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안금조(碧眼金雕) 6-1

碧眼金雕 2024. 10. 9. 20:21 Posted by 비천호리

제6장 유령기사(幽靈騎士)

쪽빛 하늘 아래, 무겁게 우르렁거리는 천둥소리처럼 급속한  말발굽 소리가 대막에 울려 퍼졌다.  
석지중이 시력이 닿는 곳까지 사방을 둘러보니 수십 기가 동북쪽에서 오고 있고, 말을 탄 자들은 모두 웃옷 대신 곰 가죽을 걸친 건장한 체격의 사내들이다.
그가 약간 긴장하여 말했다.
"당신은 홍마를 타고 있다가 내가 저들을 이길 수 없으면 먼저 말을 몰아 거연으로 가시오. 내 뒤따라 가리다."
동방평은 얼굴이 파랗게 질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당신은 저자들의 포위를 벗어날 수 있어요?"

석지중은 자신에게 독특한 경공인 운룡팔식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여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이고, 백마 위의 보따리를 내려 한혈마에 올렸다. 그런 후 동방평에게 말했다.
"지금 말에서 내려서 내 적토한혈보마로 가시오."
동방평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나는 지금 가고 싶지 않아요… …」
석지중이 말했다.
"설마 아직도 내가 안기를 바라오?"
동방평이 가볍게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장한 후에는 아무도 나를 안은 적이 없지만, 지금은 당신이 좀 안아 주었으면 해요."
  
석지중은 얼굴이 새빨개져서, 나는 듯이 달려오는 수십 기의 빠른 말을 돌아보고, 또 동방평의 얼굴에 떠오른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보고,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아이구! 아가씨, 지금이 어느 땐데, 장난을 하시오?"
동방평이 총명한 눈빛을 연신 굴리며 말했다.
"난 죽는 것도 두렵지 않지만, 그대는 죽는 것이 두려우면 먼저 가면 되잖아요?"
석지중이 한숨을 쉬며 어쩔 수 없다는 투로 말했다.
"좋아요, 제가 당신을 안고 가지요!"
누가 알았겠는가, 그가 동방평 앞으로 가서 두 팔을 뻗어 그녀를 말에서 안아 내리려 하자 도리어 동방평이 두 볼이 빨개져 손을 흔들 줄.
"아니요! 안지 말아요, 저 혼자 내려갈게요."

그러자 석지중이 깜짝 놀라 발을 굴렀다. "어휴! 이 상황에서도 농담을 하는거요?"
동방평이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안기고 싶지 않은데, 안돼요?"
석지중이 곁눈으로 보니 기마대가 십 장도 채 되지 않은 곳까지 와 있었다. 온 하늘에 모래를 흩날리며 철기들이 땅을 울리며 달려오고 있는 것이다.
그는 불문곡직하고 동방평의 두 겨드랑이를 받쳐들어 홍마의 안장에 태운 다음, 장검을 뽑아 들고 늠름하게 다가오는 말들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동방평은 부끄러워하며 외쳤다.
"여보세요! 조심해요!"
석지중이 돌아보니 부드러운 정을 듬뿍 담은 눈길이 쏟아진다. 그는 마음속으로 크게 감동하여 요원(遙遠)한 세상에서 더 이상 고독하게 떠돌지 않는 것 같았다.

그 관심의 눈빛은 그의 피를 뜨겁게 끓게 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 손목을 한번 흔들자 검풍이 윙윙거렸다.
수십 기의 꽤마(快馬)들이 급히 달려왔는데, 앞장선 자는 40 전후의 중년인이다. 유생 차림에 큰 활을 메고 있으며 자주색 활 등과 하얀 얼굴이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다.
석지중은 언뜻 이 중년 유사(儒士)의 말 위에 세 개의 전낭(箭囊)이 걸려 있고, 그 속에 많은 은색 장전(長箭)들이 꽂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문득 약수(弱水) 가에서 단일조(斷日釣) 오부(吳斧)가 장전을 맞고 몸부림치다가 죽었던 정황을 떠올렸다.

그 오부는 유령대제 수하의 12순사사(巡查使) 중 한 명으로 무공이 약하지 않은 것 같았는데도 이 은색 화살에 맞아 목숨을 잃을 줄이야, 보아하니 이 마적 두목은 확실히 솜씨가 있는 것 같다.  
때문에 그는 암암리에 경계심을 가지고 서서히 진기를 운행해 각 근육에 돌린 후 천천히 몸 밖으로 보내 온몸을 보호했다.
그 건장한 대한들은 석지중을 가운데 두고 크게 포위망을 그리고는 모두 노기띤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
자주색 활을 등에 멘 중년 유사는 땅 위의 시체 열 구를 바라보고는 무심히 눈길을 돌려 동방평이 타고 있는 홍마에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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