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용비봉무(龍飛鳳舞)
언사군이 오른손을 쭉 뻗었으나 잡을 수 없었다. 그러나 끝내 위홍영을 붙잡지 못한다면 아마도 평생에 한으로 남을 수밖에 없어서 그가 다급해져 대갈일성(大喝一聲) 하자 "팍"하는 맹렬한 소리가 나더니 돌연 칠정강기가 관통되어 두 손 열 손가락의 맥문이 모두 뚫리고 강기가 그의 체내를 번개치듯 한 바퀴 돌았다. 언사군이 갈고리 같이 구부린 다섯 손가락으로 번개같이 위홍영의 등 뒤쪽 옷자락을 걸어 잡았다.
이때 황의 소년은 이미 위남우와 서로 일검을 교환했는데 검광이 휘몰아치는 사이에 두 사람의 신형이 나뉘어 땅으로 떨어졌다.
둘의 신형이 채 땅에 떨어지기 전 황의 소년은 벌써 언사군이 위홍영을 붙잡아 올린 것을 힐끗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가 알기로는 위홍영을 던진 각도와 장중(場中) 사람들이 서 있던 위치로 볼 때 설령 위남우가 조금 전 언사군이 서 있던 곳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위홍영을 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 언사군이 한쪽에 서 있는 모양을 보고 이류 인물로 알았는데 의외로 언사군의 무공이 그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의 마음이 변해 지금은 강적이 위남우에서 곧 언사군으로 바뀌었고 신형이 땅에 닿기 전 장검으로 언사군의 배심(背心)을 찔렀다.
언사군은 칠정강기가 갑자기 전신에 소통되자 너무나 기뻤다.
등 뒤에서 검풍이 다가오자 언사군은 미간을 찡그리며 긴 휘파람 소리와 함께 위홍영을 내려놓고 몸을 돌렸고 뒤이어 칠정강기를 쳐냈다.
황의 소년이 장검으로 공격하다 돌연 휘파람 소리를 듣고 움찔하는데 앞에서 비길 데 없이 거대한 힘이 가슴을 짓눌러왔다.
그가 눈빛을 번뜩이고 속으로 코웃음을 치며 전력을 다해 오른손 장검을 튕겨내자 검광이 하늘에 가득 일어나 언사군의 두 손이 쳐낸 장세(掌勢)를 맞이했다.
갑자기 한줄기 일곱 색깔 무지개가 나타나 황의 소년을 휘말자 신음소리를 내며 황의 소년이 연신 뒤로 물러나는데, 무지개가 그 황의 소년 수중의 장검을 빠르게 휘감아 진동시키자 장검이 산산조각이 나서 떨어졌다.
언사군이 처음으로 신공을 시전하자 장내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놀라 안색이 변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장내에 있는 사람들 각자가 자기의 무공을 헤아려봐도 이렇게 높은 공력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황의 소년이 얼이 빠져 한참을 서 있다가 한동안 언사군을 쳐다보고는 입가에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웃음을 띤채 몸을 돌려 탑 아래로 달려갔다.
위남우가 차갑게 웃고 신형을 번뜩 날려 그 황삼 소년을 쫓아가며 말했다.
“이렇게 쉽게 도망치지 못할걸!”
황의 소년이 냉랭하게 길게 웃었다.
검과 장(掌) 두 번의 대결에서 그는 위남우가 전해들은 명성보다 많이 못하고 자기와 비교해도 기껏해야 백중지간(伯仲之間)일 뿐이라고 여겼다.
그가 몸을 돌려 장(掌)으로 공격하자 네 손이 서로 맞서며 붉고 누런 두 줄기 기주(氣柱)가 서로 교차하는데 황의 소년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위남우가 재차 냉소를 흘리며 쌍장을 가슴 높이로 들어 밀어내 전력으로 그 황의 소년을 자기의 손 아래 격패(擊敗) 시키려고 하였다.
황의 소년도 절대로 무공이 낮은 자가 아니었고 그가 위남우와 정면으로 붙어도 겨우 반 수 뒤질 뿐이어서 이때는 기왕 이렇게 된 바에야 물러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위남우의 장세가 도달했을 때 몸을 날려 빠져나왔다.
그가 탑 바깥으로 뛰어내려 몸을 뒤집는 사이에 벌써 3층이었고 다시 몸을 솟구치자 이미 탑 아래에 도달했고 이어서 몸을 날려 떠나갔다.
위남우는 일장이 허공을 치고 황삼 소년이 떠나는 것을 보고 숨을 한번 들이마시고는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려 언사군과 언사군 곁의 위홍영을 바라봤다.
언사군은 곁눈으로 위홍영을 한번 보고는 돌연 자기와 위홍영이 너무 가까이 서 있다고 느끼자 귓불이 뜨거워져서 오른쪽으로 두 걸음 떨어졌다.
위홍영은 큰 변고를 겪었는데도 여전히 매우 차분한 듯했고 그녀의 얼굴에 엷은 분홍색만 조금 떠올랐을 뿐, 두 눈은 오히려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언사군이 슬쩍 한번 본 후 곧 고개를 숙이고는 감히 다시 쳐다보지 못했다.
위홍영은 매옥과 매우 닮았는데 모습이 똑같을 뿐만 아니라 풍격, 거동도 매옥과 다른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그는 위홍영과 매옥 사이에 드러난 모습이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 내지 못했지만 그의 곁에 있는 사람은 확실히 위홍영이지 결코 매옥이 아니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탄식만 했다.
위남우가 위홍영에게 걸어가며 물었다.
“누나, 무슨 일로 왔어요?”
위홍영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엄마가 돌아가실 때 나한테 너를 보살피라고 하셨잖아, 너 왜 말을 안 듣는 거냐, 별것 아닌 일로 다른 사람과 다투지 말아라”
위남우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좋아! 더 이상 소란 피우지 않을께요, 데려다줄까요?“
언사군이 눈빛을 약간 들어 바라봤다. 위홍영은 정말 좋은 사람이고 위남우는 본래 악인이지만 위홍영의 말을 이렇게 순순히 따르다니, 이건 정말 그로서는 생각조차 못했던 일이었다.
그는 위남우가 왜 이러는지는 몰랐지만 이로 인해 위남우에게 일말의 호의가 생겨났다.
다만 위남우는 특별히 좋은 점은 없지만 여전히 매우 무서운 사람이었다.
위홍영이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람이 나를 구해줬는데 나는 아직 감사도 드리지 못했구나“
위남우가 급히 말했다.
”누나가 걱정할 필요 없어요. 친구니까 이따가 내가 대신 고맙다고 할께“
위홍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사군은 측후방에서 위홍영과 비스듬하게 서 있어서 그녀의 표정이 어떤지 볼 수 없었다.
그의 마음에 어떤 생각이 떠올라 갑자기 몸을 돌려 위홍영에게 물었다.
”위 아가씨, 제가 한 가지 일을 좀 상의하려는데 도와주실 수 있는지요?“
위홍영이 언사군을 잠깐 응시하는데 눈에는 아리송하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잠시 후 웃으며 말했다.
”무슨 일인지 말씀해 보세요“
위남우가 옆에서 눈빛을 반짝이고 있지만 여전히 얼굴에는 웃음을 띤 채 서 있었다.
운청지는 줄곧 위홍영을 응시하면서 때로는 위남우와 언사군의 얼굴에 시선을 떨어뜨렸다.
돌연 그녀가 위홍영에게 물었다.
”위 아가씨, 무공이 괜찮은데 영사(令師)는 누구시죠?“
위남우의 눈썹이 살짝 위로 올라가며 얼굴에서 웃음기가 조금 사라졌고 위홍영은 어리둥절해 웃으며 말했다.
”이분 아가씨는 무슨 말을 하는 거죠, 저는 무공을 전혀 못해요!“
언사군은 갑자기 마음에 충격을 받고 눈을 들어 위홍영과 위남우 두 사람을 한번 쓸어봤다. 이때 위남우의 안색은 회복되었고 위홍영의 표정은 자연스러워 조금도 꾸미는 기색이 없어 언사군은 천천히 눈을 내리깔고 눈빛을 거두었다.
위홍영이 미소를 머금고 막 입을 열려고 하는데 운청지가 차갑게 코웃음 치며 말했다.
”위 아가씨, 이러는 건 다른 사람을 너무 업신여기는 거 아닌가요!“
위남우가 운청지를 쏘아보는데 잠깐 눈빛에 살기가 드러났다 사라졌다.
그가 차분하게 말했다.
”누나는 원래부터 무공을 배운 적이 없소이다. 운 아가씨는 하필이면 꼭 누나를 몰아붙여야겠소?“
위홍영이 웃으며 말했다.
”내 동생이 말한 건 사실이예요.“
운청지는 믿지 못해 두 사람을 한번 바라보았다.
그녀는 만약 위홍영이 무공을 할줄 안다면 그녀를 속일 필요가 없다는 건 믿었다. 그러나 위홍영이 무공을 펼치는 것을 본 적은 없어도 위홍영의 형태(形態)로 볼 때 위홍영은 훌륭한 무공의 기초를 갖추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언사군의 마음속에도 운청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위홍영의 그런 진지한 눈빛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위홍영의 표정과 태도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진지해서 위홍영이 말한 모든 것을 믿지 않을 수 없었고 더 이상 의심을 품을 수 없었다.
위홍영이 미소를 머금고 언사군에게 물었다.
”어떤 일인지 얘기해 보세요,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꼭 도울께요“
언사군이 웃으며 말했다.
”가사(家師)이신 을목도주와 사백 몇 분이 어디로 갔는지 불분명합니다. 가능하다면 그분들의 행방을 찾을 수 있도록 위 아가씨가 도와 주십시오“
위홍영이 ”아!“ 하고는 말했다.
”나는 영사(令師)의 일을 몰라요. 그렇지만 이후에 알아보고 그대에게 알려줄까요?“
언사군이 웃으며 말했다.
”영제(令弟)는 알고 있소이다. 위 아가씨가 도와주시려면 영제에게 물어보면 됩니다“
위홍영이 어리둥절해서 위남우에게 물었다.
”언 소협이 묻는 일에 대해 너는 알고 있니? 알고 있으면 응당 언 소협에게 알려드려야지, 언 소협은 네 좋은 친구라고 하지 않았어?“
위남우가 잠깐 주저하다 웃으며 말했다.
”그의 사부 을목도주의 행방은 나도 분명히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대략은 알고 있어요“
운청지가 차갑게 말했다.
이 일은 당신도 질질 끌 필요 없어요. 동해 을목도주는 이미 막북(漠北)으로 갔는데 어찌 당신이 잘 모를 수 있다는 거요?”
언사군이 마음에 충격을 받고 몸을 돌려 운청지에게 말했다.
"운 아가씨 가사께서 왜 가셨는지 아십니까? 저에게 좀 알려줄 수 있나요?"
운청지가 차분하게 말했다.
"아마도 소협의 바람을 저버릴 것 같군요. 이 일은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말을 마치고 위남우와 위홍영을 바라봤다.
위남우가 웃으며 말했다.
"을목도주와 그녀의 사형 네 사람은 함께 멀리 막북에 갔소. 아마 을목도주의 딸 때문일 것 같은데 그밖의 사정은 나도 모르오."
언사군에게서 "아!"하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리고 사소운의 모습이 그의 마음에 떠올라 천천히 고개를 수그렸다.
위남우는 미간을 찡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언사군이 머리를 들어 또 위남우에게 물었다.
"그 외에도 북령선생 등 사람들의 행방을 알고 싶은데 위공자께서 알려 주실 수 있겠소?"
위남우가 태연하게 웃으며 위홍영에게 말했다.
"누나! 나는 북령선생이 누군지 몰라요."
말을 마치고 또 웃었다.
위홍영이 위남우를 응시하다가 물었다.
"정말이야? 정말 몰라?"
위남우가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몰라요"
위홍영이 위남우를 한참 쳐다보다 자신도 고개를 숙였다가 잠시 후 머리를 들고 언사군에게 말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