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홍생
나는 일찍이 금릉의 아름다운 궁전(玉殿)에서 꾀꼬리가 새벽에 노래하고, 진회하변(秦淮河邊) 정자에는 이른 봄 꽃이 활짝 핀 것을 보았는데, 모든 것이 얼음 녹듯 이렇게 쉽게 사라질거라고 누가 알았겠는가? 그들이 으리으리한 집을 짓는 것을 보았고, 연회에 북적이던 손님들을 보았는데, 그 큰 집이 무너지고 없구나! 이끼 낀 푸른 기와 더미 안에서, 나는 일찍이 풍류스러운 잠을 잔 적이 있어, 이 50년의 흥망성쇠를 모두 지켜보았다.
(俺曾见金陵玉殿莺啼晓, 秦淮水榭花开早, 谁知道容易冰消!眼看他起朱楼,眼看他宴宾客, 眼看他楼塌了! 这青苔碧瓦堆, 俺曾睡风流觉,将五十年兴亡看饱)
- 공상임(孔尚任)의 <도화선桃花扇‧애강남哀江南>곡 가사에서 발췌
반세기 이래 대만 무협의 상전벽해(桑田碧海) 같았던 역사의 페이지를 펼쳐 보면, 종이 위에서 패권을 다투고(紙上爭雄), 풍운을 질타(風雲叱吒) 하던 한때의 호걸들이 얼마나 많이 있었던가! 그러나 북두성이 방향을 틀면 뭇별들이 자리를 옮기듯 세월이 유유(悠悠)히 흘러, 휘황찬란했던 과거는 바람 따라 사라져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재주가 없는 나는 일찍이 그 시작에서 쇠락까지의 전 과정을 목격하고 직접 경험하였다. 지금을 어루만지고 옛일을 생각하면 절로 운정산인(雲亭山人) 공상임과 같은 감회가 떠오른다. 이른바 "쇠잔(衰殘)한 군대는 아직도 폐허가 된 보루를 지키고 있고, 여윈 늙은 말은 빈 해자(垓字)에 누웠구나(殘軍留廢壘, 瘦馬臥空壕!)." 하는 것이다. 비록 서로가 가리키는 시공간의 사물은 전혀 다르지만 심경은 똑같다.
지난 일을 돌아보면 내가 여덟 살 때부터 '촉산검협 연환화'를 통해 무협서와 인연을 맺은 지도 어느새 50년이 다 되어 간다. 등불을 켜고 검을 본 이 50년 동안은 공교롭게도 대만 무협소설의 발흥부터 성장, 흥성과 쇠미, 몰락에 이르기까지 모든 흥망성쇠의 역정(歷程)이었다. 나는 운 좋게도, 직접 그 흥성함을 만나 약간의 무협 명가와 교류하면서 술잔을 기울이고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그 창작의 비밀을 연구‧토론하기도 했지만, 또 불행히도 그 군사가 몹시 지치고, 군심이 흩어지고, 더 나아가 삶과 죽음조차 쓸쓸해져 잊혀지는 것을 목도했구나! 이러한 점들을 하나하나 온전하게 기록해두지 않으면 장차 개인 혹은 수천만 명의 무협 독자들에게 큰 유감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어떻게 객관적이고 공정한 태도를 가지고 논술의 책임을 다하면서 역사를 본래의 모습으로 되살릴 것인가는 나의 양보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사명이자 인생의 과제가 되었다.
다만, 대만 무협소설의 흥망성쇠를 위해 역사를 쓰는 것은 쉬워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이는 작가, 출판사, 시장 수급, 사회 풍토 등 4가지 측면의 주관적·객관적 요소와 그것들 사이의 상호작용 관계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중 작가와 작품의 기본 자료는 특히 충분히 파악할 필요가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틀린 것을 다시 틀리게 전할 우려가 있고, 각 명가(名家)의 소설 스타일과 특색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소간 변화하므로(주로 독자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함), 경솔하게 결정해서도 안 된다. 무릇 이러한 일들은 경위(經緯)가 다양하기 때문에 그 어떤 ‘독행협(獨行俠)’이라도 혼자서는 할 수 있는 힘이 없다. 하물며 대만의 공립도서관은 수십 년 동안 구판(분집 인쇄 36절본)의 무협소설을 수집해서 소장하지 않았고, 사영(私營) 소설대여점은 이미 분분히 판형을 바꿨거나 휴업하여, 참고할 만한 오래된 책이 거의 없게 돼버렸다.
이것은 확실히 매우 처리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역사를 쓰려는 사람에게 비록 하늘에 통하는 능력이 있더라도 관련 문헌(이것은 1차 자료, 즉 무협서 원본을 가리킨다)의 증빙이 부족하면 쌀 없이 밥을 지어봐야 모든 것은 그림의 떡이 되는 격이다. 개정 후 '새로운 텍스트 판본'은 내용이 반복적으로 추가, 삭제 및 재배열되었기 때문에 이미 원래의 모습을 복구할 수 없게 되어 '믿을만하고 증거도 있는' 것을 만들기는 대단히 어렵다.
헌책 노점에서 "보물찾기"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다.
실로 대만 무협출판계는 1977년 전후로 판형 대혁명(36절본에서 25절본으로 변경)을 겪으면서 대여업자들이 점차 낡은 것을 버리고 새것으로 바꾸게 되었고 구서판형(舊書版型)은 대여점에서 거의 종적을 감췄다. 만약 미리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면, 미리 대비하지 않았을 것이고, 또 기회와 인연이 공교롭게도 맞아떨어지고, 복이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았다면, 이런 '오래된 골동품'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주 다행히 나는 어려서부터 큰 뜻이 없어서 일찍부터 홍콩, 대만의 구판 무협서(원간본, 재판, 갱신판 포함)를 수집했고, 약간의 수확도 있었다. 이번 기회에 내 개인의 과거 '보물찾기' 경험을 다 털어놓아도 괜찮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이 온갖 것들은 내가 반평생 동안 무(武)에 대해 이야기하고 협(俠)을 논(論)하며 '책을 증거'로 추구하여 지금에 이르러 무협 패사(稗史) 집필에 참여하게 된 기회와 인연에 어느 정도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무릇 대만의 오랜 무협광들은 모두 과거 물자가 부족했던 시절에 무협소설을 보고 싶으면 대여점에 가서 딱딱한 벤치에 앉아 불편함을 참아가며 읽거나(苦讀), 아니면 책 전체를 빌려 집으로 돌아가 서로 앞다퉈 돌려 읽으며 번갈아 '연공(練功)'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창때는 약 3,4천 개의 소설대여점이 대만의 구석구석에 있었는데, 비용을 절약하는데 알맞았고 대여점들은 일반적으로 대여만 하고 판매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협 소설을 수집해서 소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전통관념에서 무협 도서는 줄곧 '심심풀이로 읽는 책(閑書)'으로 여겨졌고, 음행과 폭력을 가르친다는 등의 죄명이 많고도 많았다. 누군가 집에 무협서를 소장한다고 한다면, 틀림없이 "머리가 어떻게 됐거나", 우둔하지 않으면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내가 구판 무협서를 수집해 소장하기 시작한 것은 매우 일찍부터였는데, 열 여섯살에 타이베이에서 유학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당시 학교는 명성이 자자한 고령거리(牯岭街) 헌책방과 인접해 있었고, 그곳에는 매일 보물을 찾는 각 방면 인사들의 왕래가 끊이지 않았다. 나는 이 명승지에서 뜻밖에도 환주루주의 <촉산검협전>(홍콩 홍문판) 전본(全本), 김용 <사조영웅전>의 세 종류 잔본(殘本) 및 성명을 모용한 위작 <사조전전射雕前傳>, <구음진경九陰真經> 등 모두 조사금지(査禁) 사건에 포함된 홍콩 책들을 발견하여, 나도 모르게 마음이 동하여 급히 내 소유로 만들고 싶어졌다. 그러나 나는 공교롭게도 가난한 학생이라 주머니에 돈이 없었으니 이를 어찌할까! 그때 나는 부모님 몰래 3개월 넘게 입고 먹는 것을 아끼고서야 비로소 이를 악물고 이 구서(舊書)들을 샀던 기억이 나고, 나와 함께 수많은 고단하고 적막한(孤單寂寞) 세월을 보냈다. 이 책들은 내 최초의 무협 장서여서 더욱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1967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항(東港)의 고향집에서 나를 마중 나온 아버지는 큰 마대자루에 담긴 무협소설을 보자 화가 치밀어 올라 "네놈이 이렇게 열심히 공부했구나"라고 꾸짖었다. 이렇게 몇 해 동안이나 거론하시니 오래도록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나는 이 때문에 겨우겨우 비집고 대학문을 들어섰는데, 그 후 신문과 잡지에 <무협은 어디로 가는가?>, <현대 무단武壇을 냉정하게 바라본다> 등의 잡문을 잇달아 발표하여 사회의 인정을 약간 받게 되자, 아버지는 비로소 "오, 결국에는 헛수고하지 않고, 방문좌도(旁門左道)로 수행해서 정과(正果)를 이룬 셈이구나!"라고 의견을 개진하였다. 그렇지만 그 어른께서 어찌 예상이나 하셨겠는가, 이것은 단지 내가 중국 무협 미학을 탐색한 첫 번째 부분일 뿐, 아직도 먼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천 자루의 검을 본 후에 비로소 검을 알아볼 수 있다"는 성찰
대학을 졸업한 후, 나는 언론계에 들어가 근무했고, 업무 중에도 여가 시간에는 여전히 대여점으로 달려가 무협 서적들을 두루 섭렵했다. 1977년 말,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무협소설 출판업계의 선두 주자인 진선미출판사가 영업을 접고 곧 '재고 정리'를 할 것이라는 신문기사가 실렸다. 소식을 듣고 나는 즉시 달려가 닥치는 대로 사들였지만 아쉽게도 한 발 늦고 말았다. 사마령의 관락풍운록(關洛風雲錄), 학고비(鶴高飛), 고룡의 철혈전기(鐵血傳奇), 해상격축생(海上擊築生, 성철오 成鐵吾)의 남명협은(南明俠隱) 정집(正集), 속집(續集) 등 몇 권 안 되는 책을 제외하고는 그밖에 소장할 만한 소설은 모두 눈썰미 있고 발빠른 사람에게 선점당해 후회막급하게 되었다. 물론 내가 얻지 못한 책은 같은 무협 도상(道上)의 사람이 가져갔고(楚弓楚得) 각자의 연분에 달려 있지만, 좋은 기회를 놓쳤기에 결국은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그때의 경험과 교훈으로 나는 "시간과의 싸움"의 중요성에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고, 더욱 열심히 오래된 책을 수집하게 되었다. 하지만 기회는 우연히 오는거라 찾는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었고, 우연히 수확이 있더라도 매우 한계가 있어서 없는 것 보다는 낫다는 정도의 약간의 위안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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