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홍(秦紅)

진홍 2007. 7. 16. 16:14 Posted by 비천호리

진홍(秦紅) 본명은 황진방(黃振芳), 대만 창화(彰化) 출신으로 1936년생이다.

어려서 집안이 빈한하여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으나 오랫동안 인쇄소에서 일하였기 때문에 각종 문학, 역사학 간행물들을 광범위하게 섭렵할 수 있었고 독학으로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1963년 大美出版社의 제2회 무협소설 현상공모에 “秦紅”이라는 필명을 써 처음으로 참가하였다가 생각지도 않게 佳作에 입상했다. 그때부터 대미출판사 깃발 아래서 전속무협작가로 활동했다.

사실을 토대로 하여 말하면, 대만 무협작가들 중에서는 진홍이 유일하게 “본토파(本土派)”이면서 대만국적을 가진 유명작가이다. 그러나 작품에 쓰인 언어로 살펴보면 그의 필치는 참신하고 침이 없고 어휘를 운용하여 글을 쓰거나 경전을 인용하는데서 중국 전통문화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 없었다. 현재 일반적인 대만국적 작가들이 걸핏하면 대만어를 써서 문장을 짓는 “풀뿌리 근성” 혹은 “本土化” 경향이 없었다는 점은 깊이 새겨볼 만하다.

1986년 절필할 때까지 진홍은 총 40여편의 무협작품을 썼는데 그중에서 <九龍燈> (1966년), <傀儡俠>(1970년)이 기이하고 의혹을 남기는 필법으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독자들에게 무궁무진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다음과 같은 작품을 썼다.

一棒喝武林, 七步滴血, 九龍燈, 九品刀, 大豪杰, 千古英雄人物, 千里不留行, 千乘萬騎一劍香, 不祥刀, 鳳凰劍, 風流劍客, 西出陽關一劍客, 過關刀, 戒刀, 冷血十三鷹 ,英雄路, 武林一條街, 武林牢, 武林蕩寇志, 武林第二街, 俠骨奇情, 俠客之死, 俠歌, 金獅吼, 劍比日月明, 劍雨花紅, 劍起千朵紅, 迷俠, 神女鏢, 鐵鞋萬里征, 離魂俠, 請帖, 傀儡俠, 第七把飛刀, 斷刀會, 蹄印天下, 霹靂琴

중화민국 25년(1937년) 봄, 고도(故都) 유리창(琉璃廠)의 노점에서 시를 써놓은 작은 책 한 권을 발견하였는데, 종이가 반쯤 파손된 상태로 “화계어은(花溪漁隱)”이라는 서명이 돼 있었다. 대략 건륭(乾隆)-가경(嘉慶) 때(1736~1820)의 사람인 것으로 짐작되었다.

원숙하고 힘있는 필치의 행해체(行楷體)로 깨알같은 작은 글씨가 쓰여 있었는데 그 가운데 다음과 같은 시 한 연(聯)이 있었다.

“처자식이 좋다 해도 지기(知己)는 아니니, 장부로서 처자식을 얻고 잃는 문제는 본래 중요하지 않다(妻孥雖好非知己,得失原難論丈夫)”

자못 의미심장하여 책자를 사서 돌아와 세밀히 읽어보았다. 책자에는 시 100여 수와 명말(明末)의 일화(逸話) 10여 편이 적혀 있었는데 많은 글 중 칠살비(七殺碑)라는 제목이 붙은 문장 한편이 들어있었다. 그 내용을 요약한다.

「장헌충(張獻忠)이 촉(蜀) 땅을 차지한 후 제왕을 참칭, 연호를 대순(大順)으로 하고 사람이 많이 다니는 사통팔달의 길에 성유비(聖諭碑)를 세웠는데 비석에 적히기를 ‘하늘은 사람에게 만물을 주었으나, 사람은 아무것도 하늘에 보답하지 않는다. 죽여라,죽여라,죽여라,죽여라,죽여라,죽여라,죽여라(天以萬物與人,人無一物與天,殺、殺、殺、殺、殺、殺、殺)‘하는 글이니 즉 세상에 전하는 칠살비이다.

비문에 살(殺)자가 여섯도 아니고 여덟도 아닌 꼭 일곱 글자인 것은 무엇 때문인가? 촉 땅의 전고(典故)를 잘 아는 노인이 나에게 말하기를 장헌충이 촉 땅에 들어가 많은 사람들을 도살하였으나, 누차 천남칠호걸(川南七豪傑)에게 패배하였다. 그가 이를 매우 한스럽게 생각하여 비석을 세워 맹세를 기록하니 이것이 칠살비(七殺碑)이다.

죽일 것을 맹세한 칠웅(七雄)이 누구인가? 화양백(華陽伯) 양전(楊展), 설의랑(雪衣娘) 진요상(陳瑤霜), 여비위(女飛衛) 우금문(虞錦雯), 승협(僧俠) 칠보화상(七寶和尙) 희용(晞容), 개협(丐俠) 철각판(鐵脚板) 진등효(陳登皞), 고협(賈俠) 여비(餘飛), 새백온(賽伯溫 ) 유도정(劉道貞) 등이 바로 그들이다.


글은 칠웅의 사적(事迹)을 나누어 적고 있는데 그 내용이 기이하고 볼만했다. 양전은 칠웅의 우두머리였는데, 책자에서는 그 생애와 의병을 이끌고 천남(川南)을 회복한 일들을 특히 자세히 서술하고 있었다. 양전은 금은(金銀)의 냄새를 식별할 줄 알았고 기문오행술에 뛰어났다고 적어 거의 소설가처럼 묘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 적힌 내용은 모두 근거가 있었으니 오매촌(吳梅村)의 녹초기문(鹿樵紀聞), 팽준사(彭遵泗)의 촉벽(蜀碧) 등의 책에 실린 양전전(楊展傳)에도 기문오행술에 정통하다고 적혀 있어 학문이 넓은 선비도 그 영향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어찌 정말로 이런 신기한 술법이 있을 수 있겠는가?

성도박물관(成都博物館)에 가서 칠살비를 보고 온 벗이 말하기를 그 글이 약간 달라지고 일곱 글자 가량이 없어졌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원래의 비석은 청(淸) 조정에 의해 부서졌다고 말했다. 어떤 것이 옳은지 알 수 없으나 지금 촉땅의 사람들은 양전의 유적을 만인분(萬人墳)이라 부르고 있다. 칠웅의 충의와 절개에 대해 글로 제대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이를 정리한다.

“화계어은”은 각종 사서에 실린 내용을 정리하고 전해오는 이야기를 노인들로부터 수집하여 칠웅의 사적을 종합하였고, 옛 소설로 풀어냈지만 황당무계하고 비정상적인 내용은 빼버렸다. 화계어은이 쓴 글에 따르면 책 제목을 칠살비라고 붙인 것은 칠웅의 사적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서이다.

칠웅은 명말(明末)에 함께 힘을 합쳐 천남을 무대로 종횡무진 활동하여 많은 백성들의 목숨을 지켜냈으나 결국은 융통성 없는 대관(大官)에게 붙잡혀 스스로 힘을 없애고 나라를 위해 요절하였다. 이로써 촉 땅 전체가 극도로 혼란해졌으니 그 사적이 장렬하여 슬프기도 하고 가히 풍속으로 삼을만하다.


작자는 이미 굳어버린 재주를 억지로 되살려 문자유희로 그럭저럭 남은 세월을 보낼 뿐이다.

중화민국 38년 봄 析津에서 주정목 적음.

주정목 작품목록
《울금향 鬱金香》《철한 鐵漢》《염마도 艶魔島》《칠살비 七殺碑》《호소용음 虎嘯龍吟》《비천신룡 飛天神龍》《용강표은기 龍岡豹隱記》《용강여협 龍岡女俠》《나찰부인 羅刹夫人》《옥룡관 玉龍岡》《묘강풍운 苗疆風雲》《변새풍운 邊塞風雲》《오사일봉 五獅一鳳》《서인검 庶人劍》《탑아강 塔兒岡》《틈왕외전 闖王外傳》《익왕전 翼王傳》
 
장헌충(張獻忠, 1606~1646)
중국 명(明)나라 말기 반란군 수령. 섬서성(陜西省) 연안(延安) 출생

한때 연수진(延綏鎭)의 수비병이 되었으나 1630년 미지현(米脂縣)의 농민들을 이끌고 봉기하여 팔대왕(八大王)이라 칭했으며 각처의 농민군과 부즉불리(不卽不離)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섬서에서 하남(河南)-호북(湖北)-안휘(安徽)를 전전하면서 싸웠다. 사천(四川)에 들어갔으나 불리했기 때문에 반전하여 43년 무창(武昌)을 공략하고 대서왕(大西王)이라 칭했다.

이듬해에 다시 사천으로 나아가 중경(重慶)-성도(成都)를 함락시킨 뒤 대서국(大西國)을 세우고 황제에 올라 연호를 대순(大順)이라고 하고 성도를 서경(西京)이라 불렀다. 그는 이 무렵에 화북(華北)에서 활동한 이자성(李自成)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령이 되었다.

건국 후에는 호남(湖南)과 강서(江西)도 공략했고, 군율을 엄격하게 다스려 살상과 폭행을 금지시켰다. 또 3년간 조세를 면제시키고 농노를 해방했으며 파자군(婆子軍)이라는 여성부대를 편성, 여성의 권리를 인정하는 등 새로운 정책으로 농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래서 중소지주와 사대부 등의 지지를 잃고 이자성과 연합하지도 못한 채 청나라 군사의 남하에 호응하는 사천 지주들의 탄압을 받고 3년 동안 저항하다가 전사하였다.

영웅출소년(英雄出少年, 上官鼎 僞作)

상관정 2007. 7. 13. 18:51 Posted by 비천호리

宇文傑은 신세가 처량한데, 그 부친이 知府 재임시 강도를 잡아 죽인 일 때문에 강호의 도적에게 미움을 사 부부가 모두 살해당한다. 포대기 중의 우문걸은 유모의 보호로 다행히 재난을 면한다. 후에 昆侖派의 장문인이 곤륜에 데려가 성인으로 키우고 도가의 비공을 전수한다. 다시 巨獅嶺 文殊院 주지의 문하에 들어감으로써 불가와 도가 양가의 무림절학을 얻는다.
소년 우문걸은 절기를 몸에 지닌 채 스승의 명을 받들어 하산한 후 직접 원수를 찾아다닌다. 그는 일년 남짓한 동안 대강남북을 종횡하며 通天教主, 武陵幫主, 江陵玉獅 등 魔頭大賊을 주살하여 名僧 賢道 간에 이름을 날리고 녹림의 호객을 信服 시킨다. 끝에는 원수를 직접 죽여 부모님의 혼령을 위로한다.
예부터 미녀는 소년을 사랑한다고 했던가. 기개가 뛰어나며 재능과 절학을 갖춘 소년영웅은 처음 강호에 나와서는 아직 風情을 모른다. 때문에 종종 빼어난 용모와 아름다운 자태의 여인과 만나도 춘심이 일어나지 않는다. 강호의 경력이 쌓이면서 여도사와 경험을 갖고 음탕한 미녀의 교태도 알게 되고 결국은 평생을 같이할 짝을 만나게 된다...

第一章  千裏玉人夢中人
第二章  揮戈躍馬驚天地
第三章      獨江眺望鸚鵡來

第四章  吟哦應對人上人
第五章  身懷絕技踐前約
第六章      洗血仇代庖逞凶

第七章  殺獠血濺水月庵
第八章  浪裏發威會佳人
第九章      爲仇千裏走單騎

第十章  尋駒深山逢奇僧
第十一章 金戈仗義拯弱女
第十二章 闖江湖女俠驚敵

第十三章 尋親巧遇小孟嘗
第十四章 亡親恨泣血錐心
第十五章 古瑟斷弦慶有主

第十六章 上梁不正勞燕飛
第十七章 西域來客尋天仇
第十八章 柳暗花明逢故人

第十九章 音容宛在複見娘
第二十章 岩下一劍了親仇
第二十一章 緣定終身上昆侖

상린위봉(祥麟威鳳, 上官鼎 僞作)

상관정 2007. 7. 13. 11:49 Posted by 비천호리

15년 전 한 탕부와 미개인이 사통하여 사생아를 낳았으나 그 남편인 華山派 장문인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 15년 후 이 여마두는 악성이 여전히 남아 절세의 음독한 무공 陰屍手를 익히고 三屍神과 白骨夫人을 규합하여 화산을 피로 씻고 무림동도들을 잔인하게 살해함으로써 중원무림에 미친 듯이 반격을 벌인다. 무림의 흑백양도는 처참하게 아우성치고 간담이 서늘해진다...

신비한 강호객 賽淵明은 겉으로는 공평타당하고 선량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기괴하여 마음을 헤아리기 어렵고 음험하고 간교한 사람이다.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스스로 신체를 손상시키는 속임수로 진상을 숨긴 채 혼란을 조장하고 무림분쟁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영준한 소년 武天洪은 출도하자마자 상술한 腥風血雨와 겹겹의 혼돈 속에 빠져든다. 무림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무천홍은 만장까지 뻗친 호기와 뛰어난 의협심으로 武林三聖과 海國三英의 도움을 얻어 曠古의 奇書 玄機武庫 상의 개세신공을 익힌다. 단신으로 大巴山에 뛰어들어 음호수 血淋兒를 베고, 陰山墨豹와 용감히 싸우고 무림해악의 원흉인 陶師潛을 끌어내니 翻江倒海, 驚天動地의 기세다.

李玄鸚, 玉玲瓏 등 절색의 세 녹림소녀들은 무천홍의 인품과 무공에 놀라고 흠모하여 홀연 사랑의 감정이 생겨나 애정에 사로잡히지만 무천홍을 움직이지 못한다. 비록 나신을 드러내고 추파를 던지지만 근심은 커지고 조금도 경솔하게 다가서지 못한다.

第 一 章   秘笈不翼而飛
第 二 章   南京打擂
第 三 章   邂逅二前輩

第 四 章   玲瓏女九破險關
第 五 章   只身鬪二魔
第 六 章   攻打巫山

第 七 章   獨探大巴山
第 八 章   南京擺擂
第 九 章   蓮瑤島曆練

第 十 章   劍斬血淋兒
第十一章 重振華山雄風
第十二章 武關惡戰

第十三章 北訪麟岩夫子
第十四章 武學曠古秘笈
第十五章 出奇制勝取巫山

第十六章 白骨夫人屍骨無存
第十七章 撲朔迷離賽淵明
第十八章 難定婚配

第十九章 終定婚配
第二十章 元旦盛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