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안금조(碧眼金雕) 1-3

碧眼金雕 2004. 9. 15. 19:08 Posted by 비천호리

정오가 가까운 시각, 날 듯이 달리던 검은 그림자의속도가 점차 늦추어지더니 구레나룻 대한이 고개를 돌리고 말한다.
"사숙님은 바로 거연성(居延城) 동쪽 끝에 잡화점(雜貨店)을 열고 계시네.
도착하게 되면 모두 가지말고 사숙님께서 더 아끼는 운표만 들어가게."
그들은 천천히 말을 남쪽으로 몰아 가면서 각자 수건을 꺼내어 얼굴을 닦고 수통을 풀어 물을 몇 모금씩 마셨다.

 

모래 언덕을 두 개 넘자 눈앞에 청록색의 숲이 펼쳐져 있고 물결이 찰랑거리는 조그만 못이 그 안에 있었다.
천산오검 중 다섯째가 탄성을 지르며 앞장서서 모래언덕을 달려내려 가자 나머지 네 마리 말도 고개를 쳐들고 못을 향해 달려내려 갔다.
구레나룻 대한이 말한다.
"우리 여기서 잠깐 쉬면서 건량(乾糧)을 먹고 다시 가세"
잠깐 골똘히 생각하더니 다시 말한다.
"그래! 차라리 여기서 쉬면서 그 대막붕성이 정말로 나타나는지 보는 것이 낫겠다."
그들은 말 안장을 내리고 나무 뿌리에 기대어 잠시 쉬자 다섯 마리의 말은 모두 목을 늘이고 못의 물을 먹었다.

 

다섯째가 수통을 풀어 못가에 가서 가득 채우고는 웃으면서 말한다.
"이 샘물은 정말 맑구나! 티가 하나도 없네"
그가 맑은 물을 두 손으로 들고는 못 가에서 마시기 시작했는데 두 모금을 막 넘겼을 때 다섯 마리 말이 처량하게 울면서 땅에 쓰러져 죽어버릴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깡마른 사내가 크게 소리를 쳤다.
"즉빈! 물에 독이 있다. 마시지마!"
구레나룻 대한의 몸이 회오리 바람처럼 한바퀴 돌아 날더니 한 손으로 허즉빈의 오른팔을 붙들고는 부르짖었다.
"다섯째 빨리 운기(運氣)해서 살펴봐!"
그가 왼손을 뒤집어 품속에서 병을 꺼내 힘주어 쥐자 "탁"소리가 나면서 병이 조각 조각 깨지고 분홍색 환약 두 알이 손바닥에 굴러 나왔다.
그가 말했다.
"빨리 이 "냉향구(冷香九)를 복용하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숲속에서 냉소(冷笑)가 전해오면서 음침한 목소리로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어이, '냉향구' 열알이라도 쓸모 없어, 죽는건 정해졌다!"
구레나룻 대한이 짙은 눈썹을 날리며 소리쳤다.
"안쪽에 어떤 친구가 계시오? 천산오검 가운데 향운천(向雲天)이 여기 있소!"

 

깡마른 사내가 경쾌한 호통을 치며 몸을 날려 숲으로 들어가면서 쌍장을 뒤집어내 폭풍처럼 쪼개갔다.
숲 속 인물이 차가운 목소리로 호통을 친다.
"하정강(何正綱), 너는 아직 멀었다. 돌아가거라."
깡마른 사내의 신음과 함께 실 끊어진 연처럼 튕겨져 나와 땅에 엎어졌다.
셋째가 경쾌한 휘파람 소리를 내며 몸을 한 바퀴 돌려 "삭" 소리가 나게 장검을 뽑더니 검광을 뿜어내며 기다란 무지개가 해를 꿰듯이 빠르게 쏘아 나갔다.
원래 숲가에는 이미 전신에 회백색 옷을 두르고 얼굴을 검은 천으로 가린 복면객(覆面客)이 서 있었던 것이다.
복면객은 자신에게 쏘아오는 검광을 차갑게 쳐다보며 마치 못 본 것처럼 우뚝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셋째는 검을 움직여 "비응복토(飛鷹伏兎)" 식으로 섬전처럼 찔러나가 곧 검 끝이 한번 돌면 복면객을 죽일 듯 했으나 갑자기 눈 앞이 한번 흐려지더니 상대방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마음 속으로 크게 놀라 몸을 낮추고 검을 두 방향으로 돌려 "운학사시(雲鶴斜翅) 일식을 펼쳐 검광으로 전신을 감싸고 땅에 떨어져 내렸다.
눈을 돌리자 그 몽면인이벌써 나무 꼭대기에 서 있던 것을 볼 수 있었다.

 

복면객은 두 발로 엄지손가락 굵기만한 나뭇가지를 밟고 서 있는데 나뭇가지의 흔들림에 따라 몸이 아래 위로 흔들리며 조용히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다가 셋째의 놀라고 의아한 표정을 보자 차갑게 비꼬아 말한다.
"임사첩(林士捷), 너의 '운학사시(云鶴斜翅)' 수법은 아직 멀었다, ....."

임사첩의 미간이 치켜 올라가고 두려운 기색이 얼굴에 퍼지며 소리쳤다.
"친구, 이름을 남겨라!"
복면객이 길게 웃으며 낙엽처럼 날아 내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 중 누가 금과(金戈)를 가지고 있느냐? 내놔라."
구레나룻 대한 향운천이 갑자기 비통하게 고함을 지르며 몸을 날려 오며 오른손에 장검을 뽑아들자 차가운 빛이 갑자기 복면객에게 짓쳐갔다.


임사첩이 깜짝 놀라 쳐다보니 둘째 형님이 이미 땅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이 얼핏 보이는데, 풀어 헤쳐진 옷 사이로는 엷은 금색의 손바닥 자국이 "칠감혈(七坎穴)에 나 있고 입에서 토해낸 핏물이 얼굴을 적시고 땅바닥에 흘러 내리고 있었다. 그가 놀라서 외쳤다.
"쇄금장(銷金掌)!"

복면객이 음산하게 웃으며 오른 손바닥으로 허리부분을 더듬더니 손을 홱 뒤집자 한 줄기 차가운 빛이 허공을 날아 향운천이 쳐낸 일검을 막아버렸다.
향운천의 일검은 번개처럼 빠르고, 맹렬하여 막 적을 죽이려는 찰나에 상대방이 물러나면서 몸을 기울이고, 검을 뽑고, 기를 모으자 검광이 이미 수은이 땅에 쏟아지듯이 쏘아져 왔다.
그의 마음이 흔들리긴 했으나 발을 한번 미끄러트리며 재빠르게 검을 움직여 '비금점빙(飛禽点氷)' 일식(一式)을 펼쳐 세 송이 검화(劍花)를 날려 보냈다.
복면객이 크게 웃으며 말한다.
"멋진 '비금점빙'"
말 소리와 동시에 그가 팔을 떨치고 몸을 비스듬히 기울이자 손에 쥔 연검(軟劍)이 괴사(怪蛇)처럼 펴지면서 겹겹이 검파(劍波)가 쌓이고 '윙 윙" 하는 검기(劍氣)가 눈이 부시도록 가득 차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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