다.
"누가 당신에게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라고 했나요?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다니!"

그 젊은이는 조금도 거슬려하지 않고 대범하게 웃었다.
"그래, 우형(愚兄)이 쓸데없이 참견했군! 세매, 놀랐구나!"
동방평이 '퉤' 침을 뱉었다.
"누굴 당신의 세매라고 해요?, 서문(西門錡), 당신, 좀 점잖게 구세요!"
그녀가 말고삐를 한 번 당기자 홍마가 석지중 쪽으로 달려왔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이봐요. 이제 가야죠!"
석지중이 물었다.
"저 사람은 유령 대제의 아들이요?"

동방평이 고개를 끄덕이며 못마땅하다는듯이 말했다.
"아버지의 세력을 믿고 한 때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이 무슨 대수인가요? 이봐요! 가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어요."
"잠깐만, 그에게 몇 마디 물어보겠소."
그는 돌아서서 은전 선생에게 말했다.
"당신은 동해에서 왔으니 한심수사(寒心秀士)의 행방을 알고 있겠지?"
은전선생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나는 네가 누구를 말하는지 모르겠다."
석지중은 두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당신은 그 검법을 누구한테 배운거요?"

은전선생은 석지중을 차갑게 쏘아보며 말했다.
"너는 천산파의 어떤 사람이냐?"
석지중이 눈에서 차가운 빛을 쏟아내며 단호하게 말했다.
"천산신응(天山神鷹)이 멸신도에서 처한 상황을 말하지 않으면, 곧바로 당신을 토막토막 내 버리겠다.!"
은전선생 같이 좀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도 자기도 모르게 상대방의 눈에 드러난 차가운 빛에 놀라 진저리를 쳤다
그는 숨을 들이마시며 긴장된 신경을 진정시키고,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빠져나갈 궁리를 계속했다.
석지중은 상대방이 여전히 대답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화가 치밀어 올라 크게 소리쳤다.
"당신이 더 모르는 체하면, 나는 바로..."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곁에서 스윽 바람소리가 나며 그 서문기가 벌써 그의 곁에 다가와 말했다.
"형장(兄丈), 안녕하시오!"
석지중은 곧바로 천산에서 멸신도의 세 대제자가 곳곳에 시신이 널리고 피가 도랑을 이루도록 만든 짓을 목격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증오심으로 줄곧 멸신도를 살육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때문에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서문기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채 본문의 천산신응과 멸신도의 연관성과 행방을 캐묻기만 했던 것이다.
이때 서문기가 조용히 도착했는데, 이런 경공은 그를 섬뜩하게 했고, 방금 그 소리 없이 수십 명을 죽였던 무공에 주의하게 되었다.

그가 고개를 돌려보니 서문기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이 보였는데, 비스듬히 날리는 검미(劍眉)와 얇고 붉은 입술은 그 웃음을 더욱 멋드러지게 만들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형장, 안녕하시오!"
서문기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칠절신군 노전배님은 건강하시죠? 소제(小弟) 서문기, 영사(令師)께 문안 인사드리오..."
석지중이 말했다.
"당신이 바로 유령대제의 아들이오?"
그리고 잠시 멈췄다가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소생은 결코 칠절신군의 제자가 아니오!"
서문기가 어리둥절해 하며 말했다.
"아! 원래 형장은 시륜 노전배의 제자가 아니었구려. 형장의 성함이 어떻게 되시오?"
석지중이 대답했다.
"소생은 석지중이오."
동방평이 견디지 못하고 말했다.
"이봐요! 그 사람하고 이야기하지 마세요! 그 사럄 아주 나쁜 놈이예요!"
서문기의 얼굴빛이 한 번 변했다가 금세 웃음을 되찾으며 말했다.
"세매, 하필 석형 앞에서 나를 빈정거릴 필요가 있느냐? 허허! 이번에 너는 백부(伯父) 어르신 몰래 뛰쳐나욌는데, 아마 석형이..."
동방평이 질책하는 투로 말했다.
"내가 나오면 뭐 어때서요,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어요?"
석지중이 미안해하며 말했다.
"평평! 당신은…."
동방평은 언뜻 서문기의 눈에 표독한 기색이 스치며 음험하게 석지중 등뒤로 손을 드는 보자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서문기, 암산하려고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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