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불을 켜고 검을 본지 50년 4

대만무협소설발전사 2023. 4. 20. 18:18 Posted by 비천호리

본서(本書)를 공저(共著)하게 된 전말 및 설명에 관하여

붓을 달려 여기까지 왔으니, 이 기록의 역사에 대해 몇 마디 속마음을 털어놓겠다. 이 책이 온갖 고난을 헤치고 '착수'될 수 있었던 건 뜻을 같이하는 절친한 사이인 임보순 교수의 열성과 독촉 덕분으로 감사해야 할 것 같다. 대략 1994년 이후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저런 횡포하고 억지스러운 일을 당했기 때문에 홀연 물러날 마음이 싹텄다. 그 때문에 몇 년을 허송세월하며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1998년 5월 말, 보순이 나를 초청하여 미국을 방문해 콜로라도 대학이 주최한 '김용 소설과 20세기 중국 문학' 국제 학술 심포지엄에 함께 참가했다. 회의 참석자는 대륙 작가가 많았고 진정한 전문가와 학자는 비교적 적었지만 놀랍게도 그들은 줄곧  김용을 추켜세워 거의 '성스러운 교주님'에 대한  경배라 할 만큼 낯 간지러운 지경에 이르렀다. 반면 대만 무협작가의 제반 업적에 대해서는 본체만체하고 모조리 말살하고 있었다. 심지어 대만의 무협 작가들은 모두 김용을 스승으로 삼아 그대로 모방하고 있으며, 감상할 가치가 전혀 없다고 함부로 지껄이기까지 하였다. 우리는 당시 회의에서 비록 이치에 따라 힘써 다퉜지만 결국은 중과부적이었고, 역사적 사실이 심각하게 왜곡되는 것을 깊이 우려했다.

나중에 보순은 나에게 "우리가 시시비비를 다퉈봤자 헛수고다. 차라리 함께 대만 무협소설사를 써서 이 사실들의 진상을 세상에 알리고 귀중한 역사적 기록을 남기는 것이 어떠냐"고 상의했다. 확실히 그가 신중히 '정확한 기록의 역사'를 함께 쓰자는 제의를 한 것은 일리가 있었다! 왜냐하면 무협소설은 다른 대중적인 읽을거리와 달리 매 한 부의 작품 분량이 걸핏하면 수십, 수백만자에 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릇 이름이 알려진 작가들은 모두 다작으로 유명해서 작가 별로 적어도 10 몇부에서 20부, 많으면 70~80부의 작품을 가지고 있다. 그 역사를 연구하려면 산 같은 문서와 바다 같은 글자(書山字海), 한우충동(汗牛充棟)이라 할 정도로 많은 책을 마주하게 될 것이었다.

오랫동안의 열독(閱讀)으로 쌓아온 심득(心得)이 없다면 황당무계한 일이었다. 더욱이 모래 밭을 헤집어 금을 줍듯 쓸 만한 사료를 선별하는 데는 도처에서 시간과 정력을 필요로 한다. 누군가 단창필마(單槍匹馬)로 무림에 뛰어드는 망상을 한다면 절대로 성공하기 어렵지만, 두 사람이 분업해 협력하고 공동 집필하는 것은 오히려 실현 가능한 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일의 성질이 중요하고 관련성이 광범위하여 전반적인 고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바로 착수하지 않았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얼마 후 내가 큰 병을 앓아 죽을 고비를 겪다 겨우 살아나게 될 줄을. 보순은 나보다 일곱 살 아래였고, "강호를 걸은" 경력은 비교적 짧았다. 그는 내가 50의 나이에 또 불의의 일이 생기면 혼자서는 어렵고 무거운 짐을 맡을 수 없을 것을 두려워했는데 왜냐하면 나 같이 어려서부터 무협을 보고 자랐고, 나이가 들어서도 후회하지 않는 "괴짜"를 다른 데서 찾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이 나은  후, 나는 그의 끈질긴 설득을 견디지 못하고 단번에 승낙하였고, 곧바로 충분한 토론을 전개하여 대강의 중요 항목과 분업 사항을 작성하여 저술에 필요한 조치를 진행하였다.

이 책은 밀레니엄의 여름부터 쓰기 시작하여, 전후 다섯 번의 봄 가을에 걸쳐 세차례 원고를 바꾸어 번잡한 것은 덜어내고 요점을 추려내어 비로소 완성하였다. 보순이 겸양과 신임으로 나를 전서의 원고를 조율한 사람(通稿人)으로 추천했다. 본서의 컨텐츠 기획, 취사선택 기준, 분업 협력 등의 항목에 대해 책임이 있고 의무도 있기 때문에 하나하나 필요한 설명을 한다. 이제 그 가운데 뚜렷히 큰 것을 들면 다음과 같다.

(1) 콘텐츠 기획 방면
이 책은 <서론緒論>을 선두로 하여 무협소설과 통속문학, 사회대중, 학술연구 등 각 방면의 상호작용 관계와 그 존재의 현실적 의의를 상세히 밝히고 있다. 전서는 총 4장 19절로 나뉘며, 각 장의 세부 항목은 하나의 역사 발전시기에 나타난 주체적인 정신의 면모를 상징한다. 시간의 범위는 1951년부터 2001년까지(운중악이 마지막으로 절필한 때를 한도로 함), 대개 반세기 동안 대만 무협소설의 흥망성쇠의 시말, 크고 작은 사건들이 모두 여기에 들어있다.

본서는 작가의 작품/출판 유통의 두 선(雙線)이 교차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으며, 단계를 나누어 종합적인 논술을 진행하고 있다. 유명 작가의 생애와 학습경력에 대해서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검증하여 신뢰할 수 있고 근거가 있도록 하는데 힘썼고, 무릇 대표적(동료 또는 독자에 대해 광범위한 영향력이 있는 것을 가리킨다)인 작가의 작품은 특별주제로 처리하여 중시함을 표현했다.

책 전체의 기조는 대만 무협이 창작한 내용과 형식인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의 발전 과정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제1장의 발흥기와 제2장의 흥성기를 논술의 중심으로 하고, 편폭도 비교적 큰데 20년 동안 백화제방의 번영 상황에 착안하였다. 제3장 퇴조기는 대만 무협 창작이 직면한 내외협살(內外夾殺)의 곤경을 개괄적으로 서술하고, 제4장 쇠미기는 대만에서 대륙으로 확대하며 열도 내 무협 출판업자와 창작자가 '제2의 봄'을 찾으려는 시비와 공과를 논하고, 오늘날 무협 연구의 현 주소에 걸치는 등 여러가지를 논하고 있다.

(2) 취사선택의 기준 방면
실용적 태도로 먼저 주요 작가 10인의 작품을 주요 논술 대상으로 선정하여 노(老), 중(中), 청(青) 3대의 노력과 성과를 대표한다. 이 중 낭홍완은 대만 무협창작의 선구자이며, 최초의 전문작가로서 신문, 잡지 등의 간행물 연재 바람을 일으켰고, 와룡생, 사마령, 제갈청운, 고룡의 4대가는 1960년대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각자 문학을 이끌었으며 지극히 높은 영예를 누렸다.

육어와 진홍은 대만현지 출신 작가 중 뛰어난 사람이며, 각각 '신파 무협'에 획기적인 진전을 이룬 공을 세웠으며, 다른 유명 작가들이 대체할 수 없다. 운중악과 유잔양은 서로 다른 ’강호 사실(寫實, 리얼리즘)파‘ 스타일을 취하여 상호 대비되며 결점과 뛰어난 점이 모두 있다.  특히 전자가 역사를 원용하여 이야기를 서술하고 고대의 제도와 문물 및 풍속과 민정(民情)을 재현한 것은 격찬을 받을 만하다. 온서안은 뒤늦게 출도했지만 무협 퇴조기의 막차를 탔고 ’초신파(超新派)/현대파‘ 수법으로 무협 문체의 형식을 뒤집어 독특한 하나의 풍격을 갖췄다.

그 다음으로, ’8대 서계(八大書系)’를 대만 무협 출판업의 골간으로 삼아 그 근원이 되는 작가와 작품 목록을 분별하여 간략하게 소개한다. 이는 8개 출판사는 남기(南琪)를 제외하고는 오랫동안 대만의 일류 무협 작가(상대적 기준으로)를 양성하여 많은 책을 냈기 때문이다. 남기는 1970년대에 다수의 유명 작가들을 망라하여 원고 제공자로 삼아 마치 천겹의 파도를 몰아가는 듯한 기세였으니 그 영향 또한 가볍게 볼 수 없다.

거듭 말하지만, 이 책은 사람의 마음에 해를 끼치는 ‘귀파(鬼派)’와 ‘색정파(色情派)’의 작품을 '반면교사의 교재'로 삼아 논술의 대상에 끼워 넣었다. 그 극악함이 ‘독초‘ 와 같기 때문에 반드시 힘써 비판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어야 한다.

(3) 분업 협력 방면
나와 보순은 서로 협력하여 정확한 역사 서술을 최고 원칙으로 삼아 본서를 쓰기로 하고, 개인의 흥미와 전문성에 따라 서로 '책임지고' 관련 장절(章節)을 나누어 쓰되, 의심스러운 점이 있으면 토론을 제의하여 해결방법을 찾기로 했다. 우리의 분업 상황은 대략 다음과 같다.

보순은 대학파(大學派) 입장에서 <서론>과 <결론>을, 나는 원고 제1장과 제2장(대부분)의 원고를 맡고 중간 3, 4장은 두 사람이 자유롭게 절을 골라 각각 손을 댄 후 조정하여 일치시켰다. 좋은 점은 집필자가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피하며 마음껏 발휘하고 각자 정력을 집중하여 집필할 수 있다는 것이지만, 단점은 두 사람의 문체 스타일과 사상적 인식이 완전히 통일되기 어렵고 많은 저촉이 생길 수 있으며, 심지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본분을 넘어서'  관련된 사람과 일에 대해 중복 서술하여 쓸데 없는 번거로움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누군가가 원고 전체를 살피는 일을 책임지고 맡아서 사심 없고 치우치지 않는 태도로 적절하게 수정 첨삭함으로써 책 전체의 기경팔맥(奇經八脈)을 통하게 해야만 해결된다.

필자는 불민(不敏) 하지만 보순으로부터 전권을 얻어 이 관건이 되는 일을 처리한 이상, 당연히 본서 내용의 성패와 득실에 대한 주된 책임을 져야 한다. 다만, 나의 문화적 소양에 한계가 있고 식견이 부족하여 열심히 일에 종사하고 전력을 다하였지만, 여전히 이상(理想)에 미치지 못한다고 느껴진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바란다.

당나라 류지기(劉知幾)는 <사통史通>에서 일찍이 견식 있는 사람은 응당 '세가지 장점(三長)', 즉 사재(史才), 사학(史學), 사식(史識)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했고, 청나라 유학자 장학성(章學誠)은 <문사통의 文史通義>에서 다시 사덕(史德)을 더해 아울러  '네가지 장점'이라고 부르며, 고금의 좋은 역사서술(良史)인지를 가늠하는 모범으로 삼았다. 본인은 이 '네 가지 장점(四長)'에 관해 대체로 얻은 바가  없어 상당히 부끄럽지만, 오직 가슴속에 가득찬 뜨거운 피는 아직 식지 않아서 감히 무협 대중을 위한 견해를 밝힌다.

아쉽게도 나는 근세의 서양 학자인 J.H.Robinson의 "신사학(新史學)"과 같은 소위 "사심(史心)"(일체의 현대 학설을 운용하여 역사 발전 현상을 해석하는 것을 가리킨다는 의미)에 대해 비교적 전면적인 이해가 부족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한 시대의 협패(俠稗) 흥망성쇠의 역사를 침착하게 파악하여 역사의 산증인이 되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내외의 모든 무협 동호인들에게 진심으로 고백하고 싶다. 원고를 쓰는 과정에서 보순과 그의 제자들이 도처로 무협 헌책방을 찾아다니며 관련 도서목록 및 신문잡지 등 간행물 연재 정보를 조사해준데 힘입어 오류를 줄일 수 있었다. 상해 주청림(周清霖) 형과 북경 고진(顧臻) 형이 때맞춰 대륙에서 출판한 대만 무협도서의 각종 "참고 정보"를 제공해 준데 대해 감사를 드린다. 많은 유익함을 얻었고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또한 작고한 벗 우지굉 형이 생전에 얼굴을 맞대어 격려해주고 외부인들이 모르는 많은 '무림비밀'을 솔직하게 알려주고 내게 귀중한 가르침을 준데 대해 감사하여 마음에 새긴다. 그들 모두의 전폭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이 당대 유일무이한 대만 무협소설사는 모든 것을 망라하여 계획한 때에 맞춰 완성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사람들 모두 가버렸구나! 마음속에 우연히 당 나라 사람 이의산(李義山)의 싯구가 스쳐간다. "늘 백발로 강호(江湖)에 귀은(歸隱)하고 싶지만, 세상을 뒤바꾼 후 작은 배 타고 돌아가야지!(永憶江湖歸白發, 欲回天地弄扁舟!)". 우리는 지난 5년 동안 원고 작업으로 고군분투해왔지만, 한 마음으로 50년의 강호 옛일을 모두 이 역사 속으로 압축해 정확히 기록하려고 한 것 아니겠는가! 이제 이 큰 일의 인연을 마무리할  수 있어 무협에 뜻을 같이하는 천하의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되었으니, 보잘 것 없는 나의 이번 생 또한 유감이 없다.

해협(海峽) 양안(兩岸)의 덕망 높고 벗이자 스승인 노학자 서사년 선생과 양창년 선생은 바쁘신 와중에도 이 책의 서문을 보내 주시어 더욱 영광스럽게 여기며, 또한, 편집 담당자 이소연 아가씨는 번거로움을 꺼리지 않고, 노고와 원망을 마다하지 않아 나에게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었으니, 삼가 여기에서 함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본인이 여러 해 동안 수집한 '협객장서(俠客藏書)' 500여 권, 약 1만 집(集) 분량의 32/36절본 원판 무협소설도 이 책이 출간되는 날 모두 담강대학(淡江大學) 무협연구실에 기증해 후학들이 참고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내가 헛되이 보순보다 몇 살 더 먹었기 때문에, 특별히 저자를 대표하여 이 소소한 소감을 말하고, 평생의 지향(志向)과 좋아하는 바를 털어놓았다. 혹시 독자들은 "무협소설을 선택하고 그것에 고집스럽다"고 나를 비웃을지 모르겠다.

2005년 4월 남천일엽(南天一葉)이 대북(台北) 금검산방(琴劍山房)에서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