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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소설 신구판본의 비교

金庸 2004. 8. 24. 11:55 Posted by 비천호리

비호외전
비호외전 결말 중, 구판에서는 원자의가 낙빙이 그녀에게 준 백마를 호비에게 남기고 백마는「계속 슬피 울며 옛 주인이 왜 자기를 버리고 가는지 알지 못했다」는 장면이 나오는데, 신판에서는 원자의가 백마를 남기지 않고 백마를 타고 홀로 외로이 서쪽으로 간다.
그리고 구판에서 그녀의 아버지는 봉인영이지 봉천남이 아니다.

연성결
김용은 아마 일찍이 이런 대구(對句)를 구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구판의「소심검」을「연성결」로 이름을 바꾸었고 소심검보도 연성결로 바뀌었다.

천룡팔부

천룡팔부 가운데 왕어언의 본래 이름은 왕옥연(王玉燕)이다.
단예의 북명신공의 본래 이름은 주합신공이고 그가 무의식중에 삼킨 영물인 주합에서 생겨난 것이었다.
천산동모의 팔황육합유아독존공은 본래 천상지하유아독존공이었는데, 후에 작가가 석가에게 불경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석가가 출생시 스스로를 천상지하유아독존이라고 했기 때문에).


시작할 때, 무량검파에 나타난 종영이 가지고 있던 이물(異物)「우혈사령(禹穴四靈)」가운데 금령자(金靈子)와 청령자(靑靈子) 두 마리 영사(靈蛇)가 재미있었는데, 신판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밖에 구판의 후반부를 써갈 때, 작가가 외국여행을 해야 했기 때문에 예광에게 대필을 부탁했고, 그래서 예광이 모용공자 등장 전에서부터 삼십육동주와 칠십이도주 등장까지 썼다. 예광 선생 붓아래의 모용복은 단예에게 그다지 나쁘게 대하지 않는다.
파라성(波羅星)과 철라성(喆羅星)은 천축에서 두 마리 큰 구렁이를 타고 중국에 왔다.

단예와 유탄지는 살구나무 숲에서 싸우는데 지양지강한 주합신공이 지극히 음독한 빙잠공과 부딪히자 얽혀서 두 사람이 떨어질 수가 없었다.
모용복이 옆에서 넋을 놓고 보다가 앞으로 나가 두 사람을 떼어 내려하고 이 일로 오랫동안 이름을 남긴다.

또, 모용복이 등장할 때 무악부작 섭이랑이 전문적으로 다른 사람의 어린아이를 빼앗아서 심장과 간을 빼낸다는 듣고는 분노가 끓어올라 호조공을 펼쳐내어 섭이랑을 상대하지만 섭이랑이 피해버리고, 섭이랑 가슴의 옷만 크게 한 조각 찢어서 그녀에게 색을 밝히는 것으로 놀림당한다.


대리 어초경독의 구판에서의 이름은 능천리(凌韆里), 소독성(蕭篤誠), 동사귀(董思歸)와 주단신(朱丹臣)이다.
유탄지는 신판에서 장취현으로 이름을 바꾸는데, 구판에서는 왕성천(王星天)이다.
단예 어머니의 원래 이름은 서백봉(舒白鳳)인데 신판에서는 도백봉(刀白鳳)으로 부른다.

 
또, 결말에서 모용복이 미친 후, 흙무덤에 앉아 황제로 분장하여 꼬마들에게 사탕을 나누어 주고, 아벽만이 그 신변에 있는데 모용복이「남쪽을 향해 앉아서 입으로는 쉬지 않고 중얼거린다」는 장면이 있으나, 구판에서는 이런 묘사가 없다.

구판 천룡팔부 중, 서하 일품당이 쓴 무색무미한 암기를 <홍화향무(紅花香霧)>라고 불렀으나, 신판에서는 <비소청풍(悲淸風)>이라고 한다.

사조영웅전

구판에서는 일등대사가 황용을 치료할 때 곽정이 약간 배웠고, 후에 곽정이 황용에게 알리자 황용이 그럼 배워서 할 줄 아는군요 라고 하자 곽정이 그렇지는 않지만 서독이 올 때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후에 두 사람이 말을 타고 중원으로 돌아갈 때, 황용이 이번에 상처를 입기는 했으나 상처로 일양지와 구음진경의 번역문을 바꿨다고 말한다.
그래서 대막에서 곽정이 자연히 일양지를 펼치게 되고 그러자 구양봉이 놀라서 물러난다.
그러나, 신판에서는 곽정이 단지 모양만 약간 배웠다고 말하므로 정말로 배웠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신구판 모두 일등이 곽정에게 일양지를 가르친다고 하지는 않는다.


구판의 신조협려에서 양과는 양강이 팽장로에 의해 잡혀온 광동의 뱀잡는 여자 진남금을 겁탈하여 잉태되었고, 진남금은 일찍이 곽정과 만난 적이 있고 황용과는 거리감이 있었으나 운명이 좋지 않아 끝내는 비극적인 종말을 맞게 된다.
목염자는 일생동안 양강을 깊이 사랑했고 최후에는 철창묘에서 철창으로 양강의 심장을 찌르고 자기도 자결함으로써 비록 가련하지는 않지만, 맹목적인 사랑의 극치를 보여주며, 곽정이 두 사람을 합장해 준다.

느낌상으로도 감동적이지만 김용의 철창 안배에 대해서는 나는 신판이 원래의 구조상의 배치를 잃어버렸다고 느끼는데 그 이유는 목염자가 철창을 가지고 있었던 의미가 적기 때문이다. 곽정을 깊이 사랑했으나 양강에게 몸을 빼앗기는 진남금의 슬픔이 가장 가련하고 양과가 어렸을 때 진남금의 고심은 숨겨져 있다.
양과가 성장했을 때 황용의 양과에 대한 미묘한 심리를 구판에 더한다면 (그것이 신판보다는) 훨씬 더 이치에 맞을 것이다.


왜 양과를 목염자의 아들로 바꾼데다가 진남금과 목염자 둘을 한 사람으로 합쳤는가? 양과는 신조협려의 주인공이며 진남금은 양강이 일시 야수같은 본능으로 철장방이 보내온 여자를 강간하였던 여자이고, 목염자는 아주 사랑하여 헌신적으로 양강을 대했으므로 두 사람이 어린아이를 대하는 것은 분명히 같지 않을 수 있다.

한 사람은 양과를 원수처럼 대했을 수 있는데 왜냐하면 그녀가 원하지 않았고, 일생을 망친 장본인과 같아서 수시로 생각나는 그날의 기억은 양과의 이후의 심리발달과 인격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염자는 그렇지 않았으므로 김용이 명보에 연재되었던 진남금을 개작시 삭제하였고 원류판과 원경판에서의 양과의 어머니는 모두 목염자이다.


그밖에 진남금과 목염자를 합치고도, 여전히 곽정이 목염자에게 내공을 가르쳐 주고, 목염자가 본래 홍칠공의 무공을 배운 적이 있다는 것은 잊어버렸다.
원인은 (구판에서의) 진남금이 무공이 없었기 때문이며 그래서 팽장로를 만났을 때 싸울 힘이 없었던 것인데, 이는 아주 큰 결함이다. 만약 목염자의 무공으로 팽장로를 만나게 되었다면 결국 당해내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항거는 할 수 있었을 것이고 곽정도 한번 더 가서 그녀에게 전진파의 내공을 가르쳐 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무공이 없는 진남금은 배워서 쓸모가 아주 많지만, 무공이 높다 할 수 있는 목염자가 배워서 쓸데가 있을까?
황용이 완안홍렬을 잡아서 곽정에게 주는데 구판에서는 팽장로가 진남금을 잡은 것을 모방하고, 신판에서는 곽정은 황용이 팽장로가 미모의 여자를 잡는 것을 흉내내어 자기와 장난하는거 아닌가 생각하는데 후에 내가 보기에 신판은 그 부분이 약간 억지스럽게 바뀌었다고 느낀다.
복선없이 들어간 것일까?


다만 구판중 구양봉이 얼음에 갇히게 되는데 노유각이 그의 공력으로 삼일은 버틸 것이고 삼일이 지나면 생명을 부지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내가 이 부분을 읽을 당시에 크게 웃었고, 너무 불합리하다고 느꼈는데 과연 신판에서는 바꾸었다.
구양봉이 얼음에 삼일 갇혔던 것을 한 시진으로 바꾸었다.

백색 담비가죽옷이 흑색 담비가죽옷으로 바뀜.
구판 제1회 중에는 곡령풍이 보물을 훔치는 부분이 없는데, 이 부분을 추가한 것은 예광선생도 말한 적이 있듯이 흠이다.
구판에서는 곡령풍이 등장하지 않고 처음 나올 때 이미 백골이었으나 나는 그가 진현풍과 매초풍에 비해 손색없는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사조영웅전 제1장에서 신판은 곡령풍이 보물을 훔치는데 구판에는 이 부분이 없다.
내 생각으로는 구판에서의 곡령풍은 독자로 하여금 그가 벌인 일을 생각케 하는, 이름만 들었고 그 사람을 본적이 없는 배역으로서 그 무공과 재지는 절대 진, 매 두 사람의 아래가 아니다.
논자는 신판에 이 부분을 넣은 것은 흠이라고 본다.
※ 역자 주: 이 단락은 윗 단락과 중복되지만 원문에 있어서 삭제하지 않고 그대로 번역했습니다.)


현재의 판본에서는 구음진경의 저자는 황상이다.
그러나 연재 원판에서는 주백통이 말하길 달마가 썼다고 한다.
내 생각에 당시 의천도룡기를 아직 쓰지 않았고, 후에 구양진경이 나오는 부분을 썼는데 구음과 구양을 나누기 위해 황상이 구음진경을 만든 것으로 한 것이 아닌가 한다.

신조협려

저번에 신조협려를 또 한번 뒤적여 보았다.
뒤적 뒤적 하다가 홀연 삽화 한 장이 안맞는 것을 발견했는데 주의해서 본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제4권 양양성 영웅대회 회(回)의 삽화(혹시 그 전이거나 그 후의 회)인데, 그림 중에 양과와 황약사가 손을 잡고 깃발로부터 날아 내리는 장면을 자세히 보니 어떻게 양과의 잘린 팔이 좌측 팔인가?

나는 진작에 - 김용이 신조협려를 개작할 때 좌우수를 바꾼 까닭일 수도 있으나- 신조협려의 신구판에 차이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지 않다면 신구판에서 양과의 잘린 팔이 같지 않고 더 확실한 것은 구판에서 양과가 자미연검에 의해서 팔을 잘렸고 군자검에 의해 잘린 것이 아니다.
또한, 신조가 양과에게 먹인 것은 촉산검협전에 나오는 주과(朱果)이지 뱀쓸개가 아니다.
양과가 후에 흑룡담에서 잡은 것은 신판에서는 흑소영호이지만 구판에서는 삼두영호이다.

의천도룡기
구판의 사조삼부곡, 천룡팔부를 나는 모두 가지고 있는데 여기서는 의천도룡기 구판 중 몇 사람의 이름이 변동이 있는 것만 말한다.
조민(趙敏) -- 조명(趙明)
은리정(慇梨亭) -- 은리형(慇利亨)
(金康이 장삼봉의 제자들 이름에 관해 말한 바에 의하면, 장삼봉의 제자 이름 중 은리형은 역경중의 원형리정(元亨利貞)에서 따왔다)
그러나 김용은 다른 제자의 이름과 조화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은리정으로 바꾼 것이다.
한번 보자
교(橋), 주(舟), 암(岩), 계(溪), 산(山), 정(亭), 곡(谷) 잘 어울리지 않는가?


장무기가 빙화도에 있을 때 구판에서는 옥면화후가 한 마리 있어서 그를 벗삼아 어린 시절을 보내는데 이 화후는 영성(靈性)이 있었다.
신판에서는 왜 안보이는지 모르겠다.

구판중, 주지약도 명교소속 주자왕의 딸이라 명교와 연원(淵源)이 깊은데 신판에서는 왜 어부의 딸로 바꾸었을까?
그녀에 관한 결말을, 위에서도 말했지만, 여러분을 좋아하는가?
구판 의천도룡기에서 전대 명교교주는 양파천(楊破天)인데 신판에서는 양정천(陽頂天)으로 바꾸었고 천주절호수(千蛛絶戶手)는 천주만독수(千蛛萬毒手)로 이름을 바꾸었다.


구판에서는 주지약이 도교에 귀의하지만, 신판에서는 장무기가 둘 다 얻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두 가지 답안이 있다.
1. 구판 중, 주지약은 불교에 귀의하고, 조민이 장무기에게 「내 눈썹이 너무 엺다고 생각해요」라고 하자 장무기가 「이후로는 내가 매일 그대 눈썹을 그려 주겠소」라고 말한다.
2. 신판 중, 소설의 끝 부분에서 주지약이 창문 앞에 나타나자 장무기가 보고는
장탄식을 금하지 못한다. 이렇게 볼 때 주지약과 조민 두 사람이 한 남편을
모셨을 가능성이 크다.
소소는 성녀교주가 되었고, 멀리 페르시아로 갔다. 아마 장무기의 꿈속에서만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또, 소소가 페르시아 명교 총교주가 되었으므로 장무기는 아직도 그녀의 부하인 셈이다.

소오강호
1. 마교십장로는 풍청양의 검에 죽는다.
2. 일월신교의 교명은 조양신교이다.
3. 도곡육선에 대해서는 비교적 깊이 묘사하는데 신작에서는 육인의 외모에 대해 일률적으로 '말상'으로 형용한다. 구판에서 비교적 상세히 묘사한다.
4. 신작은 악불군의 내심에 대한 묘사가 비교적 적고 구작에서는 묘사가 많지만
군더더기가 여러번 나타나 신작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묘사만 못하다.
5. 막대선생은 화산의 석동 안에서 여러 장님들이 마구 휘두르는 검에 의해 죽는다.
6. 소오강호에서 가장 큰 변동은 형산파 소상야우 막대선생이 구판에서는 원래취섬(聚殲) 장(章)에서 죽지만 신판에서는 부활시켜 영호충과 영영의 결혼일에 호금으로 그의 곡 중 유일하게 즐거운 분위기를 띤「봉구황(鳳求凰)」을 연주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부활시켜준 작가에게 감사드린다.
7. 몇 사람의 이름이 그다지 같지는 않으나 대부분은 성씨를 바꾸었다.

협객행
구판 협객행에서 상선벌악 두 사자는 용목도(龍木島)에서 왔는데 신작에서는 협객도로 부른다.

김용소설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한 종류는 연재원판이다.
명보와 기타 잡지에 연재한 것이고, 어떤 것은 작은 책을 합본한 것(小本閤訂本)이 있다.
천룡팔부 후기처럼 그분 교수님이 본 것은 연재원판을 모은 소본합정본이다.
그분의 편지에서 천룡팔부를 합정본 제<33권>까지 읽었다고 하는데, 소학교 때 나는 대략 40권까지 본 적이
있다. 또 한 종류는 단행본판이다.
김용이 정리, 수정하였고 회목을 더하고 삽화와 속표지를 정선하였으며 출판 과정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단행본판서검은구록은 <서검강산>의 이름으로 출판된 적이 있다.
사조영웅전은 대만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대막영웅전>으로 출판되었다.

 
(몇년 전에'김용문학관'에 올린 글인데 제대로 안된 부분이 많지만 수정하기도 게을러 그냥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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