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안금조(碧眼金雕) 1-1

碧眼金雕 2004. 9. 13. 11:41 Posted by 비천호리

제1장 십절고진(十絶古陣)

 

아침 햇살이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는데, 시뻘건 태양은 대막(大漠)의 황사(黃沙) 뒤에서 벌써 만길 금빛을 번쩍거리기 시작한다.
번쩍거리며 빛나는 광망(光芒)이 끝없는 누런 모래 위를 비추어 자욱한 황색 노을을 만들어내고 있다.
부드러운 모래알은 평탄하고 넓게 뻗어 있어 확 트인 하늘처럼 아득히 멀리 끝이 없고,
바람이 불지 않는 사막에서는 참으로 드물게 좋은 날씨이다.

 

고요한 사막에 태양이 떠오르는 시각, 공중에서 조그맣게 낙타 방울 소리가 들려온다.
사막의 서쪽 끝에서 몇 개의 그림자가 날 듯이 빠르게 움직여 남쪽의 사막 끝을 향해 달려온다.
그림자가 점점 또렷해지자 온 얼굴이 구레나룻으로 덮인, 곰의 등에 호랑이의 머리를 한 중년의 대한이 앞장서 오는데, 머리를 들어 하늘을 쳐다본 후 고개를 돌려 말한다.
"장문사존께서 하신 말씀이 정말 딱 들어맞는구나! 6월 마지막 며칠동안에는 과벽(戈壁)에 폭풍이 불지 않을 거라고 하시더니, 조금 있으면 사막의 기경(奇景)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네"

 

그의 뒤쪽에 있던 하얀 얼굴에 수염이 없이 깡마른 사내가 가볍게 웃으며 말한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강호의 소문에 금붕성(金鵬城)은 이 끝없이 넓은 과벽대막(戈壁大漠, 고비사막) 가운데 있긴 하지만 망망(茫茫)한 흰 구름이 희미한 가운데 푸른 하늘에 나타난다고 하니, 미친 듯이 바람이 불고 온통 황사 천지인 과벽대막에서 이런 기회가 어찌 쉽게 오겠습니까?"그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말한다.
"제가 감히 사부님 말씀이 맞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강호에 떠도는 소문은 허무맹랑한 것으로 아무런 근거도 없는 것입니다.
대막붕성 안에 숨겨진 보물을 본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데도 거의 백년동안이나 여전히 전해오고 있고, 이 소문에 반대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니....

 

그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낮은 목소리의 사람이 말을 잇는다.
"둘째 형님, 형님은 이 몇 년동안 거연해변(居延海邊)에 살고 있는 몽고인들이 오시 정각에 하늘에 나타나는 금붕성의 형상을 여러 번 보았다고 하는 것을 강남에서 줄곧 들어왔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사막에서 보통 나타나는 신기루 현상이라고 하더라도 대막 깊은 곳에 반드시 그 성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 몇 년 사이에 그렇게 많은 무림인물들이 이 황량한 사막에 뼈를 묻지는 않았을테니까요."
이 말을 한 사람은 용모가 준수하고, 검미호목(劍眉虎目)에 체격은 중간 정도, 나이는 대략 서른 정도인데 말하는 중에 뛰어난 기상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위풍당당한 사내로 바로 천산오검(天山五劍) 가운데 넷째인 진운표(陳雲標)였다.

 

구레나룻 대한이 큰 입을 벌려 크게 웃으며 말한다.
"넷째, 칠년 동안 못봤는데도 자네 성격은 여전하구만, 그러니 여태까지 제수씨도 조카도 아무도 없지, 생각해보게 자네같은 그런 직설적인 성격으로 어떻게 아가씨들의 환심을 살 수 있겠는가? 모름지기 여자는 부드러운 마음씨를 갖고, 자상하게 비위를 맞춰주는 남자를 좋아하는 것을 알아야지...그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넷째 진운표가 웃으며 말한다.
"큰 형님, 형님은 그렇게 여자를 잘 아시면서 어떻게 지금까지 혼자이시죠?
이렇게 되면 형님이나 나나 마찬가지로 아들에다 손자까지도 늦게 되겠지요.
그의 이 말에 나머지 네 사람 모두 웃기 시작한다.
쾌활한 웃음소리가 드넓은 대막에 멀리 퍼져나가자 그들을 태우고 있는 말들이 놀라 불안하게 울기 시작한다.

웃음소리가 점차 그치자 구레나룻 대한이 말한다.
"이번에 사부님이 우리들을 산으로 불러서 거연해변(居延海邊)에 가서 한심수사(寒心秀士) 사숙님을 찾아오도록 했는데 설마 화산(華山) 능허자항(凌虛慈航)이 정말로 옥극(玉戟)상의 부호를 알아낸 것은 아니겠지? 어쩌면 사부님도 과(戈)의 부호를 깨달으셨는지도....

이때 여지껏 말이 없던 짧은 윗도리, 회색 바지 차림에 등에 쌍검을 멘 중년 남자가 말한다.
"사숙은 십오년전 황산대회(黃山大會)에서 화산장문인 능허자항의 "상청검법(上淸劍法)"에 패한 후 지금까지 산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본문 제자들 모두 종적을 모르는데 이번에 사부님은 어째서 우리들에게 거연해변에 가서 그분을 찾으라고 하셨을까요?
사부님께서 대막붕성(大漠鵬城)의 비밀을 이미 깨달으신 걸까요?

 

천산오검 가운데 다섯째는 가장 나이가 어리고 온통 헝클어진 머리에 모난 얼굴, 큰 귀의 허즉빈(許則賓)인데, 이 때 그가 말한다.
"사조(師祖)께서는 황산대회 후 금과(金戈)를 얻으셨지만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과(戈)상의 괴부호를 알아내지 못하셨는데 이번에 화산의 능허자항이 옥극을 산 위로 보내온 것은 소제(小弟)가 아는 바로는 십년 전에 사부님과 약속이 되어 있는 것으로...

 

깡마른 사내가 목소리를 높여 말한다.
"제가 중원으로부터 소식을 듣기로는 최근 몇 년간 화산 능허자항은 강호에 한번도 나타난 적이 없고, 작년 소림 신임장문인 백납대사(百衲大師)의 취임식에 조차 가지 않았는데, 화산과 소림의 교정(交情)으로 보면 분명히 그럴리가 없습니다.
강호에는 능허자항이 폐관연공(閉關練功) 중일 거라는 말이 떠돌고 있고, 이 때문에 최근에 야행인(夜行人)이 화산에 여러번 침입하여 적지 않은 제자들을 상하게 하고 상청궁(上淸宮)까지도 불에 탔다고 합니다."

 

구레나룻 대한이 눈살을 찌푸리고 깊이 생각하더니 곧 안색이 밝아지면서 말한다.
"둘째가 이렇게 말하기는 하지만 화산 '상청검법(上淸劍法)'과 본문의 '천금검법(天禽劍法)'은 똑 같이 무림의 이대검법(二大劍法)이고, 사부님의 검술도 신의 경지에 이르른데다가 지혜도 절세적(絶世的)이니 반드시 안배(安排)가 있을 것이네.
한심수사 사숙님은 진법에 정통하시니 비록 소식이 끊어지기는 했지만, 이번에 산으로 돌아가게 되면 분명히 사부님에게 도움이 될 것이네...

그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갑자기 미친 듯한 웃음소리가 십장 밖에서 급하게 들려와 그의 말을 끊는데,한 줄기 진홍색 그림자가 어렴풋한 황사 먼지 가운데서 날듯이 달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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