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이 일자 그냥 이곳을 떠나버리면 안될 것 같은 생각에 홍마를 끌고 시냇물을 따라 나아갔다. 한참을 가자 눈앞에 소나무가 주욱 늘어서 있는데 청록색 나무들이 높이 솟아 있고, 군데군데 키 작은 꽃나무 숲이 있어 제각기 모양으로 시냇가에 펼쳐져 있었다.
작은 호수에 물이 모여들 듯이 물소리가 점차 커져 갔고 양쪽으로 절벽이 높이 솟아 이미 산골짜기에 들어섰던 것이다.
그가 홍마를 끌고 꽃밭 속으로 걸어 들어가자 수면에 푸른 하늘과, 흰 구름, 기이한 꽃들이 거꾸로 비쳐 한 폭의 현란하게 아름다운 그림이 펼쳐져 있었고, 그윽한 향기가 전해와 사람을 취하게 하였다.
그는 자기가 지금 선경(仙境)에 들어와 있는 것 같고 눈앞의 뭇꽃들은 미소를 머금고 있어 모두 살아 있는 예쁜 소녀처럼 느껴졌다. 꽃밭 뒤쪽으로 푸른 송림 뒤쪽을 바라보니 눈처럼 하얀 대리석으로 쌓아 올린 높고 큰 궁전이 보였다. 그 건축물과 그 장식물은 눈부시게 화려하였고 붉은 색 처마에 푸른 기와를 인 고루거각(高樓巨閣)들이 겹쳐져 곧바로 소나무 숲 깊은 곳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는 일시에 눈을 크게 뜨고 뚫어지게 쳐다보며 입을 벌린 채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놀라 얼이 빠져 자기도 모르게 그 대리석 궁전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몇 걸음 걷다가 걸음을 멈추고 혼잣말을 했다.
“오늘은 내가 어째서 이렇게 머리가 맑지 못할까, 이건 분명히 화림(花林)을 이용해 만들어낸 진법인데”
그는 집안에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학문을 익혔기 때문에 진법(陣法)에 관해서는 이미 등봉조극(登峰造極)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이번에는 정신을 차리고 대략 살펴보자 진의 중추를 알아낼 수 있었다. 그가 왼쪽으로 꺾고 오른쪽으로 돌아 모퉁이를 두 번 돌자 바로 흰 돌이 깔린 길 위에 도달하였고 길을 따라 몇 걸음 걸어가기도 전에 한 가운데 커다란 호수를 볼 수 있었다. 호면(湖面)에는 꽃잎이 가볍게 떠있어 맑은 향기를 사방으로 뿌리고 있었고 호수 가에는 수양버들이 바람에 한들거리며 물속에 거꾸로 비쳐 그 풍경이 매우 아름다웠다.
그는 연일(連日) 황량한 지역만 달려왔는데 여기서 이처럼 그림 같은 풍경을 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해 넋을 잃고 천천히 무성한 푸른 풀밭에 앉았다.
“이런 세외도원(世外桃源) 같은 곳에 평생 머물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미풍이 산골짜기에서 불어오니 버드나무 잔가지가 호면(湖面)에 가볍게 스치면서 동그란 물결을 일으켰다. 그때 갑자기 물소리가 일더니 물속에서 한 사람이 머리를 불쑥 내밀었다.
석지중이 깜짝 놀라면서 바라보니 그 사람은 검은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늘어뜨렸고 흠뻑 젖어 옥처럼 새하얀 어깨를 드러냈다.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풀밭에 나타날 줄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듯 놀라 소리를 지르며 물밑으로 잠수했다.
석지중이 일어나 호숫가로 걸어가서는 소리쳐 물었다.
“누구냐?”
호수에서 물소리가 한 번 나더니 버드나무가지 사이에서 매우 아름다운 얼굴이 탐색하듯 고개를 내미는데 검고 긴 머리카락에는 투명하게 반짝이는 물방울이 묻어 있었다. 주위의 분홍색 꽃잎들이 그녀의 옥 같은 피부가 돋보이게 하니 참으로 보는 사람의 눈이 어지럽고 심신이 흔들릴 정도 놀라웠다.
석지중은 놀라 바라보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를 알지 못했다.
그 소녀가 미소를 지었다. 새하얗고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면서 맑고 깨끗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는 누구인가요?”
석지중은 자기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면서 한동안 그녀의 그 성결무사(聖潔無邪)한 웃는 얼굴에 사로잡혀 어떤 대답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 소녀가 석지중의 이런 모양을 보고는 한번 피식 웃는다. 그리고는 물속에서 걸어 나오자 투명하고 깨끗한 옥체(玉體)가 햇빛 아래에서 성결(聖潔)한 빛을 발산했다.
석지중이 대경실색(大驚失色)하였으니 그 소녀가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 마치 천진한 어린애와 마찬가지라는 걸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놀라서 급히 고개를 돌렸다.
물소리가 한 번 나더니 그 소녀가 풀밭으로 올라와 버드나무 가지에 걸쳐 놓았던 비단옷을 들어 몸에 걸치고는 천천히 석지중 쪽으로 걸어왔다.
석지중의 심장이 갑자기 쿵쾅거렸다.
그는 그 소녀가 이미 가까이 온 줄 알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감히 얼굴을 돌리지 못했다.
그윽한 향기를 풍기며 눈팡의 그 아름다운 얼굴이 영리하고 약은 눈빛을 반짝이며 호기심에 차서 그를 바라바고 있었다.
석지중은 그 소녀를 바라보니 일신에 남색 비단옷을 걸쳤는데, 검은 머리카락을 구름처럼 드리우고, 빛나는 눈동자와 새하얀 이(明眸皓齒)에, 참으로 폐월수화(閉月羞花), 침어낙안(沉漁落雁)의 용모였다.
그는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에 놀라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서서 그녀의 꽃처럼 아름다운 웃는 얼굴에 시선을 고정했다.
소녀가 물었다.
“이봐요. 당신은 누구예요?”
석지중이 입술을 한 번 움찔거렸지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소녀가 말했다.
“아! 알고보니 그대는 벙어리였군요! 정말 가련해요!”
석지중이 검미를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벙어리라고 누가 그래요? 나는 석지중이라고 하오.”
소녀가 기뻐하며 박수를 쳤다.
“원래 그대는 벙어리가 아니었네요! 이러면 너무 좋아요. 이봐요, 석지중, 그대는 내가 누군지 알아요?”
석지중은 상대방이 이렇게도 천진난만한 것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그대가 알려주지 않았는데 내가 어찌 알겠소?”
그 소녀는 수려한 눈썹을 찡그리며 속눈썹을 두 차례 깜박이고는 웃으며 말했다.
“나는 동방평(東方萍)이라고 해요. 이봐요! 석지중, 그대는 어떻게 이곳에 들어왔지요?
아빠가 전에 천하의 어떤 사람도 아빠 허락 없이는 감히 이 화원에 들어올 수 없다고 했는데, 그대는 아빠 허락을 받았나요?“
석지중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는 저 시냇물을 건너온 거요. 아! 그대의 집 앞쪽으로 길이 나 있소? 혹시 그 궁전 앞쪽의 골짜기가 길인가?”
동방평이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두 번 깜박이더니 미소를 띠며 말했다.
“우리 아빠는 동방강(東方剛)이라 하고 오빠는 동방옥(東方玉)이라고 해요.
오빠는 오른쪽 산위에 살고 있어요, 이봐요! 그대는 우리 오빠를 알아요?“
석지중이 고개를 젓고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나는 강호에 나가지 않아서 그 분들을 모르오. 아! 여긴 정말 좋소, 그 궁전의 건물은 내가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소이다.”
동방평이 손뼉을 치며 미소를 지었다.
“정말 좋아요! 그대도 이 건물이 좋다고 말하다니. 이봐요! 그대는 이 건물을 누가 구상했는지 아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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