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무협의 장래 전망
많은 독자를 보유한 통속소설도 그가 차지하는 지위가 당연히 있어야 할까?
비록 협패작가의 창작동기가 “생계”를 위한 경우가 많지만, 명가 작품의 인물, 구성, 감정부터 도리에 이르기까지의 의미가 반드시 정통문예의 가치보다 약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또, 더군다나 독자 수 비율의 차이로 보면 그 영향력은 한결 우월하다. 20세기 중엽 무협소설이 대중의 환영을 받을 당시 부정적인 면의 배척과 멸시의 그물도 동시에 펼쳐졌다. 스스로 정통이라고 자처하는 자 중에는 읽지도 않고서 나쁘게 말하는 고루하고 진부한 사람과 공개적으로는 악평을 하면서도 비공식적으로는 몰래 흥미진진하게 보는 위군자(僞君子)도 있었고, 점잖은 체 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두 부류가 똑같이 꽉 막히고 견식이 천박한 필부였다.
20세기 후기에 이르러서야 약간 개선되어 협패소설류는 정시(正視, 똑바로 보다)를 받게 되었고(여전히 重視는 아니다), 협패작가도 마침내 떳떳하게 평시(平視, 나란히 보다)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당연히 仰視는 아니다).
실로 문헌사료는 대만협패가 50년대에 시작되어 60년대에 흥성하였고, 마침내 70년대의 퇴조(退潮)와 80년대의 쇠퇴(衰退)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노정(路程)에서 하이라이트를 받은 시기는 기실 10년을 넘지 못한다. 밀물이 들어오듯 일어났다 썰물이 빠져나가듯 쇠락하였는데 통속문학사 측면에서 말하자면 마치 혜성같이 그 특이한 밝고 아름다움을 하늘 끝에 긋고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려, 매화나무 아래서 잠을 깨었을 때 이미 달은 지고 하늘이 밝아오고 있는(明月梅花一夢)는 듯한 비애를 느끼게 된다.
섭, 임 두 분이 일찍이 쇠락의 원인을 분석했기 때문에 필자는 여기에서 약간의 보충만 하고자 한다. 확실히 내 친구 피술민(皮述民) 교수의 말처럼 무협소설의 흥성은 “독자의 고민”에서 말미암은 것이라 일반문예 창작의 동력이 작가의 “고민의 상징”에서 나온 것과는 다르다.
그러나 독자들의 고민은 반드시 시대의 변화를 따라 바뀌는 것이라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변하여 대중의 독서 취미가 바뀌었을 때 사람마다 한권씩 다 가지고 있었던 성황(盛况)은 자연히 더는 지속되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앞으로 협패의 장래는 과연 어떠할까?
이대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최고 수위(水位)를 재현할 것인가?
필자가 우언(寓言) 하자면, 혹은 인류 종(種)이 유전(遺傳)하는 “투쟁”의 원형(原型)에 기초하거나 혹은 인간세상에서 영원히 피하기 어려운 불공평에 말미암아 협패의 표현모델은 독자의 쌓인 불만을 위하여 그림의 떡으로 굶주린 배를 채우는 식의, 없는 것보다는 조금 나은 도원(桃源)을 제공할 것이며, 보아하니 그것이 숙명인 것 같다.
장조(漲潮)가 <유몽영(幽夢影)>에 적기를 “가슴속 작은 불만은 술로 달랠 수 있지만, 세상에 대한 큰 불만은 검이 아니고서는 풀 수가 없도다!(胸中小不平,可以酒消之;世間太不平,非劍不能消也!)”라고 하였다. 맞다! 그러니 통쾌하게 술을 마시자! 당신의 인생 중 어쨌든 불가피하게 마주친 큰 악당(巨奸大憝)의 부류나 사악한 무리와 이치를 따졌는지 생각해 보라,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국법(國法)에 호소하자니 만족스럽지 않거나 더뎌서 도움이 되지 않은 관계로 단지 실컷 때려 주거나 끝내는 장검(長劍)이 그를 다섯 걸음에 피를 흘리도록(血流五步) 해야만 비로소 통쾌하다!고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수호전> 가운데 “노제할이 진관서를 때리다(魯提轄拳打鎭關西)“ 부분이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까닭이며 억만인(億萬人)의 마음이며, 난세 심지어는 말세를 만나서도 간악(奸惡)한 자를 몹시 미워하고 영웅호걸을 동경하는 공통의 심리이다.
더구나 제거하는 쾌감의 가상균형 외에도 독자들은 작가들의 감정과 이념을 함께 나눈다. 감정에 의한 감화든 또는 도리에 의한 반성(反省), 사고(思考)든 상관없이 모두 문예기능이 사회를 개선하는 효과가 아니겠는가?
필자는 문체(文體)나 장르(文類)의 성쇠(盛衰)는 마치 왕조의 흥망과 흡사하게 가장 큰 원인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늘 일류인 재능 있는 작가는 여기에 힘을 써 옛것을 녹여 새로움을 만들어 내어야 비로소 독창적이고 후세에 모범이 될만한 훌륭한 업적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대련(對聯) 문학을 샘플링해보면 그것은 일종의 짧고 간단함에 국한된 속성을 가졌지만 증국번(曾國藩)의 손에 이르러서는 응대, 서술, 감정표현, 비평...에 능히 쓰여 자유자재로 구사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앞으로 협패의 주제의식의 역할은 크게 바뀌지 않을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표현형식과 수법과 반드시 이전과 달라질 것이다. 원래 저속함이 없지 않았던 탐정 플롯이 환골탈태하여 깊고, 참신하고 과학적인 추리소설이 된 것과 완전히 똑같다.
그렇다, 우리들은 협패가 다시 살아날 시기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포부를 가진 일류고수가 강호에 출현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또한 섭, 임 두 분이 힘을 쏟는 연구와 평론의 여정(旅程)이 홀로 걷는 길에서 점차 앞뒤로 끊임없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심혈을 쏟아 얻은 심득(心得)이 무협안내의 탄탄대로가 되어 신예들로 하여금 이를 모방하여 매가 높이 날아오르듯 문명(文名)을 멀리 떨치기를!
이로써 서문으로 삼는다.
2005년 3월 18일 타이뻬이(臺北)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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