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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09.02 김용 작품집(三聯版) 표지
  2. 2004.09.02 김용 작품집(삼련출판사판) 서문
  3. 2004.08.24 평생 첫번째 知己
  4. 2004.08.24 無俗念

김용 작품집(三聯版) 표지

金庸 2004. 9. 2. 14:20 Posted by 비천호리

- 서검은구록(書劍恩仇錄) 1~ 2(2권)
- 벽혈검(碧血劍) 3~4(2권)
- 사조영웅전(射雕英雄傳) 5 ~ 8(4권)
- 신조협려(神雕俠侶) 9~12(4권)
- 설산비호(雪山飛狐) 13(1권), (백마소서풍白馬嘯西風, 원앙도鴛鴦刀 포함)
- 비호외전(飛狐外傳) 14~15(2권)
-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 16~19(4권)
- 연성결(連城訣) 20(1권)
- 천룡팔부(天龍八部) 21~25(5권)
- 협객행(俠客行) 26~27(2권), (월녀검 越女劍 포함)
- 소오강호(笑傲江湖) 28~31(4권)
- 녹정기(鹿鼎記) 32~36(5권)

    

     

    

  

     

     

     

  

    

     

     

       
 
 
 

 

 
 
 

 

 
 
 

 

 
 
 

 
 

김용 작품집(삼련출판사판) 서문

金庸 2004. 9. 2. 11:58 Posted by 비천호리

나는 소학교 때 학교공부 외의 책 읽기를 좋아했다. 저학년 때는 <아동화보>, <어린이 친구>, <소학생 小學生> 등을 읽었고, 후에는 내용이 풍부한 '어린이 친구 문고'를 읽었으며, 거기에 더해 이해가 될 듯 말 듯하면서도 각종 각양의 장회(章回)소설을 읽었었다.5, 6학년이 되어서는 신문예 작품을 읽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는 근대나 현대의 신문학보다 고전문학 작품을 더 좋아하고 있는데 이는 나의 개성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친구들은 단지 신문학만 좋아하고 고전문학은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현대지식은 그 시대의 출판물에서 찾는 것이 당연히 맞다. 나는 소학교 시절 아버지와 형이 사들인 추도분(鄒韜奮) 선생이 편찬한 <평종기어 萍踪寄語>, <평종억어 萍踪憶語> 등 세계 각지 여행기와 선생이 편집장이었던 <생활주보>(신판과 구판)에서 얻은 것이 가장 많았고 기억에도 가장 남는다.
나는 어린 시절에 추선생과 생활서점의 은혜를 많이 입었고, 생활서점은 삼련서점의 주요 조직중 하나이다.

십여년 전 홍콩 삼련서점은 중국대륙지역에서 나의 소설을 출판하기로 계약을 체결하였으나, 그 후의 사정으로 인하여 결실을 맺지 못하였었다.
이번에 다시 삼련서점이 중국대륙 지역의 간체판본 독점출판을 기획하게 되어 기쁘고 안심이 될 뿐만 아니라 옛일을 돌이켜 보니 마음이 온화해진다.

총 36권인 나의 이 <작품집>은 1955년부터 1972년까지 약 13,4년 동안 쓴 것인데, 장편소설 12편, 중편소설 2편, 단편소설 1편, 역사인물 평전 1편과 약간의 역사고증 부분으로 되어 있다.
작품의 출판과정은 이상하게도 홍콩, 대만, 해외지역이나 중국대륙에서까지 각종 각양의 번역판, 도판(盜版)이 먼저 나오고 그 후에야 나의 교정을 거치고 판권을 받은 정식판이 출판되었다.
이번 '삼련판' 전에는 천진 백화문예출판사의 <書劍恩仇錄>만이 나에게서 권한을 받아 출판한 것인데 성실하게 교정, 인쇄하였고, 계약에 따른 인세를 지불하였다.
나는 법에 정한대로 소득세를 납부하고 나머지는 몇 군데 문화단체에 기부하고 바둑활동을 돕는데 썼는데 유쾌한 경험이었다. 이것 외에는 정식으로 출판권한을 받은 데는 없다.

인세를 내지 않은 것은 부차적인 문제이고 허다한 판본들이 조악하게 만들어져 오류가 백출(百出)한다. 어떤 사람은 '金庸'의 이름을 빌려 무협소설을 써서 출판하기까지 한다.
잘 쓰여진 소설을 감히 내 공으로 가로챌 수는 없지만, 무의미하게 싸움만 하거나 색정만 묘사한 것은 읽는 이를 불쾌하게 만들뿐이다. 또한 몇 몇 출판사는 홍콩, 대만의 다른 작가의 작품을 나의 필명으로 출판하기도 한다.
나는 이런 사실을 들춰내며 분개하는 내용의 많은 독자들이 보내온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삼련판'이 널리 발행되면 이러한 도의를 벗어난 행위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협의소설의 요지는 옳고 그름을 가리고 도의를 강구하는 것이되 지나쳐서는 안 되는 것 아닐까?

어떤 번역판 중에서는 나와 고룡(古龍), 예광(倪匡)이 함께 빙비빙수빙(氷比氷水氷)이라는 상련(上聯)을 만들어 냈다고까지 하니 정말 우스운 일이다.
중국어의 대련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는데 상련의 마지막 한 글자는 통상 측성으로 그리고 하련은 평성으로 끝맺는데 '빙(氷)'자는 증운(蒸韻)에 속하는 평성이다.
우리들은 이런 상련을 만들어 내지 않을 것이다.

대륙지역의 수 많은 독자들이 하련을 나에게 보내 왔는데, 시간과 심력의 낭비일 뿐이다.
발음으로 분별하기 쉽도록 나의 14부 장편과 중편 소설의 제목 첫 글자를 모아 '비설련천사백록(飛雪連天射白鹿), 소서신협의벽원(笑書神俠倚碧鴛)이라는 대련을 만들었다.
내가 첫 번째 소설을 쓸 당시에 두 번째 소설을 쓰게 될지는 전혀 몰랐고, 두 번째 소설을 쓸 때에도 제3부 소설을 어떤 소재를 쓸지 전혀 생각하지 않았고 책제목을 무엇으로 할지는 더더구나 알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대련은 당연히 깔끔하게 다듬어지지 않았다.
'비설(飛雪)'이 '소서(笑書)'와 대구(對句)가 될 수 없고, 백(白)과 벽(碧)은 둘 다 측성이다.
다만 상련을 맞게 만들면 어떤 글자를 쓸 것인가는 자유이고, 몇 가지 비교적 의미가 있고 법칙에 맞는 글자를 고를 수 있을 것이다.

적지 않은 독자들이 편지를 통해 '당신이 쓴 소설 중에서 어느 작품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어느 것인가?'라고 같은 질문을 하지만,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쉽게 답할 수가 없다.
내가 소설을 쓸 때 한 가지 바람이 있는데, 그것은 '이전 작품에 쓴 적이 있는 인물, 구성, 감정과 심지어 세부 스토리까지도 중복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 재능의 한계로 이 바람을 제대로 이뤄내지는 못하였으나, 아무튼 이런 방향으로 노력해 왔고, 대체로 말하자면 이 15편 소설 모두 서로 다르게 나의 당시의 느낌과 사상을 넣었는데, 특히 느낌에서 그러하다.

나는 매편(每篇) 소설 가운데 긍정적인 인물을 좋아하고, 그들이 처한 상황으로 인해 즐거워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때로는 몹시 비통해 하기도 한다.
문장기교로 말하면 후반기에 비교적 나아졌으나 작품에서 기교가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며 개성과 감정이 중요하다.

나의 소설들은 홍콩, 대만에서 모두 영화와 TV 연속극으로 제작된 바 있다. 어떤 작품은 3,4개의 서로 다른 판본으로 촬영되었으며 그 외에도 연극, 경극(京劇), 월극(광동성의 지방극의 하나)등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와 관련하여 '어느 영화 또는 어느 TV 드라마가 가장 잘 만들어졌다고 봅니까?, 극중 남녀 주인공 가운데 누가 원래 소설상의 인물과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합니까?'라는 두 가지 질문을 받게 된다. 영화와 TV의 표현형식은 소설과 전혀 달라 비교하기가 매우 어렵다.
TV 드라마는 편수가 길어서 비교적 표현이 쉽지만, 영화는 더 큰 제한을 받는다.
게다가 소설을 읽는 것은 작자와 독자가 함께 인물을 형상화해 가는 과정이고 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소설을 읽을지라도 책에 있는 문자 외에도 독자 자신의 경험, 개성, 느낌과 애증이 더해지기 때문에 각자의 머릿속에 형상화되는 남녀 주인공의 모습이 꼭 같다고 만은 할 수 없다.
당신 마음 속에서 책 속의 남녀 주인공과 자기의 연인을 융합하여 하나로 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연인은 당신의 연인과 다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영화와 TV는 아무래도 인물의 형상을 고정시켜 보는 사람이 자유롭게 상상할 여지가 없다.

무협소설은 중국 고전소설의 오랜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중국에 가장 오래된 무협소설은 당나라 사람의 전기(傳奇)인 <규염객전 규髥客傳>, <홍선 紅線>, <섭은랑 섭隱娘>, <곤륜노 昆侖奴> 등 뛰어난 문학작품이다.
이후의 작품으로는 <수호전 水滸傳>, <삼협오의 三俠五義>, <아녀영웅전 兒女英雄傳> 등등이 있다.
현대에 들어서는 비교적 제대로 된 무협소설은 정의와 기개, 희생정신, 약자를 돕는 정신, 민족정신, 중국전통의 윤리관념 등을 더욱 중시하고 있다.
독자들은 무협소설에 나오는 일부 과장된 무공묘사를 지나치게 염두에 둘 필요는 없다.
어떤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며 단지 중국 무협소설의 전통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섭은랑이 몸을 축소하여 다른 사람의 뱃속에 몰래 들어갔다가 그 사람의 입에서 뛰쳐나오는 것을 누구도 실제로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믿지 않지만, 섭은랑의 이야기는 천여년 동안 줄곧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나의 초기 소설은 한족 왕조가 정통이라는 관념이 강했다. 후기에 들어서는 중화민족 각 민족이 차이가 없이 동일하다는 생각이 기조를 이루는데, 그것은 나의 역사관이 비교적 진일보한 때문이다. 이는 <천룡팔부 天龍八部>, <백마소서풍 白馬嘯西風>, <녹정기 鹿鼎記>에서 특별히 잘 나타난다. 위소보의 아버지는 한족, 만주족, 몽고족, 회족, 장족 어느 한 민족일 수 있다. 첫 번째 소설 <서검은구록>에서 주인공 진가락이 후에 회교에 귀의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민족, 어느 종교, 어떤 직업에서도 좋은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은 있는 법이다.
나쁜 황제가 있으면 좋은 황제도 있고, 나쁜 고관대작이 있으면 진정으로 백성을 사랑하는 고관도 있다.
소설 중의 한인, 만주인, 거란인, 몽고인, 서장인 등등에도 역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다.
스님, 도사, 라마승, 서생, 무사들도 각종 각양의 개성과 성품을 지니고 있다.
어떤 독자들은 사람을 좋고 나쁘고의 두 부류로 정확히 나누는 동시에 개인으로부터 전체 집단의 선악을 추론하기를 좋아하는데 그것은 결코 작자의 본래 뜻이 아니다.

역사상의 사건과 인물은 그 시대의 역사적 환경 속에다 놓고 봐야 한다. 송나라와 요나라, 원나라와 명나라, 명나라와 청나라 시대는 한족과 거란족, 몽고족, 만주족 등의 민족들이 서로 격렬히 투쟁하였던 시기이다. 몽고인과 만주인은 종교를 정치의 도구로 이용했다.
소설에서 묘사하려고 한 것은 그 시대 사람의 관념과 심리상태이며, 후세 혹은 현대인의 관념으로 저울질해서는 안 된다.
나는 소설 속에 사람들의 개성을 묘사하고 인성(人性) 중의 기쁨과 근심, 슬픔과 기쁨을 그린다.
소설은 어떤 사실을 에둘러 암시하는 것은 아니며, 질책 받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인성 가운데 있는 품격이 낮고 어두운 품성이다. 정치적인 관점이나 사회에서 유행하는 이념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해왔지만, 인성은 거의 변화가 없는 법이다.

소설을 완성한 후 적지 않은 수정과 첨삭이 있어 왔으나, 여전히 오류와 부족한 부분이 많다.
나는 독자들 한 분 한 분을 모두 친구라고 생각하며, 늘 친구 여러분들의 가르침을 즐겁게 받아 들일 것이다.

김 용

1994년 1월

※ 인터넷상에 삼련판 서문의 번역본이 있기는 한데, 원문에는 있는 삼련출판사와 정식출판 계약을 하게 된 경위, 도판盜版에 대한 언급,고룡, 예광과 함께 대련을 만들었다는 설에 대한 언급, '飛雪連天射白鹿, 笑書神俠倚碧鴛' 對句에 관한 작가의 생각 등 번역에서 제외한 부분과 원문에는 없는 일부 내용이 삽입돼 있어 부족하지만 직접전문을번역해 보았습니다.

(인터넷의 한계로 아래 원문 중 일부 글자는 제대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金庸作品集(三聯版)序
我在小學時就愛讀課外書.低年級時看《兒童畵報》,《小朋友》,《小學生》后來看內容豊富的“小朋友文庫”,再似동非동地閱讀各種各樣章回小說.到五六年級時,就開始看新文藝作品了.到現在,我還是喜愛古典文學作品多于近代或當代的新文學.那是個性使然.有hen多朋友,就只喜歡新文學,不愛古典文學.現代知識當然必須從當代的書報中去尋求.小學時代我得益最多,記憶最深的,是我baba和哥哥所購置的鄒韜奮先生所撰的《萍踪寄語》,《萍踪憶語》等世界各地旅行記,以及他所主編的《生活周報》(新的和舊的).

在童年時代,我已深受鄒先生和生活書店之惠.生活書店是三聯書店的主要組成部分,十多年前,香港三聯書店就和我簽了合同,准備在中國大陸地區出版我的小說,后因事未果.這次重行籌劃,由三聯書店獨家出版中國大陸地區的簡體字本,我不但感到欣慰,回憶昔日,心中充滿了溫馨之意.

撰寫這套總數三十六冊的《作品集》,是從一九五五年到七二年,前后約十三,四年,包括十二部長篇小說,兩篇中篇小說,一篇短篇小說,一篇曆史人物評傳,以及若干篇曆史考据文字.出版的過程hen奇怪,不論在香港,台灣,海外地區,還是中國大陸,都是先出各種各樣 版盜印本,然后再出版經我校訂,授權的正版本.在中國大陸,在這次“三聯版”出版之前,只有天津百花文藝出版社一家,是經我授權而出版了《書劍恩仇錄》.他們校印認眞,依足合同支付版稅.我依足法例격付所得稅,余數捐給了幾家文化機構及支助圍棋活動.這是一個愉快的經驗.除此之外,完全是未經授權的.

不付版稅,還在其次.許多版本粗制濫造,錯訛百出.還有人借用“金庸”之名,撰寫及出版武俠小說.寫得好的,我不敢掠美;至于充滿無聊打斗,色情描寫之作,可不免令人不快了.也有些出版社 印香港,台灣其他作家的作品而用我筆名出版發行.我收到過無數讀者的來信揭露,大表憤慨. 相信“三聯版”普遍發行之后,可以制止這種種不講道義的行爲.俠義小說的主旨是要講是非,講道義,可不能太過  .

有些飜版本中,還說我和古龍,倪匡合出了一個上聯“氷比氷水氷”征對,眞正是大開玩笑了.漢語的對聯有一定規律,上聯的末一字通常是仄聲,以便下聯以平聲結尾,但“氷”字屬蒸韻,是平聲.我們不會出這樣的上聯征對.大陸地區有許許多多讀者寄了下聯給我,大家浪費時間心力.爲了使得讀音易于分辨,我把我十四部長,中篇小說書名的第一個字湊成一副對聯:“飛雪連天射白鹿,笑書神俠倚碧鴛”. 我寫第一部小說時,根本不知道會不會再寫第二部;寫第二部時,也完全沒有想到第三部小說會用什me題材,更加不知道會用什 書名.所以這副對聯當然說不上工整,“飛雪”不能對“笑書”,“白”與“碧”都是仄聲.但如出一個上聯征對,用字完全自由,總會選幾個比較有意義而合規律的字.

有不少讀者來信提出一個同樣的問題:“Ni所寫的小說之中,Ni認爲Na一部最好?最喜歡Na一部?”這 問題答不了. 我在創作這些小說時有一個愿望:“不要重復已經寫過的人物,情節,感情,甚至是細節.”限于才能,這愿望不見得能達到,然而總是朝着這方向努力,大致來說,這十五部小說是各不相同的,分別注入了我當時的感情和思想,主要是感情.我喜愛每部小說中的正面人物,爲了他們的遭遇而快樂或悲傷,有時會非常悲傷.至于寫作技巧,后期比較有些進步.但技巧幷非最重要,所重視的是個性和感情.

這些小說在香港,台灣都曾拍攝爲電影和電視連續集,有的還拍了三,四個不同版本,此外有話劇,京劇,劇等.Gen着來的是第二個問題:“Ni認爲na一部電影或電視劇改編演出得最成功?劇中的男女主角Na一個最符合原著中的人物?”電影和電視的表現形式和小說根本不同,hen難拿來比較.電視的篇幅長,較易發揮;電影則受到更大限制.再者,閱讀小說有一個作者和讀者共同使人物形象化的過程,許多人讀同一部小說,腦中所出現的男女主角却未必相同,因爲在書中的文字之外,又加入了讀者自己的經歷,個性,情感和喜憎. NI會在心中把書中的男女主角和自己的情人融而爲一,而別人的情人肯定和Ni的不同.電影和電視却把人物的形象固定了,觀衆沒有自由想像的余地.

武俠小說繼承中國古典小說的長期傳統.中國最早的武俠小說,應該是唐人傳奇中的《규髥客傳》,《紅線》,《섭隱娘》,《昆侖奴》等精彩的文學作品.其后是《水滸傳》,《三俠五義》,《兒女英雄傳》等等.現代比較認眞的武俠小說,更加重視正義,氣節,舍己爲人,鋤强扶弱,民族精神,中國傳統的倫理觀念.讀者不必過 推究其中某些誇張的武功描寫,有些事實上不可能,只不過是中國武俠小說的傳統. 隱娘縮小身體潛入別人的두腸,然后從他口中躍出,誰也不會相信是眞事,然而섭隱娘的故事,千余年來一直爲人所喜愛.

我初期所寫的小說,漢人皇朝的正統觀念hen强.到了后期,中華民族各族一視同仁的觀念成爲基調,那是我的曆史觀比較有了些進步之故.這在《天龍八部》,《白馬嘯西風》,《鹿鼎記》中特別明顯.韋小寶的父親可能是漢,滿,蒙,回,藏任何一族之人.卽使在第一部小說《書劍恩仇錄》中,主角陳家洛后來也 依于回敎.每一個種族,每一門宗敎,某一項職業中都有好人壞人.有壞的皇帝,也有好皇帝;有hen壞的大官,也有眞正愛護百姓的好官.書中漢人,滿人,契丹人,蒙古人,西藏人... 都有好人壞人.和尙,道士,喇마,書生,武士之中,也有各種各樣的個性和品格.有些讀者喜歡把人一分爲二,好壞分明,同時由個體推論到整個群體,那決不是作者的本意.

歷史上的事件和人物,要放在當時的曆史環境中去看.宋遼之際,元明之際,明淸之際,漢族和契丹,蒙古,滿族等民族有激烈斗爭;蒙古,滿人利用宗敎作爲政治工具.小說所想描述的,是當時人的觀念和心態,不能用后世或現代人的觀念去衡量.我寫小說,旨在刻畵個性,抒寫人性中的喜愁悲歡.小說幷不影射什me,如果有所斥責,那是人性中卑汚陰暗的品質.政治觀点,社會上的流行理念時時變遷,人性却變動極少.

小說寫成后曾有過不少改動和增刪,但失誤和不足之處不免仍舊hen多.我把每一位讀者都當是朋友.朋友們的指敎自然永遠是歡迎的.

金庸   一九九四年一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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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첫번째 知己

金庸 2004. 8. 24. 14:51 Posted by 비천호리

용아와 곽정 오빠가 태호에서 놀 때「물결은 아득하고 홀로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 마치 한 폭의 수묵산수와 같은(煙波澔渺,一竿獨釣,眞像昰一幅水墨山水一般) 」풍경을 보고 소리 높여 노래를 불러, 이에 육승풍이 화답하여 노래를 부르게 된다.
황용이 상반부를 부르고, 육승풍이 하반부를 부르는데 두 사람이 익숙한 것이 그 당시의 사람이 요즘의 가라오케에서 부르는 것과 어느 정도 비슷하다.
노래는 주돈유(1081~
1159)의 <水龍吟>이다.

放船千里凌波去,略爲吳山留顧。雲屯水府,濤隨神女,九江東注。北客翩然,壯心偏感,年華將暮。念伊嵩舊隱,巢由故友,南柯夢,遽如許! 回首妖氛未掃,問人間,英雄何處?
奇謀報國,可憐無用,塵昏白羽。 鐵鎖橫江,錦帆沖浪,孫郞良苦。但愁敲桂櫂,悲吟梁父,淚流如雨。

배를 띄워 천리 거센 파도 헤쳐 가며 스치는 절경에도 마음 잠시 둘 뿐 강 위엔 자욱한 안개, 파도는 신녀가 부리는 대로 출렁이고, 여러 물들 장강에 합쳐져 동으로 흐른다. 북쪽 새 퍼득이며 나는 소리에 웅대한 뜻 품었던 마음 헛되이 세월만 흘렀음을 느끼네. 소보巢父와 허유許由처럼 이伊、숭嵩에 은거할 때의 옛 친구들을 생각하니 한바탕 꿈처럼 무상하구나. 북쪽 중원을 돌아보니 요사한 기운 아직 그대로인데 세상 사람들에게 묻나니 영웅은 어디에 있는가? 기이한 책략으로 보국報國코자 했건만, 가련하다 아무데도 쓰이지 못하고 화살에는 먼지만 앉았네. 철쇄鐵鎖를 가로질러 막았어도 비단 돛은 출렁이는 물속에 떨어지고 말았으니, 오주(吳主) 손책(孫策)이 살아 있었다면 비통했을 그 심정이여. 다만 시름에 젖어 노를 두드리며 슬피 양보梁父吟을 부르니 비오듯 눈물이 흐른다.
 
(주)
구강(九江): 동정호(洞庭湖)의 옛 이름
원(沅), 점(漸), 원(元), 진(辰), 서(
), 유(酉), 예(), 자(資), 상(湘)의 아홉강이 흘러 들어가므로 이름이 붙여짐.

상반부의 중점은 “웅지(雄志) 펴지도 못했는데 세월만 흘렀음을 느끼네「장심편감壯心偏感,연화장모年華將暮」”의 두 구절에 있고 하반부의 중점은 “기이한 책략으로 보국報國하려 했지만
가련케도 아무 공도 없다.「기모보국奇謀報國,가련무용可憐無用」” 의 두 구절에 있다.

신녀神女의 출전은 전국시대 초나라 사람 송옥의 <고당부高唐賦>(혹자는 후인의 가탁이라고도 한다)이다. 아동에게 적당치 않은 내용이 약간 있어 불필요하게 적지 않는다.

소보와 허유는 상고시대 덕망있는 은사로서 이하를 따라 내려가 숭산을 은거지로 삼았던 것으로 대대로 전해진다.
요 임금이 여러번 임금의 자리를 소보와 허유에게 양위하려 하였으나 두 사람이 응하지 않아서, 후에 요임금이 예의 순 임금에게 양위하였다. 혹자는 소보와 허유가 실은 한 사람이라고도 한다.

남가몽은 당나라 사람 이공좌의 전기명저 <남가몽태수전>에 나온다.
이야기의 주인공 순우분이 어느날 홰나무 아래서 취해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괴안국에 들어가 부마가 되고, 남가태수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지만 깨어나니 아직 석양이 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주돈유가 「남가일몽처럼, 이렇게 눈깜빡할 사이구나
」(남가몽南柯夢,거여허遽如許)라고 한 것이다.

시의 하반부는 삼국, 위진시대의 고사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철쇄횡강鐵鎖橫江은 독자들에게 연성결에 나오는 철쇄횡강 척장발을 연상케 한다.

정전丁典이 허허 대소하며 말한다. 「소형제! 충직한 사람은 바로 자네야, 철쇄횡강, 그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올라가려고 해도 올라갈 수 없고, 내려가려고 해도 내려갈 수 없도록 한다는 거네. 나이 든 무림인물 중 누가 이 외호에 함축된 의미를 모르겠는가? 소형제의 사부는 총명하고 임기응변에 능해 무섭기 그지없네, 누군가가 그를 건드리면 그는 반드시 수단방법을 다해 보복하는데, 마치 배가 강심의 소용돌이에서 제멋대로 도는 것처럼 그 사람이 올라가려고 해도 올라갈 수 없고 내려가려고 해도 내려갈 수 없듯이 만든다네. 자네가 믿지 못하면 장래 감옥을 벗어난 후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게」
<연성결> 제75~76쪽

삼국시대 말 위가 촉을 멸망시키고 오래지 않아 사마염司馬炎(236-290)이 위를 찬탈하여 국호를 진晉이라 한다.
오주吳主 손호孫皓(243-284)는 진의 군선이 강을 따라 내려오는 것을 막기 위해 쇠송곳과 쇠사슬을 강에 설치하여 방어하였는데 이것이 철쇄횡강의 고사이다.
철쇄횡강도 끝내는 소용이 없어 중당(中唐)의 시인 유우석劉禹錫(772-842)은 <서새산회고西塞山懷古>에서 다음과 같이 읊는다.

왕준누선하익주         금릉왕기암연수
王濬樓船下益州       金陵王氣然收
천심철쇄침강저         일편왕기암연수
千尋鐵鎖沈江底       一片降幡出石頭
인세기회상왕사         산형의구침강류
人世幾回傷往事       山形依舊枕江流
금봉사해위가일         고루소소노적추
今逢四海爲家日       故壘蕭蕭蘆荻秋

왕준의 병선(兵船)이 익주에 내려오니 금릉의 제왕서기(帝王瑞氣) 암연히 사라졌네
천심(千尋) 길이의 쇠사슬마저도 강 밑에 가라앉고 끝내는 백두성에 백기가 오르고 말았구나
인간사 흥망의 상심 몇 번이었던가? 산천은 옛날이나 다름없네
천하통일된 지금, 잡초 우거진 옛 성채에 가을이 왔구나

왕준王濬(206-285)은 오를 멸하는 전쟁에서 으뜸가는 공을 세웠다.
석두성石頭城은 남경南京의 다른 이름이며 손씨의 오나라 이래로 육조가 모두 남경을 도읍으로 하였다(오吳는 건업建業이라 하고 동진東晉, 송宋,  제齊, 양梁, 진陳은 건강建康이라 하였음)
손랑孫郞은 보통 동오의 기반을 닦은 소패왕小覇王 손책孫策(175-200)을 지칭한다.
손책은 중원을 도모할 웅지를 품었으나, 아깝게도 단명했다.
그의 동생 손권孫權(182-252)은 앉아서 그가 이룩한 것을 누렸으나 손호에 이르러서는 더욱 수세에 몰려 쇠사슬로 강을 막아 방어할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나 최후에는 남경성에 항복의 깃발을 올리고 말았으니, 천하의 패권을 놓고 다투려 했던 손책의 심정이 아주 비통할 것이라는 건 당연하다.
여기서의 중점은 철쇄횡강鐵鎖橫江에 있는 것이 아니고 손랑양고孫郞良苦에 있다.

양보음梁父吟은 제갈량諸葛亮(181-234)을 대표하는 유명한 노래이다.
만약 공명이 오늘날 살아 있다면 박릉博陵의 최주평崔州平, 영천穎川의 석광원石廣元, 여남汝南의 맹공위孟公威 등과 심심풀이로 가라오케에서 노래를 부른다면 틀림없이 이 양보음을 부를텐데!
(역자주: 최주평, 석광원, 맹공위는 제갈량이 유비에게 출사出仕하기 전의 벗들)

주돈유의 <수룡음>은 북벌무공北伐無功의 전고典故를 많이 사용하였는데 그것은 제갈량의 「출사미첩신선사出師未捷身先死,장사영웅누만금長使英雄淚滿襟」(전장에 나아가 최후의 승리를 얻기도 전에 죽고 말았으니 오래도록 후세영웅들에게 눈물로 옷깃 가득 적시게 하네) 이다.
“슬피 양보음梁父吟을 부르니 비오듯 눈물이 흐르네(비음양보悲吟梁父,유루여경有淚如傾)”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櫂」와「楫」는 통자(通字)이고 「敲櫂」(노를 두드리다)에서 「擊楫」와 또 한 사람 북벌무공의 영웅을 생각케 된다.

문천상(文天祥, 1236-1282)의 정기가(正氣歌)에서 "혹은 강 건너는 노 되어 분한 한숨 오랑캐를 삼켰고"
「或爲渡江楫,慷慨呑胡갈」이라고 했는데 이는 동진(東晉)의 조적(祖狄, 266-321)을 노래한 것이다.
진서(晉書) 조적전(祖狄傳)에 조적이 군사를 이끌고 강을 건너는 장면이 있다.
“강 중류에 이르러 노를 두드리며 맹세키를「내가 중원의 적을 평정하고 강산을 되찾지 못하면 흐르는 이 강물처럼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祖逖不能清中原而復濟
者,有如大江), 장렬한 말에 무리가 모두 분개하여 탄식한다”楫과 櫂는 모두 노인데 짧은 것이 楫이고 긴 것이 櫂이다.
젊음은 다 갔는데 상서롭지 못한 기운(적군)은 아직 없애지 못했고(「年華將暮」、「妖氛未掃」) 영웅은 어디로 갔는가?(「問人間英雄何處」)라며 눈물만 비오듯 흘릴 뿐이다.

육승풍이 흑풍쌍살을 붙잡지 못한 것과 시의 북벌무공이 비슷한 처지라 이것이 도리어 육승풍의 심경에 부합된다.
* * * * * * * * * *

김용은 <수룡음>을 황용, 육승풍이 합창하도록 나누어 주지만, 제멋대로 어지럽지 않고 화룡점정으로 곽정과 황용 두 등장인물의 심경을 더욱 풍부하게 하였다.

세 사람이 두잔을 대작한 후 그 어부가 말한다.
「방금 도련님이 부른 수룡음의 정취가 우울한데 실로 절묘한 사입니다.
도련님은 나이가 어린데도 사 가운데 깊은 뜻을 알고 있으니 정말 보기 드문 경우군요」
황용이 그의 노티 풍기는 말을 듣고 가볍게 웃으며 말한다
「송 황실이 남쪽으로 내려온 후 슬퍼하지 않는 사인묵객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 어부가 고개를 끄덕이며 옳다고 한다.
황용이 말한다. 「장우호의 육주가두(六洲歌頭) 중에서

聞道中原遺老,常難望、翠霓旌。
使行人到此,忠憤氣塡膺,有淚如傾。

듣건대 중원에 남아 있는 노인들은 언제나 남쪽을 바라보며 임금의 군대 기다린다네
나그네 여기에 이르면 충의와 분개한 기운 가슴에 차서 눈물이 비오듯 쏟아지네.

라고 했던 것도 바로 이런 뜻 아니겠습니까?」
그 어부가 박자를 치며 소리 높여 노래부른다.

나그네 여기에 이르면
충의와 분개한 기운 가슴에 차서
눈물이 비오듯 쏟아지네.

그리고는 연속 석잔의 술을 따라 깨끗이 비운다.
두 사람이 시사를 얘기하기 시작하자 아주 의기투합한다.
기실 황용 같이 어린 나이에 무슨 나라의 슬픔이 있겠는가?
사 가운데 깊은 뜻에 관해서 체득한다는 건 더욱 어렵고 다만 이전에 아버지가 말했던 것을 듣고서 이 때 끄집어내어 말한 것에 불과한데 언사 가운데의 견해가 주도면밀하고 포부가 커서 그 어부는 계속하여 탁자를 치면서 잘한다고 칭찬한다.
곽정은 한쪽에서 듣고 있으나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하지만 그 어부가 황용에게 탄복하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좋아한다.
한동안 더 얘기하자 저녁안개가 가득하고 호수에는 연무가 더욱 짙어진다.
<사조영웅전> 514~515쪽

이 한 단락 망년지교의 이야기는 육승풍의 말씨와 태도가 우아하게 그려졌을 뿐만 아니라 작자의 솜씨를 드러내기도 한다.

장효상(1133~1170), 자는 안국(安國), 호는 우호거사(于湖居士)이며 육주가두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長淮望斷,關塞莽然平。
徵塵闇,霜風勁,
邊聲,銷凝。
追想當秊事,殆天數,非人力,洙泗上,絃歌地,亦?腥。
隔水氈鄕,落日牛羊下,區脫縱橫。
看名王宵獵,騎火一川明,
鼓悲鳴,遣人驚。

念腰間箭,匣中劍,空埃
,竟何成!時易失,心徒壯,歲將零,渺神京。
幹羽方懷遠,靜烽燧,且休兵。冠蓋使,紛馳
,若爲情。
聞道中原遺老,常難望、翠
霓旌。使行人到此,忠憤氣塡膺,有淚如傾。

긴 회하 끝 아득히 바라보니 변방 옛 요새에는 수풀이 우거졌네
전쟁의 먼지 자욱하고 서릿바람 차가운데 변방의 고요함에 정신이 멍해지는구나.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아마도 하늘의 뜻이었지 인력으로 될 일이 아니었나 보다.
수수와 사수 땅 거문고 타며 노래하던 곳도 지금은 오랑캐의 누린내 진동한다.
강 건너 오랑캐 천막이 들어선 땅, 석양에 소떼 양떼 언덕을 내려오고 적의 초소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구나.
적장의 밤 사냥 모습을 보니 기마대의 횃불이 내를 이루고
호드기 소리 북소리 구슬프게 울려서 듣는 이 놀라게 하네.

허리춤의 화살과 칼집 속의 칼을 떠올리니
헛되이 먼지 앉고 좀이 쓸었으니 무슨 일을 이루겠는가!
때는 쉽게 잃는 것인데 헛되이 마음에 뜻만 품고서 해는 또 저물어 가고
적에게 빼앗긴 서울은 아득히 멀기만 하네.

회유책으로 오랑캐를 귀복시킨다 하여 봉화대는 고요해지고 전쟁은 그쳤으나
화의를 구걸하는 사신이 꼬리를 물고 바삐 달려가고 있으니 이 어찌 부끄럽지 않은가?
듣건대 중원에 남아 있는 노인들은 언제나 남쪽을 바라보며
임금의 군대 기다린다네
나그네 여기에 이르면 충의와 분개한 기운 가슴에 차서 눈물이 비오듯 쏟아지네.

전반부는 회수(淮水), 수수(洙水), 사수(泗水) 유역이 모두 금인(金人)의 목장으로 변한 것을 썼다.
후반부는 영웅이 그 힘을 발휘할 기회가 없음을 「아마도 하늘의 뜻이었지」「인력으로 될 일이 아니었나 보다」라고 개탄한다.
헛되이 큰 포부만 가지고 있고 충의와 분개한 기운 가슴에 차서 단지 눈물이 비오듯 쏟아질 뿐이다.
맨 마지막에 「오호폐인」육승풍이 「재모를 겸비한」어린 황용을 「평생의 첫 번째 지기」로 인정하는 것은(사조영웅전 517쪽) 오히려 그가 쓴 악비의 <소중산>에 대한 황용의 품평 때문이다.

昨夜驚不住鳴。驚回韆里,已三更。起來獨自階行。人悄悄,簾外月朧明。
白首爲功名。舊山
竹老,阻歸程。將慾心事付瑤箏。知音少,絃斷有誰聽?

어젯밤 귀뚜라미 울음소리에 천리길 중원 꿈에서 깨어나니 삼경이 지났네
잠못 들고 일어나 홀로 뜰을 배회한다.
위국(爲國)의 생각에 근심스러운데 발 밖의 달빛도 흐릿하구나
공을 세우려 한지 오래, 머리카락 이미 희어졌건만 아무 이룬 것도 없고
고향길은 금병(金兵)에 막혀 갈 수 없으니
울적한 심사 요쟁으로 풀어볼까 하지만 알아줄 이 적으니 그 누가 들어줄까?

(역자 주) 이 부분은 고려원 번역판과 원문에 차이가 있다.
고려원 번역판: 곽정과 황용이 들어선 육승풍의 서재 벽에 五湖廢人病中塗鴉 낙관이 찍힌
「綺羅堆裏埋神劍, 蕭鼓聲中老客星」라는 대련(對聯)이 걸려 있고 육승풍의 청에 황용이 이를 품평하자 그가 감탄하여 글씨를 부탁한다.
그러자 황용이 그림을 그린 후 <소중산>을 좌우측에 써넣는 것으로 나온다.

사조영웅전 원문(13회): 육승풍의 서재에 이미 五湖廢人病中塗鴉라는 육승풍의 낙관이 찍힌 그림이 걸려 있고 그 그림의 왼쪽부분에 <소중산>이 써져 있는데 황용이 육승풍의 부탁을 받고 이를 품평하는 것으로 나온다.
신구판본의 차이 때문이 아닌가 한다

육승풍이 그림을 그릴 당시「격분이 가득하고 마음 속에 곡절이 많았던」것은 모두 은사가 일이 잘못된 원인을 묻지 않고 거꾸로 자기를 해쳤기 때문이다.
현이 끊어지면 이을 수 있으나 다리가 상한 것은 되돌릴 수 없으니
「허리춤의 화살과 칼집 속의 칼을 떠올리니
헛되이 먼지 앉고 좀이 쓸었으니 무슨 일을 이루겠는가!
때는 쉽게 잃는 것인데 헛되이 마음에 뜻만 품고서 해는 또 저물어 가고
서울 길은 아득히 멀기만 하네.」
라고 한 것이야말로 문무겸비한 육승풍에 대한 슬픔을 느끼게 되는 부분이며 그렇기에 그의 명이 그다지 길지 않아 귀운장에서 비록 황약사가 다시 받아들이지만 우울하게 삶을 마치고 만다.
* * * * * * * * * *

부록(杜甫의 蜀相)

丞相祠堂何處尋,錦官城外栢森森。暎階碧艸自春色,隔葉黃空好音。
三顧頻煩天下計,兩朝開濟老臣心。出師未捷身先死,長使英雄淚滿襟。

어디에서 제갈량의 사당을 찾을까?
성도성 밖 잣나무 우거진 곳이라네
섬돌에 비친 푸른 풀잎은 스스로 봄빛을 드러내고
나무 위 꾀꼬리는 부질없이 지저귄다.
삼고초려한 선주(先主)와 천하대계를 의논했고
양조(兩朝)의 개국과 계승을 충성으로 보좌했네
전쟁에 나가 최후의 승리 얻지도 못했는데 군중(軍中)에서 병으로 죽고 말았으니
오래도록 후세 영웅들에게 눈물로 옷깃 가득 적시게 하네

반국삼(출처:
詩詞金庸)

(참고)

양보음
步出齊城門 遙望蕩陰里
里中有三墳
纍纍正相似
問是誰家墓 田疆古冶氏
力能排南山 文能絶地紀
一朝被讒言 二桃殺三士
誰能爲此謀 相國齊晏子

제나라 성문을 걸어나오니 아득히 탕음 마을이 보이네
마을에 무덤 셋이 있는데 연이어 있어 서로 비슷하구나
누구의 무덤인가 물으니 전개강과 고야자의 무덤이라 하네
힘은 남산을 밀어낼 만하고 문장은 일세를 진동했도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참언을 당해 복숭아 두 개로 세 사람이 죽음을 당했네.
누가 그런 모략을 내었는가, 제나라 재상 안자(晏子)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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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俗念

金庸 2004. 8. 24. 13:34 Posted by 비천호리

春游浩蕩,是年年寒食,梨花時節.
白錦無紋香爛漫,玉樹瓊苞堆雪.
靜夜沈沈,浮光靄靄,冷浸溶溶月.
人間天上,瀾銀霞照通徹.
渾似姑射眞人,天姿靈秀,意氣殊高潔.
萬蘂參差誰信道,不與群芳同列.
浩氣淸英,仙才卓犖
,下土難分別.
瑤台歸去,洞天方看淸絶.

해마다 봄놀이 한창인 한식에는 배꽃이 활짝 피네
흰 비단에 구김이 없듯 맑은 향기 그윽하고
피어나는 꽃잎은 순백하구나
밤은 고요히 깊어가고 아지랑이처럼 떠도는 빛, 청랭(淸冷)한 기품 달빛에 스며
은색 노을로 인세(人世)를 비추니 이곳이 천상(天上)인가 하네.
고야(姑射)의 진인(眞人)인가
빼어난 자태에 그 뜻 더욱 고결하구나
수 많은 모양으로 피어난 꽃들, 누가 제대로 분별할 수 있을까 뭇 꽃과 같지 않음을, 호연(浩然)한 기개 맑고 드높으며 선재(仙才) 뛰어나 속인은 알아보기 어렵네. 요대(瑤台)로 돌아가면 신선이라야 알겠지


※ 莊子 <逍遙遊>
邈姑射之山, 有神人居焉, 肌膚若氷雪, 綽約若處子, 不食五穀, 吸風飮露, 乘雲氣, 御飛龍, 而遊乎四海之外.

아득히 멀리 고야산에 신인이 사는데 피부는 빙설같이 깨끗하고, 처녀처럼 얌전하며 오곡을 먹지 않고,
바람을 마시고 이슬을 먹으며 구름을 타고 비룡을 부려 사해의 바깥에 노닌다.

※ 瑤台 : 仙人居住的地方.
※ 洞天:道敎指神仙居住的地方


소용녀와 구처기의 <무속념>- 반국삼(출처: 詩詞金庸) -

소용녀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려면 구처기의 사(詞)를 보자.

春遊澔蕩,昰秊秊寒食,梨花時節.
白錦無紋香爛漫,玉樹瓊苞堆雪.
靜夜沈沈,浮光靄靄,冷浸溶溶月.
人間天上,爛銀霞照通徹.
渾似姑射眞人,天姿靈秀,意氣殊高潔 萬蘂參差誰信道,不與群芳仝列.
澔氣淸英,仙才卓犖
,下土難分別.
瑤臺歸去,洞天方看淸絶.


이 무속념은 내가 졸작<총론김용>에서 일찌기 논한 적이 있는데, 주요한 내용은 김용 소설과 양우생 소설 중의 시사(詩詞)의 정취를 비교한 것이다.
당시 김용이 이 사를 <일체가 되어 하늘이 만든 것처럼 한군데 손댄 흔적도 없이> 초록 하였다고 평하였고 결론은 김용의 초록이 양우생의 저작보다 훨씬 낫다는 것이었다.
지금 옛일을 다시 거론하는 것은「재탕」으로 독자를 기만하려는 것이 아니고, 다만 <총론김용>을 쓸 당시에는 원래의 사를 본 적이 없었지만 쇠코도사 구처기의 원작을 보게 되었으니 당연히 또 쓸 문장이 있기 때문이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홍콩대학 금원사(金元詞) 전문가 황조한 선생의 논문을 보다가 비로소 구처기의 <무속념, 영허궁이화사> 원작을 읽게 된 것이다. 김용은 원래의 사의 수식을 생략하여 소설의 정취에 맞추었는데 아주 잘 고쳐졌다.
이런 연유로 나는 당연히 김용이 고쳐서 소설중에 쓴 시사(詩詞)가 양우생이 자작하여 소설에 사용한 시사보다 훨씬 더 정취가 뛰어나다고 수정하려 한다.
게다가 김용은 시치미 뚝 떼고 "靈虛宮梨花詞" 몇 글자를 삭제하고는 큰 소리를 친다.
이 사(詞) <무속념>을 지은 사람은 남송말 무학명가이자 도사였다.
이 사람은 구처기로 도호는 장춘자이며 전진칠자(全眞七子) 중 한 사람이고 전진교에서 배출한 뛰어난 사람이다.
사품(詞品)에서 이 사(詞)를 평하여, "장춘(長春)은 세상에서 선인을 이르는 말인데 사(詞)의 빼어남이 이와 같구나"라고 하였다.
이 사에서 읊은 것은 배꽃 같지만, 사에서의 본뜻은 흰옷을 입은 미모의 한 소녀를 찬미한 것이다.
"고야(姑射)의 진인(眞人)인가, 빼어난 자태에 그 뜻 더욱 고결하네"
"호연(浩然)한 기개 맑고 드높으며 선재(仙才) 뛰어나"
"뭇 꽃과 같지 않은데"
라고 한 것이다.
사(詞)에서 찬미한 이 미인은 바로 고묘파(古墓派)의 전인(傳人)인 소용녀(小龍女)이다.
그녀는 늘 흰 옷을 즐겨 입었으며 미모에 순백하고, 사념없이 맑은 성품의 소유자여서 "차가움 달빛에 스며"라고 할만하여  "무속념(無俗念)"의 세 글자로 형용한 것인데, 아주 적절했다고 할 수 있다.
장춘자 구처기는 그녀와 종남산에서 이웃해 살면서 단 한 번보고 이 사(詞)를 지은 것이다.
마치 조자건이 시에서「松子久吾欺」(赤松子는 오래도록 나를 속였네)라고 했듯이 여러해 동안 김용에게 속아온 우리 충실한 독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럴 수가 있는가?


※ 赤松子 : 유명한 仙人의 이름. 이 부분은 曺植의 贈白馬王彪에 나오는데 <한 때는 속세를 떠나 선인의 길을 가려고 생각한 적도 있으나 그 길도 아니더라(적송자는 오래도록 나를 속였네)>라고 한데서 유래함.

원래의 사는「春遊澔蕩,昰秊秊,寒食梨花時節.」인데 김용은 이것을「春遊澔蕩,昰秊秊寒食,梨花時節.」으로 바꾸어 놓았다.
본래는 매년의「한식은 배꽃의 계절이다」라고 한 것인데, 김용의 손에서「寒食」과「梨花」로 나누어져 중점이「寒食」에서「梨花」로 옮겨졌다.

쇠코 구 노도사가 해마다 봄 유람을 꼭 한식 때 가는 것은 분명히 한식이기 때문에 유람가는 것인데 공교롭게도 그때에 많은 곳에서 배꽃을 보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한식에 유람가는 것이 주고 배꽃을 감상하는 것은 부수적인 것이었다.
김용이 구두점을 살짝 옮겨 배꽃 때문에 유람하는 것으로 바꾸었으니 실로 신필이라 할만하다. 구두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데 이르러서는 리듬감도 같지 않고 각각 큰 차이가 있다.「苞」를「파(꽃파)」로 바꾼 것도 깊은 뜻이 있다. 「玉樹瓊苞」는 꽃망울이 막 피려고 한다는 뜻이 있다.
「玉樹瓊파」는 이미 핀 꽃이라서 구노도사가 소용녀를 처음 만났을 때 느꼈을 감정상태에 맞지 않다. 당시의 소용녀는「막 피려고 하는」어린 미인이었다.
「意氣舒高潔」은 의기가 펴진다는 뜻이어서 「意氣殊高潔」이 아랫글「不與群芳仝列」과 서로 어울리는 정도에 미치지 못한다.
殊는 특별하다는 것이니 소용녀의 의기가 특별히 고결하다는 것을 말한다.
구 노도사는 배꽃을「萬蘂」,「群芳」과 비교하여 특별히 고결하다고 노래한 것이다.
「萬化參差」중의 萬化는 원래는 만물이 변화하는 도리를 말한 것인데 김용은 이를 「萬蘂參差」로 바꾸어 즉, 蘂로 꽃을 표현하고 배꽃을 선인으로 본 것이다. 구처기가 원래의 사에서 의도한 것은 배꽃을 감상하는 것으로 인해 만물이 변화하는 도리에 생각이 이르렀던 것인데...


小龍女與丘處機的〈無俗念〉 潘國森
慾知小龍女怎
樣美,且看丘處機的詞:
春遊澔蕩,昰秊秊寒食,梨花時節.
白錦無紋香爛漫,玉樹瓊苞堆雪.
靜夜沈沈,浮光靄靄,冷浸溶溶月.
人間天上,爛銀霞照通徹.
渾似姑射眞人,天姿靈秀,意氣殊高潔.
萬 參差誰信道,不與群芳仝列.
澔氣淸英,仙才卓락,下土難分別.
瑤臺歸去,洞天方看淸絶.
這首〈無俗念〉詞,我在拙作《總論金庸》曾有討論,主要拏來比較金庸小說與梁羽生小說中詩詞的意境.
當時評金庸 此詞 得「混然天成,毫無斧鑿之痕」,得 的結論昰金庸的 ,遠勝於梁羽生的作.
現在舊事重提,倒不昰要「炒冷飯」欺騙讀者,隻因爲當秊寫《總論金庸》時不曾見過原詞,待得見過牛鼻子丘處機的原作,當然又有文章可做.在一個非常非常偶然的機會,拜讀香港大學硏究金元詞專家黃兆漢先生的論文,方 讀到丘處機這首〈無俗念.靈虛宮梨花詞〉原作:春遊澔蕩,昰秊秊,寒食梨花時節.
白錦無紋香爛漫,玉樹瓊 堆雪.
靜夜沈沈,浮光靄靄,冷浸溶溶月.
人間天上,爛銀霞照通徹.
渾似姑射眞人,天姿靈秀,意氣舒高潔.
萬化參差誰信道,不與群芳仝列.
澔氣淸英,仙才卓락,下土難分別.
瑤臺歸去,洞天方看淸絶.
金庸將原詞略作脩飾,以切閤小說的意境, 改得甚好.因此我應該要脩正,說金庸小說的詩詞改得比梁羽生小說中自撰的詩詞更具意境神韻.金庸還「揷贓嫁禍」,將「靈虛宮梨花詞」數字刪去,然後大吹法螺一番:作這一首〈無俗念〉詞的, 南宋末秊一位武學名家,有道之士.此人姓丘,名處機,道號長春子,名列全眞七子之一,昰全眞敎中 類拔萃的人物.《詞品》評論此詞道:「長春,世之所謂僊人也,而詞之淸拔如此.」這首詞誦的似昰梨花,其實詞中眞意 昰讚譽一位身穿白衣的美貌少女,說 「渾似姑射眞人,天姿靈秀,意氣殊高潔」,又說 「澔氣淸英,仙才卓犖」,「不與群芳仝列」.
詞中所頌的美女, 昰古墓派傳人小龍女.
 一生愛穿白衣,當眞如風拂玉樹,雪 瓊苞,兼之生性淸冷,實當得起「冷浸溶溶月」的形容,以「無俗念」三字贈之,可說十分貼切.
長春子丘處機和 在終南山上比 而居,當秊一見,便寫下這首詞來.
正如曹子建詩雲:「松子久吾欺.」我輩忠實讀者,歷秊來被金庸蒙蔽誤導,實不知凡幾,眞豈有此理!原詞昰「春遊澔蕩,昰秊秊,寒食梨花時節.」金庸改成「春遊澔蕩,昰秊秊寒食,梨花時節.」本來昰說每一秊的「寒食梨花時節」,但到了金庸手上,硬生生將「寒食」與「梨花」分開,就將重點由「寒食」移到「梨花」上麵去了.
牛鼻子丘老道秊秊春遊,專揀在寒食時節,顯然昰爲了寒食而遊,而恰巧在寒食遍逢梨花,因此寒食 遊昰主,兼賞梨花爲賓.
金庸將逗號輕一 移,就變成了爲梨花而遊,實昰神來之筆.至於斷句不仝,節奏感就 有不仝,則各有韆 .
以「苞」代「파」亦有深意.「玉樹瓊苞」,卽有含苞待放之意;「玉樹瓊 」,則昰已開之花,實在不閤丘老道初次邂逅小龍女時候的意態.當時的小龍女正昰「含苞待放」的小美人.「意氣舒高潔」有意氣舒展之意,自又不及「意氣殊高潔」之與下文「不與群芳仝列」互相呼應. 殊者,卽特別,說小龍女的意氣特別高潔.
丘老道詠這梨花在與「萬蘂」,「群芳」相比昰仍覺其特別高潔.
「萬化參差」中的萬化原昰說萬物化生的道理,金庸改爲「萬 參差」,卽以「 」表花,以梨花爲僊人.其實丘處機原詞的用意昰由觀賞梨花,從而想及萬物化生之道 .


潘國森祖籍廣東南海,香港 生,香港長大. 先後畢業於香港聖類斯學校及香港大學工業工程系.
一九七六秊 (16歲) 開始讀金庸小說,第一部昰《射 英雄傳》,最喜歡《天龍八部》.
원적은 광동 남해, 홍콩출생, 성장
홍콩聖類斯학교 및 홍콩대학공업건설과 졸업
1976년(16세)에 김용소설을 읽기 시작하였는데 제1부는 <사조영웅전>이었고,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천룡팔부>

於金庸小說用功最勤,創見亦最多,已發表的金學硏究作品有:
《話說金庸》,《總論金庸》,《武論金庸》,《雜論金庸》,《解析金庸小說》,《解析笑傲江湖》,《解析射 英雄傳》,竝計劃再完成《解析神雕俠侶》,《解析倚天屠龍記》,《解析天龍八部》,《解析鹿鼎記》,閤爲「一說三論七解析」共十一部金學硏究.
最新著作《給我金庸小說》昰與【金庸茶館】「情愛金庸」版主紫雁透過 Internet共仝完成的. 目前竝擔任

【金庸茶館】「詩詞金庸」版主.
김용작품 해설에 많은 힘을 쏟고 있으며 참신한 의견도 가장 많다. 이미 김학연구작품으로 <김용을 말한다>, <총론김용>, <해석김용소설>, <해석소오강호>, <해석사조영웅전>을 발표하였고 <해석신조협려>, <해석의천도룡기>, <해석천룡팔부>, <해석녹정기> 등 미완성 작품과 합쳐 <3론 7해석>, 모두 11부의 김학연구서를 계획하고 있다.
최신 저작 <내게 김용소설을 달라>는 <김용차관>, <시사김용>의 시샵인 자안(紫雁)과 인터넷을 통하여 공동으로 완성한 것이다.

自忖於金學一道,擧世已少有匹敵,決定自稱「二十世紀天下第二」,隻服輸於陳世 敎授一人而已.김학에 있어서는 세상에 필적할 자가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여 자칭「20세기 천하 제2인자」라고 결정하였다. 단지 진세양 교수 한 사람에게만 뒤질 뿐이다.

(인터넷이 한자를 다 나타내주지 못해서 중간 중간 빠진 글자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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