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지중이 말에서 내려 금낭을 주워 들었다. 비단인 듯 아닌 듯, 명주인 듯 아닌 듯한데 알 수 없는 어떤 털로 짠 것 같이 부드럽고 매끄러우며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가 고개를 들자 맞은편 기슭에 있던 오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보아하니 이미 세차게 흐르는 물에 삼켜진 것 같았다.
유유히 흐르는 약수를 바라보자 그는 마치 꿈을 꾼 것 같은데 다만 손에 금낭이 하나 더 생겼을 뿐이다.
그는 잠시 멍해 있다가 쓴웃음을 지으며 한혈보마를 타고 천천히 상류로 올라갔다. 말 위에서 그는 금낭을 열자 안에 두꺼운 작은 책 한 권이 보였고, 위에 공손기사(公孙纪事)라는 제목이 힘있고 빼어난(龍飛凤舞) 필체의 작은 글자로 쓰여 있다.
그가 들춰보니 안에 빽빽한 작은 글씨가 보였는데 예서로 쓴 기록들은 모두 공손무기가 일생동안 다른 사람과 무공을 겨룬 후의 심득(心得)이 적혀 있었다.
알고 보니 이 공손무기(公孫無忌)는 원래 궁중의 무장(武将)이었고 일찍이 동관(潼关) 총병(总兵)을 지냈으나 후에는 벼슬을 버리고 화산파에 제자로 들어가 무공을 연마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평생 싸움을 좋아했지만 단 한 번도 적을 이긴 적이 없었다. 매번 그가 어려서 익힌 천축의 이공(异功)인 유가술(瑜伽术)로 내상을 스스로 치료하였고 그후 상대방 무공의 맥락을 자세히 이해하여 파해법을 만들었다.
그래서 이 기사에 기재된 것은 모두 괴이한 초식이었고 또한 많은 문파의 각종 무공 수법과 파해법이었다.
석지중은 기쁨을 금할 수 없었다. 책의 마지막 한 쪽을 넘겼을 때 기재된 것이 바로 천축의 유가술로서 상처를 치료하고 생명을 지키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 번 보면 잊지 않는지라 책에 실린 모든 글자를 마음속에 기억한 후 책을 금낭에 잘 넣어 두었다.
순간, 그의 호기가 크게 일어나 조금 전의 그 근심과 슬픔을 씻어내 버렸다. 지금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은 연공(练功)하여 내상을 치료할 수 있는 조용한 장소였다.
약수를 바라보던 그의 머릿속에는 갑자기 상관완아의 뾰로통하던 작은 입과 눈물이 떨어질 것 같던 얼굴이 떠올랐다.
그때 상관부인은 화가 나서 칠절신군을 죽이려고 했지만, 차마 그러지 못하고 딸의 혈도를 쳐서 푼 다음 데리고 산을 내려갔었다.
그가 산문 밖까지 전송할 때, 상관완아는 눈물을 머금고 그에게 웃어주었는데, 그 애잔한 이별은 정말 그로 하여금 이별의 슬픔을 느끼게 했었다…
"아!" 그는 머리를 흔들며 탄식했다. 짙푸르게 흐르고 있는 물은 그에게 또 동방평의 그날의 천진무구한 눈동자와 웃음, 그리고 그녀의 구름 같이 흐트러진 검은 머리카락과 영롱한 어깨를 떠올리게 했다.
상념이 흩날리자 물소리가 점점 묘연해졌다. 석지중이 환상에서 깨어나자 하늘에는 붉은 노을이 가득하고 찬 바람이 넓디 넓은 사막에서 쌩쌩 불어와 모래와 자갈을 공중에 말려 올려 아득한 대지가 더욱 자욱하고 흐릿해진 것이 보였다.
그는 큰 모래언덕을 찾아 말에서 내려 보자기를 열고 삽을 꺼내 모래언덕 옆에 큰 구덩이를 판 다음 천막을 세웠다.
천막을 다 세우자 온 하늘에 구름과 노을이 다 사라지고 바람도 잠잠해지며 밝은 달이 둥그렇게 하늘에 떠올랐다.
냉담하면서도 아름다운 빛이 고요한 사막에 비치고, 늑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처량하고 으슬으슬하다.
사막은 열 흡수가 빠르고 방출도 빠르기 때문에 낮에는 기온이 매우 높고 밤에는 매우 추웠다.
석지중은 손을 문지르고 물 한 모금 마신 후 대충 건량을 조금 먹고 나서 천룡곡에서 지금까지 걸린 시간을 계산해 보았다.
"흥! 아직 두 시진 남아 있다."
그는 천막 안으로 들어가 홍마를 천막 입구에 끌어다 놓은 후 자신은 바닥에 가부좌를 하고 연공을 시작했다.
뇌리에 깊이 새겨진 장군기사 가운데 유가술이 하나씩 눈앞에 떠오르자 쌍장을 천천히 들어 원호를 그리며 온몸의 긴장을 풀어 임독의 양맥에서부터 백맥(百脉)에 흩어져 있는 내력을 응집시키기 시작했다.
밤하늘, 어느새 서리가 내려 기온이 더 낮아졌다. 별들이 드문드문 깜박거리고 달은 점차 기울고 있다...
석지중은 심호흡을 하고 삼매경에서 깨어났다. 그는 곤륜의 풍뢰동(风雷洞)에서 허실생백(虚室生白)이라는 야안술(夜眼术)을 익혀서 지금 눈을 뜨자 천막 안의 사물들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의 내상은 완전히 나았고 그 때문에 기분도 아주 좋아졌다.
가벼운 걸음으로 천막을 빠져나오자 사막은 야색(夜色)이 아득하고 대지는 죽은 듯이 고요했다.
은백색의 빛이 비스듬히 비치고, 서리가 모래 위에 얇은 흰색 막을 형성하였으며 밤 공기는 냉수처럼 차가웠다. 맑은 공기가 가슴 속으로 빨려 들어가자 비할바 없는 상쾌함이 느껴졌다.
그는 밤바람 속에 서서 천천히 운기한 후 빠르게 앞으로 한번 쳐내자 반야진기가 휘익 소리를 내며 격렬하게 소용돌이 쳤다.
눈앞이 아득해지고 모래와 돌이 소용돌이치며 급속히 튀어 나갔으며 그의 장풍에 의해 땅 위에는 큰 구덩이가 파였다.
그는 몸을 날려 마치 야조(夜鸟)처럼 공중을 세 바퀴 돌고 천천히 땅에 떨어졌다.
장군기사에서 공손무기가 창안해낸 장군십이절의 괴초(怪招)를 생각하자 갑자기 그 그림들이 하나하나 뇌리에 떠올랐고 그는 별이 총총한 하늘 아래서 손짓으로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별이 위치가 바뀌고 달이 기울어 새벽이 올 무렵, 사막의 끝에서 한 줄기 금빛 광륜(光轮)이 올라 왔고 하늘의 그 어백색(鱼白色) 얕은 구름도 엷은 금빛 광채로 물들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석지중은 입안의 맑고 깨끗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은 후 막 천막으로 돌아가려는데, 붉은 태양이 사막 끝에서 떠오르고 시뻘건 빛발이 점차 위로 솟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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