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기는 해도, 세월이 쌓이고 광범위하게 섭렵한 까닭에 '무학'에 대한 조예가 점차 깊어져 나서서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일찍이 초청에 응하여 <소오루주 笑傲樓主>라는 필명으로 <문예월간>에 <신칠협오의 新七俠五義>(무협장편 연재, 미완, 1974), <유적잡지 唯迪雜志>에 <금의 한벌 40년一襲錦衣四十春>(무협중편, 1977)을 집필하기도 하여 무협 창작의 문필기교, 초식동작, 인물묘사, 장면설계 및 사상적 함축 등에 대해 모두 직접 경험하여 낯설지 않았으며, 어떤 무협 작품의 우열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또한 나는 역사학과 출신의 '지식청년'이었기 때문에 줄곧 농후한 역사벽(歷史癖)을 드러내 근현대 무협작가의 심미(審美) 경험과 문화사상의 전승에 매우 중점을 두었다.
이런 모든 것들이 알게 모르게 나의 무협평론에 의도치 않게 반영되었다. <무림협은기 武林俠隱記>(<하조잡지 夏潮雜志> 창간호, 1976>, <무협소설종횡담 武俠小說縱橫談>(<민생보民生報>,1982), <여담 일갑자 이래의 무협소설閑話一甲子以來的武俠小說>(<명보월간 明報月刊>. 1983) 등이 모두 그랬다. 그러나 그동안의 작업은 대부분 '구파' 명가의 명작을 논술 대상으로 하였으며, 대부분 소개에 치중하여 독자들이 단서로 삼아 찾아내고(按圖索驥) 옛 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알 수 있도록(溫故知新) 한 것이었다. 이 시기에 '무협 고지(故紙) 더미'에 파묻혀 얻은 심득(心得)은 1984년 연경판(聯經版) '근대 중국 무협소설 명저(名著大系) '의 비교본(批校本)에 실린 '마검 10월 시금석(磨劍十月試金石)'으로 귀결된다. 그 후에도 여전히 약간의 자질구레한 저작은 있지만 대부분 재미삼아 쓴 글이라 거론할 만한 것이 없다.
옛날 남조(南朝)의 일대(一代) 大평론가 유협(劉勰)은 <문심조룡文心雕龍‧지음知音>에서 "무릇 천 곡의 좋은 곡을 연주해 봐야 음악을 이해할 수 있고, 천 자루의 검을 살펴본 후에야 비로소 검을 알아볼 수 있다. 따라서 문학작품을 포괄적이고 객관적으로 감상하고 평가하는 방법은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는 것이다(凡操千曲而後曉聲, 觀千劍而後識器. 故圓照之象, 務先博觀... 경중(輕重)의 판단에 사사로움이 없고, 애증(憎愛)에 따라 치우치지 않은 후에야 저울과 같이 공평하고 거울과 같이 명백해질 수 있다(無私於輕重, 不偏於憎愛, 然後能平理若衡,照辭如鏡矣)."고 하였다. 이것이 바로 내가 반평생을 강호를 떠돌며 무협의 작은 길에 침음(浸淫) 하는데 있어서의 이상적인 목표이다.
구파 여러 대가의 작품에 대해 나는 비록 시간과 공간의 환경에 제한되어 전모(全貌)를 들여다보지 못해 잃어버려서는 안 될 진주를 잃어버렸을 때의 아쉬움(遺珠之憾)을 면할 수 없지만, 어쨌든 그 시대 최고의 성적표(섭홍생이 비평한 중국 무협소설대계 의 명가 7인의 25종 작품에 대한 가이드를 가리킴)를 낸 셈이다. 지난날을 거울 삼아 앞날을 알 수 있다(鑒往知來)는 말처럼 앞으로 본토로 돌아가 대만 무협 작가들의 불후의 작품을 재정비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그러나 구서(舊書)에 관한 자료가 불완전한 '오랜 문제' 문제는 여전히 해결할 수 없어서, 이는 나의 흥취를 식게 하고 곤경에 빠뜨렸다. 참을성 있게 기회가 무르익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서점의 "협패사료(侠稗史料)"를 통째로 사들이다.
1991년은 한 전환점이었다. 그해 여름, 나와 첫 만남에서부터 의기투합한 동호인 임보순(林保淳) 교수가 갑자기 전화를 걸어와 잘 아는 대여점이 곧 영업을 종료할 것이라면서, 2만원元의 초저가에 모든 구판 무협서(총 700여부, 약 15,000집)를 기꺼이 양도하려는 중인데, 함께 돈을 내어 사서 중요한 임무를 완수할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다. 당시는 대만 신구판(25절본開本/36절본) 무협소설 교체시기(1977-1981)로부터 이미 10년이 넘었고, 구판형을 새판형으로 교체할 소설점은 모두 일찌감치 바꾸었고, 바꾸기를 원치 않은 오래된 가게들은 대부분 문을 닫고 영업을 그만두었다. 판형을 바꾸지 않고도 문닫지 않을 수 있는 대여점은 마치 봉의 털이나 기린의 뿔처럼 드물었으니, 그 가게 주인은 참으로 옛것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그가 곧 국외로 이민을 가고 또 값어치를 아는 사람에게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었다면, 이 잘 보존된 '골동품'들을 쉽게 내놓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당연히 바란다고 해서 얻어질 수 없는 매우 좋은 일이었다! 그야말로 '예전에는 쇠 신발이 닳도록 돌아다녀도 찾을 수 없었는데 나중에 힘 한 푼 들이지 않고 찾아질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래서 곧바로 보순과 최종적인 결정을 하고, 즉시 가게에 알려서 조사‧정리를 했다. 그때 마침 천진(天津)의 미학자 장공생(張贛生) 형이 대만을 방문했는데, 소식을 듣고 자발적으로 나서서 힘을 보태고자 했다. 그래서 그와 함께 대형 트럭 두 대를 빌려 그 수백 부의 무협 구서(舊書)를 힘을 합쳐 트럭에 올려 가득 싣고 돌아왔다. 보수적인 추정에 따르면, 이 "골동품"들은 대만의 모든 구판 무협 서적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며, 거기에 우리가 수년에 걸쳐 수집한 각종 명가의 작품들을 더하면 이미 상당히 완비되어 연구에 필요한 정도로는 충분했다. 이때부터 '협객장서(俠客藏書)'들은 우리가 공유하는 귀중한 자산이 되었고, 역사를 다루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여유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같은 해 10월, 나는 처음으로 이 원시 자료를 활용하여 '대만 통속소설 세미나'에서 '당대(當代) 무협소설의 '성인 동화' 세계를 논하다-40년 동안 대만 무협 창작의 발전과 변천에 대한 투시'라는 글을 발표했다. 엄격한 학술적 관점으로 보면, 이 논술은 약간 간략하고 내용이 보충되어야 하지만, 다만 필자는 격식에 구애받지 않고 새로운 방법으로 대만의 '8대 서계(書系)'와 '4대 유파(流派)'에 관한 새로운 논점을 선도적으로 제시했고, 몇몇 유명 작가의 출신과 창작 취향, 나아가 '신파 무협'의 흥망성쇠 현상에 대해 상세히 분석했는데 모두 '한걸음 앞장서는' 행동이었다.
이런 까닭에 참석한 학자들로부터 널리 중시 받았을 뿐만 아니라 대륙의 인터넷망에도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원간본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잘 드러내준 것이다! 만약 수중에 인용의 근거가 될 만한 구판 서적 없이 잘못된 것을 퍼뜨려서 갈수록 잘못 전해지도록 하며, 분석판별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이는 자신도 믿지 않는 것으로 남을 속이는 것인데 그래서야 얼마나 가겠는가! 더구나 무감각한 사람을 깨우고 다른 사람이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와 동시에 나는 유소명(劉紹銘) 교수의 초청을 받아 <무협소설논권論卷>(제1회 국제무협소설심포지엄 논문집, 홍콩중문中文대학교 중국문화연구소 편찬, 1991)을 위해 <중국무협소설총론>이라는 장문의 글을 보완하여 썼다. 대만 작가의 작품에 관한 부분에서는 바로 전작의 논점을 참작하였다. 정말 일거양득이고,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뒤이어 나는 <대만 10대 무협명가 대표작>(1992)의 편집장을 맡아 융단식 검색과 독서를 전개하였다. 그에 따라 3년 동안 책의 바다를 종횡무진하며 지혜와 정성을 다하여 <눈 내린 강에서 홀로 낚시질하다 獨釣寒江雪>에 편집장 서문 및 10편의 무협명작 평가에 관한 글을 집필하였고, 판본을 정선(精選)하여 텍스트도 다시 정리하였다. 그 일은 비록 출판사 사람의 계획이 좋지 않아서 대륙에서 발행된 것은 어쩔 수 없이 <대만 무협 소설 “구대문파” 대표작>(상관정上官鼎의 <침사곡沉沙谷>을 무단으로 빼버림)으로 바뀌었고, 또한 교열(校閱)을 맡은 사람이 직무를 심하게 태만히 하여 오류와 누락이 백출(百出) 하였고, 이로 인해 일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는 했으나 기본적으로는 이미 풍부한 자료로부터 정화(精華)를 취했고 탁한 물을 흘려보내고 맑은 물을 끌어들였으며(激濁揚清) 무단(武壇)의 생존해 있거나 유명을 달리하신 제공(諸公)에 대해 모두 설명하였으니 평생의 위안으로 삼기에 충분했다.
역주 開本(절본)
출판물의 페이지 크기, 즉 한장의 완전한 인쇄 용지(전지)를 자른 매수를 가리킨다. 인쇄업에서는 통상 인쇄 및 제본을 위해 특정 규격의 전지를 여러 개의 작은 조각으로 균일하게 자른다. 분할된 장수에 따라 全開(절단되지 않은 전지), 對開(2절, 2장 절단), 4절(4장 절단), 8절, 16절, 32절, 64절 등이 있다. 전지의 크기는 국가, 지역, 출판물의 종류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발행본의 가로 세로 치수는 일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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