碧眼金雕

벽안금조(碧眼金雕) 5-4

비천호리 2024. 10. 5. 22:05

동방평이 놀라 허둥거리며 재빠르게 걸어왔다. 아름다운 얼굴에는 놀람과 두려움이 떠올라 있었다.
그녀의 검고 빛나는 눈동자가 석지중의 짙은 눈썹에 머물다가 스쳐 지나가며 천룡대제에게 말했다.
"아빠! 그는…."
천룡대제의 안색이 싸늘해지며 말했다.
"너, 이 자를 아느냐? ” 
동방평은 깜짝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억울해 하는투로 말했다.
"모르는 사람이예요! ”
천룡대제가 부드러워진 얼굴로 말했다.
"궁으로 돌아가거라, 더 이상 말할 것 없다."
동방평은 어쩔 수 없이 한 무리 채의(彩衣)를 입은 소녀들을 데리고 궁으로 걸어갔다.
순식간에 넓은 뜰에는 졸졸 흐르는 물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석지중은 상대의 기세등등한 위엄에 마음이 불편해서 말했다.
"전배(前辈)께서 별일 없으시다면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천룡대제가 코웃음을 치고 말했다.
"네 근골으로 보아 확실히 불세출의 영재인건 맞지만, 내가 정한 규칙을 어겼으니 죽는 길 밖에 없다. ”
석지중은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끼고 큰 소리로 물었다.
"당신은 무엇을 근거로 사람을 죽이려고 합니까? 당신은 또 무슨 까닭으로 이런 규칙을 정했습니까?”
천룡대제는 누군가 그에게 이런 말을 할 줄 생각지도 못한 듯 깜짝 놀랐다. 그는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이 질문에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는 영준하지만 약간은 앳된 석지중의 얼굴을 주시하다가 돌연 광소를 터뜨렸다.
"바로 내 의지에 의해, 내 쌍장을 믿고 그런다!"
석지중이 코읏음치며 말했다.
"내 이제껏 이제삼군(二帝三君)이 천하에 최고라 반드시 남다른 점이 있을 줄 알았더니, 똑같이 힘으로 다른 사람을 내리 누르는 부류인 줄은 몰랐군. 흥! 당신 주먹으로 내 의지를 꺾을 수 있을까? 내 의지와 내 쌍장에 의지해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소."
"미친놈!"

천룡대제가 발을 움직이지 않은채 몸을 날리며 두 손가락을 세워 비스듬히 그었다.
"네가 죽음을 두려워하는지 안하는지 볼까?"
석지중의 눈앞이 흐릿해지고 상대방의 두 손가락이 귀를 찌르는 듯한 괴이한 소리를 내며 언뜻 나타났다. 조각조각의 지영(指影)이 예리한 바람을 몰고 얼굴을 베어오는데 전광석화처럼 빨랐다.
석지중이 놀라 안색이 바뀌며 양장(两掌) 을 뒤집고 몸을 흔들어 뒤로 펄쩍 뛰며 두 줄기 장풍을 처내 얼굴을 보호했다.
어찌 알았겠는가, 그가 막 일장 밖으로 뛰쳐나올 때, 천룡대제는 이미 그림자처럼 따라 따라 붙었고, 한 가닥 지풍으로 그가 쳐낸 장풍을 찢고 들어와 그의 옷에 기다랗게 찧어진 자국을 낼줄을.
"찌익" 소리와 함께 석지중이 분노에 차 고함을 지르며 두 팔을 휘둘러 기묘하게 일초를 공격해 상대의 지영을 막아냈다.
천룡대제는 의아해하며 말했다.
"아! 원래 너는 천독랑군의 제자였구나, 그렇다면 더더욱 살려둘 수 없지!”
석지중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쌍장을 천천히 들어 올리며 불문의 반야진기(般若真气)를 쌍장에 모았다.

그의 얼굴이 붉어지고 걸치고 있는 옷이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저절로 움직이더니 한 가닥 커다란 기운이 터져나오는데 마치 큰 산봉우리가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기세가 무섭기 짝이 없었다.
천룡대제의 귀밑머리까지 비스듬히 날리는 두 가닥 긴 눈썹이 높이 솟으며 천룡대제가 놀라 바라보며 외쳤다.
"반야진기(般若真气)!"
그가 넓은 두 소매로 마치 철판처럼 나란히 쳐내자 소매 밑에서 솟아나온 힘이 소용돌이치며 흔들렸고 소매 속의 쌍장이 불현듯 나타나 마치 백옥(白玉)으로 조각한 것처럼 햇빛에 반짝였다.
쾅'하는 굉음과 함께 풀과 흙이 흩날리고 진흙과 모래가 튀어 올랐고 석지중이  신음소리를 내며 일장 밖으로 떨어졌다.
그의 안색은 창백했고, 옷은 모두 그 날카로운 장경(掌劲)에 의해 조각조각 베어져날아가 버렸다. 그러자 그의 배 앞의 붉은 점 일곱 개가 마치 북두성이 밤하늘에 늘어선 것처럼 기이하고 신비로운 빛을 발했다.
그의 가슴에 기혈이 요동치며 '왁' 소리와 함께 땅에 선혈을 한모금 토해냈다.
그러나 그는 재빨리 일어나 두 눈을 부릅뜨고 전면을 응시했다.
천룡대제의 몸이 약간 기울어졌는데 상대가 발출한 반야진기에 흔들려 하마터면 똑바로 서지 못할뻔 한 것이다.