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남우도 왜 언사군이 돌연 목전의 정세에 대해 마치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은지 그 이유를 기괴하게 여겼다.
그가 언사군을 한 번 쳐다본 후 눈을 돌려 웃으면서 운청지에게 말했다.
"운 아가씨, 너무 개의치 마시오. 우리 둘 사이의 일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는데 지금 다른 사람 개입 없이 우리끼리 해결하기를 원하시오?"
운청지는 위남우가 왜 별안간 자기들 두 사람이 다시 마무리 짓자는 말을 꺼내는지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녀가 위남우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것이 가장 좋지!"
개자영은 가슴이 뜨끔했다.
그는 위남우가 이렇게 될 줄 생각하지 못했던지라 마음 속에 전율이 일었다.
그가 이곳에 올 때는 가슴 속에 큰 뜻이 가득해 장차 할 일이 있다고 여겼었는데 지금은 돌연 자신의 생사가 다른 사람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위남우가 개자영에게 눈빛을 돌리자 개자영은 그가 곧바로 자기를 상대하려는 것을 알고 즉시 말했다.
"지금은 당신 둘이서 사사로이 결정해서는 아니되오"
하하하!
위남우가 웃으며 말했다.
"천잔칠정이 얼마 전에 무림을 온통 흔들어 놓긴 했지만 천잔칠정 상의 그 일곱 개 장인(掌印)의 비밀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소이다."
그가 언사군을 한 번 쳐다보고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그런데 칠정강기는 생각을 못했지. 현재 해천검급은 이미 출현했소. 해천검급에는 심오한 비밀이 없어서 이걸 얻으면 곧바로 검술의 최고 경지를 익힐 수 있소이다. 그러니 이 분 남강의 고수가 멀리서 온 것도 이상할 것은 없소만 아마 해천검급은 그리 쉽게 손에 넣을 수는 없을거요"
그가 숨을 한번 들이마시고 개자영을 응시하며 말했다.
“당신 몫을 받으려면 그건 아주 쉽소, 내 백초(百招)만 받을 수 있다면 바로 가능하지”
개자영이 숨을 한번 들이쉬고는 크게 웃었다.
“좋다. 최근 출도해서 무림에 명성을 떨치고 있는 청년 고수를 내 한번 시험해 보겠다”
위남우가 웃었다.
그는 이미 전력을 기울여 개자영을 여기서 죽이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개자영이 심호흡을 하고 정신을 집중해 공격에 대비했다.
위남우가 장내를 한번 쓸어보는데 그의 얼굴에 갑자기 붉은빛이 돌고 두 눈에서 예리한 살기를 쏘아냈다.
언사군은 본래 탑 안에 있는 위홍영에게 관심을 쏟고 있었는데 이때 위남우의 이런 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자신도 경험이 있는데 위남우는 이때 이미 살심(殺心)이 일어 마침 독문의 혈마공(血魔功) 가운데 취기성홍(聚氣成紅)의 절정사공(絶頂邪功)을 시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개자영은 위남우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속으로는 겁이 났지만 대갈(大喝)하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의 장검이 한줄기 긴 무지개를 만들어 위남우를 쓸어갔다.
위남우는 눈에서 살기를 번뜩이며 쌍장을 교차한 채 몸을 날려 빈손으로 위를 향해 맞이해 갔다.
운청지의 눈빛이 미세하게 빛났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위남우가 감히 적을 이렇게까지 얕보는 것이 기괴했다.
그녀는 빈손으로 개자영의 검초를 받는 건 자신도 감히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위남우가 쌍장을 쳐내고 두 사람이 공중에서 연속 5초를 교환하자 개자영 수중의 장검은 위남우에 의해 쪼개져 땅에 떨어졌다.
개자영이 공포에 질려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 자신도 위남우에 의해 단 5초 만에 검을 잃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놀라 도망가려는 생각밖에 없었다.
이때 위남우의 얼굴색은 매우 흉악하게 변했고, 굵직해진 목소리로 개자영에게 말했다.
“지금 도망가려고 하는가?”
개자영이 빈손으로 위남우를 응시하며 눈에서 놀라움과 공포의 기색을 드러냈다.
위남우의 신형이 번개처럼 개자영에게 짓쳐 들었다.
개자영은 석일(昔日) 한 시기를 주름잡았었지만 지금은 막다른 길에 몰린 양처럼 최후의 몸부림을 치려고 했다.
그가 노갈을 터뜨리며 쌍장을 한번 눌렀다 올리며 곧바로 위남우의 가슴팍을 쳐갔다.
위남우의 목구멍에서 기괴한 소리가 나며 그가 쌍장으로 비스듬히 개자영을 치자 개자영이 몸을 떨며 비틀비틀 두 걸음을 물러나 앞으로 구부리고 선혈을 한입 가득 뿜어냈다.
이어서 탑 꼭대기의 가장자리까지 2, 3보를 더 물러났다.
위남우는 막 재차 공격하여 개자영을 없애버리려던 참이었다.
이때 돌연간 날카로운 비명이 탑 안에서 들려오자 바로 위남우의 안색이 변해 비틀거리며 두 걸음 물러났는데 얼굴은 이미 하얗게 변해 있었다.
언사군은 위홍영이 탑 안에 있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비명 소리는 분명히 위홍영이 낸 것이라고 생각해 깜짝 놀랐다. 그의 눈앞에 위홍영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곧바로 탑 안으로 뛰어들려고 했지만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미친 듯한 웃음소리와 함께 담황색(淡黃色) 인영이 탑 꼭대기로 날아왔다.
언사군은 한눈에 위홍영이 그 사람 옆구리에 끼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위남우는 다가온 사람이 누군지 분명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벌써 덮쳐가며 쌍장으로 전력을 다해 나타난 사람을 쳤다.
미친 듯한 웃음소리 가운데 두 사람의 장력이 서로 부딪히며 붉은색과 누런색 두 줄기 기주(氣柱)가 하늘을 뚫고 솟아오르고 나타난 자의 신형이 위홍영을 낀채 똑바로 섰다.
위남우는 한 번의 공격으로 이기지 못하자 즉시 검을 뽑아 들고 나타난 자를 차갑게 쳐다봤다.
언사군도 약간은 놀랐는데 위남우의 이때 얼굴은 청백색(靑白色)으로 무섭게 변해 조금 전 그가 개자영을 죽이려고 할 때의 안색이라 할지라도 이렇게까지 흉칙하지는 않았다고 할 정도였다.
그가 다시 나타난 자를 보니 그는 황삼(黃衫)을 걸친 소년이었다. 나이는 26, 7세 정도에 불과했지만 얼굴에는 차갑고 오만함이 가득하여 마치 장내에 있는 어떤 사람도 안중(眼中)에 없는 듯했다.
언사군은 그자와 비교하면 위남우의 공력이 반 수 정도 높다는 것을 알았지만 위남우는 막 혈마공 가운데 취기성홍 일식(一式)을 사용했고, 취기성홍은 진력을 가장 많이 소모하는 무공인데다 또한 위홍영이 상대방 수중에 있어 위남우의 마음에 거리낌이 있었기 때문에 공력이 크게 감소하였던 것이다.
황삼 소년은 위남우가 자기를 어찌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천하에 명성을 날리는 남우 공자도 이 정도에 불과하다니, 아무래도 허명(虛名)을 누리고 있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구나!”
위남우가 냉랭하게 말했다.
“너는 누구냐?”
그는 출도 이래 적수를 만난 적이 없는건 말할 것도 없고 그의 백초를 받아낼 수 있는 사람도 거의 만나지 못했었다. 하지만 오늘 하룻밤 사이에 이렇게 많은 고수들이 잇달아 나타나는 것을 보고 절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거기에 위홍영까지 다른 사람 손에 떨어져 있어 일시적으로 그는 결정을 할 수가 없었다.
황삼 소년이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내가 누구냐고? 너는 알 필요 없다."
운청지가 옆에서 차갑게 말했다.
"종남(終南) 낙양홍(樂羊紅)! 너는 정말로 천하에 너를 아는 사람이 없을 줄 아느냐?"
그리고 가소롭다는 듯 "흥" 코웃음을 쳤다.
낙양홍이 약간 놀랐는지 한동안 운청지를 쳐다본 후 말했다.
"나 낙양홍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구나."
말하면서 오만하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위남우가 숨을 한번 들이마시고 낙양홍에게 느릿하게 말했다.
"빨리 누나를 내려놓아라! 너도 이름 없는 자가 아닌데 무공을 모르는 사람을 이렇게 대하다니!"
낙양홍이 한동안 운청지를 노려보더니 말했다.
"아가씨 성이 임(林) 씨인가?"
운청지가 냉랭한 어조로 말했다.
"낙양홍, 세상에서 너 혼자만 잘났다고 안하무인으로 굴지 마라. 당금 천하에는 고수(能人高士)가 별처럼 많다. 너는 아직 많이 멀었다."
낙양홍의 안색이 살짝 변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위남우는 검집에서 적홍검을 뽑아든 채 화가 치밀어 두 눈을 치켜뜨고 즉시 검으로 낙양홍을 죽이려고 하였다.
낙양홍이 냉소하며 말했다.
"내가 탑을 오를 때 한걸음 한걸음 걷고 있는 것을 보고 데리고 올라왔다. 그녀가 기왕 네 누나라면 어쩔 수 없이 탑 아래로 돌려보내야겠구나"
말을 하면서 오른손을 휘둘러 위홍영을 되는대로 탑 아래로 던져버리고 이어서 한순간도 틈을 주지 않고 담황색의 검을 뽑아들어 전력으로 위남우를 공격했다.
위남우는 분노에 차 휘파람을 불며 낙양홍에게 검을 날렸지만 검세가 낙양홍에게 저지당하자 전력을 다해 낙양홍에게 돌진할 수밖에 없었다.
위홍영은 언사군이 있는 자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탑 바깥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운청지 등의 사람들은 모두 멀리 떨어져 있어서 도울 수가 없었다.
언사군은 다급해서 몸을 날려 위홍영에게 뛰어들었다.
그러나 곧바로 자신의 두 손 열 손가락이 굳어버렸다는 생각이 떠오른 순간 가슴이 오싹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